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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크르의 위력

김남국 | 207호 (2016년 8월 lssue 2)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시뮬라르크(가상, 거짓 등을 뜻하는 철학 용어)는 때로 현실을 대체하고 심지어 현실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표상이나 복제물들이 현실에서 강한 위력을 보인 사례는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화폐제도가 대표적입니다. 화폐는 엄밀히 따져보면 단순한 종이쪽지 하나에 불과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 어떤 실물보다 현실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 모두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개념이나 표상들로 인해 그 방향이 완전히 좌우되기도 합니다.

 

비즈니스에서도 시뮬라르크, 즉 가상의 세계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지금까지 게임은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컴퓨터 화면이나 특수한 모니터에서만 구현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포켓몬고는 우리가 접하는 광범위한 현실 세계 속에서 가상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기막힌 발상의 전환으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닌텐도의 게임에 대한 철학, 포켓몬 콘텐츠의 경쟁력, 신기술 활용 등이 포켓몬고의 성공을 가져왔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기존 게임업체들이 보지 못한 가상세계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가상세계의 경계와 의미를 확장시켰다는 점은 포켓몬고의 빼놓을 수 없는 성공요인입니다.

 

가상이라는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포켓몬고 사례처럼 혁신의 본질은 어떤 개념에 대해 새로운 특징과 잠재력을 발견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앙리 베르그송의 통찰대로 지각은 실제 존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요소를 배제시키고 일부만 받아들이는 뺄셈의 과정입니다. <데리다&들뢰즈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김영사, 2009)>란 책에서 저자 박영욱 박사는 소금의 예를 들어 인식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뺄셈 현상을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소금은 사실 흰색, 짠맛, 육면체, 반투명성 등 무한대에 가까운 다양한 성질들이 결합한 물질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은 이 가운데 한두 가지 특정 성질만 지각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지식과 개념들은 현실의 일부만 반영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대상의 잠재력을 제대로 실현시킬 수 없게 됩니다.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대상의 새로운 특징을 발견해내는 과정 자체가 철학, 예술, 비즈니스 등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의 원동력입니다.

 

세상의 변화 속도가 정말 심각할 정도로 빨라지고 있습니다. 변화를 가속화하는 여러 동인들이 있지만 기술 발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최근 단연 경영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분야가 가상현실, 그리고 증강현실 기술입니다. 이 기술들은 꽤 오래 전에 개발됐습니다. 그런데 혁신 주도 경제 체제가 본격화하면서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핵심 기술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DBR에서 이번 스페셜 리포트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집중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런 기술들이 가져올 미래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상상해봤고, 주요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예측했습니다. 또 장래 유망한 사업 분야가 무엇인지도 살펴봤습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가 기업의 미래 전략 수립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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