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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eativity in My Hand

‘닫힌 세계’와 ‘질적 변화’로 혁신의 최적 지점을 쏴라

박영택 | 192호 (2016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모두가 감탄하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중 하나는 문제해결을 위해 외부 자원을 투입하지 말라는닫힌 세계의 조건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만 이용하는 해결책은 쉽게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문제에 내재된 모순의 최적 절충점을 찾으려 하지 말고 모순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라는질적 변화의 조건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 해결책은 모순 자체가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다.

 

편집자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창의성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존재입니다. 무수히 많은 창의적 사례들을 분석해 보면 그 안에 뚜렷한 공통적 패턴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창의적 사고의 DNA를 사례 중심으로 체계화해 연재합니다.

 

닫힌 세계의 조건

 

‘닫힌 세계(Closed World·CW)’의 조건이란 문제해결을 위해 외부 자원을 투입하지 말고 기존의 가용자원만 이용하라는 것이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좋은 예가적정기술이다.우리는 통상 무의식적으로 신기술이나 첨단기술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기술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그것을 유지 관리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이 부족하면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적정기술이란 그 기술을 사용할 사회가 경제적으로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고 쉽게 유지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적정기술의 사례로 많이 알려진 것 중 하나로 1리터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기찻길 옆에 있는 필리핀의 빈민가에서 시작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므로 좁은 공간 안에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거나, 전기가 들어온다고 해도 전기요금 때문에 불을 마음 놓고 켜지 못한다. 전등을 켜지 않으면 대낮에도 집 안이 캄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서 지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빛 1리터 프로젝트이다.

 

 

해결책의 요지는 지붕 위에 작은 구멍을 뚫고 물을 넣은 페트병을 꽂아 두는 것이다. 이렇게 해두면 햇빛을 받은 물병이 어두운 실내를 비추는 전등 역할을 한다. 이 경우 시간이 지나면 페트병 안의 물에서 녹조류 등이 성장해 물이 혼탁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물과 함께 약간의 표백제를 넣는다. 이렇게 하면 유지관리를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이 프로젝트의 수행에는 돈이나 다른 노력이 수반되는 외부 자원이 들어가지 않았다. 먹다 버린 페트병은 쓰레기통에서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 이와 같이 외부 자원을 투입하지 않고 가용자원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때닫힌 세계의 조건이 충족됐다고 한다.

 

군사용 레이더 장치를 제작하는 기업이 경험한 다른 예를 하나 보자.1 이 회사는 정부기관이 공고한 제안요청서(RFP)를 보고 입찰에 참여했는데 요청서의 내용은 수신전용 안테나의 납품에 관한 것이었다. 안테나를 설치할 지역은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는 추운 지역이며 바람도 거센 곳이었다. 안테나는 지면에서 약 10m 높이로 설치돼야 하며 강풍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3 1조의 팀이 안테나를 들고 도보로 이동해 전략적 요충지에 설치한 뒤 귀환하면 유지 관리를 위한 별도의 사후 노력이 없어도 안테나가 지속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이 회사는 높은 가격을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계약을 따냈다. 입찰에 성공한 이유는 안테나의 지지대 무게가 다른 경쟁업체들이 제안한 것보다 훨씬 더 가벼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이 업체는 눈이 내리지 않는 따뜻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안테나 수신부에 눈이 쌓여 얼면 무게 때문에 안테나가 뒤틀리거나 부러지기 쉽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못하고 제안서를 작성한 것이었다. 뒤늦게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는 매우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시도 중 하나를 생각할 것이다.

 

눈이 쌓이기 전에 녹인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아이디어이지만 수신 전용 안테나이기 때문에 눈을 녹일 수 있는 에너지원이 없다.

 

진동을 이용해 눈을 털어낸다.

 

앞의 아이디어와 마찬가지로 진동을 발생시킬 에너지원이 없다. 또한 별도의 진동발생 장치를 부가할 경우 안테나가 무거워져 도보로 운반하기 힘들다.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한다.

 

테플론과 같이 매끈한 소재로 안테나 표면을 코팅하면 안테나 위에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영하 25도 이하에서도 이러한 기능을 하는 소재는 없다. 또한 기름이나 그리스를 안테나 위에 바를 경우 영하 20도 이하에서는 오히려 결빙을 촉진한다.

 

안테나 덮개를 부착한다.

 

안테나 위에 덮개를 고정하려면 덮개 지지대나 별도의 기둥이 필요하다. 이 경우 안테나가 무거워져 도보로 운반하기 힘들다.

 

지지대를 없앤다.

 

헬륨 풍선 등을 이용해 안테나를 공중에 띄우면 지지대가 없어도 된다. 그러나 안테나의 무게 때문에 공중 부양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강풍이 부는 곳에 그런 풍선 장비를 원하는 높이로 고정시키기 힘들다.

 

이상과 같은 방법들은 현실성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창의적 해결책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도보로 운반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공학적 관점에서 볼 때 튼튼하게 만들려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안테나 기둥이 항상 그렇게 튼튼해야 할 필요는 없다. 안테나 위에 눈이 쌓여 결빙이 될 경우에만 이를 지탱할 수 있으면 된다. 이러한 깨달음을 토대로 이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그림 3>과 같은 해결책을 찾았다.

 

 

 

안테나 기둥의 표면을 거칠게 만들어 눈이 내리면 안테나 상부뿐만 아니라 기둥에도 쉽게 눈이 달라붙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쌓인 눈이 결빙돼 안테나 상부가 무거워지면 기둥에 붙은 눈도 얼음 기둥이 돼 지지대를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정말 창의적이지 않는가? 모두가 창의적이라고 여기는 이러한 해결책에는 외부 자원이 추가된 것이 없다. 문제와 문제 주변에 있는 기존 요소를 활용한 것뿐이다. 닫힌 세계의 조건이 충족되는 해결책이다.

 

질적 변화의 조건

 

‘질적 변화(Qualitative Change·QC)’의 조건을 설명하기 위해 한때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MBC 드라마주몽의 한 대목을 소개하기로 한다. 주몽은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의 본명이다. 주몽이 강대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영토 확장 전쟁을 벌일 때 중요한 것은 무기였다. 당시의 핵심 무기는 칼이었는데, 주몽의 군대가 사용하던 칼은 초강법(抄鋼法)이란 비법으로 만든 중국 한()나라의 칼에 비해 강도가 형편없었다. 주몽의 군대가 사용하던 칼은 연철로 만들었는데 연철은 강도가 약해 힘을 받으면 잘 휘어진다. 그런데 강도를 높이려면 주철을 사용해야 하는데 주철은 충격을 받으면 쉽게 부러진다. 문제는 강도가 높으면서도 잘 부러지지 않는 칼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서 개선하려는 특성은 칼의 강도이며, 악화되는 특성은 충격에 깨지는 것이다. “강도를 높이면 깨지기 쉽다는 기술적 모순은 <그림 4>에서 적색 선으로 표시돼 있다. 그런데 해결책을 적용했더니 개선하려는 특성과 악화되는 특성의 관계가 적색 선에서 청색 선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해 보자.

 

먼저 <그림 4>의 왼쪽 청색 선을 보면 개선하려는 특성이 좋아지더라도 악화되는 특성은 변함이 없다(, 칼의 강도를 높이더라도 부러질 가능성은 변함이 없다). 또한 오른쪽 그림의 청색 선을 보면 개선하려는 특성이 좋아질수록 악화되는 특성도 개선된다(, 칼의 강도를 높일수록 부러질 가능성도 줄어든다). 따라서 청색 선과 같은 관계에서는 하나의 특성을 개선하면 다른 특성이 나빠진다는 기술적 모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해결책의 도입으로 인해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을 때질적 변화(QC)’의 조건이 충족됐다고 한다.

 

 

 

 

앞서 살펴본 안테나 문제의 해결책이 질적 변화의 조건을 충족시키는지 생각해 보자. 문제의 핵심은 튼튼하면서도 가벼운 지지대를 설계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선하고자 하는 특성은 지지대의 강도이며 악화되는 특성은 무게다. <그림 3>과 같은 해결책은 얼음 기둥이 지지대의 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므로 안테나 자체의 무게는 늘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해결책은 질적 변화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혁신의 최적 지점

 

마케팅의 기초는 고객의 목소리(Voice of the Customer·VOC)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VOC를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VOC는 기존 상품을 개량하는 데에는 요긴하지만 혁신적인 상품의 창출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 나오는 다음 대목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2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헨리 포드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고객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면 그들은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기 전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내가 절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직 쓰이지도 않은 것을 읽어내는 것이 우리의 임

무다.”

 

그렇다고 해서 고객들에게 브레인스토밍에서와 같이 무엇이라도 주저하지 말고 자유분방하게 거침없이 말해달라고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아이디어만 넘쳐난다.

 

브레인스토밍이 현재의 문제로부터 너무 벗어난 아이디어를 내놓는 반면 VOC는 너무 근접한 과제를 제시한다. 창의적 해결책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영역은 현재의 문제에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위치에 있다. 이러한혁신의 최적 지점을 개념적으로 묘사하면 <그림 5>와 같다. 이 그림에서 동심원의 중앙은 현재의 문제를 나타낸다.

 

 

 

 

 

 

창의적 해결책이 되기 위한 두 가지 충분조건이 혁신의 최적 지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먼저 외부 자원을 추가로 투입하지 말고 현재 갖고 있는 자원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라는닫힌 세계의 조건은 해결책이 현실 문제에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방지할까, 아니면 너무 멀어지는 것을 방지할까?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가용자원만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현실성이 높다. 따라서 이를 요구하는닫힌 세계의 조건은 해결책이 현실에서 너무 멀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다음으로 문제가 안고 있던 기술적 모순을 근원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질적 변화조건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조건은 해결책이 현실 문제에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방지할까, 아니면 너무 멀어지는 것을 방지할까? 모순을 근원적으로 해소한다는 것은 사소한 변화가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다. 따라서 이러한 질적 변화는 해결책이 현실 문제에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방지한다.

 

이처럼 창의적 해결책이 되기 위한 두 가지 충분조건 중 하나는 해결책이 현실 문제에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방지하고 다른 하나는 너무 멀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따라서 앞서 설명한 안테나 문제의 해결책처럼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면 <그림 5>에 나타낸 것처럼 해결책이 혁신의 최적 지점에 위치하게 된다.

 

박영택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ytpark@skku.edu

 

필자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품질경영학회 회장, 성균관대 산학협력단 단장, 영국 맨체스터경영대학원 명예객원교수, 중국 칭화대 경제관리대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성균관대에서비즈니스 창의성을 강의하고 있으며 온라인 대중공개 강의인 K-MOOC창의적 발상을 담당하고 있다.

  • 박영택 박영택 | - (현)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 성균관대 산학협력단 단장
    - 영국 맨체스터경영대학원 명예객원교수
    - 중국 칭화대 경제관리대학 객원교수

    ytpark@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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