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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아키타현의 교육 개혁

꼴찌를 1등으로 바꾼 아키타의 기적사소한 생활습관 변화가 출발점

이진석 | 164호 (2014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혁신

일본의 교육 개혁은 수년째 국정과제로 제시되고 있지만 계속 표류하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을 중시한다는 취지로 2002년 도입된 일본의유토리 교육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런 가운데 전국 학력고사에서 8년째 1위를 차지한아키타(秋田)식 학습법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단계적 체질 개선과 개인보다 집단의 성과를 중시하는 방침, 구성원 간 분업을 통한 체계화된 실행은만년 꼴찌에 머무르던 아키타 학생들을 우등생으로 바꿔놓았다. 아키타 교육의 성공은 기업에도 시사점을 준다. 먼저단계적 설득의 중요성이다. 기업이든, 직원이든 하루아침에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사소한 습관의 개선부터 시작해야 장기적으로 진짜 변화가 이뤄지고 성과가 나온다. 둘째, 장기 투자와 이해관계자 협력의 중요성이다. 교육이나 인력 개발에 대한 투자 성과는 곧바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된 모든 이들의 공감대 형성과 참여 유도를 위해 노력했다. 

 

공교육 위기 일본, 아키타에서 해답 찾는다

“학교가 위험하다.”

 

지난 920일 발간된 일본 경제 주간지 <동양경제(東洋経済)> 8월 발표된 전국 학력 테스트에서 드러난 일본 47개 도도부현(일본의 지역자치단체 구분 단위) 간 격차를 들어일본 공교육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유토리 교육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일본 정부가 수년에 걸쳐 교육개혁을 주요 정책으로 내걸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교원들의 업무 과중과 학생들의 학습 의욕 저하만 계속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유토리 교육의 실패참조.) 특집호는 경제지가 교육 문제를 대대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2013 1, 아베 총리 직속으로 열린 교육재생실행회의는아베듀케이션(Abeducation, 아베 총리와 교육의 조어)’의 서막이었다. “21세기 일본에 적합한 교육 체계를 구축하고 교육을 재생하기 위해 내각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교육 개혁을 추진한다”(일본 수상관저)는 목표로 올해 7월까지 총 5차례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일본 고등교육의 세계화를 위한 방안들이 나오고 있다. 학생들의 영어능력 강화와 온라인 교육 확대, 대학 지배구조의 개혁을 통해 세계 100대 대학 순위에 현재 2(도쿄대와 교토대)인 일본 대학을 10개로 늘리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글로벌 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경제계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일본 교육계는글로벌 인재양성에 앞서 공립학교에서의 기초 교육 개혁이 더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마구잡이식 교육 개혁안에 떠밀린 현장의 일선 교사들은 격무와 스트레스로 교실을 떠나고 비상근 교원들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점차 불거지는 일본 공교육의 위기는 학교와 가정의 연결고리를 중시하는 아키타식 교육법이 다시 한번 세간의 조명을 받는 계기가 됐다.

 

만년 꼴찌 산골마을 학생들의 기적

“교육으로 아키타(秋田)현을 살리자.”

 

일본 혼슈 북서부 끝자락의 아키타현은 농업에 의존하고 있어 소득지수가 낮고 인구 수는 105만여 명에 불과하다. 일제고사가 사라지기 전인 1955년에는 전국 학력 순위에서 최하위 수준인 40위권에 맴돌았다.

 

아키타현은 1990년대 중반부터 교육을 통한 지역 살리기에 나섰다. 경제력도, 학력도 없는 아키타현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 아키타현 교육 관계자들은 현민들을 찾아다니며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알렸다. 이들을 설득해 1997년부터 현 전체 예산의 6분의 1을 투입해소규모 학습 추진사업을 시작했다. 기존 학교에서의 교육 현황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개발했다. 학교별 시간표와 교사의 배치 계획까지 세심히 조정했다.

 

결과는 10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2007년 부활한 전국 학력 테스트에서 아키타현은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수학과 국어 기초지식능력을 평가한 결과다. 처음엔 일시적인 현상이나 우연으로 치부됐다. 해가 바뀌어도우연은 계속됐다. 2014 8월 발표된 올해 전국 학력 테스트 발표 결과에서도 아키타현은 1위였다. 학력 테스트가 중지된 2011년을 제외하고 7년 연속 선두다. 아키타 학습법을 벤치마킹한 오키나와()현도만년 꼴찌를 벗어나 전국 학력 테스트 순위가 크게 올랐다.

 

더 이상 의심은 없었다. ‘아키타식 학습법은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일본의 주요 교육기관은 일제히 아키타현이 일으킨 기적에 눈을 돌리고 있다. 아키타식 학습법은 일본 공교육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들의 학습법을 배우기 위해 전국의 교사와 교육 행정가들이 앞 다퉈 아키타현을 찾고 있다.

 

견학에 나선 이들이 아키타의 학교에서 본 것은 파격적인 실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올바른 가정교육과 학습태도를 심어 주는 체질 개선, 지방자치단체와 현민들의 협력과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야 말로 아키타현이 일으킨 기적의 밑바탕이었다. 시골 마을의 학생들은경제력이 학력을 좌우한다는 선입견을 깬 최초의 성공사례가 됐다.

 

 

아키타식 PDCA 사이클

아키타현 교육 개혁의 초기 목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의 기초 학력 강화였다. 영재 육성이나 조기 영어교육에 집중하던 일본 교육계의 동향과는 매우 달랐다. 학습의 기본인 국어와 산수(수학) 실력 향상에 집중하는 한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학교에서 배운 진도는 집에서 복습하게 하는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갖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아키타현의 개혁은 검증되지 않은 파격적인 실험보다 어떻게 하면 기본을 지킬 수 있는가를 중시했다. 장기적인 체질 개선을 통해 느리지만 확실한 효과를 노린 것이다. 무턱대고 기본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세심한 현장 조사를 거쳐 개발한 가정용 학습노트, 팀 티칭, 단계적 진도수업 등을 매뉴얼화해 학교에 보급했다. 또 수시로 학력 평가를 실시해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 수립에 나서고 있다. 아키타현 교육청은 이러한 과정을 계획(PLAN)-실천(DO)-확인(CHECK)-조치(ACTION)로 이어지는아키타식 PDCA 사이클이라고 자평한다.

 

일본 유토리 교육의 실패

‘원주율은 3.14’라는 게 상식이다. 정확히는 3.14159265358979…로 계속되는 무리수의 근사치다. 일본 초등학교에서는 상식을 깼다. 원주율을 3이라고 가르치기로 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002년 도입한 유토리(ゆとり·여유) 교육은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한 혁신이었다.

초·중학교 학습 분량은 30%, 수업시간은 10%를 줄였다.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 공식은 대충 넘어가도 된다. 소수점 아래 .14를 굳이 외우지 않아도 되는원주율 3’은 유토리 교육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다.

결과는 일본 학생들의 심각한 학력 저하로 나타났다. 200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결과 일본 고등학교 1학년의 수학능력은 세계 10위였다. 2003(6)보다 4계단이 떨어졌다. 2000년에는 1위였다. 1987∼2001년 사이 태어난유토리 세대에게는 도전정신이 부족하고 무슨 일이든 적당히 생각한다는 사회적 낙인이 찍혔다.

2008년 문부과학성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대학생들의 기초학력 저하로 일본 내 전체 대학의 33%(234)가 중·고 교과내용의 보습강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10년 전인 1998년 조사에 비해 4배 늘어난 수치다. 많은 대학생들은 한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수학 공식을 외우지 못했다.

‘유토리 세대 1990년생 나가타 다카히로(永田敬博, 일본 와세다대 TESOL 석사과정) 씨는 자신의 중고교 시절이혼돈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학교에선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들을 그저 내버려 두기만 했다면서이래도 괜찮은 걸까 싶을 만큼 무질서 상태가 계속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고3 입시생 시절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공교육을 믿지 못한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사설 학원으로 내몰았다. 상대적으로 정부 교육방침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립학교의 인기도 치솟았다. 가정 간 소득수준에 따른 교육 양극화 현상까지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2008년 학습지도 요령 개정안을 내놨다. 실패를 시인한 셈이었다. ‘게임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모토하에 양산된이해찬 세대도 유토리 세대와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다.

유토리 교육은다수결의 오류로 판명났다. 교과서 내용을 달달 외우는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가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는 취지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했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파격적인 혁신에 앞서 체질 개선이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실패였다. 

‘장기적인 체질 개선을 화두로 삼은 아키타 학습법의 교육 철학은 아키타현 교육위원회가 제정한아키타 어린이들의 배움 10계명에 잘 드러나 있다. ( 1) 내용은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아침식사 하기’ ‘가족들과 학교에서의 화제 나누기’ ‘규칙은 꼭 지키기등이다. 10계명은 아키타현에서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의 생활과 학습 습관을 조사한 결과다. 각 조사대상 가정에자녀의 좋은 점을 알려달라고 물어 얻은 답변을 토대로 삼았다.

 

열등생에게한 달 내로 수학 성적을 반 1등으로 끌어올릴 것을 요구한다면 금세 포기하고 말겠지만 아키타현의 10계명처럼 간단하고 전통적인 생활 규범을 지키라고 설득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이는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는 요구로 순응을 이끌어내고 이후 조금씩 단계를 높여가는미끼 기법과도 같다.

 

아키타현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변화는 이처럼 점진적이지만확실하게이뤄졌다.

 

개인보다 집단성, 그리고낙제생 없는 교실

일본에서는 학급 내 학력 격차가 점차 심해지며 학업에 낙오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다음은 문부과학성의 정례 의견 청취에서 나온 지적이다.

 

“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크게 줄었지만 고등학교의 정원은 그리 줄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고교 수험의 문턱이 낮아졌지만 진학 후 학생 간 학력이나 학습 의욕에는 큰 차이가 드러난다. 결국 수업에 따라 가지 못하는 낙제생이 나온다. 일단 탈락한 뒤에는 진로 선택의 여지가 좁아지고 사회인으로 자립하기도 어려워진다.” (아키타현 교육위원회 다나카 나오미(田中直美) 교육위원)

 

아키타식 학습법의 또 다른 특징인낙제생 없는 교실은 이 방식이 개인적 성과가 아닌 조직 전체의 성과 관리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력 신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지속적인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교실 안팎에서 이뤄진다.

 

아키타현의 한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벌어지는 산수 수업을 엿보자.

 

200엔으로 사탕과 초콜릿을 하나씩 사려고 합니다. 사탕은 55, 초콜릿은 72엔입니다. 잔돈은 얼마가 남을까요?” 교사는 문제를 칠판에 적은 뒤 곧바로 학생들에게 답을 묻는 대신 문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게 한다. 한 아이가 ‘200에 동그라미를 그리자 다른 아이가다른 부분도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까지가문제.

 

다음은목적이다. 이 문제의 목적은 세 자릿수 뺄셈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각자 문제를 풀게 한다. 문제를 푼 학생들은 자신이 낸 답을 발표한다. 여기까지가혼자 배우기’. 다음은 각자의 답을 비교해 보는함께 배우기. 마지막으로 교사가 학생들의 풀이 과정을 평가하고 답을 설명하는정리를 시작한다. 문제-목적-혼자 배우기-함께 배우기-정리로 이어지는 5단계다.

 

산수 문제 하나를 푸는 데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학급 전원이 정답의 도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교사가 당일 방과 후 보충교육을 한다. 일반 교사에게는 업무 부담이 클 수 있지만 아키타에서는 한 반에 학생 20명 남짓의 소규모 학급을 운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수업 내용에 따라서는 2명 이상의 교사가 교실에 들어가는팀 티칭도 한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나오지 않도록 한다는 게 아키타 학습법의 목표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매뉴얼화돼 아키타현 내 모든 초등학교에 도입됐다.

 

교사,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

일본 공교육이 안고 있는 큰 문제 중 하나는 교사들의 과도한 업무량이다. OECD 2013년 실시한 국제 교원 교육 환경 조사(TALIS)에 따르면 일본 교사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53.9시간. 전체 평균(38.3시간)은 물론 한국(37시간), 스웨덴(42.4시간)과 비교해도 훨씬 길다. 교사에게 자녀 교육의 모든 것을 맡기고 상식 이상의 요구를 하는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괴물 학부모)’의 등장과 정부의 교육개혁 방침에 따른 교사들의 업무 증가가 이유로 지목됐다.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아키타현의 교육 개혁은 내부적 환경변화에서부터 시작됐다. 가장 먼저 도입된 소규모 학습 추진사업은 교사들이 담당하는 학생 수를 줄여 학생 개개인의 학급 적응을 돕게 하는 데 초점을 뒀다. 초등학교 1·2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반에 학생 20명 정도만을 두는 소규모 학급을 시행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학습 습관을 확립하는 시기, 중학교 1학년은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이유에서다. 한정된 인적 자원의 투입 우선순위를 저학년 학생으로 삼은 것이다.

 

현황 파악에도 힘썼다. 2002년부터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학습상황 조사를 시작했다. 소규모 학습의 성과와 과제를 분석하기 위한 목적이다. 일본의 전국학력테스트에서는 국어와 수학만을 평가하지만 아키타현에서는 사회, 과학, 영어를 포함한다. 2005년에는 산수(수학) 학력 향상 추진사업을 실시했다. 공부를 싫어하는 계기가 되는 수학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아키타현 교육청은 이를 위해 수학능력 향상을 위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교과서 단원평가 문제를 제공했다. 온라인상에서 학생 개개인의 수학 능력을 평가하고, 이 결과에 맞춰 교사들이 개별지도의 필요성을 가늠한다. 이 밖에도 교과지도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교사를 선발해 한국의 장학사 격인 교육전문감으로 임명하고 복수의 학교 교육을 담당케 하는교육전문감제를 도입했다. 이는 교사들 스스로가 역량을 키워나가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또 대학 교원의 전문성을 활용하는대학 초빙수업을 도입해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줬다.

 

아키타 학습법의 강점 중 하나는 학교와 가정의 ‘23이다. 아키타 학생들은 대부분 학원에 다니지 않는 대신 가정학습을 빼먹지 않는다. ‘가정용 학습노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학생의 교육 진척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특정 내용을 정해주는 숙제가 아닌, 학생 스스로가 공부할 내용을 결정해 하루에 1∼2페이지씩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과제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고민해 공부하는 게 원칙이다. 국어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은 작문을 하고, 수학 성적이 나쁜 학생은 문제풀이 공식을 노트에 정리한다. 교사가 목표를 할당하는 것이 아닌, 학생이 직접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더 몰입하게 된다.

 

교사들은 매일 아침 학생들이 제출한 학습노트에 격려의 코멘트를 달아준다. 잘 작성된 노트는 사본을 교실 알림판에 붙여 놓는 식으로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격려와 평가가 동시에 이뤄지는 효과가 생긴다.

 

교사들은 매일 아침 학생들이 제출한 학습노트에 격려의 코멘트를 달아준다. 잘 작성된 노트는 사본을 교실 알림판에 붙여 놓는 식으로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격려와 평가가 동시에 이뤄지는 효과가 생긴다. 덕분에 아키타현 학생들이 집에서 복습하는 비율은 전국 평균(51.4%)을 크게 웃도는 89%에 달한다. 학습시간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 해결하려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장점이 있다. 아키타현의 학력 상승이 주목을 받자 일본 출판업계에서는 앞 다퉈아키타 학습노트 공부법서적을 내놓기도 했다.

 

스도 유키노리(須藤幸紀) 아키타현 교육청 참사는농업 종사자와 대가족이 많은 아키타현은 가정생활이 안정된 편이라면서느긋하게 노력할 수 있는 환경에서 학습 습관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네기시 히토시(根岸均) 아키타현 교육청장은평범한 것을 착실히 실천하다 보니 어느새 달리기의 선두에 섰다고 했다.

 

아키타 학습법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학생들에게 태어난 지역에 대한 연대감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아키타현 내 모든 학교는고향 교육을 실시한다. 현의 역사 교육과 견학 체험을 통해 향토에 대한 애착심을 키운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고향 아키타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목적 의식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지역 주민이 학교 수업과는 별도로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등하교 지도 및 교외 순찰에 참가하는헬로 스쿨운동을 펼친다. 연간 28만 명의 현민이 참가한다. 전체 현민 수가 105만여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의 가정이 이 활동에 참여하는 셈이다.

 

아키타 교육의 미래

올해 개정한 아키타현의 학교 교육지침서는 지금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육 개선에 집중해온 데서 한발 나아가글로벌 사회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 육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 현 내 대학과 연계를 통해 영어 전문교원이 배치된 초등학교 비율을 현재의 40%에서 두 배 늘린 80%로 높이기로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의 인턴십 참여 비율도 53%에서 60%로 늘리기로 했다. 현 내 모든 학교의 공통 실천과제로는 직업 교육을 내걸었다. 사회적으로 자립해 다양한 과제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세계 수준에서 활약하는 인재 육성이 목표다.

 

아키타현의 향후 과제는 낮은 대학 진학률과 교원의 고령화 현상을 개선하는 것이다. 중학교 졸업자의 고등학교 진학률은 99%로 전국 평균(98.4%)보다 조금 높지만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은 44.4%로 전국 평균(53.8%) 9.4%포인트 밑돌고 있다. 초등학교 교원의 평균 연령은 48.6세로 20, 30대 젊은 교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아키타현 교육청 측은·중학교의 학력을 크게 높인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라면서이를 계기로 삼아 학생들이 배움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성공요인 및 시사점

1) 단계적 설득이론의 적절한 적용

: 습관의 개선이 성과를 바꾼다.

아키타현의 기적은단계적 설득이론을 적절하게 적용한 것이 주효했다. 조직 커뮤니케이션에서 구성원을 설득하거나 새 정책을 수립하는 상황에 유효하게 작용하는단계적 설득 이론의 전제 조건은 수용 대상의 태도 변화다. 아키타 학습법은 앞서 제시한배움 10계명같은 학생들의 간단한 생활태도 개선에서부터 시작됐다. ‘학력 끌어올리기라는 목표를 학생들이 수용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기적의 아키타 공부법(2009)>의 저자인 아베 노보루(阿部昇) 아키타대 교육문화학부 교수는 아키타식 학습법의 성공 요인은 학생들이 언뜻 보기엔 사소하고 평범한 생활습관을 바꾼 데 있다고 분석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른 뒤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된 것이 학력 신장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아베 교수는학교와 가정에서의 학습보다 가족들이 함께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고, 인사와 예절을 가르치는 것이 공부 습관을 기르는 데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아키타현에서 학생들이 가족과 식사하는 비율은 아침 식사 67%, 저녁 식사 91%이고 중학생은 각각 53%, 85%로 전국 평균에 비해 비율이 높았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다. 하버드대 캐서린 스노 교수 연구팀이 3세 자녀를 둔 83개 가정을 대상으로 2년간 아이들의 언어습득 능력을 연구한 결과 아이들이 배운 단어 수는 2000여 개였다. 이 중 독서로 배운 단어는 140여 개, 가족과 식사 중 배운 단어는 1000개가 넘었다. 어릴 적부터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한 아이들은 어른들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매튜 효과(Matthew effect, 하나의 기회가 반복되며 더 큰 결과로 이어지는 효과)를 얻는다고 스노 교수는 주장했다.

 

이는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기업 문화 개선과 혁신에 시동을 걸 때, 많은 기업에서는거창한 목표를 내세우고 사람들이 일제히 마음가짐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큰 행사를 기획하고 다함께 구호를 외치면서거듭나자’ ‘혁신하자고 하는 것은 사실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 기업을 바꾸는 건 사람이고 사람을 바꾸는 건 습관이다. 이런 측면에서 아키타현이 적용한사소한 생활습관 바꾸기는 변화와 혁신을 꿈꾸는 기업들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2) 장기투자의 힘: 길게 보고 함께 움직였다.

아키타현의 교육 개혁이 성공한 또 다른 주요 요인은 과감하면서도 장기적인 투자 결정이었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기업의 연구개발(RD)이나 인적 투자와 비슷해서 곧바로 눈에 띄는 실적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아키타현은 1997년부터 교육 관련 예산을 파격적으로 늘렸지만 표면상 결실이 드러난 것은 10년 후인 2007년의 전국 학력 테스트 결과였다. 장기간에 걸친 예산 투자를 집행하기 위해 아키타현은 구성원인 현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데 힘썼다. 현의 문제점이었던 농업 중심의 저소득 구조를 개선하고 지역의 공동화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교육을 지목한 것이다. 예산은 교원 채용을 위한 인건비에 약 80%를 배정해 교육 개혁안의 핵심인 소규모 학급 꾸리기에 집중했다. 교육 개혁에 필요한 것은 인프라가 아닌 사람에 대한 투자라는 판단에서다.

 

교육에 대한 아키타현의 파격적인 투자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키타현이 최근 공개한 예산 지출안을 보면 2014년도 총예산 6011억 엔 중 18.3% 1119억 엔을 교육위원회 관할로 책정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0.6%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길게 보고 장기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학부모이자 납세자인 지역사회 주민들의 동의와 협력이 절실했다. 아키타현은 교육개혁안을 실행하면서안정적인 학력이 현의 재산임을 강조하면서 현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소규모 학급을 구성하면서도 교사에게 교육의 모든 것을 위임하지는 않았다. 학부모들의 건의사항을 적극 반영하는 쌍방향 교육 개혁을 원칙으로 삼았다. “국어를 제대로 배웠으면 좋겠다는 요청에 아키타현 내 모든 초등학교에서는 아침 독서를 시작했다. 국어 수업에서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대신 학생들 간의 토론을 통해 개개인의 생각을 발표하는 기회를 의식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또 앞서 설명했듯 가정용 학습노트라는 매개체를 통해 가정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었고 학생 교육에 현민들의 참여를 유도해 학부모들과 유대감을 키웠다. 대학 교직원 등 외부 강사를 초빙하거나 지역에 대한 애향심을 키울 수 있는 견학 활동을 교육의 일부로 삼아 공동체 의식을 조성했다. 학생들의 학력 향상을 통한 지역 발전이라는 동기 부여를 통해 커뮤니티 전체가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기업에서도 인력 개발과 교육 비용은 장기성과를 위한 비용임을 인식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치열한 시장경쟁 속에서 느긋하게 투자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교육과 관련된 모든 투자는 결국길게 봐야 한다는 점을 아키타현의 성공 사례가 일깨워준다. 또 인력 개발에 대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이뤄지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내부와 주변의 이해관계자들의 협력과 동의가 중요하다는 점 역시 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지점이다. 아키타현 교육청이 납세자이자 학부모인 지역주민들의 공감대를 얻고 장기투자에 대한 신뢰와 성과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를 요청한 것은 R&D나 인력 개발 투자 등 주주들과 직원들의 공감과 협력을 이끌어내야 할 장기투자를 앞둔 기업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진석 일본 와세다대 국제커뮤니케이션학 석사과정 genejslee@gmail.com

필자는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조선비즈,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로 일하다 2014년부터 일본 와세다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빙글(Vingle)에 일본의 교육, 산업,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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