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96세 철학자 김형석 인터뷰

인격을 높이되 서열을 낮추는 삶, 명예대신 존경을 택할 준비가 됐다

고승연 | 205호 (2016년 7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우리는 훌륭한 리더의 삶에 대해 끝없이 얘기 듣고 감동받는다. 그러나 막상 이를 스스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96세의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를 인간의 버릴 수 없는 욕심, 그중에서 가장 버리기 어려운 욕심인 바로명예욕때문이라고 말한다. 내 명성을 위해, 칭찬을 듣기 위해 일하면 명예욕의 노예가 되지만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일하고봉사하려 하면 그것은 존경이 된다.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는 세상, 각박하고 치열한 생존경쟁에 매몰된 우리에게 그는사랑의 경쟁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것은가능하다고 말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정우성(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영혼이란 무엇인가?”

 

철학자나 신학자가 평생을 두고 고민하는 화두이자 연구주제이지만 이 질문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많이 회자된 적이 있다. 2012년 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잊혀진 질문>이라는 책을 통해() 이병철 삼성 회장이 별세 직전 절두산 성당 박희봉 신부에게 보낸 편지 속 질문이라고 소개하면서 이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앞의 3개 질문을 포함해 고 이병철 회장이 다가오는 죽음을 앞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24개의 철학적, 신학적, 그리고 인생의 본질과 관련된 질문이 담겨 있다.1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로 이룰 것은 다 이룬 것처럼 보였던 그는 왜 죽음을 앞두고 삶과 철학, 그리고 신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까?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비즈니스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던 그 사람들이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 몰락하는 일을 볼 때마다 우리는 묻게 된다.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누군가 명쾌한 답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100년을 살면서 80년 가까이 이러한 인간, 윤리, 죽음, 그리고 삶의 의미를 고민해왔다면 그의 성찰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사유의 단초를 제공해줄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을 만났다. 96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인생을 완성해 가야 하는가. 또 경영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리더들은, 그리고 CEO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며 어떤 족적을 남겨야 할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어느 날 문득 한 번씩 해보는, 인생에서의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그에게 던졌다. 그는나도 잘 모르지만, 살아보니 그렇더라라며 아주 겸손하게, 100년에 걸친 그의 삶 속에서, 연구활동 속에서 깨달은 바를 들려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난 김형석연세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조치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1944년 송산여중에서 교편을 처음 잡았다. 이후 중앙중학교 교사, 중앙고등학교 교감으로 일하며 시대의 스승이었던 인촌 김성수 선생과 함께 교육에 헌신했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 연구교환 교수, 연세대 철학과 교수 등으로 재직했고, 1985년 국민훈장 목단장(현 모란장)을 받았다. 그리고 2016년에는 한국 HRD 인적자원개발 대상 특별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기업에게, 혹은 기업가에게 윤리란 무엇일까요? 존경받는 기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기업에게, 기업가에게윤리를 말한다는 게 좀 어색할 수가 있어요. 일단 기업은 이윤을 내야 하는 곳이잖아요. 경쟁도 치열하죠. 10개 회사가 한 분야에서 경쟁을 한다고 했을 때, 10개 기업이 다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윤리성이라는 것을 마구 들이대면 기업들이 곤란할 수 있어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말 제대로 된 기업,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우리가 좀 생각해봐야 할 게 있어요.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고,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요.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봅시다. 이윤을 왜 내요? 기업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죠. 왜 존재해야 하죠? 고용도 하고 사회의 발전도 이끌면서 세상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기업의 윤리성, 사회적 책임성이라는 게 어느 시점부터 기업이우리는 이제 사회에 기여한다고 결심하고 시작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뒷받침돼야 해요.

 

이윤을 왜 내요? 기업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죠. 왜 존재해야 하죠? 고용도 하고 사회의 발전도 이끌면서 세상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비롯한 유럽, 미국 등지를 10년에 한 번, 20년에 한 번씩 방문했고, 연구자로서 머문 적도 있어요. 그때마다 느끼는 게 일단 우리가 본격적인 산업화를 하기 전에는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에 관심 있는, 이런 게 표현이 맞을 진 모르겠는데 사회 전체가게으른 상태였어요. 이런 사회에 신뢰가 구축될 수 없어요. 그런데 당시 고도성장을 하던 일본은근면한 상태단계로, 즉 국민 모두가열심히 일하는 상태였던 거죠. 그렇게 하나씩 자리잡아가면서 사회적 신뢰라는 게 만들어집니다.

 

기업도, 국민도, 사회도 성숙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서 만족하면 안 되고 한 단계 더 성장해야 돼요. 일본이 열심히 추격하려던 서구사회, 미국 등은 어땠을까요? ‘일의 가치를 아는 사회였어요. 사람들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기업은 이윤의 노예가 되지 않는 거예요. 개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중시하고 사랑하고, 기업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서의사회적 가치를 크게 고민하게 됩니다.

 

일본도 사회 전체가, 다수의 기업들이 아직 이 단계에 올라서진 못한 것 같아요. 우리는 일본의근면한 사회단계로는 분명히 올라섰어요. 하지만 우리 기업인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한, 더 발전한 경제와 기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태에서 한 번 더 도약해야 된다고 봐요. 그게윤리라고 말하는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이겠죠.

 

우리나라 기업인 중에도 이 정도로 성숙한 의식을 가진 분들이 몇몇 계셨습니다. 모두가 잘 아는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선생이 그런 분이셨고요, 한국유리를 창업하셨던 최태섭 회장도 그런 분이셨어요. 그분은기업 자체가 사회에 속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계셨고 기업 자체를 특정한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내가 돈을 사회로부터 얻었으니 사회에 주는 것. 나는 기업을 사회에 맡긴다라는 말씀을 달고 사셨습니다.2 그분 생전에 만나서 대화할 때마다 제가 많이 배웠어요. 서구 선진국의 위대한 기업들이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모습들을 당연시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말씀하신대로 기업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기업가는 그 누구보다 회사 직원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기업은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할까요?

 

한 일본 기업 이야기를 해볼게요. 1960년대 고도성장을 달성한 일본 기업의 임원이 한국에 와서 우리나라 기업가들과 좌담회를 가졌어요. 그 내용을 보고 제가기업윤리와 관련해 비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윤리학, 철학 하는 사람이니까 당시 어떤 경영 관련 잡지에서 제게 의뢰를 해온 것이죠. 그 좌담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기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습니다. 회사의 존재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 임원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첫째, 우리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일터에서 행복하게 일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도록 해주는 것이다. 둘째, 우리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우리 회사의 목적을 이해하고 고맙게 생각해주고, 우리 회사의 물건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가 더 중요하다. 우리 회사 직원들의 행복이 절대적인 가치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줍니다. 그 임원이 도쿄의 공장장으로 재직할 때 세운 구체적인 목표를 들려줘요. ‘수천 명의 공장 직원들이 언젠가 회사를 떠난 뒤 길에서 서로 만났을 때회사에서 일할 때가 행복하고 좋았는데, 그런 때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런 직장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한국의 기업인이그 목표에 도달한 것 같은가라고 다시 물었어요. 그러니까 그 임원은하루아침에 도달할 수 없는 목표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면서 본인의 도쿄 공장장 시절 도입한자율 카페테리아얘기를 했습니다. 직장인들에게, 그것도 공장의 근로자들에게 점심식사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누군가는 공장 구내식당에서 대충 때우고, 누군가는 도시락을 싸오는데, 도시락 싸오는 것도 사실 신경 쓰이는 일이죠. 그래서 아예 고급 카페테리아 형식으로 구내식당을 싹 바꿔서 누구든 와서 맘껏 먹고 먹은 만큼 장부에 기재하라고 했답니다. 배고프거나 좋아하는 게 있으면 많이 먹을 수도 있고, 배부르면 간단하게 먹을 수도 있죠. 그럼 먹은 양이나 음식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데, 이걸 그냥 직원들 양심에 맡겨 버린 거예요. 그런데 몇 달 운영해도 적자가 나지 않더랍니다.

 

다들 점심식사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대로 즐겨먹게 됐고요. 그게 왜 그럴까 저도 많이 생각해봤는데, 결국 먼저신뢰를 줬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신뢰를 주기 시작한 기업가로 인해 회사 전반에 신뢰가 퍼져나가는 것이죠. 기업가가 기업 내 직원들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력의 표본 같은 것입니다. 1960년대 일본 대학생들에게 가장 신뢰하는 집단이 어디냐고 물어보면기업가들이라고 답하는 비율이 60%를 넘었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겠죠.

 

기업가의 영향력이란 결국리더의 영향력일 텐데요, 리더의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많은 사람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리더 한 분을 소개하면서 그분이 지키셨던 덕목을 말씀드리는게 좋겠어요. 인촌 김성수 선생입니다. 기업가이자, 교육자셨고, 시대의 스승이었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가 인촌 선생을 만나게 됐어요. 그분이 참 과분하게도 제게 중앙중학교 교사로 일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3년 일하고, 또다시 3년은 나라가 광복을 맞은 상태에서 중앙고등학교 교감으로 일했지요. 중앙중·고등학교를 만드시고, 고려대를 세우신 분이 인촌 선생이시잖아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죠.

 

그전까지는 저도부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요. 근데 그렇게 나눠주고 베풀고 헌신하는 부자를 보니까 생각이 바뀌었죠. 저런 사람들이 세상에 기여하는 게 엄청날 수 있겠구나 하고. 인촌 선생에게는 4가지의 뚜렷한 원칙이 있었어요. 첫째, 그분은 아첨하는 사람을 절대 곁에 두지 않았어요. 둘째, 남을 비방하는 사람을 멀리하셨어요. 셋째, 편 가르기 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셨어요. 넷째, 항상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을 골라 일을 맡기셨어요.

 

동아일보도 본인이 직접 운영하지 않으시고 송진우 선생에게 맡겼고, 중앙중·고등학교도 교사를 짓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까지만 하시고 실제 교육과 운영은 인촌 선생이 판단하기에 본인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분께 맡겼고요, 그렇게 평생 애정과 열정을 쏟아부은 고려대에서도 본인이 총장을 하거나 이러진 않았죠. 더 잘할 사람이 있으면, 더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으면 일을 맡겼죠. 참으로 위대한 리더의 덕목이자 원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국가조직, 기업에서도 이런 원칙을 갖고 리더가 그 조직을 이끌어간다면 일이 안될 리가 없는데 사람 마음이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오히려 배척하는 경향이 있죠. 나보다 못한 사람들만 아래에 두고 일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면요, 그냥 자기가 혼자 일하게 돼요.

 

‘훌륭한 리더에 대한 얘기를 아무리 들어도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왜 그런 것일까요?

 

인간이 참으로 떨쳐내기 어려운 것, 바로 욕심 때문이죠. 아무리 성공을 했어도,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이건 극복하기가 참 어려운 거예요. 돈 욕심은 생각보다 금방 떨칠 수 있어요. 제 경험을 먼저 얘기해볼게요. 제가 오랜 시간 대학교수로 살아서 사는 게 꽤 넉넉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근데 제가 자식이 6명이고요, 한국 전쟁 때 고향에서 동생 셋이 월남해서 한국에서 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왔어요. 제게 부양가족이 9명이 있던 셈이지요. 결코 여유 있는 삶이 아니니 돈에 대한 생각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 때에, 외부 강연 요청이 들어왔어요. 두 군데에서 요청이 들어왔는데 한 곳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었고, 다른 한 곳은 대구의 한 학교였어요.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였죠. 어느 쪽이 강연료가 많았겠어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대기업에서 주는 강연료가 많았어요. 고민이 많이 됐어요. 빠듯한 살림에 크게 보탬이 될 수 있는 대기업 강연이냐, 같은 교육계에 있는 분들께 도움을 드려서 보람을 찾을 것이냐. 집에서는뭘 그런 걸 고민하느냐, 우리 살림이 빠듯한데 당연히 돈 많이 주는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요. 근데 저는 이상하게 쉽게 결정이 안 되더군요. 뭔가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결국은 대구의 중·고등학교로 향했어요.

 

그때 한 결심이이제 나는 과거처럼 돈에 얽매인 삶을 살지 않겠다. 돈 때문에 살지 않겠다였어요. 마흔두 살 때니까 1960년대 초반이죠. 그때부터 조금 철들기 시작한 거죠. 아까 말했던, 돈의 노예가 아닌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이때 한 거고 그때 참 많이 뉘우쳤어요. 이렇게 돈 욕심을 버리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 있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이걸 떨칠 수 있는데 문제는 진짜 끝까지 사람을 괴롭히는 것, 바로명예욕이에요. 이걸 다들 못 놓습니다.

 

 

 

 

최근 엄청난 고령에도 기업에 대한 장악력을 놓지 않으려다가 기업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된 상황이 떠오릅니다.

 

그렇죠. 그런 게 바로 명예욕이에요. 이건 나이들수록 심해지는 경향도 나타나요. 사람이 60이 넘어서 철드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정치적으로 성공했거나, 기업을 크게 키웠거나 하면 그 다음에는 명예욕으로 넘어가요. 이건 정치인, 기업가, 목사, 교수 할 것 없이 그래요. 명예욕의 노예가 되는 건 재산이나 권력의 노예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명예욕은 정말 마지막까지 갑니다. 너무 떨치기 어렵죠.

 

예전에 서로 자극을 주고 격려하며 평생을 함께 도움을 주며 지냈던 안병욱 교수와 이런 얘기를 참 많이 했어요. 그래서명예욕이라는 가장 큰 욕심을 버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그러지 말자는 자극이 된 거예요. 교수 정년 끝나고 안 교수와 만나면 서로 어디에서 대학총장 제의가 오지 않느냐고 말하면서거절한 것을 자랑처럼 얘기하기 시작했거든요. ‘교수다운 교수가 꿈이었지, 어디 유수 대학의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이름을 알리는 건 제 소명이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안 교수도 마찬가지였던 거 같아요.

 

그때 둘이 했던 이야기가, 사람이 끝까지 명예욕을 못 놓아서 불행해질 수 있고 어느 순간 철이 들 수도 있는데, 그 갈림길은 60세쯤 아닌가 하는 것이었어요. 환갑쯤 됐을 때 사람이 때론 아예 철들기도 해요. 저랑 안 선생은우리가 아마 그때쯤 철이 들지 않았을까라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인생의 전성기는 아마 60∼75세 정도가 아닐까라고 얘기했죠. 살아보니까요, 그 시기에 제대로 사람이 철들고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진짜 창의력도 생겨요. 생산적이 되더라고요. 이때 그럼 열심히 일을 하는 그 동력이 뭐냐. 이게 명예욕이면 안 되는 거예요. 명예욕에 찬 사람이 제대로 된 창의력을 갖고 생산적일 수가 있겠어요?

 

60세에 철든다는 얘기가 참 인상적입니다.

 

제가 살아보니까 그래요. 그런데 아까 말한 그 전성기가 75세쯤 되면 끝나요. 계속 가는 게 아니더라고요. 75세가 넘어가니까 창의력, 생산성 이런 게 떨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이때가 되면 자신이 하던 일에서 물러나야 돼요. 명예욕으로 일을 해온 게 아니면 이게 가능해집니다. 일을 사랑해서 한 것이고,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일을 해온 것이지나를 위해’ ‘내 이름을 위해일한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모 대학에서 모금 운동을 크게 벌인 적이 있어요. 아마 50주년 기념으로 동문들에게 발전기금을 모으는 거였나 봐요. 그때 설립자가 직접 미국도 다녀오고 사방팔방 다녔는데, 생각만큼 안 모였던 모양이에요. ‘내가 나섰는데 안 됐다라는 스트레스가 엄청 났었나 봐요. 그래서 그 이후 시름시름 하시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제가 안타까웠던 게, 정말 똑똑한 분이지만, 그래도 저걸 놨어야 한다. 후배들이, 젊은이들이 저걸 하게 뒀어야 하는데 그걸 놓지 못 했구나라는 부분이었어요.

 

기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바로 존경받는 게 아니에요. 사랑을 주고 남들에게 봉사하고 자기가 박수를 받는 게 아니라 남에게 박수를 치며 살아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요.”

 

아까 말씀하신 뭔가 다른 동력, 명예욕과 다른 그것은 무엇인가요?

 

명예와 칭찬. 이건 곧 명예욕이잖아요. 제가 제안하는 개념은 존경과 봉사예요. 존경은 그저 어떤 성과를 내서 받는 게 아니에요. 어떤 특정한 일을 하면 칭찬을 받을 수 있지만 존경은 받지 못합니다. 기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바로 존경받는 게 아니에요. 사랑을 주고 남들에게 봉사하고 자기가 박수를 받는 게 아니라 남에게 박수를 치며 살아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요. 선후관계가 달라요.

 

명예욕은 칭찬을 받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일을 하는 개념이지만 존경은 내가 좋아서, 내가 봉사하고 싶어서, 사랑을 나누고 뭔가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서 겸손하게 내 이름 내세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죠. 그렇게 살다보면 사람들이 존경을 해요. 동력은존경받고 싶은 욕구사랑을 베풀고 봉사하고 싶은 욕구인 거지요. 사랑을 베푸는 거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에요.진심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고 그러다보면 나도 뭔가 해주고 싶고 그런 거예요.

 

제가 제 아들딸들과 얼마 전에 함께 식사를 했는데, 식당에 좀 늦게 갔어요. 그리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식사도 좀 늦어졌어요. 그래서 제가 서빙하는 분들에게저희 때문에 늦게 퇴근하게 돼서 미안하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어요. 그러니까 같이 밥 먹던 손주가아버지는 그런 말 안 하는데, 할아버지는 하시네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예의와 배려, 사랑을 베푸는 게 존경받는 삶의 시작이에요. ‘존경을 목표에 두고 살면 뭐부터 시작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사랑을 베풀고 남을 돕고자 하면 바로 시작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계속 일할 동력이 생기고, 행복하죠. 늙으면 버림받지 말고 존경을 받아야 해요.

 

스포츠 세계에 보통 존재하는 ‘선의의 경쟁이라는 게 있어요. 여기에서의 핵심 개념은질 줄 아는 것’이에요. 공정한 룰에서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죠.”

 

이때부터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세상과 이웃에 대한봉사인 것이죠. 지금까지 쭉 살아보니까, 내가 나를 위해서, 내 소유를 위해서 한 일은 나한테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요. 더불어 행복했던 일, 제자들과 함께 나눴던 경험, 그리고 무엇인가 세상을 위해 봉사한 것들은 정말 다 남아요. 세상에 내가 남겼고, 나한테도 남아 있어요. 행복이죠. 인격을 높이되 서열을 낮추는 삶. 그게 핵심이에요. 욕심이 많으면 서열은 높아지는데 인격은 낮아지기 쉬워요.

 

이렇게 각박하고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사랑을 베풀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죠. 옛날에 안병욱 교수랑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이런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우리가 하는 강의라는 게 참맹물같지 않느냐. 근데 이 아무 맛이 안 나는 듯한, 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 요새 젊은 학자들이 하는 강의는 뭔가 콜라 같고 사이다 같다. 마실 땐 달달하고 좋은데 몸에 좋을 건 없는. 뭔가 첨단 기술과 혁신, 경쟁에서의 승리 등으로 강의가 쏠리니까요. 근데 윤리학에서는이기적인 경쟁은 파멸의 길로 봅니다.

 

경쟁에도 종류가 있어요. 이제 우리 사회가어떤 경쟁을 하는 사회가 되고, 우리 개인들이 각자 어떤 경쟁을 하고 살 것이냐를 고민해야 돼요. 경쟁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방금 말한파멸로 가는 이기적 경쟁이에요. 이건 무조건 지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포츠 세계에 보통 존재하는선의의 경쟁이라는 게 있어요. 여기에서의 핵심 개념은질 줄 아는 것이에요. 공정한 룰에서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죠. 이 원칙만 잘 퍼져도 세상은 좋아져요.

 

하지만 진짜 행복함을 위해서는, 행복한 삶과 사회를 위해서는 더 상위에 있는 더 좋은 경쟁도 있어요. 저는 그걸사랑의 경쟁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말 하면 다들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을까. 가능한 것인가라는 반응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생각해봐요. 서로가 행복해지는 라이벌, 사랑의 경쟁이라는 게 뭘까요. 제대로 된 부모는 자식이 자신보다 더 잘됐다고 분해하거나 슬퍼하지 않아요. 자신도 뛰어난 성과를 이뤘고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걸 오히려 자식이 뛰어넘어버리면 좋잖아요. 일종의 경쟁 같지만 사실은 사랑의 경쟁인 거죠.

 

참 스승이라면 제자가 자신보다 더 큰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것을청출어람이라고 기뻐하잖아요. 물론 그 제자와 스승은 학문의 세계에서 진리탐구를 놓고 경쟁을 하는 라이벌일 수 있죠. 근데 이런 경쟁에 패자가 있습니까? 제자가 더 큰 성취를 이루면보은한 것이고, 스승이 더 큰 성취를 이루면 제자로서도 기쁜 일이죠.나라, 민족 같은 더 큰 공동체를 위해서 함께 경쟁한다고 생각하면 사랑의 경쟁도 분명히 가능해지는 겁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삶의 완성은 무엇일까요? 좋은 삶을 살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4·19 민주화 운동을 연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겪었어요. 가끔 시간 여유가 생기면 4·19 묘역에 가봅니다. 거기에 가면 욕심이 없어져요. 세상을 위해서, 그런 원대한 목표를 위해서 베풀고 헌신하기 위해서 나선 사람들이었잖아요. 그 사람들이 어떤 명예욕으로 움직인 게 아니죠. 원대한 목표, 세상을 위한 목표가 있었고 그걸 위해 움직였잖아요. 그러니 지금 존경을 받죠.

 

우선 저는 성공한 기업가나 정치인은 참으로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성공을 해서가 아니에요. 그들은 사회를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할 기회를 그 어떤 사람들보다 많이 갖고 있어요. 그게 엄청난 축복이라는 거죠. 미국 LA 동부에 가면 리버사이드라는 작은 중소도시가 있어요. 아직은 백인이 주류인 나라에서 그 도시의 시청 앞에는 전혀 다른 인종 세 사람의 동상이 있습니다. 한 명은 인도의 간디, 다른 한 명은 마틴 루터 킹 목사고, 다른 한 명은 안창호 선생이에요. 인도인, 한국인, 그리고 미국 사회 소수자인 흑인이죠.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어요. ‘나의 명예’ ‘나의 욕심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거예요. 안창호 선생은 나라를 잃고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해보려고 일단 선진국으로 갔어요. 가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신 거죠. 근데 식민지 청년, 그것도 황인종이 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겠어요. 그래서 그 일대 오렌지 농장에 가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성실할 수가 없었대요.

 

모두가미스터 안을 알았대요. 그런데 나중에 그 도시에 들려온 얘기가, 그때 그미스터 안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정신적 지도자가 됐다는 거였어요. 다들, 그 젊은이라면 그럴 만하다라고 생각하고 존경을 표했고, 그래서 나중에 한인사회와 협력해 동상까지 만든 거예요. 마틴 루터 킹의 숭고한 삶이 흑인 여성 국무장관과 흑인 대통령을 만들어냈잖아요. 그런 걸 보면삶의 목표’ ‘삶의 완성이란 무엇인지 좀 보이는 것 같아요.

 

다들 잘 아시는 손기정 선생 얘기를 들려드릴게요. 제가 좀 친한 세무사가 있었어요. 종로에 사무실이 있어서 제가 가끔 찾아가서 뭐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어느 날 그 세무사를 찾아갔더니방금 손기정 선생이 왔다 가셨다라고 해요. 근데 이 세무사 양반이 좀 뭔가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어요. 그래서무슨 일이 있었냐라고 제가 물었죠. 그랬더니, 방금 손기정 선생이 와서내가 어디에서 상을 좀 받아서 상금이 들어왔다. 근데 이게 공짜로 생긴 돈인데, 세금을 내고 써야겠다. 세금 내는 것 좀 도와 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세무사가 웃으면서선생님 연세도 많으시고 직업도 없으시니 신고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대요.

 

그 말을 들은 손 선생이그러면 안 된다. 내가 한 평생 이 나라의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고 살았는데 공돈 생겼을 때 세금을 꼭 내야 마음이 편할 것 아니냐. 그러니까 도와 달라고 말씀하더랍니다. 그래서 세무사가 손 선생이 내야 할 세금을 계산해서이 금액만 내시면 됩니다’라고 알려드렸다고 해요. 그러니까 다시 손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것밖에 안 되냐? 더 많이 내는 방법 있지? 좀 많이 내는 그 방법으로 좀 해줘.’ 그렇게까지 세금이 내고 싶으냐고 물으니내가 이제 나라 위해 도울 게 아무 것도 없지 않나. 그러니 많이 해줘라고 하셔서 좀 더 많이 내는 방법을 계산해서 보여드렸다고 해요. 그러자 그때서야 손 선생은,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고맙다고 말씀하시고 떠나셨대요.

 

그 세무사 사무실을 나서서 긴 복도를 걸어가시는 손 선생 뒷모습이 너무나 가벼워 보이고 행복해보였다고 합니다.그래서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라는 반성도 되고 충격도 많이 받아서 머리가 멍해진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그 뒷모습에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것에 대한 답이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 내내, 김형석 명예교수는 쉰일곱 살이나 어린 기자에게 단 한 번도 말을 편하게 하지 않았다. 꼬박꼬박 존대를 하며 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친 노 철학자는 점심식사를 대접하겠다는 기자의 말에지방에서 강연이 있어요. 어서 역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 고생하셨어요. 두서없는 노인 얘기 들어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이 그가 일화를 들려줬던 고 손기정 선생의 뒷모습과 겹쳐보였다.

 

고승연 seanko@donga.com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