콩트_2022년 어느 날 코리아

아들이 말했다. “무지한 분노가 공포스럽다”고…

218호 (2017년 2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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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빈집과 빈 공장만 남겨졌던 위험한 도시에서 제2의 실리콘밸리로 거듭난 러스트벨트. 그런 러스트벨트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던 포토저널리스트 아들이 테러에 휘말려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된다.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기업테러’가 일어난 것. 포드, GM 등 자동차 회사가 보호무역정책에 따라 멕시코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자 이에 반발한 집단이 모터쇼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보도였다. 아들은 사흘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는 곧잘 이어지지 않는다.



그는 재킷 안쪽 주머니 깊숙한 곳에 사진 한 장을 넣고 다닌다. 오래 전에 넣어두고 그것이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몇년 전 어느 날 그는 아들의 신원을 증명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평소 아침처럼 항산화 효과가 있고 당뇨에도 좋은 뜨거운 콩차를 한 잔 만들어 식탁에 앉은 참이었다. 그는 늘 그 시간에 집안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주방 식탁에 앉아 차가 식기를 기다리며 태블릿PC로 그날의 주요한 기사들을 읽었다. 몇 년 전부터 노안이 와서 고생하는 것을 본 아들이 선물해준 태블릿PC는 기사를 읽거나 저장해둔 사진을 꺼내 볼 때 요긴했다. 사진은 대부분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을 찍은 것이었고, 유원지의 빨간 꽃밭이나 저녁 고궁의 아름다운 돌담을 배경으로 찍은 특별한 사진들도 있었지만, 그는 아들이 자라며 조금씩 평수를 넓혀나갔던 옛집들에서 찍은 자연스러운 사진들을 더 좋아했다. 사진 속 어린 아들은 그의 무릎 위에 앉아 작고 찐득한 과자를 먹기도 하고 때때로 그의 볼에 입을 맞추기도 한다. 아들과 함께 자주 카메라 앵글에 잡혔던 아내의 모습은 이제 그에게 소중한 추억이 됐다. 아내는 3년 전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어떻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급하게 저세상으로 갔다.



“그러니까 아드님이 맞다 이거죠?”

전화를 건 남자가 재차 물었다.

“예, 예,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아뇨. 새벽에 일어난 디트로이트 모터쇼 테러의 참고인으로 지금 조사받고 있는데….”

“테러요?”

그는 반사적으로 물은 뒤 자신이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낸 그 단어와 그가 살아온 삶 사이의 거리를 아득한 기분으로 헤아려 보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요새 이런 일이 허다하지 않습니까?”

전화 너머의 남자는 주차 딱지를 떼거나 공과금 미납을 알려주는 투로 말했다. 그는 남자가 묻는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아들은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포토저널리스트이며 최근 행선지는 오키나와를 경유해 미국 동북부로 갔을 거라고 아는 대로 말해줄 수 있었지만 그 애가 평소 어울리는 사람들과 그 무리의 성향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남자는 그가 진술한 내용을 참고해 아들의 신원을 조사하고 그 자료를 미국 당국에 공조할 것이라고 알려줬다.

“수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곧 귀국조치될 겁니다.”

남자가 전화를 끊고 나서야 그는 우리 아들은 그럴 애가 아니라고, 조금도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두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심지어 아들의 상태는 어떤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조차 묻지 않은 것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

한동안 식탁 앞에 앉아 망연자실하던 그는 이내 스스로를 타일렀다. 요새는 정말 이런 일이 흔하지 않은가. 툭하면 어디선가 테러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어느 나라나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묘한 감정이 생겼다. 교양 있는 사람들은 공포와 증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그 감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외국인의 출입국이 엄격해져서 생겨난 크고 작은 문제들, 테러지역에서 1순위로 수사 대상에 오르는 타 국적 사람들이 장기간 구류되면서 벌어지는 분쟁들을 그는 흔한 기사로 이미 접했다. 그리고 그것이 테러를 당한 국가의 히스테릭한 분풀이이자 본보기식 절차라는 것도, 구류 당한 사람들이 대개는 무탈하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고 식어버린 콩차를 찻잔째로 빈 개수대 안에 내려놓았다.



아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이런저런 기업의 수습사원으로 경력을 쌓던 시기였다.

서울의 유수한 대학이지만 일류라고 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는 학교를 졸업한 뒤 아들은 좀처럼 정식 입사를 하지 못했다. 6개월에서 짧으면 3개월 간격으로 여러 회사를 떠돌았다. 그는 아들보다 두어 단계 높은 등급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하는 모든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어떤 원조도 받은 적이 없었다. 또 그는 졸업 전에 업계 1, 2위를 다투는 보험사와 상당한 액수의 연봉 계약서를 썼고, IMF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몇 번의 이직을 했지만 일을 쉬어본 적은 없었다. 아들은 달랐다. 그는 아들이 뭐든 부족하지 않게 느끼도록 해주고 싶었고, 아들이 인생에서 시간과 공을 들여 스스로 얻어야 할 많은 것들을 대신 채워주었다. 아들은 그러한 일들에 부채감을 느끼지 않았고 고맙게 여기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쟁취하고 해내야 한다는 절실함도 없었다. 그는 아들이 변변치 않은 행보를 보이는 것이 실망스러웠지만 그 시기에는 아들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처음 작은 렌즈의 DSLR 카메라를 사서 서류가방에 넣고 다닐 때 그는 그것이 업무에 필요한 물건일 거라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이따금 책상 위에 펼쳐놓은 사진들을 살펴보면 그건 그저 균일한 간격으로 파티션이 설치된 빈 사무실 풍경이나 구내식당에서 일렬로 앉아 점심을 먹는 회사원들의 모습이었다. 그는 아들이 아무 것이나 마구잡이로 찍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카메라 렌즈가 세상을 읽어내는 분명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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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들이 찍은 사진이 파리의 한 저널매거진에 실렸다. 지하철 출입문에 기대서서 안전기둥 위로 은밀하게 손을 겹치고 있는 게이 커플과 완고한 자세로 앉아 그 커플을 사납게 주시하는 노인의 사진이었다. 아들은 그 사진에 ‘Be careful.’이라는 제목을 달아 트위터에 올렸고, 파리 매거진의 에디터가 직접 그 사진을 쓰고 싶다고 e메일을 보내왔다. 아들은 잡지에서 사진 밑에 ‘당신의 혐오를 도덕이라고 믿지 않도록’이라는 문구를 덧붙였다고 알려줬다.

“이 사진들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 아들은 처음으로 그렇게 말했었다. 그는 그것이 지나치게 몽상적인 낙관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들이 포토저널리스트로 자리를 잡고 인정받기 시작하자 이내 자랑스럽게 여겼다.

아들은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을 떠돌며 사진을 찍었다. 내전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나 끔찍한 피해를 입은 지역에 간 적도 있었지만 서서히 도시적 분쟁에 초점을 맞췄다. 환경 문제, 노동 문제, 여성인권 문제, 성소수자 문제, 난민과 이민자 문제, 기업의 상권 독식 문제 등이 아들의 주된 관심사였고 자국이나 타국 정부 또는 기업이나 재단처럼 거대한 집단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 그들의 표정과 체온을 사진 위에 섬세하게 담아냈다.

이번에 아들은 2017년 이후 눈부시게 재기한 미국의 러스트벨트 지역을 취재하러 간다고 말했다. 러스트벨트는 한때 100년간 미국의 제조업 호황기를 이끌었지만 높아진 인건비 때문에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쇠락했고, 서부해안의 첨단산업과 동부해안의 금융업이 미국의 중심산업으로 부상하는 동안 빈집과 빈 공장이 남겨진 위험한 도시로 전락했다. 지난 대선에서 멕시코와 중국에 아웃소싱된 일자리를 되찾아오겠다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져 승리에 결정적인 열쇠가 된 것도 바로 이 지역이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러스트벨트의 부흥을 주요 정책으로 크게 홍보하며 매년 수조 원의 지원을 쏟아부었고, 근 몇 년 사이에 그곳은 제2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며 첨단산업단지로 모습을 바꿨다.

“사실 러스트벨트는 재기한 게 아니에요.”

아들은 확신했다.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으로 인해 인생의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된 사람들은 트럼프가 안정적인 제조업 일자리를 제공해 줄 거라고 믿었어요. 실제로 많은 일자리가 즉각적으로 생겨나긴 했지만 충분하지 않았죠. 그마저도 점차 줄어들고 있고요. 애초부터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생산도시가 몰락하고 소비도시가 부상하는 것이 지금 세계의 추세예요. 이제 러스트벨트에는 사람의 단순 노동력을 최소한으로만 필요로 하는 자동화된 공장들과 전문화된 고급 두뇌를 요구하는 하이테크 연구소들로 가득해요. 어제까지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던 사람들이 전문적인 과학기술 교육을 다시 받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그들은 공장이 아니라 새로 유입된 고급 인력들을 위한 편의시설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구했어요. 해외의 값싼 노동력으로부터 일자리를 되찾아오려 했지만 오히려 제조업의 터전에 첨단산업이 침범한 거예요. 해안의 실리콘밸리가 높은 임대료와 물가를 피해 러스트벨트로 범람한 거라고요. 언젠가는 러스트벨트의 부동산도 서서히 오르고 누군가는 돈을 벌겠죠. 그러는 사이에 원래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라질 거예요.”



아들은 애석한 표정도 짓지 않고 물었다.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갈까요?”

그리고는 그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다시 부드러운 천으로 카메라 렌즈를 닦았다. 그게 아들이 떠나기 전에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그는 따뜻하게 데운 두부에 희석한 쯔유를 뿌려 늦은 첫 끼를 먹었다. 의사는 육류와 탄수화물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고 경고했고, 스스로도 과다한 음식이 그의 몸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제 당을 줄이고, 염도를 낮추고, 칼로리를 조절해야 하는 섬세한 육체를 가지게 됐다. 그 육체의 어떤 부분에서 죽음의 씨앗이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해야 했다.

그는 연쇄적으로 다시 아들을 떠올렸다. 이제 만 30세가 된 젊고 단단한 몸. 순환과 회복을 어렵지 않게 해내는 건강한 육신도 총에 맞거나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리면 죽고 만다. 그는 그런 장면을, 거기서 아들의 영구한 죽음을 떠올리며 두려움을 느꼈다. 지난 새벽에 일어난 디트로이트 테러를 검색해보니 100여 개의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미 그 기사들을 여러 번 읽었다. 또 고작 몇 분 간격을 참지 못하고 새로운 기사가 올라오는지 계속 확인했다. 그 모든 기사 속에서 아들의 흔적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시간 현지 시간으로 어제 오후 2시20분쯤,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기자처럼 행사장을 취재하는 듯 보이던 세 명의 남자가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총기난사를 하고 곳곳에 불을 지른 사건이었다. 이 테러로 12명이 죽고 34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는 팔과 다리에 총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은 여자와 한쪽 귀가 사라진 남자의 사진을 보았다. 턱이나 목에 총을 맞아 죽은 사람들은 하얀 천에 덮여 있었다. 그는 들것에 실려 나가는 시체의 한쪽 팔이, 여전히 세상의 시간과 동일하게 흐르는 손목시계를 찬 그 팔이, 딱딱한 나무토막처럼 하얀 천 밖으로 삐져나온 것을 보았다. 각각 프랑스인과 멕시코인으로 밝혀진 두 명의 테러리스트는 현장에서 경찰에게 사살됐고 나머지 한 명의 행방은 추적 중이었다. 미국은 이 테러를 ‘기업테러’로 판단하고 배후를 수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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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사이에 전 세계 테러 발생 빈도는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IS 이외에 다양한 목적을 가진 테러집단이 생겨났고 국가적, 민족적, 종교적 이유로 자행되는 테러는 물론이고 기업을 겨냥한 테러도 일어났다. 특정 기업의 상권 진출로 한마을 전체가 일자리를 잃거나 반대로 특정 기업의 철수로 수많은 실업자가 생겼을 때 그들은 테러리스트가 돼 기업에 보복했다. 디트로이트 모터쇼는 포드, GM 등 주요 자동차 회사가 보호무역정책의 일환으로 멕시코에 투자하기로 했던 생산시설과 기존 현지의 공장들을 미시간으로 이전하면서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들의 표적이 됐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기업테러의 수법은 IS처럼 악랄하고 과시적이어서 기업의 결정권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죽었다. 무고하게 죽을 수 있다는 공포를 사람들 마음속에 심어주는 것이 테러리스트들의 최종 목적이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은 기업테러의 압도적인 표적이 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테러가 각종 스캔들에 휘말려 탄핵재판에 오른 트럼프를 다시 대통령 자리에 복직시키는 요인이 됐다. 미국인들의 공포는 테러에 무자비한 폭력으로 맞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트럼프에게 강력한 지지기반이 돼줬고, 트럼프를 임기를 무사히 마친 미국 대통령으로, 또 연임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

그는 한 칼럼리스트가 TV쇼에 나와서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앞으로 수많은 목적의 테러리스트들이 생겨날 거예요. 성소수자들이 보수단체를 테러할 거고, 과격한 환경운동가들이 개발국과 개발업자들을 테러할 거예요. 아마도 우리 세대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를 자청하는 여자들이 변화와 수용에 완강한 남자를 처단이라는 이름으로 살해하는 걸 보게 될 거예요.”

칼럼리스트는 그것을 분노의 문제로 진단했다.

“분노는 쉽게 사람의 마음속에 왜곡된 믿음을 만들어내요. 분노의 감정이 너무나 분명한 실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정확한 진실이 되는 거예요. 그 분노가 정당하다면, 그러니까 그들 나름의 도덕적 가치에 충족된다면, 그로 인해 훼손될 모든 것의 가치를 묵살할 수 있다고 믿는 거죠. 나는 그런 믿음이 가장 공포스럽습니다.”



불현듯 아들이 그의 집에서 TV쇼를 함께 보고 있었고, 골똘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봤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들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테러를 지원하고 테러집단에 들어가길 자청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테러와는 아무 관계없는, 국적도, 배경도 다른 사람들이요.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특정한 목적이 없어요. 테러를 통해 정의로운 일을 달성하고 있다는 의식도 없죠. 한국에서 일베라고 불리는 사이버집단과 흡사해요. 삐뚤어진 영웅심리와 과시욕에 젖어 있고, 오직 폭력의 행사를 위해 테러에 가담하죠. 그들 내면에 어떤 상처나 풀리지 않는 분노가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스스로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그 분노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아버지, 저는 그런 무지한 분노가 가장 공포스러워요.”

그는 그때 그를 쳐다보지 않고 말하는 아들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들을 그의 예상과 통제 안에서 보호하는 시기가 완전히 끝나버렸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단단한 것들이 모래가 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린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고, 이제 자신이 아들 곁에 앉아 무력하게 늙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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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사흘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모든 조사가 잘 마무리됐다는 통화를 하고, 돌아온 뒤에도 잘 도착했다는 통화를 한 번 하긴 했지만 아직 아들의 얼굴을 보진 못했다. 아들은 예상치 못하게 미뤄진 업무 일정을 수습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괜찮다고, 여유가 생기면 밥을 먹으러 오라고 말하면서도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던 약 60시간 동안 그는 잠을 자다가도 문득 눈을 떠 진전된 뉴스가 있는지 확인했고, 목욕을 하다가도 전화벨이 울리면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욕실을 뛰쳐나왔다. 그 일에 관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백방으로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돌아온 아들은 마치 연착된 비행기 때문에 귀찮은 일들이 좀 생겼다는 듯이 굴어서 그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귀국한 지 보름이 훌쩍 지나서야 아들은 여자 친구와 함께 그의 집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아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여자 친구이자 동거인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를 아들의 약혼녀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저널리스트이자 문화비평가로 아들이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여자였다. 그 둘은 1년 전부터 셰어하우스 개념의 동거 중이었다.

그는 카펫을 털고 집안의 공기를 환기시켰다. 욕실의 물때를 닦은 뒤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이를 꼼꼼하게 닦았다. 좋은 향기가 나는 새 수건도 욕실에 걸어뒀다. 그런 다음 크림색 셔츠 위에 울스웨터를 입고, 충분한 양의 커피를 미리 끓여둔 뒤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아들과 아들의 여자 친구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아이들은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 그는 설핏 잠이 들었다가 초인종 소리에 깨서 현관문을 열어줬다. 아들과 아들의 여자 친구는 부산스럽게 그의 주방으로 들어가 사온 음식들을 늘어놓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는 몹시 배가 고팠지만 시장기를 감추고 그 아이들이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제야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아들은 수면이 부족하고 피로한 것 같았지만 건강해 보였다. 그가 수도 없이 상상했던 끔찍한 일들의 흔적은 아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종교가 없었지만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저녁을 거의 다 먹고 디저트 와인을 한 잔씩 마실 때, 아들이 말했다.

“저희 결혼하려고요.”

그는 잠깐 시간이 흐른 뒤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잘 생각했다.”

정말로 그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기쁜 소식에 마음이 들뜨는 것이 느껴졌다. 늘 결혼에 시큰둥한 아들에게 은근하게 결혼을 권하던 것은 그였다. 혼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습득했던, 그리고 그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결혼을 아들은 선택과 고려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가 아들을 설득하기 위해 하는 모든 말들이 아들에게는 그저 구시대적인 생각처럼 들릴까봐 그는 항상 조심스러웠다.

“기혼자 위주의 세금 혜택이 너무 많아요. 그건 미혼자들에게 일종의 징벌적 미혼세를 매기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아들의 여자 친구가 똑 부러지게 말했다.

“그래그래, 아무튼 잘 생각했다.”

그는 아무래도 다 좋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은 하지만 집을 사진 않을 거고, 애도 낳지 않을 거예요.”

아들은 못을 박아둔다는 태도로 말했다. 아들의 성향상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순간 기분이 상했다. 실제로 누구도 그에게 그러지 않았지만, 그는 완강한 힘으로 밀쳐진 느낌을 받았다.

그 애들은 언젠가 한국의 주택들이, 특히 서울의 여러 집들이 러스트벨트처럼 텅텅 빌 거라고 생각했다. 때에 따라 렌트를 하듯이 적당한 집을 선택해서 세를 지불하고, 집을 살 돈으로 차라리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했다.



아들은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그의 잔에 와인을 조금 더 채워주었다.

“집들은 지금도 계속 지어지고 있지만 인구는 계속 줄어들 거예요. 값비싸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들로 넘쳐날 거라고요. 그런 매물의 가치는 결국 떨어져요. 우리나라는 1%의 국토가 나머지 99%의 땅보다 비싼 땅이 될 거예요. 이제 부동산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재산이 아니에요.”

그의 세대는 모두가 내 집 마련을 위해 일했다. 그 역시 7년 동안 적금을 부어 첫 집을 사고, 7년 동안 나머지 융자금을 갚고, 그것을 다 갚을 때쯤 더 큰 집으로 이사한 후 다시 융자금을 갚는 방식으로 평생 지금의 집을 남겼다. 그 집에서 아내와 함께 아들을 키웠다. 그런데 지금 아들은 그가 평생 일궈온 재산의 가치가 이제 무용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또 그 애들은 한국의 열악한 육아환경과 불이익 등을 이야기하며 애를 낳는 일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내는 아들을 낳기 전에 두 아이를 유산했다. 그런데도 아내와 그는 한 번도 아이를 포기해본 적이 없었다. 출산과 육아는 인생의 자연스러운 순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는 이미 음식이 다 식은 식탁에 앉아 주택과 육아 문제에서 사회 문제, 정치 문제, 환경 문제, 의료 문제, 노인 문제로 대화의 주제를 이동시키는 아들과 아들의 여자 친구를 바라봤다.

똑똑하고 두려움 없이 확신에 찬 아이들이었다.
지금이 그 애들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 시기라고 그는 생각했다.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그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

그의 세대는 80∼90년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낸 주역이었고, 그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더 이상 해결하거나 이뤄낼 커다란 업적이 남지 않은 완결상태였다. 그래서 저 애들에게 남은 일은 모든 것을 다시 해체하는 작업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기존 관습과 질서에서 폐해를 찾아내고, 시스템의 결함을 잡아내고, 인식의 부조리함을 발견해서 그 틈을 비집고 벌리고 파괴하는 일만 남아 있다고.

아들과 아들의 여자 친구는 여전히 그의 식탁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기성세대가 믿어온 수많은 가치들을 공격했다. 그가 관습과 도덕과 사상과 재산이라고 믿어온 가치들이 사실은 다 거짓이고 이미 그를 배반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세대가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을 구하는 일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고 여기며 자신들은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세상에 태어났다고 자조했다. 또 그가 지지해온 정치인이 더 이상 진보적인 인물이 아니며 부패한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또 기존의 사회는 부조리하고 아주 깊숙한 곳부터 썩어서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 또 그 애들은 ‘노인 문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그것이 괜찮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고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아들과 아들의 여자 친구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우선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30여 년간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몸과 재산의 가치를 지키고 살면서 생기는 빈틈으로 인해 소중한 것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언제든 구멍을 메울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다고. 그건 생산적인 일이고 정직한 일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에 비하면 그 애들이 하는 일은 일상적인 장면에 틈을 헤집고, 단조로운 세계에 구멍을 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너희들은 무엇이든 미워하면서 어디든 분쟁을 만들지 않고는 못 배기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는 또 그가 오래도록 후회하고 마음속 깊이 스스로를 미워하게 될 말을 했다. 너희들의 그런 분노가 세상을 온통 너덜너덜하게 만드는데 그건 테러리스트들이 하는 짓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지식과 인식을 과시하기 위해 이대로도 문제 없던 사회 곳곳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암처럼 장기의 일부를 좀먹으면서 온몸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결국 죽게 만들 거라고, 그는 말했다.

이제 그 애들은 고개를 숙이고 빈 컵이나 식기의 가장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화가 좀 가라앉고 정신이 맑아진 후에도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이 아이들과의 대화를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었다. 한참 후에 아들의 여자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들도 일어나서 그 애를 도왔다. 식탁이 말끔해지자 그 애는 쟁반과 과도를 찾아와서 사과를 깎았다. 그는 그 애가 사과 껍질을 긴 나선형 모양으로 벗겨 쟁반 위에 떨어뜨리는 것을 그저 지켜보았다. 그 애들은 아무런 표정 없이 노란 사과를 모두 베어 먹고 그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봄에 아들은 결혼했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그 애들을 종종 봤지만 그 애들은 그날 저녁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고 그에게 공손하고 다정하게 대했다. 그건 그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해주려는 배려였지만 동시에 그와 그들 사이에 엄정하게 그어진 선이 있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결혼식에는 아들 부부의 저널리스트 지인들이 참석했다. 모두 사회 어딘가에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정의와 지성들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을 지지하고 그들을 존경했지만 아들 내외에게 그런 말을 전해주지는 못했다. 다만 모든 예식이 끝나고 그 애들과 잠시 이야기할 시간이 생겼을 때, 그는 아들의 아내에게 오늘 정말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한번 부드럽게 웃었을 뿐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그는 이제 그 애들이 그와는 조금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안부나 건강상태를 제외하면 그에게서 궁금하거나 듣고 싶은 이야기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를 앞뒤가 꽉 막힌 멍청하고 고집 센 늙은이라고 여기며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잔잔한 잔소리처럼 흘려듣게 되리라는 것을, 어떤 순간에도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 않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그는 결혼식 내내 천천히 깨달았다.

그럼에도 그는 아들 부부가 그를 찾아오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언젠가는 그 애들이 차가운 마음을 허물고 자신을 용서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 후 아들 부부는 그가 집에 들르라는 의사를 내비치면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말하다가 이따금 그들의 필름사진을 등기우편으로 보내줬다. 한번은 아들의 지인이 찍은 결혼식 날 사진들을 조금 보내줬는데, 그 중 한 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신랑의 아버지가 입을 법한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고 식장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대여섯 살로 보이는 어린 남자애가 어딘가 먼 곳에 있는 사람을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그런 아이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사진 속에서 그는 어린아이의 옆얼굴을 지긋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건 찰나의 우연으로 만들어진 장면일 수도 있고, 필름카메라의 기능적 특성으로 왜곡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사진 속의 그는 분노와 증오의 눈길로 아무 것도 짐작하지 못하는 연약한 어린아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사진 속의 그를 아들의 결혼식장에 숨어들어온 위험한 인물처럼, 신원을 알 수 없는 낯선 노인처럼 바라봤다. 그러다가 불현듯 다른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진들 속에서 그 사진을 당장 솎아냈다. 그는 잠시 그것을 어디로 치워야 할지 망설이다가 그의 재킷 안쪽 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누구의 손길도 닿을 일이 없는, 그의 가장 어둡고 내밀한 곳에.


우다영 소설가 nayawdy@naver.com

우다영 작가는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014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다행히 졸업>의 공동 저자이며 민음사의 문예지 <릿터(Littor)> 등 다양한 매체에 활발히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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