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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거울

스파르타를 타락시킨 리산드로스, 로마의 학살자보다 더 나쁜 악당

김상근 | 175호 (2015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스파르타의 리산드로스와 로마의 술라는 둘 다 천하의 악당들이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두 악당들의 생애를 통해 누구의 악행이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짚는다. 그리고 정작 본인은 청렴하게 살았을지언정 스파르타인들에게 황금만능주의를 심어준 리산드로스를 더 나쁜 악당으로 규정한다. 로마의 독재관을 자처하며 양민을 학살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탐욕의 화신 술라보다돈을 맛을 보게 해 조국을눈먼 자들의 도시로 만든 리산드로스가 더 나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돈의 소유가 행복의 기준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황금의 병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 병의 말기 증상은 많이 가진 사람을 혐오하고 그들이 당하는 불행을 고소해 하는 증상으로 이어진다. 

 

편집자주

고전의 지혜와 통찰은 현대의 지성인들에게 여전히 큰 교훈을 줍니다. 메디치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과 마키아벨리 연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군주의 거울을 연재합니다. 인문학 고전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깊은 통찰력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성인(聖人)에게 과거가 있기 마련이듯 이 세상 모든 악인(惡人)에게도 미래가 있다(Every saint has a past, and every sinner has a future).”

 

참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본받지 말아야 할 나쁜 인간을악당이나죄인으로 부르며 경계하지만 그렇다고 모든악당이나죄인들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개선될 수 있는 미래의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밤의 어둠이 짙어야만 낮의 태양이 더 찬란하게 빛나고 지옥이 있어야 천국의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죄인이 있어야만 성인의 가치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성인이고, 누가 죄인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어떤 기준으로 선과 악의 기준을 내려야 합니까? 인류의 역사는 주로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됐기 때문에 패자는 늘 죄인이 됐고, 승자는 늘 성인으로 추대돼 왔습니다. 페르시아를 정벌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성인으로 간주됐고, 패배했던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 3세는 역사의 패배자이자 죄인으로 단죄됐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성인이 맞습니다. 자기편이니까요. 그러나 침략을 당했던 페르시아인의 입장에서 볼 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지옥으로 가야 마땅할 역사의 죄인이자 철천지원수입니다. 평화로운 자기 조국 페르시아를 유린했던 외부의 침략자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시대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도 이 문제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권력 투쟁에서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역사의 승자가 된 성인이 진짜 훌륭한 영웅인지, 아니면 역사의 패배자로 낙인찍혀 악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무조건 악당으로 불러도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한 것입니다. 역사의 패배자가 돼 악인으로 몰렸던 인물에게서는 배울 점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요? <영웅전>에서 탁월함을 과시한 영웅들의 모습을 짝을 지어 비교해 오던 플루타르코스는 집필의 중반에 접어들면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뤘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글에 소개할리산드로스 VS. 술라 편 <영웅전>에서 아주 예외적인 부분입니다. 이 두 사람의 비교 부분은 <영웅전>이 아니라 <악당전>으로 불러야 적절할 것입니다. 스파르타의 리산드로스와 로마의 술라는 둘 다 천하의 악당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두 악당들의 생애를 통해서 누구의 악행이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누가 더 큰 역사의 죄를 지었을까? 그리고 그 악행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바로 이것이 플루타르코스가 제기한리산드로스 VS. 술라 편의 핵심 질문입니다.

 

BC 510년부터 38년까지 사용된 아테네의 동전(Tetradrachm). 앞면에는 아테나가, 뒷면에는 올리브 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부엉이가 새겨졌다. 리산드로스가 이 동전을 처음으로 스파르타에 유입시켰다.

 

 

스파르타를눈 먼 자들의 도시로 만든 리산드로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주역이었던 리산드로스(Lysandros, BC 395년 사망)는 스파르타인들에게 돈에 대한 욕심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었습니다.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놓은 문제적 인물이었습니다. 스파르타의 탁월한 정치가이자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용감한 장군이었지만 리산드로스는 명예로운 조국 스파르타를 황금에 눈 먼 국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위대했던 입법자 리쿠르고스 덕분에 스파르타인들은 재물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이상적인 도시국가를 만들었고 그때부터 스파르타는 그리스 정신의 모범이 됐습니다. 그런데 물질 소유에 초연하고, 검소한 식사와 남루한 잠자리에 들면서도 조국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초개와 같이 버리던 스파르타의 젊은이들이 리산드로스 때문에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산드로스가 스파르타 사람들의 마음에 탐욕과 부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자 돈이 최고이고, 돈이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주의가 스파르타에 퍼져나갔습니다. 스파르타는 리산드로스 때문에눈 먼 자들의 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정작 리산드로스 자신은 재물에 초연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숙적 아테네를 정벌하고, 전리품으로 획득한 막대한 양의 금은보화를 스파르타에 유입시켰지만 본인 스스로는 황금의 소유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황금에 눈멀게 했던 그는 검소하다 못해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한번은 시라큐사의 참주가 리산드로스의 호감을 얻기 위해 최고급 옷감을 딸에게 뇌물로 바쳤는데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가 죽고 난 다음에 재산을 조사해 보니 자녀들의 생활이 곤란할 정도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황금에 눈이 멀게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은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던 아주 독특한 인물입니다.

 

스파르타의 장군 리산드로스는 아테네의 지도자 알키비아데스와 한 시대를 겨뤘던 인물입니다.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이 참패로 끝났지만 알키비아데스는 다시 아테네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복원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키비아데스의 잠재적 위협을 익히 알고 있던 스파르타인들은 리산드로스를 해군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아테네 해군과 맞붙게 했습니다.

 

리산드로스는 용감무쌍한 해군 제독이기보다는 노회한 정치꾼에 가까웠습니다. 페르시아의 왕, () 키루스(Cyrus the Younger)에게 아부에 가까운 행동을 하면서 더 많은 군사 지원금을 우려냈고 에페수스에 장기간 진을 치고 공격의 기회를 기다리는 인내의 작전을 구사했습니다. 마침 아테네의 해군이 성급한 판단으로 에페수스 항구에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자 리산드로스는 그 틈을 노렸습니다. 리산드로스의 치밀한 장기전 전략이 실효를 거둔 것입니다. 이 작전이 실패하면서 결국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해군 사령관직에서 해임되고 맙니다. 리산드로스는 점령지 에페수스에서 처음으로 참주제를 시행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아테네의 정치적 혼란을 야기했던 ‘30인의 참주의 원조에 해당합니다.

 

리산드로스는 점령지의 전통 귀족들을 부추겨 민중을 탄압하는 참주들의 독재정치를 유도했으며그들의 탐욕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그들이 행하고 있던 불의와 악행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리산드로스 편 5 ). 나라를 둘로 분열시켜 참주와 민중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도록 만들고 뒤에서 그 나라를 간접 통치하는 전략을 쓴 것입니다.

 

리산드로스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속임수를 쓰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밀레토스에서 속임수로 민중파를 모두 학살한 사건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리산드로스는 민중파에게 먼저 도와주겠다며 웃는 얼굴로 그들을 안심시킨 다음 한곳에 모아 놓고 모두 처형해 버렸습니다. 그는정의로운 일이라도 이익이 있을 때만 칭찬했고정의롭지 않더라도 이익을 가져오면 명예로운 일이라고 극구 칭찬하던 인물이었습니다. (7) 스파르타인들은 자신들을 정의와 명예를 소중히 여기던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고 자부하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리산드로스 장군이 속임수를 쓰면서 전쟁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를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리산드로스는 그들의 비난을 일소(一笑)에 붙이며사자의 가죽이 가리지 못하는 곳에는 여우의 가죽을 덧대야지라고 빈정댔다고 합니다. (7) 헤라클레스가 사자의 가죽을 쓰고 다녔던 것을 풍자한 것입니다.

 

정치적 속임수의 귀재였으며 잔인하게 적을 몰살시키는 섬멸전으로 유명했던 리산드로스 덕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막을 내렸습니다. 스파르타가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그는 아테네 포로 3000명을 모두 학살해 적의 사기를 완전히 꺾은 다음, 아테네의 정계 개편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친스파르타 성향의 아테네 귀족에게 권력을 일임해 아테네 민중들을 억압하도록 힘을 실어준 것입니다. 이른바 ‘30인의 참주시대가 시작됐습니다. 리산드로스는 이런 아테네 정치의 혼란기를 틈타 도심부터 피레우스 항구까지 에워싸고 있던긴 성벽(Long Wall)’을 단숨에 철거해 버렸습니다. 페르시아 전쟁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가 아테네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었던긴 성벽은 이제 리산드로스에 의해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그는 피레우스 항구에 정박돼 있던 아테네의 삼단노선(Trireme)도 모두 불태웠습니다. 그리스 전역에서 아테네의 맹주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성대한 축제를 열기도 했습니다.

 

리산드로스는 스파르타의 왕이 아니라 해군 제독이었습니다. 당시 스파르타의 왕은 아게실오스(Agesilaus Ⅱ, BC 400∼360년 통치)였는데 리산드로스에 대한 열등감이 극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작은 키에, 태어날 때부터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던 그는 리산드로스가 누리던 정치적 인기를 싫어했습니다. 원래 일인자는 이인자의 인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법입니다. 당시 스파르타인들은 왕이었던 아게실라오스보다 리산드로스 장군을 더 좋아했습니다. 아게실라오스와 리산드로스는 함께 페르시아 원정을 떠났지만 왕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소한 사건들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대부분의 스파르타 원정군들과 지역 주민들이 왕보다 리산드로스에게 더 큰 환호를 보냈고, 그에게 더 많은 선물을 보내곤 했습니다. 화가 난 아게실라오스 왕은 리산드로스에게서 군대 지휘권을 빼앗고 정육점에서 고기 써는 일을 시켰습니다.

 

원래 일인자는

이인자의 인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법입니다.

당시 스파르타인들은 왕이었던

아게실라오스보다

리산드로스 장군을

더 좋아했습니다.

 

 

페르시아 원정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왕으로부터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던 리산드로스는 왕위를 찬탈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할 수 있는 연설문을 미리 작성해뒀고, 신탁의 예언을 조작해서 왕위 찬탈의 필요성을 스파르타 시민들에게 호소할 준비도 마쳤습니다. 그는 혈통이 아니라 적임자에게 나라의 통치를 맡기자는 주장을 펼치기로 했습니다. 스파르타는 대대로 헤라클레스의 후손이 통치하는 혈통주의를 따르고 있었는데 리산드로스가 처음으로 능력 본위로 왕을 선출하자고 주장한 것입니다. 세습이 아니라 선거로 왕을 뽑자는 이 주장은 당시로서는 정말 혁명적인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리산드로스의 운명이 마감되는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30인의 참주가 시행하던 귀족 독재에 항거했던 일부 아테네 시민들이 테바이로 망명을 떠나게 됐고, 리산드로스는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일격을 당하게 됩니다. 테바이 성문 밖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공격을 받고 그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BC 395). 그의 시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델포이와 카이로네이아를 잇는 길가에 묻혔습니다.

 

헤라클레스는네메아의 사자를 죽인 뒤 자신의 용맹을 드러내기 위해 사자 가죽을 쓰고 다녔다. 이를 흉내 냈던 로마의 황제 코모두스의 흉상. 로마 캄피돌리오박물관 소장.

 

리산드로스의 공()은 지루하게 시간을 끌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종결시키고 스파르타에게 승리를 안겨 준 것입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생존해 있을 때, 모든 사람들은 그가 엄청난 부자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호구 조사를 해보니 아무런 재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 딸의 약혼자가 가난을 이유로 파혼을 선언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평생 검소하고 가난하게 살았던 그가 어떻게 스파르타인들에게 탐욕의 마음을 불러일으켰던 걸까요. 원래 스파르타는 철로 된 화폐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무겁기도 하고 녹이 잘 슬어 철로 된 화폐는 스파르타인들에게 불편만 안겨줬습니다. 그래서 스파르타인들은 돈을 모으는 행위 자체를 혐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원래 부를 축적하는 일을 불명예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리산드로스는 아테네를 정복한 다음, 금과 은으로 된 엄청난 전쟁 전리품을 스파르타로 유입시켰습니다. 금과 은으로 된 엄청난 양의 동전이 새로운 화폐 단위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스파르타의 원로들은 황금이 아니라 명예를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쳤던 리쿠르고스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했지만 리산드로스는 금과 은으로 주조한 새로운 스파르타의 화폐로 만들었고, 결국 이것이 스파르타인들에게 탐욕의 마음과 부에 대한 지나친 열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과연 선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악한 사람이었을까요? 플루타르코스는 이 아리송한 질문에 답하기 전에, 또 다른 악당 한 명을 소개합니다. 탐욕과 폭정의 대명사로 불렸던 로마의 장군 술라입니다.

 

독일 뮌헨 국립박물관의 조각관(Glyptothek)에 소장돼 있는 술라의 흉상.

 

탐욕과 폭정의 화신, 술라

몰락한 귀족 출신이었던 술라(Lucius Cornelius Sulla Felix, BC 138∼78)는 거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가난을 겪으며 힘들게 성장했습니다. 머리는 금발에, 붉은 반점 사이로 창백한 얼굴 피부를 가졌던 술라는 생긴 것부터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성격도 기괴했습니다. 어떤 때는 무자비한 처벌을 내리다가 갑자기 그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을 뿐인데도 툭하면 몽둥이로 때려 사람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심각한 잘못도 눈감아 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숙고 끝에 실행한 행위보다 충동적으로 과감하게 저질렀던 행위의 결과가 더 좋았다고 기록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성격을 드러냅니다. (6)

 

리산드로스가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오스의 견제를 받은 것처럼 술라는 집정관 마리우스(Gaius Marius, BC 157∼86)로부터 경계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북부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와 라인 강 유역의 게르만족을 치기 위해 출정했을 때 작전 사령관은 마리우스, 전속 부관은 술라였습니다. 물론 승전의 영광을 누리던 개선장군은 마리우스였지만 사람들은 그가 부하 술라의 공을 가로챘다고 숙덕거렸습니다. 결국 마리우스는 술라와 극심한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데이 두 사람의 반목은 동포 간의 유혈 사태와 돌이킬 수 없는 불화로 이어졌습니다(술라 편 4).

 

두 사람 사이가 완전하게 갈라지게 된 것은동맹시 전쟁때문이었습니다. 기원전 90년 경, 로마원로원이 포에니(카르타고) 전쟁 때 로마를 지원했던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국가 주민들에게 로마의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부결시키자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로마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던 여러 동맹 국가들은 한 개의 통일 국가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바로이탈리아(Italia)’입니다. 반란의 초기에 반란군이탈리아와 맞섰던 로마의 장군은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던 카이사르였고, 후기에 로마의 남부 전선을 방어했던 인물이 바로 술라입니다. 어쨌든 술라는 이 동맹 시 전쟁을 종결시켰던 로마의 영웅이었습니다. 반면 마리우스는 이 전쟁에서 특별한 공을 쌓지 못했고, 결국 두 사람 사이는 더 틀어지게 됩니다. 마리우스는 자신의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평민 대표, 즉 호민관이었던 술키피우스와 손을 잡았습니다만 그것은 악수(惡手)였습니다. 자객 3000명을 사설 부대로 거느리고 다니면서 원로원과 귀족들을 협박하던 술키피우스는 당시 공동 집정관이었던 폼페이우스와 술라의 공무를 중지시키는 행패를 부렸습니다. 결국 술라는 6개의 군단을 조직해 마리우스와 술키피우스를 축출시키고, 로마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됩니다. 이 전쟁 과정에서 술라는 무자비한 살육전을 벌였고 무고한 로마 시민들의 거주지에 불을 질러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술라는 곧 로마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지금의 터키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폰투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가 동방에 거주하던 로마인 15만 명을 학살(실제로는 약 6만 명)하고, 그리스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우려냈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을미트리다테스 전쟁이라 부릅니다. 술라는 먼저 폰투스 왕국에 투항하고 세금을 그쪽으로 바쳤던 아테네를 점령한 다음 미트리다테스와 4년간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치열한 교전이 오갔고 술라는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술라를 진짜 괴롭힌 것은 폰토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가 아니라 로마에서 다시 세력을 키우던 마리우스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미트리다테스와 평화 협정을 맺고 로마로 급거 귀환합니다(BC 84).

 

술라는 또다시 무자비한 학살로 로마를 평정했습니다. 자신의 귀환을 환영하던 시민들을 원형 경기장에 몰아넣고 한꺼번에 6000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특별한 근거도 없이 살생부에 시민들의 이름을 적어 넣고, 누구든지 그 시민을 죽이면 상을 내렸습니다. 이 살생부 때문에 로마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자행됐습니다. 술라는 이 정치적 혼란기에 자신을 스스로 독재관에 임명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로마인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은 모두 술라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관직이 사람의 기존 성격을 바꾸고, 권력이 사람을 변덕스럽고 허황되고 잔인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퍼진 것도 다 술라 때문이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30). 로마 시민들이 가장 분노했던 것은 술라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그 살상을 통해 술라 자신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술라는 죄 없는 사람을 무수히 살해했습니다. 그는 여러 여자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밤낮으로 주연을 베풀며 여장 남자와 추잡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그런 방탕한 생활 때문에피부를 뚫고 기생충이 기어 나오는 끔찍한 병에 걸렸습니다. 술라는 늘 가장 행복할 때 숨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는데, 실제로 그는 로마 권력의 정점에서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나라에 빚을 진 사람을 직접 목 졸라 죽이는 형벌을 가하다가 과다하게 힘을 쓴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근육에 무리하게 힘을 주다가 평소에 앓고 있던 병이 도졌습니다. 비록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그의 죽음 앞에서 로마 시민들의 절반은 저주를 퍼부었고, 나머지 절반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고 합니다.

 

로마 시민들이

가장 분노했던 것은

술라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그 살상을 통해 술라 자신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리산드로스와 술라의 비교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중에서 아마리산드로스와 술라의 비교가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입니다. 리산드로스와 술라는영웅으로 불리기에는 악덕이 더 많았던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가 더 뛰어난 영웅인가가 아니라 누가 더 나쁜 악당이었는가를 가려야 할 형편입니다. 리산드로스와 술라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이 점에서 오스카 와일드가이 세상 모든 악인(惡人)에게도 미래가 있다라고 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스파르타인들에게 물질에 대한 탐욕을 불러일으켰던 리산드로스나 본인 스스로 탐욕의 화신이 됐던 술라는 지금 우리에게 교훈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절대로 본받지 말아야 할 경계의 대상으로서 말입니다. 물론 둘 다 나쁜 사람이란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플루타르코스는 슬쩍 그리스 사람 편을 듭니다. 리산드로스가 아게실라오스 왕을 전복시키기 위해혈통이 아니라 능력으로 사람을 뽑자”고 주장한 것은 시대를 앞선 혁명적인 발상이었다는 것입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냥꾼이 사냥개를 고를 때, 뛰어난 개를 찾지 특정한 암캐의 새끼를 찾지 않고, 기수가 말을 고를 때 특정 암말의 망아지를 찾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치가가 군주를 고를 때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지 않고 누구의 자손인가 묻는다면 기막힌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비교 편 2 )

 

적절한 비유와 탁월한 통찰력이 들어 있는 문장입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는 지연과 인맥으로만 사람의 가치가 평가될 때입니다. 낙하산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특수 부대원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일반 보병들의 사기와 전투력은 떨어집니다. 승전의 영광을 소수의 낙하산 부대가 모두 차지하게 된다면 일반 보병들의 사기는 꺾이고 말 것입니다. 최후 승리의 깃발은 언제나 일반 보병이 올리게 되는데도 말입니다.

 

술라의 정적이었던 마리우스의 초상화. 존 반델린 작카르타고의 유적지에서 상념에 젖어 있는 마리우스’, 1807년 작품, 샌프란시스코 순수예술 박물관 소장.

 

그렇다고 해서 리산드로스가 술라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플루타르코스의 해석이었습니다. 술라보다 리산드로스가 더 나쁜 사람이었고, 따라서 절대로 본받지 말아야 할 인물은 술라가 아니라 리산드로스였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독재관을 자처하며, 양민을 학살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었던 탐욕의 화신 술라보다 리산드로스가 더 나쁜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

 

리산드로스는 스파르타인들에게돈의 맛을 처음으로 맛보게 한 인물이었으며 명예를 소중히 여기던 자신의 조국을눈먼 자들의 도시로 만든 원흉이기 때문입니다. 스타르타인들은 황금에 눈이 멀었는데, 그것은 모두 금과 은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친 리산드로스 때문이었습니다. 돈은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리산드로스 때문에 돈은 행복한 삶의 목적으로 변질됐습니다. 행복한 삶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과 동격이었는데, 이제 행복한 삶은 황금을 많이 소유한 삶으로 변질됐습니다.

 

돈의 소유가 행복의 기준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불행해집니다.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이황금의 병이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모방하기 시작하고, 나도 그들처럼 행복하게 보이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미 그 병은 중기에 이른 것입니다. 명품 가방을 들어야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증상이 이 시기에 나타납니다.

 

‘황금의 병이 나타는 말기 증상은 많이 가진 사람을 혐오하고, 그들이 당하는 불행을 고소해 하는 것입니다. 최근땅콩 회항사건에 나타난 국민적 분노는 사실 우리 사회가 이황금의 병말기에 걸려 있음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승무원에게 저지른 개인적인 폭행이나 이미 활주로에 들어섰던 비행기를 회항시킴으로 발생한 항공법 위반 혐의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잘못된 행동에 전 국민이 벌 떼와 같이 분노를 보이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를 통해 연대감을 확인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황금의 병에 걸린 사회는 대화가 아니라 분노와 폭력으로 소통합니다. 그래서 재벌의 딸은 봉지에 든 땅콩 서비스에 분노하고, 한 대기업의 상무는 식어버린 라면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한 교수는 자신을교수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승무원을 향해 폭언을 퍼붓고, 한 가수는 비행기 좌석 발권이 잘못됐다고 포도주 잔이 들이키며 행패를 부리게 된 것입니다. 일등석, 비즈니스석, 이코노미석 모든 곳에 분노와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그 비행기가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이륙했기 때문입니다.

 

봉지에 담긴 땅콩을 받더라도, 라면이 좀 식었더라도, 자신을 교수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직원의 실수로 좌석이 잘못 배정됐다고 하더라도 따뜻한 미소로 승무원을 대할 수 있는 격이 높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황금의 병이 빨리 치유돼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지독한 병이 제도로 잘 치유되지 않고, 정치로도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본주의의 역사를 통해 배웠습니다. 이미 리산드로스가 남긴 병은 전 세계로 전염됐고, 그것은 어쩌면 치료 불가능한 인류의 불치병인지도 모릅니다. 술라보다 리산드로스가 더 나쁜 인물이었던 이유는 이 치료 불가능한 고질병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리산드로스 VS. 술라 편을 통해 로마인들에게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황금의 소유가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의 가르침이눈 먼 자들의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학장 및 연합신학대학원 원장 skk@yonsei.ac.kr

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 및 에모리대에서 석사 학위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신과대학 학장 및 연합신학대학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플라톤아카데미 연구책임 교수도 맡고 있다. <르네상스 창조 경영>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20여 권의 책을 냈다.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영감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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