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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정의, 세상의 정의

이치억 | 212호 (2016년 11월 lssue 1)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덕목이 있다면 바로 ‘정의(正義)’일 것이다. 고위 공직자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의구현의 선봉이 돼야 할 법조인의 비리는 큰 파장을 일으켰고 한 금수저를 위해 사회의 온갖 특혜가 동원된 사건은 충격과 허탈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2010년에 시작된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이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는 것도, 부패방지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밥값까지 법으로 친절하게 정해줘야 하는 세상이 된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바로 지금 우리는 정의가 무너진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를 목도하고 있다. 정당한 길을 가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허무와 좌절뿐이다. 정도를 가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앉아 있다가는 번번이 실패를 맛볼 것이다. 그리하여 이른바 흙수저들에게 남는 것은 기득권과 사회에 대한 원망과 울분이다. 꼼수로 성공을 이룬 자들은 나름대로 의기양양하여 자신의 불의조차도 정당화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할 것이다.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돈도 능력이다”라는 말이 정말로 진리가 돼버릴지도 모른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사회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엄격하고 공정한 법의 적용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가 할 일이다. 또한 법적 조치만으로 정의를 세우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법은 어떻게든 피할 수 있는 구멍이 있다는 한계를 가진다. 마치 담장이 도둑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방범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건너편에 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안내판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법 또한 그것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가이드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근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사회의 정의 구현은 어렵다.

여기서 유학자들이 강조해 마지않던 의(義)가 떠오른다. 의는 바로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정의이다. 다만 의는 법이나 규율로 규정되고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즉 규범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기준으로 옳은 일은 하고 그릇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의다. 의는 ‘옳다’ ‘마땅하다’는 뜻이다. 옳은 일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편안하다. 그래서 맹자는 의를 “사람의 편안한 길”이라고 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라는 말이 있다. 호연지기는 무슨 극기훈련 같은 것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의로움과 연관돼 있다. 맹자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을 이렇게 말한다. “올곧은 마음으로 막힘없이 호연지기를 잘 기르면 이것이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된다. 이것이 없으면 인간의 정신은 마치 몸이 굶주리는 것처럼 말라비틀어지게 된다. 이 호연지기는 의를 많이 쌓으면 생겨나는 것이다.” (<맹자> ‘공손추 상’) 의로움을 실천해 호연지기를 기르는 사람은 언제나 당당하다. 어디에 켕길 일도, 조마조마할 일도, 괴로울 일도 없다. 마음은 넓어지고 몸은 편안할 것이다. 의는 사람을 당당하게 해주는 마법이다.

반대로 불의는 사회를 망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망가뜨린다.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과 부를 얻거나 지키려면 그것을 위해 또 다른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공자가 말했듯 “가진 것이 없을 때는 가지려고 애쓰고, 가진 다음에는 잃어버릴까 걱정하고, 잃어버릴까 걱정해서는 못할 짓이 없는” 소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딘가 켕기고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면서 왜 그런지도 모를 것이다. 그리하여 원인도 모를 이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이 가지고 누리려는 욕심을 부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개인의 차원에서 따져보면 불의한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불쌍한’ 사람에 더 가깝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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