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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경영

경제성장기, 우리는 착했다. 창의적 재도약? 한마음 회복이 먼저다

이기동 | 169호 (2015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착한 마음은 하늘마음에서 온다. 하늘마음은 하나마음이고 한마음이다. 착한 마음은 창의력으로 가득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착한 마음에서 나온다. 경제는 발전했지만 경쟁이 심해지면서 우리의 착한 마음이 허물어졌다. 어떤 목적을 향해 달려가기 전에 이를 회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업이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 사원들이 착한 마음을 갖도록 이끌면 창의력이 뛰어난 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어떤 목표든 능히 달성할 수 있는 기본 토대가 마련된다

 

 

 

가난했던 시절, 우리는 강력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다 같이 달렸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5년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또다시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다 같이 달렸다. 오늘날 우리가 잘살게 된 것은 그때 목표를 향해 다 같이 뛰었기 때문이다.

 

 

지금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엔저(円低) 현상 때문에 일본에 수출을 빼앗기고 중국에도 추월당해 우리 경제가 샌드위치처럼 양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낙관할 때가 아니다. 다시 강력한 계획을 세워 함께 뛰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기업인들은 다시 경영의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짜느라 분주해졌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과거처럼 강력한 목표를 세워놓고 지도자들이 목표 달성을 아무리 독려하더라도 과거처럼 성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일이 진행되는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일이 성공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는 인()과 연()이 있다. 인은 내부에 있는 근본 원인이고, 연은 외적 조건이다. 연은 보이지만 인은 보이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불량한 아이들이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어른이 엄하게 꾸짖어 아이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고 하자. 이 경우 그 어른의 꾸짖는 방법은 좋은 성공사례다. 그러나 그 방식을 잘 보고 행패를 부리는 불량배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꾸짖는다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만 따라 하고 인()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하게 꾸짖어 성공한 어른이 태권도 9단이었다고 하자. 태권도 9단이라는 사실은 인()이고 꾸짖는 방법은 연()이다. 태권도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꾸짖는 방법만 똑같이 따라 한들 효과가 있을 리 없다. 태권도 9단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사람들이 인을 소홀히 하고 연에만 매달리는 첫째 이유는 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인을 알았더라도 빨리 성공하고 싶은 성급함으로 인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의 성공도 예외가 아니다. 경영의 성공은 인과 연이 잘 조화될 때 찾아온다. 성공의 인에 해당하는 것은 착한 마음씨다. 착한 마음은 하늘마음에서 나온다. 하늘마음이 사람의 몸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착한 마음이다. 하늘마음은 하나마음이고 한마음이다. 착한 사람은 남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남들도 그를 좋아하고 따른다. 착한 마음은 창의력으로 가득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착한 마음에서 나오는 느낌이다. 착한 사람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하면서도 남의 도움을 많이 받기 때문에 성공한다. <명심보감>이라는 책의 첫 문장에서 공자는착하게 사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 보답한다1 고 했다.

 

 

우리 경제가 비약적으로 도약하던 시절, 우리 마음은 착했다. 그때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일했다.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정치하는 사람은 국민을 살리려는 애정을 품었고, 기업인도 사원들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려는 애정을 갖고 있었다. 가난한 시골에서 살던 형이나 누나는 동생 학비를 대기 위해 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독일 광산이나 병원에 가서 힘들게 일했고 중동 사막까지 가서 일했다. 그때 우리는 한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희생을 해도 행복했다. 형이나 누나는 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마음이 착했기 때문에 국가가 하는 일을 모두 따르고 도왔다. 학교에서 도서관을 짓거나 기숙사를 짓는다고 땅을 팔아달라고 하면 얼른 협조했다. 학생들의 공부를 위해서라면 그저 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으므로 땅값을 받는 것에 미안해하면서 팔았다.

 

 

경제가 차츰 좋아지면서 우리의 마음도 변했다. 착한 마음은 경쟁을 할 때 허물어진다. 선의의 경쟁은 어디까지나 좋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에만 몰두하는 경쟁이 문제다. 이기기에만 몰두할 때 사람들의 착한 마음은 급속도로 소멸한다.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착한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마음이 언제나 한가하고 느긋하지만 작은 꾀를 가진 사람은 욕심으로 살기 때문에 깐깐하다. 착한 마음으로 하는 말은 담담하지만 욕심으로 하는 말은 수다스럽다. 그런 사람이 잠을 잘 때는 꿈속에서도 마음이 복잡하다. 깨어 있을 때는 욕심을 채우느라 남들과 얽혀 날마다 마음을 다해 싸운다. 느릿느릿 싸우는 자도 있고, 음흉하게 싸우는 자도 있고, 치밀하게 싸우는 자도 있다. 남에게 질 때는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나중에 다가올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는 오히려 느긋하다. 남에게 공격의 말을 퍼부을 때 화살을 쏘듯 예리하게 쏘아대는 것은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고 수세에 몰렸을 때 맹세한 듯 입을 다무는 것은 지지 않기 위해서다. 이처럼 다툼이 치열해지면 가을과 겨울에 온도가 뚝뚝 떨어지듯 착한 마음이 날마다 자꾸자꾸 사라진다. 그러다가 결국 욕심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착한 마음을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2

 

 

우리가 그랬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점점 더 경쟁에 내몰렸고, 그럴수록 착한 마음을 상실해갔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예전과 다르다. 남에 대한 애정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정치하는 사람에게 국민을 위한 진정성을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사원들과 한마음이 돼서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는 기업인도 없다. 과거에는 회사 일이 밀리면 밤을 새워 일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희생하는 형이나 누나도 없다. 희생은커녕 힘든 일 자체를 기피한다. 실업자가 돼서 노는 한이 있어도 힘든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회사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쩔쩔 맨다. 동생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샘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 화합하기는 더 어렵다. 남의 불행을 보는 것이 행복이고 남의 행복을 보는 것이 불행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렇게 되면 정치가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치를 할 수 없고 경영자가 고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경영을 할 수 없다. 미국이 금융위기에 직면하고 유럽이 경제위기에 빠진 근본 원인은 사람들의 마음이 얼어붙은 데 있다. 맹자는사람들의 마음에 탈이 나면 정책이 잘못되고, 정책이 잘못되면 사건이 터진다3 고 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정치와 경제가 자꾸 혼란해지고 교육이 자꾸 흔들리는 것은 마음에서 탈이 났기 때문이다. 위기를 의식하게 된 우리 정치인이나 기업인은 당황하고 있다. 급성장했을 때의 방식대로 다시 경제발전 계획을 세워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성공의 두 축인 인()과 연() 중에 인을 돌아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의 근본 원인은 사람들의 착한 마음씨에 있다. 사람들이 마음의 문제를 간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했을 때 마음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덕교육을 시행하지 않았고 인성교육을 실시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국가경제를 담당하는 지도자들은 과거 성공방식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당시 사람들은 착한 마음을 챙기지 않았어도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훨씬 이전부터 오랫동안 마음 챙기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마음 가꾸는 일에 주력해 왔다. 싸우다가 화가 나면네가 인간이냐하며 꾸짖는다. 말썽을 부리는 지인에게제발 인간 좀 돼라고 달래기도 한다. 서양인에게 이런 말을 하면 큰일 난다. 그들은 바로 거울을 꺼내 얼굴을 보고는내가 원숭이로 보이느냐고 항변한다. 모욕감을 견디지 못해 총을 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이런 말들은 얼굴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얼굴이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사람이 짐승으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만들었다. 동굴에 들어가 마늘과 쑥을 먹으며 햇빛을 보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회복해 사람다운 사람이 돼서 나왔다. 곰에게 쑥과 마늘을 먹인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짐승처럼 돼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곰은 끈질기게 노력해 사람의 마음을 회복했다.

 

 

삼국시대와 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불교를 통해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조선시대 때는 유학을 통해 사람 되는 노력을 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흔들렸지만 민간인들은 마을마다 서당을 만들어 부지런히 마음을 챙겼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언제나 민간인들이 나서서 목숨을 바쳤다. 마음 가꾸기를 잘하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몸은 늙어 죽지만 착한 마음은 변치 않기 때문에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 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이 이방원에게 회유를 당했을 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고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라고 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 치하에서 광복을 맞은 뒤에도 우리에게는 과거에 가꾼 착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마음이 바탕이 돼서 새마을운동이 성공했고 한강의 기적도 이뤄냈다. 그러나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뒤에 우리의 착한 마음은 급격히 사라져 갔다. 과거 착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던 자리에 욕심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의 인성은 심각하게 파괴됐다. 이를 염려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에도 대형 사고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군 병영 안에서는 총기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연일 발생하고 학교 폭력은 고질적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발전된 경제의 힘으로 견뎌왔다. 이제는 믿었던 경제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각계각층 지도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히 걱정된다. 많은 사람들이 인성교육의 내용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이란 착한 마음을 회복하도록 유도하는 교육을 말한다. 착한 마음은 모두가 다같이 가지고 있는 한마음이다. 한마음은 하나마음이고 하나님마음이며 천심(天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구 근대정신의 영향으로 하늘을 부정하며 한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 우리의 착한 마음이 급격히 사라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착한 마음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로 연결되는 마음이므로 착한 마음을 부정하면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끈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각각 독립된 개체가 되고 남남이 된다. 사람들이 남남이 돼서 경쟁하는 삶을 살게 되면 경쟁심만 남는다.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욕심이고 남보다 많이 차지하려는 것이 욕심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을 욕심으로 보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오히려 욕심을 채우는 과정이 삶의 내용이 된다.

 

 

정치적 방법 대신 좋은 방안이 하나 있다.

기업이 나서는 것이다. 기업이 나서서

자기 회사 사람들에게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제 수기치인(修己治人)이 아니라

수기경영(修己經營)이다.

 

 

욕심을 노골적으로 채우려고 하면 남과 다투게 되고 그 때문에 나도 다친다. 욕심을 채우되 남과 다투지 않고 채워야 한다. 남과 다투지 않고 채우는 방법은 규칙과 법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욕심은 채울수록 커지기 때문에 규칙과 법을 지키는 노력은 커지는 욕심을 감당할 수 없다. 오늘날 사고가 빈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오늘날 실시하는 인성교육의 대부분은 예와 규칙을 지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의 인성교육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첫째, 예절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내게 돌아올 피해 때문이므로 피해를 보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는 지키지 않는다. 둘째, 법과 규칙을 지킬 때의 피해가 지키지 않을 때의 피해보다 클 때는 지키지 않는다. 셋째, 법과 규칙을 지키는 스트레스가 한계에 도달하면 폭발해버리기 때문에 결국 지키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법과 규칙을 지키며 욕심을 키워가는 삶이 불행한 삶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원래 착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 욕심은 없다. 없던 욕심이 어느 순간 들어와 착한 마음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뱁새 둥지에 들어와 뱁새 새끼를 다 밀어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뻐꾸기 새끼와 같은 것이다. 뻐꾸기 새끼는 뱁새에게 원수이므로 뱁새는 뻐꾸기 새끼를 아무리 잘 길러도 불행하다. 뱁새가 그것을 모르고 있듯 사람도 욕심을 채우며 사는 것이 불행한 삶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것을 깨닫고 욕심을 없애는 노력을 하는 것이 수양이다. 참다운 인성교육은 사람으로 하여금 수양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수양을 통해 욕심을 없애고 본래의 착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은 뱁새가 뻐꾸기 새끼를 몰아내고 자기 새끼를 찾아 기르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를 얻는 것이고 참된 행복을 얻는 것이다.

 

 

 

 

수양을 통해 진리에 이르고 행복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어렵기 때문에 쉽게 얻도록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사기꾼들이 많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양을 통해 진리를 얻고 행복해진 사람은 남에게 진리를 얻도록 가르친다. 그것이 인성교육이다. 인성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는 우선 진리를 얻은 사람이어야 한다. 남을 가르치는 방법은 정치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옛 사람은 이를 치인(治人)이라고 했다. 정치의 본질은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의 길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 상황은 매우 어렵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은 선거다. 우리는 선거가 가장 좋은 정치제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세뇌됐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선거제도에는 문제가 많다. 세종대왕이 살아계시더라도 대통령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출마하더라도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지 않을 것이므로 당선되지 못할 것이다. 당선되더라도 5년 안에 한글 같은 좋은 글자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시행할 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만약 시행한다고 해도 효과를 보기 전에 5년이 지나고 말 것이다. 오늘날 정치제도에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진리로 인도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많다.

 

 

정치적 방법 대신 좋은 방안이 하나 있다. 기업이 나서는 것이다. 기업이 나서서 자기 회사 사람들에게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제 수기치인(修己治人)이 아니라 수기경영(修己經營)이다.

 

 

기업주는 일생 동안 경영을 할 수 있다. 기업 연수원을 하늘마음을 찾아서 나왔던 동굴로 만들면 된다. 경쟁하기에 바빠 인성교육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과일나무의 뿌리가 망가지면 아무리 열심히 과일 농사를 짓더라도 과일을 제대로 생산할 수 없다. 뿌리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뿌리 가꾸기부터 해야 한다. 뿌리 가꾸기를 하면 효과가 더디게 나타나기 때문에 당장은 과일 농사에 손해가 될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성공한다. 뿌리를 잘 가꿔놓으면 뿌리 가꾸기를 하지 않은 다른 과수원이 망해갈 때 더 번창할 수 있다.

 

 

사원들이 착한 마음을 회복하면 한마음으로 일치단결해서 산업 현장에 매진할 수 있다. 오늘날 창의력은 매우 중요하다. 창의력 넘치는 사원 한 사람이 십만 명 또는 백만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시대다. 기업마다 창의력이 뛰어난 인재를 구하기 위해 열심이다. 창의력이란 참신한 아이디어로 독창적인 상품을 개발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능력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창의력이란 한마음에서 나오는 능력이다. 한마음은 하늘마음이다. 기독교인들은 기도할 때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늘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과 같다. 부모의 마음은 오직 자녀 먹여살리는 것에 집중한다. 밥 먹을 때가 되면 부모는 자녀에게밥 먹어라라고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으면쉬었다 하라고 한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밤이 늦으면자라고 한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살라. 따라서 부모에게 가장 불효하는 것은 죽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자살은 가장 나쁜 불효다. 우리 전통에 자살한 사람에게 장례를 치러주는 법은 없었다.

 

 

하늘의 마음도 부모의 마음과 같다. 하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살라고 명령한다. 하늘의 명령은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밥을 먹을 때가 되면 배고픔을 느낀다. 그 느낌이 바로밥 먹어라는 하늘의 명령이다. 피곤함을 느끼는 것은쉬어라는 하늘의 명령이고, 자고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은자라는 하늘의 명령이다. 그러나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은담배 한 대 피우라는 하늘의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중독에서 오는 착각이다. 중독에서 오는 느낌을 하늘의 명령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건물이 무너질 때는 하늘이 그 건물에 있는 생명들에게 나가라고 명령하므로 생명들이 나가고 싶은 느낌이 든다. 쥐도 나가고 고양이도 나간다. 그런데 사람이 나가지 않고 있다가 다치기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이 고스톱을 치고 있을 때는 밥 먹을 때가 돼도 배고픈 줄을 모른다. 하늘이밥 먹어라라고 명령을 해도 돈을 따고 싶은 욕심이 그것을 막는다. 배에 짐을 너무 많이 실으면 하늘이그만 실어라라고 명령하지만 돈 벌 욕심이 커지면 그 명령이 들리지 않는다. 무너지는 집에서 나가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독특한 상품을 개발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하늘은 그에게 그런 상품을 개발하도록 느낌을 준다. 그 느낌은 어느 순간 갑자기아하, 이렇게 만들면 되겠다하는 식으로 온다. 그것이 창의력이다. 사람들에게 그런 창의력이 없는 것은 욕심이 하늘의 명령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욕심은 때에 따라 달라진다. 다른 사람과 다툴 때 제일 많이 부풀어 오르다가 혼자 있을 때 줄어든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주로 혼자 있을 때 떠오른다. 목욕탕이나 화장실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멍하게 있을 때나 잠자리에서 잠들기 전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소에 인성교육을 통해 욕심을 없애고 착한 마음을 회복하면 하면 창의력은 언제나 왕성하다. 우리나라에서 온 국민의 창의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가 세종대왕 때다. 세종대왕은 국민의 인성교육을 위해 <삼강행실도> 등을 만들어 보급했다. 온 국민이 인성교육에 참여했고 사서와 삼경을 열심히 읽었다. 그 결과 당시 사람들에게는 욕심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의 창의력이 왕성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한글이 창제됐고 뛰어난 예술이 만들어졌다. 인쇄술은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고 각종 과학기술이 속속 개발됐다. 농사짓는 법, 누에치는 법 등도 매우 발달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였다. 사형제도가 있기는 해도 범죄자가 없어 집행되는 일이 없었다. 그야말로 지상천국이었다.

 

 

공자는 말했다. “사람에게 먼 헤아림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걱정거리가 계속 다가온다4 . 사람이 멀리 헤아려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모든 근심거리가 일시에 사라지지만 가까운 걱정거리를 해결하는 데 급급하면 자질구레한 걱정거리가 계속 다가온다. 공자의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꼭 들어맞는다.

 

 

오늘날 기업들에는 걱정거리가 많다. 경쟁회사들에 지지 않으려고 전력투구한다. 그럴수록 멀리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물론 당장의 걱정거리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의 걱정거리에만 매달리다가 근본적인 문제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고 만다. 한편으로는 급한 불을 끄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근본대책을 세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을미년 새해를 맞았다. 을미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120년 전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에게 시해되는 수치스러운 사건이 일어난 해다. 과거의 수치스러운 일도 잊으면 안 되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다시는 수치스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민 모두 지혜로운 목표를 세워야겠다.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 kdyi0208@naver.com

필자는 일본 쓰쿠바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만 국립정치대와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서 수학했다. 20여 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07년 사서삼경을 최초로 완역하는 등 유학(儒學)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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