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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과 콘텐츠

살림?아름다움?어울림한국이 문화전쟁에서 승리할 무기들

이기상 | 150호 (2014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혁신,인문학

 

오늘날 콘텐츠는 단순히미디어에 담긴 정보나 내용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콘텐츠화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예컨대이야기는 미디어에 담긴 어느 특정 이야기만 일컫지 않는다. 삶의 구석구석 보이지 않게 묻어 있는 온갖 이야기가 다이야기. 이 때문에 콘텐츠를 만들어낼 때, 즉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진정한 창의성을 발휘할 때 우리가 가진 독특한 문화와 정신을 배제하고는 전진할 수 없다. 융합과 조화, 어울림, 통합 등과 같은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적 흐름이다. 특히살림아름다움’ ‘어울림에 주목하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지 않고 살아 있도록 보살피는 생명학적 소명, 개개인의 독특함을 최대한 살리고 처신하는 행동, 개별적으로 확보된 아름다움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모양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문화적 근원이다.

 

 

콘텐츠 시대의 창의성

1. 콘텐츠를 둘러싼 강대국의 문화 전쟁

우리가 사는 지구촌 시대, 오늘날 핵심은문화. 온갖 문화권의 사람들이 한곳에 어울려 사는 글로벌 시대에 문화다양성은 인류의 존속을 위한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정치, 경제, 사회 등과 비교해 항상 밀리던 문화가 이제는 최우선순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과거 정치, 경제, 사회에서 각각 중요하게 여겨지던 가치는 문화의 세기가 필요로 하는 가치와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 규칙이 아닌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 지금이 바로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며 그것이 문화의 세기에서 요구되는 핵심이다.

 

문화 강국 하면 연상되는 나라 중 1순위는 논란의 여지없이 영국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전 세계에 식민지를 만들어 스스로의 문화를 전 세계에 퍼뜨렸던 대표적인 문화제국이다. 문화인류학도 영국 식민지 통치의 일환으로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문화인류학은 식민지의 풍토, 생태환경, 민속풍습 등을 연구·조사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생긴 학문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식민제국주의, 문화제국주의라는 이름이 명예스럽지 않다. 영국은 콘텐츠 시대를 맞아 문화로 전 세계를 선도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지향점을 다르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Creative Contents’, 창의적 콘텐츠를 표방한다. 문화대국이면서도 자신들의 콘텐츠에 문화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자신들이 만든 콘텐츠에 문화적 콘텐츠가 아닌 것이 없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를 붙이는데서 발생할 수 있는, 식민지 경험이 있는 민족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하기도 했을 것이다.

 

미국은 반대다. 미국은 나름의 독자적 문화를 형성하기에는 역사가 일천하다. 고작 근대만 존재할 뿐이다. 미국은 콘텐츠 창조에 엔터테인먼트적 측면을 강조하며 거기에 승부를 건다. 재미와 오락에 초점을 맞춰 그 분야를 적극 공략한다. ‘디즈니랜드를 비롯한 수많은 거대 테마 오락시설이 발달하고 그것을 수출해 막대한 수입을 창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엔터테인먼트 하면 쇼와 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막대한 자본을 들여 최고의 재미와 즐거움을 보장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해 전 세계 영화관에 유통시킨다. 미국산 콘텐츠는 문화 콘텐츠일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은엔터테인먼트 콘텐츠(Entertainment Contents)’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캐나다도 비슷하다. 다만 엔터테인먼트에서 미국을 당할 수 없으니 자신들만의 독특한 전략을 구사한다. 예술에 초점을 둔 콘텐츠 개발이다. 캐나다에서아트 콘텐츠(Art Contents)’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이유다.

 

 

 

2. 콘텐츠 새롭게 이름 붙이기

21세기 들어 정보화 시대는 모바일로 무장한 새로운 미디어 기구들을 앞세워 콘텐츠 시대를 열고 있다. 굴뚝 없는 산업이라는 콘텐츠 시장은 선진국의 경제 체계를 재편성하도록 한다.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가 일으킨 신드롬, 영화반지의 제왕이 불러온 프로도 경제효과1 등 새로운 명칭들에서 콘텐츠가 산출해내는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콘텐츠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굴지의 글로벌 대기업이 자동차를 팔아 남기는 수익보다 훨씬 많다니 놀라운 일이다. 경제대국들은 앞 다퉈 콘텐츠 개발과 제작, 생산과 유통, 홍보와 활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는 철학을 전공하고 문화콘텐츠학을 정립하려고 시도하는 학자로서창의성과 콘텐츠라는 개념을 정리하고 그 상관관계를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콘텐츠라는 개념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래서 얻은 결과물이거리. 정확하게는 ‘∼할 거리. 대표적인 것이먹을거리또는먹거리라는 표현이다. 같은 맥락에서 콘텐츠는인간이 자연과 사회 속에서 사람이나 사물과 교류하고 소통하며 나누는 온갖 거리. 즉 삶 속의 모든거리가 전부 콘텐츠가 된다.

 

오늘날 콘텐츠는미디어에 담긴 정보나 내용물이라는 의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콘텐츠화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확장돼가는 추세다. 다시 말해 알 거리, 볼거리, 들을 거리, 느낄 거리 등 온갖 즐길 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가 모두 포함된다. 예를 들어이야기는 구체적인 미디어에 담긴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 보이지 않게 묻어 있는 온갖 이야기가 다 이야기다. 쓰인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말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도 있고 삶의 흔적으로 간직돼 온, 이야기될 거리로 대기 중인 이야기도 있다.

 

콘텐츠는 그 의미상 기술 기반의 미디어에 담긴 유형(有形)의 내용물을 지칭한다. 오늘날에는 유형의 콘텐츠만 콘텐츠가 아니라 무형의 콘텐츠도 콘텐츠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면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물건과 제품, 사건과 사태들로 확장될 수 있다. 그 물건이 어떻게,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는지가 바로 그 물건의 콘텐츠다. QR코드를 인식하면 해당 상품의 정보(콘텐츠)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콘텐츠며, 물건에 담긴 생산과 유통, 활용과 수리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콘텐츠다. 이는 더 나아가 예술 작품이나 인물들까지 외연을 넓힐 수 있다. 자연 사물들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소나무, 감나무, , 고양이, 소 등에 물음을 던질 수 있고 다양한 관점에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공학에서 이야기하는 온톨로지(ontology)2  또는 시맨틱(semantic)3 과 연결될 수 있다. 인간의 소통 대상이 되는 순간, 모든 사물과 사건, 사태는 콘텐츠의 지평 안으로 들어선다.

 

따라서 콘텐츠는 본질상 문화콘텐츠일 수밖에 없다. 미디어에 담긴 내용물로서의 콘텐츠는 인간의 문화적 욕구와 행위의 산물이다. 무형의 콘텐츠 역시 인간 삶의 숨결과 흔적이 짙게 밴 문화적 욕구와 욕망의 표현이다. 콘텐츠는인간이 자연 속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기호와 상징을 사용해 인간다운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 유통하는 온갖 종류의 거리다’. 콘텐츠에는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 모습이 깊게 각인돼 있다.

 

새로운 것의 발견과 이름 붙임

이제는 창조(),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교육학용어사전(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1995)>에서는창의성(創意性, creativity)’을 이렇게 정의한다. “새로운 관계를 지각하거나, 비범한 아이디어를 산출하거나 또는 전통적 사고 유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유형으로 사고(思考)하는 능력.” <매스컴대사전(한국언론연구원, 1993)>에서는 ‘creativity’창조성(創造性)’이라는 표제어 아래 이렇게 정의한다. “창조란 기존 소재를 창조자가 새롭게 다뤄낸 것을 말하며 창조성은 과학이나 예술의 기본적 요소다.” <사회학사전(사회문화연구소, 2000)>에서는창조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독창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지능의 측면을 말한다. 창조적 능력은 해결을 향해 여러 가지 방향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다면적 사고를 말한다.”

 

종합 정리해 보면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만들어내는 능력이나 그 산물이 결국 창조성이나 창의성의 핵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이럴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 바로 이름을 붙이는 일이다. 이름을 붙이고 등록해서 그 이름에 대한 저작권과 소유권을 주장한다.

 

1. 이름을 둘러싼 싸움

오늘날 미국에서 이름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보이지 않는 외교전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까지일본해(Sea of Japan)’라고 표기됐던 미국 교과서에 동해를 병기해일본해/동해(Sea of Japan/East Sea)’로 바꾸자는 법안이 미국 버지니아 주 하원을 통과했다. 이 기세를 몰아 뉴욕 주에서도 같은 일을 벌이자고 뉴욕 동포사회가 똘똘 뭉쳐 힘을 모으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어느 희곡(‘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이름이란 뭐지? 장미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향기는 그대로인데…” ‘동해로 불리든, ‘일본해로 불리든 일렁이는 파도와 거기에 있는 온갖 물고기, 그곳에 자리 잡은 많은 섬들은 달라질 것이 없는데과연 그럴까? 여기에 소위 이름과 대상(사물, 지표)의 상관관계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깔려 있다. 이름은 단순한호칭이 아니다. 거기에는 부르는 사람과 호명된 사물 사이의 운명적인 인연이 얽혀 있다.

 

예를 들어 나라 이름은 그 나라의 민족, 역사, 문화 전체를 좌우한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대표적이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남부 유럽 발칸반도 중부에 있는 나라다.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6개 공화국 중 하나였으나 1989년 동유럽을 휩쓴 공산정권 붕괴의 소용돌이를 틈타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했다. 이 나라의 정식 명칭은 마케도니아 공화국(Republic of Macedonia)인데 그리스인들이 이 명칭 사용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마케도니아하면 알렉산더 대왕과 연관된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를 자신의 지배 아래 두고 통치했으며 그리스 문화를 전 세계에 퍼뜨린 인물이다. 그런데 현재의 마케도니아인은 고대 그리스계가 아닌 6∼7세기 이주한 남슬라브인 계통이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을 그리스 문화를 떼고 생각할 수 없다며 이름 사용에 반발했다. 나라 이름을 둘러싼 싸움은 장기간 지속되다가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 약칭 FYROM)’이라는 긴 이름으로 부르기로 외교적으로 합의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이름이 믿음의 대상 및 교리체계와 연관된(God)’의 이름을 둘러싼 싸움으로 번지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전개된다. 가톨릭교에서는하느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에서는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다른 신을 믿고 있는 것일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 이름을 둘러싸고 50여 년에 걸쳐 전개된 피비린내 나는종교전쟁이 있다. 유태인들은 그들이 믿는 신을야훼또는여호와라고 부른다. 이들이 믿는 신은 그리스도교인들이 믿는 신과 다른 것일까? 나치 신봉자들은 유태인이 그리스도를 죽인 민족이라며 민족 자체를 말살하려고 시도했다. 이슬람계 사람들이 믿는알라는 또 어떤가? 신의 이름을 둘러싼 그리스도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의 싸움은 십자군전쟁을 일으켰고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서 온갖 형태의 투쟁과 테러, 반테러가 끊이지 않는다.

 

2. 새로운 것의 발견(발명)과 명명

지금까지는 이미 존재하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싸움을 살펴봤다. 이제는 눈을 돌려 이름이 지어질 때의 상황을 그려보자. 이름을 지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는 것은 기존 이름으로는 대처하지 못할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명의 시점은 새로운 것의 발견과 연결된다. 새로운 별을 발견하면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대륙, 새로운 바이러스, 새로운 동식물을 발견하면 이름을 붙인다. 즉 명명이나 작명은 새로운 것과 마주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발견은 이미 존재해 왔던 것을 처음 대면하는 경우도 해당된다. 여기에는 자연사물의 발견뿐 아니라 사태와 사건도 포함되고 나아가 자연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바탕에 깔려 있는 원리와 법칙, 구조와 계기(요소) 등도 포함된다. 이때 인간은 개입하지 않고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기만 한다. 독특함을 찾아내서 특징을 부여하며 그에 맞는 이름을 붙인다. 이렇게 자연을 관찰해서 그 원리와 법칙을 찾아내는 인간의 활동을 그리스 사람들은 이론적 활동(theoria)이라고 이름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은 이론적 지식을 활용해서 자연사물을 변형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것이 또한 인간을 인간이게끔 만드는 특징이며 그 역사가 곧 기술 문명의 역사다.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자연개조의 역사며 이를 위해 도구를 개발해 만들어 온 발명의 역사다. 이런 활동을 그리스인들은 기술(제작)적 활동(techne) 또는 예술적 활동(poiesis)이라고 했다. 인간의 활동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모든 새로운 것이 여기에 속하는 셈이다.

 

이제 눈을 인간 행위 자체로 돌려보자. 자연과의 관계 맺음, 동료 인간과의 관계 맺음, 다른 종족과의 관계 맺음, 자신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인간 행위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끊임없이 새롭게 변해왔다. 이런 관계 맺음 속에 민족과 국가가 형성되고, 관습과 법이 만들어지고, 윤리와 도덕이 세워지고, 이념과 세계관이 정립된다. 그런 속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새롭게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목적을 세우며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한다. 그리스인들은 일찍이 인간의 이런 활동을 발견하고 그것에 실천적 활동(praxis)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처럼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활동에 이름을 붙여 그것을 정의하고 생명을 불어넣었다. 우리는 그리스인들의 창의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2500년 전에 발견해서 붙인 이름은 지금도 여전히 그 분야를 지칭하는 국제적 용어와 개념들로 사용되고 있다.

 

종합 정리하면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만들어내는 능력이나 그 산물이 결국 창조성이나 창의성의 핵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종합 정리해보자.

①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하고 인간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거기에 맞는 이름을 찾아 붙이는 일이다.

 

② 자연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태를 관찰하며 그 운동과 법칙, 형태와 재질, 구조와 요소(계기)의 독특함을 발견해 이름을 붙인다. 이런 식의 이론적 차원의 발견은 곧 원리나 원칙을 발견해 이론으로 정립하는 경우다. 태양력과 음력의 발견, 천동설, 지동설, 만유인력, 상대성이론, 양자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③ 자연에 대해서 이론이 아니라 활동으로 개입하는 경우 또는 도구적, 기술적, 제작적 차원의 경우다. 여기서는 온갖 존재하는 것을 가지고 짓고 만들고 꾸며서 무언가를 새롭게 창출해 낸다. 온갖 종류의 기술제품과 예술작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④ 인간의 행위 그 자체와 관련해 생기는 새로운 차원과 요소, 패턴과 유형, 조직과 관습 등이 있다. 윤리도덕 분야와 사회조직 영역들이 여기에 속한다.

 

창의성이나 창조성을 논할 때 우리는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둬야 한다.

 

 

 

3. 오늘날의 창조성 - 해체와 재구성

사실 엄격한 낱말의 의미로 볼 때 창조는 신에게나 적합한 개념이다. 신은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천지만물을 창조했다고 한다. 만일 창조시점에 무언가 있었다면 그것을 만든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신은 그 누군가에 대해서는 권한이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신의 권능은 무력해진다. 신의 창조는무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창조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 활동을 신의 창조 행위에 빗대 창조 활동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예술가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와 도구를 활용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작품을 만드는 것뿐이다. 그러니 그것은 그저 창의적 활동이라고 해야 옳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인류의 지식과 정보가 웬만한 것은 다 찾아낸 상태라 깜깜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과 정보를 새로운 관점과 관심에 따라 새로운 필요와 요구에 맞춰 새롭게 사태(사물/사건)를 재정리하고 재구성해서 새로운 개념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이것이창의성(creativity)’의 의미다. 이는 포스트모던의 철학 사조를 지칭하는 용어인해체주의(deconstuctionism)’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해체(destruction)’구성(construction)’이 합성된 낱말로, ‘해체주의는 사실 정확한 번역어가 아니다. 중국에서는해구주의(解構主義)’로 번역하는데 좀 더 정확한 용어로 볼 수 있다. 이렇게 기존에 있는 것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롭게 꾸며서 만들어내는 것을기획, 프로젝트(project)’라고 한다. 매체학자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미디어 시대인 현대에 우리는 더 이상 주체가 아니라 기획자로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첨단기술의 놀라운 발달로 사물/사건/사태에 대해 웬만한 것은 다 알려져 있다. 아예 새로운 것의 발견은 아주 드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물/사건/사태에 대한 경험과 인식, 사유와 파악, 언어와 표현, 반응과 태도를 성찰하고 반성하며 잘못된 것이 없었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다시 말해 달라진 지식정보의 상황 아래 이론적, 기술적/예술적, 실천적 차원에서의 관계와 소통방식을 재정비해서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경험과 사유를 완전히 개방해서 새로운 관점과 시각에 열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기존의 인식체계를 과감히 깨고 새롭게 구성할 각오와 태세를 갖춰야 한다. 이것이 현상학 또는 해체주의가 요구하는 사유자세다.

 

창의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태도는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또는일상의 틀에서 빠져나오기. 그래서 무언가 비상식적이고 색다른 것을 생각해낼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위대하고 창의적인 발견들은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둘 혹은 그 이상의 것들을 관련짓는 정신적 과정을 포함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유추(analogy)’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은유(metaphor)’라 일컬어진다. 오늘날 창의적 인재로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은유를 경험했다는 것이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다. 어린 시절 시나 소설을 많이 읽어 풍부한 상상력을 키웠으며 추상적이고 어려운 관념들을 그림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등 다양한 은유의 연습을 할 기회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다.

 

비상식적인 색다른 것을 발견해내기 위해서는 통용되는 구체적인 개념 정의를 벗어난 추상적인 말과 생각을 기꺼이 하는 습관과 환경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확정된 낱말은 필연적으로 생각의 범위를 거기에 붙들어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나무를 보지 말고 한 단계 더 올라가 - 추상해서 - 숲을 보고, 더 높이 올라가 숲이 놓인 전체적인 환경과 상황을 조망할 때 관점과 시야가 달라져 새롭고 색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문화의 독특함과 한계

프랑스의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Guy Sorman)은 한국인이 자신들의 문화를 확립하면서도 다른 문화와의 상호작용에 큰 포용력을 보여 왔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의 세계화가 동시에 다른 나라들에 의한 한국적 가치의 발견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한국 문화가 세계 무대에 등장한 것은 한 세대가 채 되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적 가치는 민족 문화에서 세계화의 단계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러나 기 소르망은 한류가 아직 낮은 단계의 대중문화에 머무르고 있다며 대중문화의 한류만큼 고급 문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지금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전통 규범과 근대성·세계화를 결합하는 것이라고 충고한다.4

 

우리 역사를 냉정한 시각에서 돌이켜보면 우리는 단군 이래 계속해서 지배당한 문화였다. 제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해야만 했던 것이 바로 우리 문화다. 어떤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는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연함과 지혜를 터득해야 했다. 혼용, 융화, 융합, 통합, 화합, 조화, 어울림은 그러한 역사적 질곡을 통해 얻은 한국인의 삶의 논리이자 우리 문화의 독특함이다. ‘유불선의 통합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념이나 왕조의 바뀜에 상관없이 유교, 불교, 도교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최근 한류가 뜨는 것도 이런 문화적 특성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권력 간 다툼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들을 조화롭게 내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을까 하는 차원에서의 우리 문화가 가진 장점, 바로 그 점이 세계 문화의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을 조금 바꿔서 표현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백남준에서부터 시작해비빔밥론이라고 했다. 비빔밥의 살림살이다. 갖가지 나물, 즉 다양성을 그렇게 놔두고 고추장을 넣어 적당한 배합으로 섞어 내는 것, 이것이 한국의 문화적 독특함이다.

 

한편으로 융합, 조화, 어울림, 통합 등과 같은 우리 문화의 독특함은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주체성이 없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세상을 천원지방(天圓地方)으로 봤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는 뜻이다. 세계지도란 중국이 가운데 있고 사방에 오랑캐가 있는 구도였다. 그러다 16세기, 17세기에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그들로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문물과 세계를 접했고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문제는 중국을 벗어나 근대화, 서구화하면서 우리의 것을 몽땅 버렸다는 점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것을 시대착오적인 것, 낡은 것으로 치부해서 서둘러 없애버리고 서구의 것들로 그 자리를 채워 넣었다. 중국 중심의 우물에서 벗어났는지는 몰라도 서양이라는 우물 속에 다시 빠진 셈이다. 문화다양성의 시대인 지금, 우리의 문화가 뜨는 이유를 통해 문화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문화가 가진 특성과 바탕을 통해 우리의 시각에서 인간을 정의하고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 정체성을 찾아 나름의 고유한 독자적 문화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창의성을 펼쳐야 할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아름답게 살려라!

1. 명품 콘텐츠는 신기술 + 전통 문화

일본은 2005년 기술 경쟁력만으로는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후발주자들과 경쟁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자국 상품의 품격을 놓이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구사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도요타자동차와 마쓰시타(松下)전기 등 주요 기업들과 공동으로 신기술에 일본의 전통문화를 가미해서 새로운 국가 브랜드네오 재패네스크(Neo Japanesque, 신일본양식)’를 개발하기로 한다. 전통에 뿌리를 둔일본다움을 강조하며 경쟁력을 높이는 문화 전략을 단행한 것이다. 그 결과네오 재패네스크는 패션, 가구, 전자 산업 등에 파급되며 세계를 끌어당겼고 일본 젊은이들은 전통에 관심을 갖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에 뒤질세라 일 년 뒤인 2006 KOTRA는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코리아 프리미엄(Korea Premium) 전략을 수립하고 전담 조직인국가브랜드관리본부를 설치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가브랜드 가치를 홍보하는 데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삼성이나 LG, 현대차 등 대기업의 선전으로 국가 인지도가 이전보다 약간 높아졌을 뿐이다. 일시적인 한류 열풍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그 열광이 끝나기 전에 문화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다. 문화적 콘텐츠가 그 핵심에 서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한국의 문화적 독특함과 심성을 반영하는 핵심 개념으로살림(Salim)’ ‘아름다움(Arumdaum)’ ‘어울림(Eoullim)’을 제안한다. 이 세 개념 안에 포함돼 있는 우리의 전통적 문화 가치를 살려서 그것을 여러 분야 콘텐츠 제작에 응용하는 계기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2. 한국인의 전통적 살림살이

우리는 예로부터 인간을 빔 사이[空間], 때 사이[時間], 사람 사이[人間], 하늘과 땅 사이[天地間]에서 사이를 나누며 유지하고 보존하며 살아가는사이-존재로 봤다. 한국인의 생활세계를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규정해 온 한국인 삶의 심층 문법은 한마디로살림살이. 우리말살림살이에는 살리는, 다시 말해 죽지 않도록 감싸주고 보살피는 삶의 방식을 가장 중요한 생활자세로 본 선인들의 철학이 배어 있다. 살림을 생활화해서 그것을 삶의 일로 삼아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살림살이라는 말에 간직돼 있다.

 

‘살리다’는 사역동사로살게 하다’ ‘죽지 않도록 하다를 뜻한다. ‘살다살리다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살다는 자동사로목숨을 지니고 있다’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와 달리살리다는 그냥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부각시킨다. 살아 있음의 상태를 바람직한 가치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살아 있는 것이 그 살아 있음을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보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다른 살아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것이기는 하나 그냥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의살아 있음에 관여하는 존재다. 살아 있음을 가치로 소중히 대하는 생활방식은 그것을생명(生命)’이라고 명명하며 거기에서 살아 있도록 보살펴야 하는 명령을 보고 아무리 미물이라도 살아 있는 것은 천명을 받아 거기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했다. 우리말생명은 서양어 ‘bios, zoe, vita, life, la vie, das Leben’ 등에서 표현되는 단순한이 아니다. ‘생명이란 낱말에서는 생물, 유기체, 목숨 등과 같은 비슷한 단어들에서는 감지할 수 없는 성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따라서살림이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지 않고 살아 있도록 보살피고 보호해야 하는 인간의 생명학적 소명을 표현한다.

 

살아 있음에 동참하고 살아 있음의 질서를 알아야, 다시 말해 나서 살다가 자기를 살라 비우고 사라지는 우주적 생명의 대원칙을 알아볼 수 있어야살림살이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살림은 서양의 존재론적 전통인 ‘Let it be’, 존재하게 함(Sein-lassen)’에 대응하는 한국의 생명학적 개념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나름의 생명관, 인간관, 예술관을 끄집어낼 수 있다.5

 

3. 아름다운 어울림, 아름답게 살려라!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문화권마다 다르다.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에서 우리는 그 문화권 사람들의 감성적 방향성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우리가 ‘Esthetics’에 대한 번역어로 사용하는미학(美學)’이라는 낱말에서 사용하는()’는 한자어로 한자 문화권의 생활세계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한자어큰 양을 형성화한 글자다. 커다란 양과 아름다움을 밀접하게 연결지었다는 의미다. 옛 중국에서는 양이 중요한 먹거리였다. 때문에 그들은 큰 양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칼로스(kalos)’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여기서 연유한 이름들이 Karl, Carlos, Charles 등이다.) 그것은 좋은 먹거리에 대한 감탄사가 아니라 심신(心身)이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찬사였다. 몸과 정신의 균형과 조화를 아름다움의 조건으로 본 그리스인들에게 아름다움은 비례 및 조화와 밀접하게 연관됐다. 이것이 로마 문화권으로 전해지면서건전한 몸에 건전한 정신(anima sana in corpore sano)’이라는 속담이 생겼다. 이 속담의 첫 글자를 따서 조합해 만든 상표가 스포츠 브랜드아식스(asics)’.

 

이렇듯 해당 문화권이 어떤 생활 세계 속에서 어떤 생활을 펼쳐왔는지에 따라 아름다움에 대한 감성과 그 이름 짓기가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말아름다움은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가. 우리말아름다움 2000년가량의 역사와 문화 속에 이어지며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전수되는 개념이다. 우리는아름다움에 깃든 민족의 얼을 깨 살려내야 할 책무를 안고 있다. ‘아름다움아름+다움으로 이뤄져 있다. ‘다움 ‘∼답다에서 나온 꼬리말이다. 우리말은 서양처럼 고정된 존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되어감을 강조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서양의 본질에 해당하는 우리말은됨됨이다. 현대의 유명한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의 표현을 빌린다면 우리말은 차이 생성에 예민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당위 차원에서의 사회적 기대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답다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사람답다, 남자답다, 여자답다, 대통령답다, 나답다, 너답다 등 사회에 통용되는 본연의 모습에 맞게 처신하거나 그러기를 바라며 ‘∼답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아름’은 무엇을 뜻할까? ‘아름제각기의 개인을 뜻한다. 한자어()’를 풀이하며 조선의 선비들은아름 사()’라고 읽었다. 즉 인간 모두를 각기 떼어내 한 사람 한 사람씩 봤을 때의 개개인이 바로아름이다.

 

두 단어가 합해진아름다움은 무엇일까. 개개인의 독특함을 최대한 살리고 그렇게 처신하며 행동하는 사람을 두고아름답다고 표현한다. 개개인의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잘 어울릴 때 아름다움의 극치가 될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움과 짝하는 낱말이어울림이다. 아름다움이 개개인의 독특함에 초점을 맞췄다면 어울림은 전체 속에서 개개인의 아름다움의 조화를 말한다. 아름을 포용하고 개개인의 독특함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것이 어울림이다. 이렇게 우리말아름다움속에는 우리의 오래된 문화적 숨결이 깃들어 있다.6

 

이제라도 우리는 우리 문화의 코드화, 기표(기호)화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나름의 지층화, 부락화를 분석하고 체계화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문화코드화는 재껴두고 중국의 기표화, 일본의 기표화, 미국의 기표화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표준과 기준으로 삼아서 우리 것을 거기에 따라 번역하고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문화 숨결은 사라지고 전통의 흔적이 지워져 찾기 힘들어졌다. 흔적이 지워져 사라진 것을 잊고는 흔적이 없으니 그런 기표작용이 있었을 리가 없다고 우긴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기록이 남기 위해서는 기표화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모든 기록을 한자로 해왔다. 어쩔 수 없이 중국의 기표작용을 따랐다. 그러니 기표화된 것에서는 우리 것을 찾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식인들은 기표화에 목숨을 걸기 때문에 중국적인 기표화를 따르며 그것을 모방했다. 구술문화에 의존했던 일반 서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일반 서민들은 한자를 몰랐기 때문에 우리말의 문화코드화에 더 충실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서민들의 생활과 언어 속에 갈무리돼 있는 의식과 심성을 밝혀내야 한다. 구전문화를 더 심층적으로 연구해서 우리의 삶에 결과 무늬로 켜켜이 싸여 전수돼 아름다움을 살려야 한다. 함석헌 선생은 우리말 속에 녹아 있는 문화의 나이테를 읽을 수 있어야 함을 아래와 같이 충고한다.

 

“우리말로 할 수 없는 종교·철학·예술·학문이 있다면 아무리 훌륭해도 그만 두시오. 그까짓 것 아니고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글월(문화(文化))이 돋아나오지 공작의 깃 같은 남의 글월 가져다 아무리 붙였다기로 그것이 우리 것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7

 

우리의 아름다운 어울림의 살림살이 속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문화를 아름답게 살려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데 이념과 지침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한걸음 더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콘텐츠를 둘러싼 문화강국들의 전쟁이 치열해지는 시대, 우리는 우리의 문화전통 속에 갈무리돼 있는 삶의 문법을 적극 살려나가야 한다. 우리가 예로부터 혼융, 융합, 융화, 통합, 조화, 어울림을 중요한 문화적 가치로 삼아왔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살림살이 정신에서 형성된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인 아름다움과 어울림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감성, 지성, 이성, 영성을 다 같이 아름답게 살려 현대 지구인이 필요로 하는 콘텐츠를 창의적으로 기획해서 만들어내야 한다. 기술, 예술, 지혜(삶의 이야기), 지식(정보)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우리만의 독특한 비빔밥을 지어낼 것을 지구촌 시대가 요구한다.

 

 

이기상 한국외국어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명예교수 saemom@chol.com

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 신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뮌헨 예수회 철학대에서 철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4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우리사상연구소 소장과 국가기록관리 위원직을 맡고 있다. 1992년 열암학술상, 1994년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받았다. 저서로 <하이데거의 실존과 언어> <하이데거의 존재와 현상> <철학노트> <하이데거의 존재사건학> <콘텐츠와 문화철학> <지구촌시대와 문화콘텐츠> <글로벌 생명학> 등 다수가 있다. 옮긴 책으로는 <존재와 시간>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 <하이데거의 예술철학> 등이 있다. 소통을 위한 블로그(blog.naver.com/saiculture)를 운영 중이다.

 

  • 이기상 | -(현)한국외국어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현)한국외대 철학과 명예교수
    -(현)우리사상연구소 소장
    -(현)국가기록관리 위원장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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