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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거울

군주의 거울, 인문학을 낳은 제왕학

김상근 | 152호 (2014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인문학은 대학의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대학 밖의 학문이다. 중세 유럽 말기의 신흥 상공인 계급이 자녀들에게인간에 대한 학문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인문학자들을 집에 거주시키면서 만들어 낸 학문이다. 현실 문제에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사변적 논쟁으로만 일삼던 중세 대학 교육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 열풍이 부는 것은 한국 대학이 현실 문제에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군주의 거울 9세기 경부터 신흥 제후와 봉건 귀족 등 유럽의 지도자를 위한 인문학의 중요한 장르로 각광을 받았다. 유럽의 각 나라에서는 새로운 군주가 탄생할 때마다 적절한군주의 거울이 해당 국가의 지식인, 사제에 의해 집필됐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시작으로 현 시대에 필요한군주의 거울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고전에는 현대 지성인들이 되새겨야 할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메디치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과 마키아벨리 연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군주의 거울을 연재합니다. 인문학 고전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깊은 통찰력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왜 인문학이 이렇게 난리일까요?

DBR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메디치가문의 역사와 리더십에 대한 장기 연재(2010), 마키아벨리를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고 분석했던 장기 연재(2012)에 이어 다시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그동안 보내주셨던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리면서 이번에는군주의 거울이란 장기 연재로 인사드립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저는 집필 문체를 대화체로 쓰겠다고 결정했습니다. DBR에는 경영의 통찰을 담고 있는 논리적이고딱딱한글이 많기 때문에 제 연재에서는 조금 쉬어가시라는 의미에서부드러운구어체로 집필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은 원래 운문(韻文)이나 대화체의 글로 집필됐습니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였던 호메로스의일리아스오뒷세이아는 운문체의 서사시(敍事詩)였고 그리스 철학의 진수를 담고 있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나 <국가>는 모두 대화체의 글로 구성돼 있지요. 그래서 저도 이번에 시작하는 DBR의 인문학 연재에 읽기 편한 대화체의 글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집필 문체를 선택하게 된 또 다른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제가 드디어 연세대에서 정교수(Full Professor)가 됐습니다! (보통 이럴 때는 박수를 치셔야 합니다!) 정교수가 됐다는 것은, 이제야 제 목소리를 독자적으로 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됐다는 뜻입니다. 조교수, 부교수일 때는 제 주장을 펼치더라도 반드시 다른 학자들의 논문이나 학설을 참고하는 것이 학문하는 사람의 자세이고 예의입니다. ‘정교수가 됐다는 것은 테뉴어(Tenure)를 받았다는 것인데 아시다시피 테뉴어는 원래종신 교수직을 의미합니다. 죽을 때까지 독자적인 방식으로 연구를 수행할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물론 한국 학계에서는 통상적으로 테뉴어를 받은 교수도 65세에 은퇴하기 때문에 종신 교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죽을 때까지 독자적인 방식으로 자기 학문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뜻은 한국에서도 유효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DBR 독자 여러분에게독자적인 방식으로 인문학 얘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약속드리겠습니다. 어려운 용어, 딱딱한 문체,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인 개념은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읽기 편한 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주의 거울이란 연재 제목부터 어렵다고요?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쉽게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군주의 거울에 대한 용어 설명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왜 인문학이 요즘 이렇게 난리인지, 왜 경영자들이 인문학 공부에 열광하시는지, 경영학 저널인 DBR에 왜 인문학자인 제 글이 연재돼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중세 말기의 명문 대학이었던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의 본관 벽에 전시돼 있는 가문의 문장들. 이 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킨 귀족 가문들의 문장이 볼로냐대학 본관 복도에 전시돼 있다.

 

요즘 각 기업에서 인문학 강연이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말 인문학이 대세입니다. 저도 여러 대학의 최고 고위자 과정이나 기업의 인문학 강연에 초청을 받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인문학 강연을 기획하시는 교육 담당자들의 얘길 들어보면 다들 인문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또 인문학 강연회를 자주 개최합니다. 그러나 막상 강연 자체는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초청 강사들의 인문학 강연이 현실과 동 떨어진 주제를 다루는 것 같고 지루하다는 것이지요. ‘내가 왜 이런 강의를 들어야만 하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문학을재미있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강사를 찾는다고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다들 인문학, 인문학 하는데 왜 정작 인문학은 재미가 없는 것일까요? 사실 이런 현상은 대학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인문학은 거의 고사(枯死) 상태입니다. 학생들은 학부 과정에서 의무적으로 일정 숫자 이상의 인문학 수업을 수강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문학 수업은 수강자가 없어서 폐강되기 일쑤고 강의가 개설된다 하더라도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졸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왜곡된 현상이 계속 나타나는 것일까요? 왜 경영자들은 인문학을 배우겠다고 열심인데 정작 인문학은 재미가 없고, 또 대학에서는 계속해서인문학의 위기가 신음처럼 들려오는 것일까요?

 

이것은 인문학에 대한 오해 때문에 빗어진 현상입니다. 인문학의 기원과 목적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불편한 생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지금까지 확인한 바에 의하면인문학(Studia humanitatis)’이란 단어가 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401년부터의 일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역사, 철학, 문학 등의 인문학 분야가 발달돼 있었고 로마 공화정 말기의 사상가였던 키케로(기원전 106∼43) 같은 사람도 이와 비슷한 개념인 휴머니타스(Humanitas·인간됨)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인문학, 즉 스투디아 휴머니타티스(인간에 대한 학문) 1401년 레오나르도 브루니(1370∼1444)의 글에서 처음 사용됐지요.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는데 니콜로 데 니콜리(Niccolò de’ Niccoli, 1364∼1437)라는 다른 인문학자의 글을 인용하면서페르라르카가스투디아 휴머니타티스를 부활시켰다고 기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 설명이 복잡해졌지요? 인문학은 1401년부터 공식적으로 등장한 개념인데 페트라르카라는 인물이 처음 사용했다는 것으로 기억해 두시면 되겠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조금만 더 상세히 설명 드리지요. 당시 유럽에는 명문 대학이 존재했습니다. 한국에서는 ‘SKY’라는 명문 대학이 있지요? 중세 말기의 유럽에는 ‘PBS’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공영방송 Public Broadcasting System이 아니라 파리(Paris)대학, 볼로냐(Bologna)대학, 그리고 살레르노(Salerno)대학의 첫 글자입니다. 물론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이나 스페인의 살라망카대학 같은 명문 대학도 있었지만 PBS 대학들은 각각 신학, 법학, 의학에서 유럽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런 대학들의 교과 과정은 중세 스콜라 철학을 바탕으로 발전했습니다. 스콜라 철학이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지요. 아주 정교하고 복잡한 논리 체계를 수업시간에 사용했기 때문에 토론의 주제는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의 수업은 요즈음처럼 교수가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으로 전개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을스콜라 방식이라고 합니다. 먼저 교수가 그 분야의 권위자인 유명한 학자의 문장(명제)을 읽고 그것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을 간단히 설명해 줍니다. 보통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 나오는 문장(명제)을 읽어줄 때가 많았습니다. 이것이 교수가 하는 역할의 전부입니다. 나머지 수업 시간은 모두 학생들의 찬반토론으로 채워집니다. 학생을 양쪽 진영으로 나누고 한쪽은 찬성을, 다른 쪽은 반대 주장을 펼치게 하지요. 이때 정교한 논리를 사용해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해야 합니다. 중세 대학에서 활용되던 가장 기초적인 논리는삼단 논법이었지요? 사람은 죽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다. 고로 아리스토텔레스도 죽는다. 이런 논리를 근거로 학생들은 합리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합니다. 저도 연세대에서 강의하면서 학기마다 이런 스콜라식 토론 수업을 개설합니다. 이런 토론 수업에서는 사고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이지요. 논리적 사고의 훈련이 돼 있지 않은 학생들에게 참 어렵고 힘든 수업입니다.

 

그런데 중세 말기에 새로운 교육에 대한 수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동안 파리대학, 볼로냐대학, 살레르노대학에 자녀를 보냈던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의 전통 귀족이었습니다. 이른바 봉건제도의 정점에 서 있는 왕족이거나 전통 지주의 자녀들이 명문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중세 말기의 유럽에 새로운 사회 계급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신흥 상공인 계급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10세기부터 농업 생산 방식의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수레바퀴가 농기구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모작(二毛作)을 하는 방법이 개발됐습니다. 마침 콩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대해 경제 규모가 급격하게 성장했습니다. 먹을 것이 늘어나자 인구는 증가했고 도시화가 착착 진행됐습니다. 인구도 늘고 소비가 증대되면서 생산과 유통이 급격하게 발전했고 자연스럽게 상공인 계급이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피렌체의 메디치가문을 떠올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메디치가문은 원래 왕족이나 귀족 가문이 아니라 평범한 농사꾼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다가 14세기 말에 처음 등장했던 은행업과 모직산업으로 큰돈을 벌었지요. 그런데 이들 신흥 상공인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녀 교육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자고로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 부()를 자녀들에게 잘(혹은 많이) 물려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자들의 고민은 한결같습니다. 상속에 대한 고민이지요.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그것도 돈 꽤나 만져 본 부모들은, 지나친 부가 자녀들의 미래에 끼칠 해악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나친 부의 상속이 아이들을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만들거나 나태한 인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걱정하게 되지요. 결국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자녀를참된 인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중세 대학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파리대학에서 어떤 식으로 수업이 진행됐습니까? 파리대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교한 논리체계가 지배하던 곳이었습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나 지혜보다는 한 학기 내내신 존재 증명을 놓고 복잡한 토론을 펼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14∼15세기의 신흥 상공인 계급들은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지 않게 됩니다. 마침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백년전쟁(1337∼1453)’이 발발해서 대학에 가기 위해 유럽을 여행하는 것이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의 상공인 계급의 자녀들이 전쟁 중이던 프랑스에 유학 간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지요. 1348년부터 시작됐던 흑사병(Black Death)의 창궐도 인구의 이동을 방해하는 요소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페트라르카의인간에 대한 학문’, 즉 스투디아 휴머니타티스입니다. 인문학은 처음에 이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인문학은, 대학의 학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대학 밖의 학문이었습니다. 자녀들에게 정교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중세 대학의 교육을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자들을 직접 자기 집에 거주시키면서, 자녀들에게인간에 대한 학문을 가르쳐 주길 원했던 중세 유럽 말기의 신흥 상공인 계급이 만들어 낸 학문이었다는 것입니다.

 

, 그러니 지금 대학에서 인문학이 고사 상태라는 말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지요? 그리고 대학 밖, 그러니까 각종 CEO 조찬 모임이나 여러 기관의 최고위 경영자 모임에서 인문학이 유행처럼 퍼져나가는 현상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인문학은 원래 대학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경영의 현장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학문은 중세 대학에서 하던신에 대한 학문(신학)’에 대해 반발하면서 생긴 것입니다. 현실 문제에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사변적으로 논쟁만을 일삼던 중세 대학의 교육 과정에 대한 반발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 인간에 대한 학문이 유행처럼 번져간다는 말은, 한국 대학이 현실 문제에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사변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요즘 한국 대학의 교수들도 그렇습니다. 현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정부에서 기준을 정해준 우수 학술지에 기고하는 것을 교수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지요. 그러니 대학 밖에서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되는 것입니다. 대학 다닐 때인간에 대한 학문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제 대학 밖에서인간에 대한 학문을 배워보겠다고 난리입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트리니타성당 안의 사세티 채플에서 15세기 메디치가문이 자녀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위대한 자로렌초 데 메디치의 세 아들을 가르치던 세 명의 인문학자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군주의 거울(Mirror for Princes)이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1401년부터 페트라르카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된인간에 대한 학문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중세 말기의 신흥 상공인들은 왜 자녀들에게인간에 대한 학문을 공부시키려고 했을까요? 아니,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경영자님들은 왜인간에 대한 학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학에 다닐 때 경영학을 전공했거나 공학을 전공하셨던 CEO들을 만나면 자주 이런 말씀을 합니다. 내가 만약에 다시 대학엘 간다면 경영학이나 공학을 전공하지 않고 인문학을 공부했을 것이라고요. 인생을 조금 살아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고들 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신 걸까요?

 

저나 여러분이나, 이제 조금씩 늙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께서 20대에 속해 있는 젊은 분이라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 분들은 이 글보다는 다른 꼭지의 경영학 관련 글을 권해드립니다. 죄송하지만 이 연재는젊은여러분을 타깃으로 해서 쓴 글이 아닙니다.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을 두루 맛보고, 가끔 긴 한숨을 쉬면서 이것이 제발 신음소리가 아니기를 바라는 중년의 분들을 위해 저는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아침에 일어나 자주 거울을 봅니다. 샤워를 한 후나, 옷을 입고 출근하기 전에, 우리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면 왠지 낯선 나의 모습이, 거울의 화면에서 나 자신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거울 앞에서 이런 생각을 가끔씩 합니다. 거울에 비친 저 모습이 진짜 나의 얼굴이란 말인가? 다른 사람들도 이런 모습의 나를,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문득, 당혹스러움과 쓸쓸함이 밀려옵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20∼30대 때 팽팽했던 얼굴 피부는 어느새 탄력을 잃었고 눈가 주름은 더 깊고 선명해졌습니다. 염색으로 가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흰서리가 머리카락에 내려 앉아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감다가 정수리에 붙어 있던 머리카락의 숫자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합니다. ! 나도 이제 이렇게 늙어가고 있구나! 긴 한숨을 몰아쉬게 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거울 앞에서 가끔씩 고뇌하는 철학자가 됩니다. 먹어가는 나이가 우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적나라한 거울이 우릴 그렇게 만들지요. 거울에 비친 늙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우리를 철학자로 만들어 갑니다.

 

중세 말기의 군주들은 책을 읽었다. 탁월한 리더십의 모델이군주의 거울장르에 반영돼 있었기 때문이다. 페드로 베루게테(Petro Berruguette) 1475년에 그린페데리코 공작과 그의 아들 귀도발도’. 이탈리아 우르비노 국립미술관 소장

 

스티브 잡스란 사람이 있었지요? 짧은 생을 통해 IT 산업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그가 만든 혁신적인 제품 때문에, 몇 개의 구닥다리 회사가 작살이 났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하루아침에 무너진 회사가 한둘이 아니고, 덕분에 우리 인류는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새로운 질병을 안고 살아가게 됐지요. 그런데 그 천하의 스티브 잡스도 우리처럼거울을 보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 거울 앞에서 삶을 관조하는 철학자였지요. 그는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성찰했습니다. 생전에 스티브 잡스가 어느 대학 졸업생들에게 들려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33년간,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자문해봤습니다. 만약 오늘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해야 하는 일을 진짜 하고 싶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에 노! 라고 대답했던 날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직감했습니다.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아닙니다만 우리도 거울 앞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돼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인간에 대한 학문이 추구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거울 앞에 서는 학문입니다. 거울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이 바른 길인가를. 자신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 거울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울의 인문학적 의미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거울과 같은 인문학 앞에서 오늘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당장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 호부터 연재되는군주의 거울은 인문학의 요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연재되는 글은 연구 논문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보내는 저의 초대장입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서 여러분을 거울 앞으로 초대할 것입니다. 거울 앞에서 자기 얼굴을 보십시오. 낯선 얼굴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은 맡겨진 인생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힘차게 노를 저어 왔습니다. 거친 파도를 헤치며, 사이렌의 유혹 소리를 견디며, 키클롭스와 같은 괴물들과 싸우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배를 저어 오셨습니다. 인문학은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노를 젓는가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바닷물과 맞닿은 노의 면적을 어떻게 상정해야 최소의 힘으로 최고의 속도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습니다. 인문학은 효율성에 대한 학문이 아닙니다. 대신 인문학은 여러분들에게 지금까지 힘차게 저어왔던 노를 잠시 놓고 고개를 들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먼 바다 저 멀리, 여러분이 가시고자 하는 항구를 바라보라고 합니다. 아니면 고개를 들어, 저 멀리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혹시 먹구름이 다가 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란 것입니다. 때가 밤이라면 여러분은 고개를 들어 북극성을 바라 보셔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방향이 바른 방향인지를 살펴보란 것이지요.

 

서구의 인문학 전통에서군주의 거울은 이런 역할을 해왔습니다. ‘군주의 거울 9세기경부터 유럽의 지도자를 위한 인문학의 중요한 장르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군주의 거울이라는 인문학 장르가 발전하게 된 것은 당시 유럽의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서로마제국이 붕괴되고 단일 로마제국의 체제에서 봉건제도와 소규모 독립국가 체제로 전이해 가던 유럽의 중세 시대에, 신흥 제후와 봉건 귀족들에게 적절한 인문학 교육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유럽 각 나라에서 새로운 군주가 탄생할 때마다 적절한군주의 거울이 그 나라의 지식인들이나 사제들에 의해 집필됐습니다. 지도자를 양육하기 위한 방편이었지요. 중세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한군주의 거울은 샤를마뉴 시대의 한 수도원장(Smaragdus of Saint-Mihiel, 760∼840년 추정)이 쓴 <군주의 길 Via Regia>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샤를마뉴의 아들이었던경건자 루이(Louis the Pious, 778∼840)’에게 헌정됐습니다. 미래의 군주의 왕자를 가르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리더십 교범이었습니다. 카롤링거 왕조시대(8∼10세기)에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학이 필사되는 과정을 통해서군주의 거울로 사용될 수 있는 고대 문헌들이 속속 발굴되면서 이 장르는 지도자를 위한 인문학 교육의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스 문헌 중에서 최고의군주의 거울은 크세노폰이 쓴 <키루스의 교육>이었고 로마 문헌 중에서 최고로 간주될 수 있는군주의 거울은 플루타코스의 <영웅전>이었습니다. 이런 고전들은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고 가던 지도자들의 인문학 필독서가 됐지요. 이러한 그리스와 로마의 대표적인군주의 거울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크게 주목을 받게 됩니다. 14∼16세기에 르네상스(Renaissance)를 탄생시킨 이탈리아반도에서는 각 도시 국가들이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혼란의 시기를 이끌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군주를 누구나 바라게 됐습니다. 본인 스스로군주의 거울을 집필하기도 했던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14장에서 이렇게 말하면서군주의 거울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두뇌를 써서 훈련하기 위해서는 군주는 역사물을 읽고, 그를 통해 위인의 행적을 연구해야 한다.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서 위인들이 어떻게 지휘했는지 알아보고, 그들의 승패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검토해 하나의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그 위대한 인물 역시 그들 이전에,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영광을 누렸던 위대한 인물을 모범 삼아 그 행동과 업적을 항상 좌우명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알렉산드로스는 아킬레우스를,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를, 스키피오는 키루스를 모범으로 삼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크세노폰이 쓴 키루스 왕의 전기를 읽으면 스키피오의 일생은 키루스 왕을 얼마나 훌륭히 모방했는가를 알 수 있다. 또한 스키피오가 절제와 온화함, 인간미와 관용 면에서 크세노폰이 묘사한 키루스 왕과 얼마나 닮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총명한 군주는 당연히 이런 위대한 인물들의 태도를 배우고 존중해야 한다.

 

로마 시대의군주의 거울

제가 DBR에 연재하는군주의 거울은 로마 시대의 고전을 중심으로 소개될 것입니다. 로마 시대의군주의 거울을 선택한 이유는 그리스 시대보다 현장의 문제와 실용적인 측면을 더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시대의군주의 거울이 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었다면, 로마 시대의군주의 거울은 현상 세계의 문제를 주로 다룹니다. 인간의 본질과 조직(사회, 국가)의 극명한 대비가 강조되는 것이 로마 시대의군주의 거울이 가졌던 특징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들이 주로 실물 경제와 경영 현장에 깊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로마의 텍스트를 선택했습니다. 아무래도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책은 그리스 시대와 로마 시대의 영웅의 모습을 대비시켜 독자들에게 유비적인 사고(Analogical Thinking)를 유도합니다. 로마 시대의 미래 군주(지도자)들에게 그리스 시대의 탁월했던 영웅들의 모습을 비교해서 보여줌으로써 자기 시대의 영웅들의 모습을 그려보라는 것이지요. 옛 시대의 지혜로 지금 시대의 난관을 극복하자는 의미입니다. 제가 귀한 DBR의 지면을 이용해군주의 거울을 연재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로마 시대 탁월했던 군주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보자는 것입니다. 옛 시대의 지혜로 우리 시대의 도전과 난관을 극복해 보자는 것입니다. 로마 시대의 영웅들을 우리들의 거울로 삼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이 바로 우리 시대의군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책임지는 것, 그것이 군주의 사명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사명이지요. 앞으로 연재될군주의 거울을 통해 이런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옛 시대의 지혜와 통찰력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skk@yonsei.ac.kr

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및 에모리대에서 석사 학위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SK케미칼 고문도 맡고 있다. <르네상스 창조 경영>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10여 권의 책을 냈다.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영감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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