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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다는 위험한 발상

이치억 | 207호 (2016년 8월 lssue 2)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사회, 풍요로운 세상, 온정이 넘치는 따뜻한 사회, 평화로운 세상 등등 기준이 어떠하든 누구든 좋은 세상을 원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심지어 히틀러와 같은 전쟁광조차도 혼란한 세상은 원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란 자기가 최고 권력자가 되고 나머지 모든 사람이 그에게 복종하는 왜곡된 방식의 평화지만 평화를 바란다는 사실 자체는 다를 것이 없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남을 속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세상 그 자체를 망치고자 하는 악당은 없다. 그들도잘살기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남을 속인다.

 

세상에까지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의 생활 범위 안에서 더 나은 인간관계를 원한다. 내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공통된다. 가령 같은 직장 사람이나 거래처 직원이 좋은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가족, 친척, 친구와 이웃이 좋은 사람이기를 바란다. 내가 이렇게 힘들고 짜증나는 원인 중 하나는 그들 중에 좋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이고 그런 사람만 없다면, 또는 그런 사람이 개과천선을 해준다면 삶은 나아질 것 같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생각이 세계의 평화를 원하는 전쟁광과 같은 부류의 사고방식에 속한다고 한다면 너무 심한 말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사고방식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을 통한 평화나 나쁜 짓을 통한 행복이 이뤄질 수 없는 모순이듯 우리의 일상적인 이 사고방식도 같은 모순을 품고 있다.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인간관계를 위한 출발점을가 아닌타인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좋은 동료, 친구, 이웃이 되려 하지 않고 타인이 좋은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일은 영원히 이뤄질 수 없는 뜬구름이다. 우리는 흔히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을 별 생각 없이 사용한다. 따지고 보면 이는 매우 위험한 말이다.

 

세상을 바꿀 주체인 나의 변화 없이 세상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며, 그러한 사고방식에서 나온 행위는 반드시 부작용을 낳게 돼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이다. 세상은 그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킴으로써 바뀌는 것이지 나의 변화 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세상을 망친 출발점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유학의 전통에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외쳤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를 강조했다. 맹자는 그 구체적 방법을 이렇게 제시한다.

 

“인()한 자는 남을 사랑하고, 예의 있는 자는 남을 공경한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남이 항상 그를 사랑해주고, 남을 공경하는 자는 남이 항상 그를 공경해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함부로 대한다면 군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돌아봐서내가 분명 인하지 못하거나 무례했나 보다.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라고 자문한다. 자신을 돌아보니 인하고 예의 바르게 했는데도 그 사람이 여전히 함부로 한다면 반드시 자신을 돌아봐서내가 분명 신실하지 못한가보다’라고 자책한다. 자신을 돌아보니 신실했는 데도 그의 태도가 전과 같으면 군자는이는 망령된 사람일 뿐이다라고 판단한다. 이와 같은 사람은 금수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금수를 탓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자기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첫발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남을 변화시키는 일처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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