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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개인주의를 다시 생각함

이치억 | 201호 (2016년 5월 lssue 2)

 

 

‘개인주의’라는 말은 가치적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개인의 존엄성과 인권, 자유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의미를 띠지만 공동체 불화의 원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 “저 사람은 개인주의자야!”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그다지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한다. 아마 최고경영자(CEO)의 입장에서도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직원보다는 공동체에 헌신할 줄 아는 직원을 더 선호할 것이다. 뒤도 안 돌아보고 칼퇴근을 하거나 육아휴직을 만기까지 채워먹는 직원보다는 회사 분위기를 잘 살피는 직원이 회사 입장에서는 낫지 않겠는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는 긍정적 의미보다 부정적 의미를 더 강하게 가진다. 원래 사고구조의 변화속도는 환경의 변화보다 느린 법이다.

 

이쯤 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집단주의적 성향의 원인을 유교문화로 돌리기 시작할 것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살피고, 개인이나 가정보다 직장을 우선시하는 것이 유교적 공동체주의에 근거한 것 아니냐는 생각에서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빨리 이러한 불합리한 관습을 걷어 없애고, 개인의 인권과 자유, 가족문화를 존중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전통의 유교는 단언컨대 단 한 번도 국가나 기타 공동체를 가정보다 중시한 적이 없다. 유학사상에서 가장 중시하는 공동체는 가족이다. 가정사는 국가의 일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가령 관직에 있던 사람이 집에 연고가 생기면 언제라도 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 제삿날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휴가가 주어졌다. 부모의 상이라도 당하면 무려 만 2년이 훌쩍 넘는 휴가를 얻었다.

 

물론 유교의 핵심 덕목이 부모에 대한 효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개인은 어떨까? 개인은 공동체에 종속된 존재이며 공동체를 위해 희생돼야 하는 존재인가? 사실 속을 따지고 보면 유교만 한 개인주의도 없다. 유교야말로 개인의 존엄과 주체성,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개인주의 사상이다. 신분과 재능의 고하(高下)를 떠나 인간은 누구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을 부여받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이며, 그것을 실현시키며 사람답게 사는 길이 개인에게 주어진 숙명이라는 것이 유학사상의 핵심적인 인간관이다. 사회적으로는 평천하(平天下), 즉 세상의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인류 공통의 목표인데, 그 길을 실현시킬 주체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임을 주장한다. 단적으로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 <대학(大學)>의 기본 논리가 개인주의가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유교에서 말하는 개인주의가개인의 절대적 권리와 자유를 중시하고, 사회나 국가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인정하는 서구의 현대식 개인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유교적 개인주의는 무엇보다 개인의 인격적 완성과 그를 통해서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누릴 것을 설파한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공동체로 연결된다. 이로써만이 다양한 존재들이 공존하는 공동체의 질서와 조화가 보장된다. 유명한 공자의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 속에는 다양한개인이 다름을 뽐내야만 조화로울 수 있다는 개인 존중의 사상이 들어 있다. 유학사상에 따르면 나는 공동체에 종속돼 때로는 희생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온전한가 존재함으로써 공동체의 조화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현대적 의미로 사용하는 개인주의가 개인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유교적 개인주의는 그 의미가 다르다. 물론 권리와 자유를 주장하지만 책임과 의무를 이행할 줄 알며, 개인은 독립된 존재이지만 사회 안에서 조화로울 줄 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을 진정한 한 사람으로 완성시킬 줄 아는 데 있다. 유교적 개인주의에 철저한 사람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에게 충실하며, 남들의 생각에 뇌동하지 않고나다움을 지킬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이롭게 할 줄 알며, 남을 탓하거나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남을 도와줄 줄 아는, 진정으로독립된 개인이다. 이런 개인주의자라면 쓸 만한 인재가 아니겠는가?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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