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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예술 관점에서 본 관찰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리라” 세잔에겐 관찰만이 진정한 앎이었다

송규봉 | 145호 (2014년 1월 Issue 2)

 

 

지도, 관찰의 다큐멘터리

 

지도는 다큐멘터리다. 지도는 세상에 대한 관찰이자 기록이다. <지도 1>에서 문자, 도표, 범례를 없애면 점···화소 4가지만 남는다. 외식 프랜차이즈 점포 3개는 점(·point)으로 표시했다. 주요 도로망은 선(·line)으로 펼쳐진다. 서울·춘천고속도로 중간에 가평점이 있다. 가평점은 서울시 경계에서 30㎞ 떨어졌다. 서울시는 행정구역을 나타내는 면(·polygon)으로 다룬다. 가평점 고객의 자택지를 기준으로 매출분포를 그렸다. <지도 1>의 황갈색 농도는 가평점의 매출이 벌리는 밀집도다. 지도에서 밀도는 화소(畵素·pixel)로 표현되며 모두 정량값을 담고 있다. 진할수록 매출비중이 높다.

 

 

가평점의 고객들은 어디에서 올까? 수원점이나 인천점과 비교된다. <지도 1>에서 가평점의 매출분포를 나타내는 황갈색 분포는 가평점 인근에 짙게 표현되나 서울에 더 넓게 퍼져 있다. <지도 1> 오른쪽 아래에 작은 표가 있다. 3개 매장의 거리별 매출비중을 보여준다. 고객의 주소지를 GIS에 입력해 분석한 결과다. 매장에서 2㎞ 반경을 적용할 때 수원점은 58%, 인천점은 42%인데 가평점은 8%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고객이 타지에서 온다. 서울 고객의 비중만 45%였다.

 

<지도 1> 3개 매장을 운영하는 외식 브랜드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3개 매장의 월평균 매출은 기존 매장 평균의 2배를 기록하고 있다. 가맹점 모집이 어려운 시기에 매장 크기, 상권 인지도, 총투자비가 훨씬 낮은데도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30년 외식업 경험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의외의 성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체계적인 관찰과 분석이 시작됐다.

 

지도의 시작은 돌멩이였다. 현존하는 지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사냥지도로 돌멩이에 새겨져 있다. (그림 6) 스페인 동굴에서 석기시대 유물 600점과 함께 발굴됐다. 13600여 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냥지도에는 습지, , 평야, 산이 그려져 있고 특정 위치에 사슴과 순록이 새겨져 있다. 생존에 필요한 가장 절박한 정보를 입력해 놓았다. 생존을 위해 사슴과 순록의 동선을 파악했고 어디에서 사냥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석기인들은 사슴·순록과 자연환경을 관찰해 사냥지도에 기록했다. 생존을 위한 관찰기록이다. 그들에게 지도는 미학이 아니라 존망의 관찰을 취급한다.

 

관찰, 표면에서 깊이로

 

미술도 점···화소를 다룬다. ···화소는 화가의 손길을 거쳐 캔버스에 새롭게 태어난다. 화가마다 4가지 구성요소를 다르게 배합한다. 청년시절 폴 세잔(Paul Cezanne)은 파리의 살롱전에 번번이 떨어졌다. 1863년부터 1866년까지 연달아 입선에 실패했다. 살롱전에 거부당한 젊은 화가는 드가, 시슬레, 르누아르, 모네, 쿠르베도 있었다. 신문마저 세잔의 작품을 조롱했다. 10년의 야유를 견디며 1874년 첫 번째인상주의 작품전이 열렸고 세잔은 석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서른여덟에는 낙향을 결심한다. 기존 미술평단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기로 한다.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리라는 선언이 탄생한 배경이다. 세잔은 고향 엑스에 정착한 후 은둔자처럼, 구도자처럼 매일매일 자신만의 작업에 몰입한다. 예술에서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것을 예술가 자신만의 개성이라고 세잔은 되뇐다. 세잔은 개성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출발점을 관찰에서 찾았다.

 

<그림 1> ‘사과가 있는 정물은 세잔의 화풍이 정립된 절정기에 탄생된다. 세잔은 재능이란 일상에서 마주치는 것들에 늘 새로운 감정을 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세잔에게 본다는 것은 곧 이해한다는 것이고 이해한다는 것은 곧 구상한다는 의미였다. 세잔에게 관찰이란 대상에서 특징을 추출해내는 것이었다. 그저 대상을 엄밀하게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조화를 찾는 것이며 그것들을 새롭게 독창적인 논리로 다시 배열하는 것이다. 그린다는 것은 관찰을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고 형상화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눈은 너무나 많은 기억 속의 이미지들에 시달려 피로해 있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박물관들의 그림이며, 수없이 열리는 전시회들이며….” 피로한 눈으로는 관찰하는 대상에서 새로움을 찾아내기 어렵다. 세잔은 파리의 번잡한 일상, 박물관의 전시작품, 기존 화풍의 살롱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정립해 나간다.

 

세잔은 한 가지 주제를 붙들고 몇 달씩 씨름했다. “색깔은 깊은 곳의 단층들까지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화가의 재능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분에서지요.” 작업실로 찾아온 젊은 화가에게 일러준 조언이다. 본질은 표면보다는 깊이에 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은 다 흩어져 사라져 버린다네. 자연은 늘 그대로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중엔 그대로 머무르는 게 하나도 없지. 그래서 예술이란 자연의 순간적 떨림과 편린들,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네. …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거나 개입하게 되면 와장창! 모든 것은 달아나 버리고 만다네.”1

 

세잔은 눈앞에 보이는 껍데기들은 잊고 진짜의 형체를 붙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잔을 방문한 젊은 화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세잔은 머리를 숙였다. 그리곤 갑자기 고개를 들어 풍경을 굽어보더니 집어삼킬 듯한 눈으로 오랫동안 캔버스를 훑어봤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중요한 것이 표면보다는 깊이에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사람들은 표면만을 변형시키고 꾸미고 치장하려고 한다. 세잔은 루소와 밀레 같은 화가들이 탁월하게 풍경을 조립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사물의 외부에서 사물 속의 깊이를 파악해낸 관찰의 힘 때문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나는 향기마저 볼 수 있다

 

최근까지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그림은 폴 세잔의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2011 2, 25000만 달러( 2800억 원)에 팔렸다. 경매가 아닌 개인 간의 거래였다. 판매자는 그리스 선박 재벌 게오르게 엠비리코스, 구매자는 카타르 왕가였다. 경매 최고가는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 2013 11월 미국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14240만 달러( 1528억 원)에 낙찰돼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종전 최고액은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대표작절규인데 소더비 경매에서 기록한 액수가 11990만 달러였다.2

 

세잔의 작품이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면 그건 관찰력의 독창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잔에게 관찰의 의미는 진정한 앎이었다. 세잔은 진정으로 알아야 새로움을 볼 수 있다고 믿었다. 진정한 앎을 방해하는 것은 오래된 아집이라고 되뇌곤 했다. 남들이 보던 대로 보는 것을 독창성의 방해자라고 봤다. 세잔은 자연 속에 완전히 몰입해 그것과 함께 싹을 틔우고 바위의 고집스러운 색채와 산의 합리적인 완고함과 공기의 유동성과 태양의 열정을 그림에 담으려고 했다. 세잔은신록 속에서 나의 뇌수 또한 나무의 수액과 함께 물결치며 흐르고싶어 했다.

 

“그는 양탄자에 놓인 3개의 두개골을 그리고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6시부터 10 30분까지 이 작업을 계속해 왔다. 이것은 그의 생활습관이다. 아침 일찍 작업실로 나와 6시부터 1030분까지 그림을 그리고 엑스로 돌아가 식사를 하고, 풍경을 그리기 위해 곧바로 모티프로 가서는 저녁 5시까지 앉아 있고,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고는 즉시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일년 내내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이다.” 말년의 세잔을 방문한 젊은 화가는 엑스에 머문 한 달 내내 세잔이 두개골 그림 앞에서 관찰하고 창작하는 것을 지켜봤다. 세잔의 작품은 매일 색과 형태가 조금씩 변해갔다.

 

폴 세잔은 사물의 향기도 볼 수 있노라고 말했다.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와서 사물들의 세계 속에 곧잘 침잠해 들어갔다. 메를로 퐁티는 풍경에 대한 세잔의 사색적 관찰을 탈내면화로 묘사한다. 우선 그는 사물의 다양한 지층을 명확하게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그 다음에는 더 이상 꼼짝하지 않은 채 세잔 부인의 말처럼 눈이 머리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그저 바라만 봤다. 세잔은 말했다. “풍경은 내 속에서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 풍경과 자신이 하나가 돼 서로 흘러 넘치는 경지에 도달한 상태를 표현했다. 세잔은 깊은 관찰을 통해 정신적 산만함에서 벗어나 대상과 하나가 되는 창조적 몰입상태에 빠져들곤 했다.3

 



고흐, 관찰의 피날레

 

빈센트 반 고흐는 그림 파는 일을 정리하고 전업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스물여섯에 화가의 길에 들어서 10년을 불꽃처럼 살다 갔다. 고흐가 동생 테호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일상이 자세히 담겨 있다. “새벽 4시면 잠에서 깨어나 창가에 앉는다. 그리고 목초지와 목수의 작업장, 일터로 나서는 사람들, 들판에서 커피를 끓이기 위해 불을 피우는 농부들을 스케치하지.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니?” 고흐는 지붕과 지붕 사이의 굴곡, 연기 오르는 굴뚝, 움직이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관찰하며 화폭에 스케치를 해나갔다.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라고 고흐는 믿었다. 작품에 정말 훌륭한 내용을 담아내려면 자연에 대한 정직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텅 빈 캔버스를 보면 무력감을 느낀다. 비어 있는 캔버스가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흐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오히려 캔버스가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봤다. 왜냐하면 진정한 화가는넌 할 수 없어라는 마법을 부수고 캔버스 위에 열정을 폭포처럼 쏟아내기 때문이다.4

 

고흐가 캔버스에 담고 싶었던 것은 풍경 속의 내면이었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깊은 고뇌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여주겠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고흐는 한동안 황혼의 들판을 관찰했다. 그는 음식을 먹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황혼이 물드는 들판을 심포니의 피날레처럼 감상했다. 황혼을 바라보며수백 점의 걸작품이 걸린 전시회에 와 있는 느낌을 받고 스케치 몇 점과 그 안에 담긴조용한 기쁨을 들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가장 왕성하게 작품을 창작하던 1888년 고흐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재능은 오랜 인내로 생겨나고, 창의성은 강한 의지와 충실한 관찰을 통한 노력으로 생긴다는 플로베르의 말을 음미하고 있노라고. ‘바람에, 태양에, 사람들의 호기심에 노출된 야외에서 별다른 생각 없이 잔뜩 몰두해서 캔버스를 채운다. 그것이 진실된 것, 본질적인 것을 잡아내는 방법이다.’

 

관찰은 스승이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20세기의 눈, 현대 사진영상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카르티에-브레송을 세상에 널리 알린 작품은 <그림 3> 포스터에 실린 사진이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사진은 우연히 찍은 것이 아니다. 관찰과 인내의 산물이다. “어제 온 비 때문에 역 앞 광장에 물웅덩이가 깊었다. 나는 한참 동안 물웅덩이와 난간과 광고판, 그리고 뛰어오르며 지나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사진 한 장이 마음에 떠올랐다. 곧장 훌륭한 짜임새를 이룰 만한 곳에 카메라를 놓고 그 뒤편으로 숨었다. 꼬박 하루를 기다려서 멋진 사진을 찍었다.”

 

세종문화회관에 열렸던 전시장의 입구에 이런 글귀가 걸려 있었다. ‘그는 사진의 톨스토이였다. 그는 인본주의를 실천하는 20세기의 증인이기도 했다.’ 카르티에-브레송은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무엇이든 와락 덤벼들어 움켜잡을 태세를 취한 채 거리를 쏘다니며 삶의 현장을 올가미로 잡아 보전할 결심을 했다. 자신의 목전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의 본질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포착하길 바랐다.

 

그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달아나는 현실 앞에 모든 능력을 집중해 그 숨결을 포착하는 것이다. 카르티에-브레송은 사냥꾼처럼 말한다. 사진작가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삶을 불시에 붙잡아야 한다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머리와 마음을 동일한 조준선 위에 놓는 것이며 카메라는 그에게 스케치북이자 직관과 자생(自生)의 도구였다. 마치 방아쇠를 당기기 전처럼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라고 그는 표현했다.

 

화가 고갱이보기 위해 나는 눈을 감는다고 선언한 것과 유사하다. 시인 천양희는 자신의 작품에서바람소리를 더 잘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 어둠 속을 더 잘 보려고 눈을 감는다 / 눈은 얼마나 많이 보아버렸는가 / 사는 것에 대해 말하려다 눈을 감는다 / 사람인 것에 대하여 말하려다 눈을 감는다 / 눈은 얼마나 많이 잘못 보아버렸는가하고 탄식한 바 있다.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의 방향성이다.

 

사진작가들에게 있어 한 번 가버린 것은 영원히 가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찰라를 결정적 순간으로 여기고 이를 카메라에 담으려 한다. 찰라의 진실을 만나기 위해 카르티에-브레송은 관찰을 스승으로 삼았다. 찰라 속에 담긴 본질을 잡아내기 위해서 집중, 정신훈련, 감수성, 공간적 감각을 극대화한다. 카르티에-브레송은 말한다. 카메라는 사물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답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질문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그렇게 순간의 충만한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동하고 사유하고 수공예 장인처럼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찰라의 포착

 

시인 이상(李箱)은 시보다 산문이 더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이상은 시인이나 소설가라기보다는 에세이스트입니다. 산문을 참 잘 써요. 그 사람 산문은 우리나라 산문 사상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김수영 산문이 누구에게 뿌리가 있습니까. 김수영 산문은 본질적으로 뿌리를 이상에게 두고 있는 것이죠.” 토지문학관에서 열린 문학강연에서 신경림 시인이 내린 평이다.5  이상이 쓴산촌여정에서 한 단락 옮겨본다. 이상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산삼이 풀어져 흐르는 시내 징검다리 위에는 백채(白菜) 씻은 자취가 있습니다. 풋김치의 청신한 미각이 안약 「스마일」을 연상시킵니다. 나는 그 화성암으로 반들반들한 징검다리 위에 삐뚤어진 N자로 쪼그리고 앉았노라면 시야에 물동이를 이고 주저하는 두 젊은 새악시가 있습니다. 나는 미안해서 일어나기는 났으면서도 일부러 마주 보면서 그리로 걸어갑니다. 스칩니다. 「하도롱」빛 피부에서 푸성귀 내음새가 납니다. 「코코아」빛 입술은 머루와 다래로 젖었습니다. 나를 아니 보는 동공에는 정제된 창공이 「간쓰메」가 되어 있습니다.’

 

산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을산삼이 풀어져 흐르는것으로 표현했다. 백채(白菜)는 배추를 말한다. 이상은 시골 개울가 징검다리에 N자 모양으로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젊은 아낙네와 마주친다. ‘하도롱은 펄프로 만든 다갈색의 종이다. 젊은 아낙의 얼굴을 하도롱, 코코아, 머루, 다래로 형상화한다. 이상의 관찰력이 정점을 이루는 것은 그가 포착해낸 젊은 아낙의 눈망울에 있다. ‘간쓰메는 통조림의 일본말이다. 물동이를 이고 지나가는 아낙네와 스쳐가는 그 찰라의 순간, 그가 잡아낸 이미지는 사진으로 치면 수십 장 분량이다. 그중 최고가 아낙의 동공에 걸려 있는 그림 같은 하늘의 빛깔과 형상이었다.

 

그날 하늘의 풍광은 아낙의 눈망울에 담겼다가 다시 이상의 눈망울 속에 영롱하게 새겨졌다. 마치 고흐가 자신은 성당보다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한 것처럼. 사람의 눈은 그 아무리 장엄하고 인상적인 성당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고 고흐는 말했다. 그래서 요람에 누워 있는 아이의 눈동자를 들여다 보면 그 속에 무한(無限)이 담겨 있노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이상도 시골 개울가에서 사람과 마주치는 짧은 순간에 이미지와 의미들을 사진처럼 포착한 것이다. 셔터를 눌러결정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듯이.

 

관찰과 창조성

 

스스로 관찰력을 한번 되돌아보자. 우리는 대도시의 교차로에 한번쯤 멈춰본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관찰하나? 신호등, 하늘, 이정표, 간판, 빌딩 말고 다른 무엇을 보는가? 소설가는 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보는 걸까? “네거리에 차가 막혀 있는데 우리나라 모든 네거리의 풍경은 제1열에 퀵서비스가 나옵니다. 오토바이 대열이 일렬로 맨 앞에 도열하죠. 이 사람들은 거리의 야생동물이나 맹수들처럼 목숨을 건 생존의 투사들이죠. 이 사람들을 보면 참! 그 빼도 박도 못하는 삶이라는 것은 땅 위에 들러붙어서 괴롭지만 저것은 참 경건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퀵서비스는 역동적이고 정말 생존의 투사들이죠.”

 

<공무도하가> 저자와의 만남에서 소설가 김훈이 소개한 퀵서비스 오토바이에 대한 관찰내용이다.6  퀵서비스 오토바이를생존을 위한 거리의 야생동물이라 연상해본 적이 없던 독자들은 의아하고 신기한 눈망울로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네거리 교차로에서 사람들의 풍경, 2열 자동차 안의 사람들과 제1열에 자리한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살펴본 관찰력의 소산이다. 무심코 지나쳐온 그 빈번한 일상 속에서 작가는삶의 경건함을 건져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가들이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느냐어디서 아이디어를 구하느냐. 김훈의 답변은 예상을 뒤집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글쓰기나 책 읽기가 아니라 노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놀이는 박물관 구경가기, 동물원·식물원 구경가기, 호수에 오리 보러 가기, 강가에 나가서 어슬렁거리기, 겨울 하늘에 연날리기, 고적 구경가기, 자전거 타기, ·고등학교 운동장에 아이들 보러 가기 같은 것들이다. 나의 놀이는 아무런 목적이 없는 허송세월에 가깝다.’ 김훈의 창조성은 허송세월하듯바라보는시선에서 나오나 보다.7

 

김훈에게 관찰이 어떤 의미인지 더 들어 보자. “나한테는 중요한 물건이 두 가지 있어요. 자전거와 망원경입니다. 특히 망원경은 중요한 물건이라서 다섯 개나 있어요. 멀리 있는 경치를 전체적으로 보는 망원경, 멀리 있는 작은 것을 당겨서 보는 망원경 등이 있죠. , 별을 보는 망원경도 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배낭에 망원경 다섯 개와 김밥 한 줄을 넣고 바닷가나 강가에 가서 하루 종일 있어요. 나는 혼자서 깨가 쏟아지게 놉니다.”8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에 대해 심사위원들은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고 평한 바 있다. <칼의 노래>는 관찰과 사색이 서로 뭉그러지며 켜켜이 빚어진 빗살무늬 토기 같다. 오십이 넘어 현충사의 이순신 장군의 칼 앞에서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다 집필을 결심하게 됐단다. 장군의 전승지를 따라 망원경과 지도를 들여다보며 수백 년 전 조선 수군사령관의 심정이 돼 보려 했단다. 그렇게 탐색과 사색을 층층이 포개다가글쓰기의 충동이 생기면 그의 관찰은 허송세월이 아니라 창작의 불가마로 전환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관찰

 

사갈골문학회는 특별하다. 대부분 일흔을 넘겨 처음 한글을 배운 노령의 회원들이 만든 모임이다. 지금은 모든 회원들이 시를 쓴다. 충북 음성군 노인복지회관에 터를 잡은 문학회다. 한충자 할머니도 일흔두 살에 거기서 한글을 배웠다. 결혼 50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그녀의 화장대에는 두툼한 원고뭉치가 쌓여갔다. 언제부턴가 시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를 쓰고 난 뒤 한충자 할머니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할머니는 일하다가 들국화 냄새도 맡아보고 돌멩이도 들춰보게 됐단다. 예전에는그것이 그것이여!’라고 말할 줄밖에 몰랐는데 이제는 수박과 벌이 서로 사랑한다고 시를 짓게 됐다. 화장대 서랍이 넘칠 때 즈음, 한충자 할머니는 시집을 펴냈다.

 

음식점 주인도 관찰한다. 어느 음식점 주인은 사업에서 실패를 맛보고 60대 초반에 음식점을 개업하기로 했을 때 막막했다. 투자 여력이 넉넉하지 않아 권리금이 없고 발전전망이 좋은 신흥상권을 찾다가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업무지역을 살피게 됐단다. 고깃집을 열려고 보니 상암단지에만 고깃집이 서른두 개였다. 그중 절반은 직접 찾아가 음식을 맛보고 가격, 품질, 규모, 서비스, 특징을 파악해나갔다. 나머지는 전화를 걸어단체예약을 하려는데요하며 가격, 좌석 수, 주차장 등을 꼼꼼하게 탐문했다. 몇 개월의 관찰, 조사, 분석을 거쳐 수입 소고기 전문점을 열기로 했다. 너무 비싼 한우 전문점과 너무 흔한 삼겹살집은 피하기로 했다. 회식모임, 지인모임, 친구모임, 가족모임 등 고객층을 두루 겨냥했다. 도보 손님이 드물기에 주차장 조건을 가장 중요하게 따졌다. 당시 상암단지 고깃집 중에서는 100석 규모가 최대였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딱 1.5배만 더 크게 개업하기로 했다. 업무지역은 주말장사가 힘겹다. 그래서 업무단지와 주택단지가 만나는 접경에다 가게를 열었다. 개점 1년이 지나고 2호점까지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고깃집 사장님은 서울의 주요 업무단지를 몇 개월 동안 발품을 팔아 걸어 다니며 살펴보고 또 살펴보았노라고 했다. 절대로 실패하면 안 될 절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주부들의 관찰력이 세계로 퍼져나간 사례도 있다. 주부들은 토스트기에 먼지가 들어가는데 씻거나 닦아낼 수 없어서 불만이었다. 필립스는 한국 주부들의 불만을 제품혁신에 반영했다. 한국 주부들의 고충지점을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만들었다. 필립스의 마케팅 임원은 2007년 뚜껑 달린 토스트기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선보였으며 연이어 유럽과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고 했다. ‘편의성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건강에 민감한 한국인들을 고려해 기존 기기의 성능을 개선한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며 한국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춘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9

 

관찰의 나침반

 

관찰(觀察)의 한자를 쪼개면 황새와 제사가 나온다. ()은 황새 관(?)과 볼 견()이 합쳐져 황새의 눈으로 본다는 뜻이다. ()은 갓머리(?)를 씌워 집을 나타낸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집에서 여러 가지를 빠짐없이 살핀다는 뜻이다. 관찰이라는 단어에는 황새가 물가에서 먹이를 잡고 사람들이 제사용품을 꼼꼼하게 챙기려는 행동의 적극성이 담겨 있다. 그저 한발 뒤로 물러나 관망상태를 유지하는 수동성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리처드 파인만은 화가인 친구가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꽃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겠느냐며 자신을 조롱한 경험에 대해 말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 구조와 작용 원리에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반박했다. 사물의 이름을 알았다고 해도 사물의 이치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사물의 표면만을 보고 알고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세계가 움직이는 패턴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과학이 세계를 탐구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는다면 관찰은 탐구의 도구이자 해결책의 디딤돌로 이용될 수 있다.

 

과학자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는 <과학의 새로운 언어-정보>에서 과학적 관찰은 무질서한 데이터에 형상(form)을 주입(in)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데이터가 쌓이면 저절로 정보(information)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개입을 통해 데이터 속의 형상이 드러난다. <그림 5> <과학의 새로운 언어-정보>에서 제시한 관찰, 분석, 정보화 작업의 과정을 재구성한 것이다. 관찰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의미를 얻을 수 있는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관찰의 목표는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관계파악에서 출발해 모양, 패턴, 구조, 배열, 배치, 질서, 조직적 연관을 찾아내는 것으로 확장돼야 한다. 세잔이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조화를 찾고 독창적으로 대상물을 다시 배열하며 그림 속에 형상화한 것과 일치한다.

 

견관진(見觀診). 김성근 감독이 제안한 세 가지 관찰법을 다시 되새겨본다. ()은 말 그대로 그저 보는 것이다. ()은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은 의사들이 환자를 진찰할 때 사용하는 눈이다. 치열한 관심과 전문가적인 식견이 요구된다.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을 살리려는 눈이다. 리더가 목표로 해야 하는 눈이 바로 진()이고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이라고 김성근 감독은 강조한다.10

 

회계사를 위한 데생수업

 

픽사(Pixar) 애니메이션에는 사내 대학이 있다. 모두 110강좌가 넘는다. 임직원들은 1주일에 4시간 수업에 참여한다. 정문 수위부터 CEO까지 모두에게 열려 있다. 픽사 재무부서의 회계사가 데생수업을 듣고 있었다. 굳이 회계사가 데생수업을 들어야 할까? 애니메이션 회사라고 너무 일방적으로 수업참여를 강요한 것은 아닐까? 픽사 CEO의 답변을 들어보자. “회계 담당자에게 데생을 왜 가르칠까요? 데생 수업은 그림 그리는 것만 가르치는 게 아니니까요. 그 수업을 통해 관찰력이 향상됩니다. 직원들이 뛰어난 관찰력을 갖추겠다는데 이걸 말리는 회사가 있을까요?”11

 

시각장애인들이 매년 사진전을 열고 있다. 이 사진전의 이름은마음으로 보는 세상이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한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자신이 대학 총장이 되면눈을 사용하는 법이라는 강좌를 개설할 것이라고 했다. “앞을 볼 수 없는 내가 무엇이건 볼 수 있는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힌트가 있다. 내일 장님이 된다고 상상하고 오늘 당신 눈을 사용해 보라.” 만나는 감각마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만끽하는 행복감에 휩싸일 것이라고 그녀는 장담했다.

 

화가도 사진작가도 시인이나 소설가, 애니메이션 제작자나 회계사가 아니어도 우리는 매일 보고 또 보며 살고 있다. 어쩌면 새롭게 보는 것의 장애물은 시력이 아니라 마음가짐인지 모른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보던 대로만 보려는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P&G는 시장조사팀에 문화인류학자들을 대거 참여시켰다. 전통적인 조사기법으로는 새로운 고객통찰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해 행동 속에 숨어 있는 패턴과 이유를 탐색한다. 개입하지 않고 먼저 관찰한다. 그들에게 관찰은 통찰의 선행조건인 셈이다.

 

컴퓨터 지도에는 확대(Zoom-In)와 축소(Zoom-Out) 기능이 있다. ⊕?기호로 표시한다. 관찰 너머 통찰을 얻으려면 확대·축소의 기계적 반복으로는 어림없다. 관찰의 대상 속으로 깊이 침잠해 같은 호흡으로 생각해야 해법에 도달할 수 있다. 마오쩌둥은조사와 연구는 열 달간의 임신과 같고, 문제해결은 하루 만의 분만과 같다고 했다. 결국 우리가 도달하고 싶은 경지는 관찰의 깊이, 고심의 강도, 모색의 차원에 따라서 결정된다. 다시, 지도의 출발은 돌멩이였다. 가장 절실한 대상을 관찰하고 가장 절박한 정보를 기록했다. 생존을 위한 최선책을 돌멩이에 아로새겼다.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관찰과 기록의 다큐멘터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송규봉 GIS United 대표 mapinsite@gisutd.com

필자는 ㈜GIS United 대표를 맡고 있으며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GIS를 전공했으며 와튼경영대학원과 하버드대에서 GIS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미국 인터넷산업의 지도> <비즈니스 GIS> <지도, 세상을 읽는 생각의 프레임> 등이 있다.

 

  • 송규봉 송규봉 | - (주)GIS United 대표
    -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겸임교수
    - 와튼경영대학원, 하버드대 GIS연구원
    mapinsite@gisut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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