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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Insight from Biology

유전자 교정을 더 쉽게 ‘유전자 가위’ 발견의 드라마

이일하 | 217호 (2017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1세기 대표적인 생물학적 발견 하나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 주저 없이 유전자 가위 기술, CRISPR-Cas 시스템의 발견을 꼽을 것이다. 1987년 일본 과학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세균 속 묘한 DNA 염기서열은 이 염기서열이 틀림없이 어떤 중요한 생물학적 기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 전 세계 여러 과학자들의 통찰력에 의해 우여곡절 끝에 세균의 후천성 면역 기작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를 활용한 유전자 가위 기술(Gene Editing)이 개발됐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이며 현대 생물학자들이 어떻게 새로운 생명현상을 발견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편집자주

흔히 기업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합니다. 이는 곧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경영에 대한 통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합니다. 30여 년 동안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이일하 교수가 생명의 원리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생물학과 관련된 여러 질문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기업 경영에 유익한 지혜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들어가며

생물학은 20세기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물리학이나 화학과 마찬가지로 분자 수준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특히 1953년 왓슨과 크릭 박사에 의해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지면서 유전자의 실체가 확인됐고 이때부터 생물학은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학문이 됐다. 20세기에 완전히 체계가 정립된 물리학, 화학 분야와 달리 생물학은 1953년을 기점으로 생명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1958년 크릭 박사가 제안한 센트럴 도그마1 의 비밀이 빠른 속도로 밝혀졌고 1980년대 말에 이르게 되면 생명체가 유전정보를 어떻게 활용해 생명현상을 일으키는지가 거의 완전하게 밝혀지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생물학 분야에서는 새로운 생명현상이 계속 발견돼 필자와 같은 생물학자들을 놀라게 한다. ‘아직도 생물에서 우리가 모르는 생소한 현상들이 있었단 말인가’라는 놀라움이다. 그런 발견의 대표적 예로 마이크로 RNA에 의한 바이러스 방어 기작, 즉 RNA 간섭2 을 들 수 있고 또 다른 예로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세균의 후천성 면역 기작이 있다. 후천성 면역 기작이란 우리 인간과 같은 고등 동물이 한번 감염된 적이 있는 병원체에 대해 면역력을 가지는 기작, 즉 소아마비, 마마, 장티푸스 등의 병원체에 대한 후천성 방어 기작을 말한다. 그런데 이와 유사하게 병원체에 대한 기억 능력을 세균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진 것이다.

세균의 후천성 면역 기작, CRISPR(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는 유전자 가위 기술(Gene Editing)3 로 발전해 최근 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연구 분야가 됐다. 1980년대 후반부터 유전자 치료를 위한 유전자 가위 기술이 몇몇 과학자 및 바이오벤처 연구진에 의해 개발돼 왔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이 분야가 CRISPR를 만나면서 미래 신기술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CRISPR가 뭐 길래 매스컴에서 그렇게 주목을 하고 있고 벤처캐피털들이 눈독을 들이는 걸까?


이게 뭔고? 생소한 염기서열의 발견

1987년 특정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밝혀내면 한 편의 논문이 되던, 현대 생물학자들에게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던 시기에 일본 오사카대의 나카노(Nakano) 교수는 단백질 분해효소의 유전자를 찾아내 그 염기서열을 <미생물학회지(Jurnal of Bacteriology)>에 발표했다. 그런데 나카노 교수는 이 유전자의 끝 부분에 묘하게 생긴 염기서열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특정 염기서열이 반복하며 연결된 구조가 자신의 유전자 끝 부분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특정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구조, 즉 반복서열은 29개의 염기쌍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리고 반복서열과 반복서열 사이에는 간격서열(spacer)이 끼워져 있었다. 이 간격서열은 그 길이는 모두 동일하지만 저마다 서로 다른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었다.(그림 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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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웠던 것은 반복서열이 ‘회문 구조(palindrome)’를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회문 구조란 바로 읽어나, 거꾸로 읽거나 똑같은 문장이 되는 구조를 말한다. ‘소주 만 병만 주소’와 같은 문장처럼 말이다. 반복서열에서 나타나는 회문 구조는 정확히는 ‘GGTC’라는 DNA가 앞쪽에 나오면 이를 거꾸로 나열했을 때(CTGG), 상보적으로 결합하는 ‘GACC’가 이어지는(DNA는 A와 T, G와 C가 짝을 이뤄 결합) 회문 구조였다(그림 1 (가)와 (나)). 누가 보더라도 이렇게 특이한 형태를 가진 염기서열이라면 어떤 기능이 있을 것이라 짐작할 만했다. 나카노 교수는 “참 특이하게 생겼는데 어떤 생물학적 중요성을 가지는지 모르겠다”는 솔직한 표현과 함께 논문을 마무리했다. CRISPR를 처음 인지한 연구논문이었다. 앞으로 이해를 위해서 반복서열(R)과 간격서열(S)을 기억해 두시기 바란다.


생소한 염기서열 구조의 보편성

이후 많은 과학자들의 기억 속에서 나카노 교수가 발견한 묘한 염기서열의 존재가 지워져가고 있던 2000년. 스페인의 과학자, 모지카(Mojica) 박사가 이 묘한 구조가 실은 많은 세균의 유전체4 내에 존재한다고 보고하게 된다. 그는 1995년부터 나카노 박사가 관찰한 염기서열 형태를 다른 세균에서도 발견하기 시작했으며 2000년에 20여 종의 세균에서 발견된 유사한 염기서열 형태를 정리해서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모지카 박사는 특이한 이 염기서열 구조를 규칙적인 간격으로 떨어진 짧은 반복서열이라는 의미의 SRSR(Short Regularly Spaced Repeats)이라 명명했다. 반복서열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음을 분명히 인지한 것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미생물학자들이 이 특이한 염기서열 구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3년간 무시돼 오던 구조가 바야흐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CRISPR 용어의 제안과 완전한 구조의 발견

2000년대가 무르익으면서 염기서열 결정기술(DNA의 염기서열 순서를 밝히는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염기서열 분석 가격은 급속도로 저렴해졌으며 많은 세균들의 유전체 염기서열이 속속 발표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모지카 교수에 의해 SRSR이 꽤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임이 알려지게 됐다. 2002년 네덜란드의 얀센(Jassen) 박사는 이 특별한 염기서열 구조의 특성을 분석해 현재 알려진 이름 CRISPR(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 염기서열이 가진 다섯 가지 특성을 제시했다. 첫째, 이러한 염기서열은 진핵생물이 아니라 세균과 고세균 등의 원핵생물에서만 나타나며, 둘째, 한 종에서 발견되는 CRISPR의 반복서열은 항상 같았으며 유전체의 특정 위치에 뭉쳐서 나타났다. 그래서 ‘Clustered’이다. 이 반복서열은 종에 따라 염기서열도 다르며 심지어 그 크기도 다르다. 예컨대 살모넬라(Salmonella typhimurium)의 반복서열은 21염기쌍으로 이뤄져 있지만 스트렙토코커스(Streptococcus pyogenes)는 37염기쌍으로 이뤄져 있다. 셋째, 반복서열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서열(spacer)의 길이는 항상 일정했다. 그래서 ‘Regularly Interspaced’이다. 물론 서열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서로 다르다. 넷째, CRISPR 서열에서 수백 염기쌍 떨어진 근처에 cas라 불리는 단백질 암호 유전자들 몇 개가 연속해 연결돼 있다.
(그림 1 (라)) 다섯째, CRISPR 염기서열 안에는 어떤 단백질 암호 유전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특성 대부분은 사실 스페인의 모지카 박사도 확인하고 있었던 구조이다. 얀센 교수의 특이한 발견은 네 번째 특성, cas라는 유전자의 발견에 있다. Cas는 ‘CRISPR associated’의 약자로 CRISPR 구조에 연결돼 있는 유전자라는 의미이다. CRISPR-Cas 시스템의 완전한 구조가 얀센 박사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그렇다면 기능은 무엇인가.


기능을 밝히기 위한 과학자들의 통찰력

CRISPR-Cas 시스템의 완전한 구조는 알아냈지만 이게 무엇을 하는 시스템인지에 대한 의문은 바로 풀리지 않았다. 기능을 이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 구조가 무엇과 비슷한가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동안 분자생물학적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많은 단백질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밝혀져 있고 이들이 데이터베이스에 차곡차곡 쌓여져 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새로운 유전자를 찾았을 때 이 유전자가 이미 알려져 있는 어떤 유전자와 염기서열이 유사한지, 그래서 그 유전자가 어떤 종류의 단백질을 암호화하고 있는지 추정하는 데 이용된다.

CRISPR-Cas 시스템에서 Cas는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이므로 이 유전자와 유사한 염기서열을 가진 단백질 유전자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검색 결과 Cas는 헬리케이즈(helicase)라는 DNA 이중나선을 풀어내는 단백질 유전자와 RecB라는 DNA 분해효소 유전자와 유사한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구조적 유사성 때문에 얀센을 비롯한 몇몇 과학자들은 CRISPR-Cas가 DNA 수선을 담당하고 있지 않을까 유추하게 됐다. 말하자면 DNA 염기서열에 손상이 생겼을 때 이를 정상 염기서열로 수선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한 것이다. DNA 수선 기작이 DNA 이중 나선을 풀어내고 DNA를 분해하는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미국 NIH연구소의 쿠닌(Eugene Koonin) 박사는 생물정보학을 이용해 제각각 염기서열이 다른 간격서열(S)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즉, 간격서열을 데이터베이스에 집어넣어 서열이 유사한 DNA 조각을 찾아내고자 한 것이다. 쿠닌 박사는 2006년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간격서열이 세균을 노리는 바이러스인 ‘파아지’ 유전체의 일부 서열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유추해 쿠닌 박사는 CRISPR가 바이러스의 침투에 대비해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를 간격서열 형태로 가지고 있다가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이를 잘라내어 없애버리는 후천성 면역 기작을 가진 게 아닐까 제안하게 된다. 이미 이때는 RNA 간섭이라는 생물학적 현상을 이해하고 있었을 때이므로 쿠닌 박사는 세균이 RNA 간섭 대신에 CRISPR-Cas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까지 CRISPR의 기능에 대한 두 가지 가설을 소개했다. DNA 수선 기작 혹은 RNA 간섭과 유사한 바이러스 방어기작, 두 가설 중 어떤 것이 옳을까? 이 의문은 곧 풀린다.


CRISPR의 후천성 면역 기능 발견

유제품 가공 회사인 다니스코(DANISCO)는 독일 코펜하겐과 미국의 위스콘신주 메디슨 두 군데에 연구소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주된 관심사는 유제품 발효에 사용되는 우수한 발효균을 유지 관리하는 것이다. 발효균은 잘 유지되다가도 어느 순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모조리 죽어버렸다. 이 경우, 기업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에 균주를 유지하는 일이 연구소의 중요한 업무였다.

그런데 다니스코는 쿠닌 박사의 논문에서 그 해결 가능성을 발견했다. CRISPR가 세균의 후천성 면역 기작이고 간격 서열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을 제공한다. 그 얘기는 문제가 되는 바이러스의 DNA 조각을 간격서열 자리에 집어넣어 세균을 만들면 더 이상 해당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균주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매디슨의 바랑고우(R. Barrangou) 박사와 코펜하겐의 호바스(P. Horvath) 박사는 이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실험을 훌륭하게 수행해내 2007년 <사이언스>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이들은 실제로 간격서열의 종류에 따라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성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아름다운 실험으로 입증해냈다. 이로써 세균이 가진 항바이러스 방어 기작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 작용 기작은 우리 인간과 같은 고등 동물이 가진 후천성 면역 기작, 즉 한번 병원체에 감염되면 다음 번 감염에서는 ‘귀신처럼’ 병원체를 제거해 버리는 면역 기작과 개념적으로 같은 현상이다. CRISPR에서도 한번 감염된 적이 있는 바이러스의 염기서열 정보를 간격서열에 집어 넣어두고 있다가 다음에 또 같은 바이러스가 침투해오면 이를 재빨리 제거해 버린다. 2007년에 발표된 이 논문은 CRISPR의 기능을 완벽하게 증명해냈다. 다만 ‘어떻게’라는 문제는 남아 있었다. CRISPR-Cas 시스템이 어떻게 후천성 면역 작용을 하게 되느냐라는 의문이었다.





혜성같이 등장한 두 여성 과학자 기작을 풀다

프랑스 출신의 여성 과학자 엠마뉴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는 우연히 CRISPR-Cas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어릴 적부터 의학 분야에서 인류에 공헌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그녀는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세균의 항생제 저항성 기작과 관련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마친 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대에 자리를 얻어 독립연구자로 과학계에 발을 디디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특출하지는 않아서 항상 연구비에 쪼들리며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의 눈에 CRISPR-Cas 시스템이 들어왔다. 아직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모르지만 세균의 후천성 면역 작용을 담당하고 있다니 도전해볼 만한 과제였다. 그녀는 CRISPR-Cas 시스템과 관련해 RNA가 어떠한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샤르팡티에 박사는 놀라울 정도로 대담했다. 그녀는 CRISPR의 간격서열과 유사한 서열을 가진 RNA를 찾기 위해 전체 마이크로 RNA의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항상 연구비에 쪼들리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전체 RNA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작업은 너무나 많은 연구비가 소요되는 것이다. 게다가 성공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연구에 기꺼이 시간을 들여 실험해 보겠다는 대학원생을 찾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이 작업을 통해 그녀는 CRISPR의 간격서열(S)과 상보적인 염기서열을 가진 작은 RNA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 RNA가 Cas와 함께 어떤 일을 하는지 생화학적인 기능을 찾아낼 차례였다. 이때 샤르팡티에 교수는 운명적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버클리대의 제니퍼 도우드나(Jennifer Doudna) 교수를 만나게 된다. 도우드나 교수는 RNA 구조 결정학 분야의 대가로서 이미 탄탄히 기반이 잡힌 과학자였다. 샤르팡티에 교수는 자신이 발견한 RNA를 도우드나 교수에게 설명하고 RNA와 Cas가 ‘어떻게’ 후천성 면역작용을 하게 되는지 해답을 찾아보자고 설득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2012년 그 구조를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하면 유전자 편집도 가능함을 알아내게 된다. 2012년에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된 논문을 통해서 세균이 가진 후천성 면역 시스템의 생화학적 기작이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 가위 기술 분야의 새 지평이 열린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장담하건대 조만간 당당히 노벨상 수상 연단을 밟을 것이다.

이제 CRISPR가 어떻게 작용한다는 얘기인지 간단히 소개하겠다. 우선 바이러스가 세균 내에 침투해온다. 침투한 바이러스 DNA는 일정한 길이로 잘려서 반복서열의 사이에 삽입돼 기억되는데 이것이 바로 간격서열이다. 따라서 반복서열과 간격서열이 교대돼 나타나는 CRISPR는 세균이 가진 일종의 ‘병력(病歷)’쯤 되는 셈이다. 이후 같은 바이러스가 침투해오면 이들은 간격서열에 의해 쉽게 인지되고 잘려서 제거된다. Cas 단백질은 이처럼 잘라내고 제거하는 과정을 담당하는 효소들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에 활용

1980년대 중반부터 진행돼온 유전자 편집 기술의 개발은 마침 2011년에 획기적 전기를 맞고 있었다. 그동안 유전자 편집을 위해서 징크 핑거 유전자를 활용해 왔는데 이 기술은 특정 염기서열을 선택적으로 자르기 위해 다양한 징크 핑거 모듈을 만들어내고 이 모듈들을 복잡한 단백질 공학을 활용해 연결시키는 만만치 않은 작업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2011년에 이보다 간단한 단백질 공학을 요구하는 TALEN5 이라는 기술이 개발돼 유전자 편집 분야의 과학자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이제 징크 핑거 기술을 밀어내고 TALEN이 천하를 제패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CRISPR 시스템이 등장한 것이다.

CRISPR 시스템은 특정 염기서열을 인지하기 위해 복잡한 단백질 공학 기법이 필요하지 않다. 간격서열에서 유래한 RNA가 특정 염기서열도 AU/GC 염기쌍 규칙에 의해 간단하게 인지하며 Cas 단백질에 의해 제거할 수 있다. CRISPR를 이용하면 유전자 교정이 훨씬 간단해진 셈이다.

이러한 편리성을 간파한 유전자 가위 기술 분야의 과학자들은 원핵생물에서 사용되던 CRISPR 시스템을 인간과 농작물, 가축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빠른 속도로 개량하기 시작했다. 우선 2012년 샤르팡티에와 도우드나 교수가 CRISPR를 활용하면 인위적 유전자 교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였고 이후 하버드대의 조지 처치(Geroge Church) 교수와 펭 장(Feng Zhang) 박사, 서울대 김진수 교수가 CRISPR를 인간 유전자 교정에 활용할 수 있게 개량했다. 생물학자들은 유전자 교정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CRISPR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유전체를 교정하는 데 이 기술을 이용해 근육질이 풍부한 돼지, 색깔이 변하지 않는 버섯의 생산 등이 이뤄지고 있다. 2012년 이후 생물학 분야에서 CRISPR가 가장 핫한 이슈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CRISPR를 활용한 유전자 가위 기술을 두고 샤르팡티에/도우드나, 처치/장, 김진수 교수 세 그룹이 치열하게 특허권 분쟁 중이다.

돌이켜보면 대다수의 노벨상은 예기치 못한 발견에서 탄생됐다. 하지만 몇몇 발견에서는 처음부터 노벨상이 예견되기도 했다. CRISPR의 발견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누가 먼저 눈독을 들이고 과감히 뛰어드느냐의 문제였다. 많은 과학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이 분야에 뛰어들었고 그중 일부는 뛰어난 발견을 했다. 이 발견으로 누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이일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ilhalee@snu.ac.kr

필자는 서울대 식물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30년간 꽃을 공부해 온 과학자로 1993년 개화유전자 루미니디펜던스를 찾아내는 등 개화 유도 분야의 선구자로서 명성을 굳혀오고 있다. 저서로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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