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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Bestselling Author: <롱테일 경제학> <메이커스> 크리스 앤더슨

취미로 만들고 나누는 ‘메이커스’혁신적 미래창조의 보물창고

조진서 | 143호 (2013년 12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허태영(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12, ‘미완의 우주인으로 불리는 고산 씨가 3D프린터 업체를 세웠다. 고 씨가 자리 잡은 곳은 종로와 청계천 사이, 지은 지 40년도 넘은 허름한 세운상가다. 이 지역에 있는 수많은 영세 수공업자들과 시너지 효과를 보기 위해서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세운상가는 한국의 실리콘밸리라고 할 수 있죠. … 만약 샌프란시스코에 세운상가와 같은 곳이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했었을 것입니다1 라고 말했다.

 

2013 4, 세계 최초로 1인 인공위성을 제작해 러시아 로켓편으로 우주로 쏘아올린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 씨도 청계천의 힘을 빌렸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우주의 혹독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인공위성 부품들을 청계천 일대에서 구했다. 인공위성 이름도청계천호라 붙였다. 이들의 사례가 알려지며 탱크나 미사일도 똑같이 만들 수 있다는 청계천 일대 소규모 제조업자들의 경쟁력이 새삼스럽게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도 예정돼 있던 세운상가 일대의 대규모 재개발 계획을 2013 6월 철회했다. 내년 1월까지 재정비계획 변경안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최근의창조경제트렌드에 맞는 제조업 벤처 클러스터로의 발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렇게 소규모 제조업의 경쟁력을 살려 경제발전의 한 동력으로 삼자는 분위기는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메이커스(Makers)’ ‘팹랩(Fab Lab)’ 운동과도 맞닿아 있다. 메이커는 취미로 집이나 사무실에서 공구를 이용해 물건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팹랩은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 선반, CAD/CAM 장비, 3D프린터 등의 공작기계를 갖다 놓고 누구나 와서 쓸 수 있게 만든 공동 작업장을 말한다. 이 두 가지 트렌드는 이제 누구나 필요한 물건을 직접 제조하거나 주문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상징한다. 1970년대와 80년대,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같은 컴퓨터광들이 집적회로(IC)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가정집 차고에서부터 IT 혁명을 이끈 것처럼 제2의 제조업 혁명 역시 풀뿌리에서 시작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메이커는 뜻밖에도 언론인 출신이다. 크리스 앤더슨은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로, 과학 저널 <사이언스> <네이처>의 편집자로 일했으며 2001년부터 2012년까지 12년 동안 과학기술 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장을 지냈다. 그는 또 경영 베스트셀러 <롱테일 경제학>의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취미였다는 앤더슨은 2007긱 대드(GeekDad)’라는 DIY(do-it-yourself) 동호인 사이트를 만들더니 2009년엔 3D로보틱스라는 소형 무인비행기 업체를 창업했다. 2012년부터는 <와이어드>의 편집장 직을 내려놓고 사업에 전념하고 있는 한편 <메이커스>라는 책을 펴내 메이커스 운동의 비공식 대변인 역할을 해왔다. 현재 3D로보틱스는 개인용 경량 무인항공기 분야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크리스 앤더슨

 

우연한 창업

 

앤더슨이 실리콘밸리에서 IT가 아닌 제조업으로 창업하게 된 계기는 청소하다 발견한 외할아버지의 옛 문서들이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자동차 엔지니어이자 아마추어 발명가로 생전 총 27개의 특허를 냈는데 그중 상업화에 성공한 것은 단 하나, 자동 타이머가 부착된 스프링클러였다. 이 특허는 1950년대 한 대기업이 상용화해서 미국 전역에 빠르게 보급했다. 하지만 발명가의 몫으로 돌아오는 돈은 많지 않았다. 발명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디어 제공일 뿐, 공장을 세우고 마케팅을 하고 영업사원을 길러내는 건 자본을 가진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외할아버지의 옛 문서를 보고 자극을 받아 자기도 직접 새로운 스프링클러를 발명해 팔아보기로 한다. 그와 동업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조종할 수 있는 온라인 스프링클러를 디자인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DIY 전자기판을 이용해 직접 회로를 설계했고 이 디자인 파일을 e메일로 금형 공장에 보냈다. 금형은 다시 사출 공장으로 배달돼 생산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오픈 스프링클러는 현재도 인터넷에서 150달러 정도에 팔리고 있다. 완제품을 판매하기까지 디자인과 제조, 웹사이트 구축에 앤더슨이 투자한 돈은 고작 5000달러에 불과하다. 60여 년 전 그의 외할아버지가 특허를 출원하는 데 썼던 돈보다도 적다.

 

그가 소형 무인비행기(드론)를 제조하게 된 과정은 이보다도 쉬웠다. 앤더슨은 <와이어드> 편집장 일을 하면서 취미로 드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터넷 동호회(www.diydrone.com)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이 맞는 동호인들과 함께 드론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조금씩 설계해 나갔다. 물론 어려운 부분은 앤더슨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했다. 부품은 중국, 캐나다, 대만 등지에서 수입했다. 조립도 전문 공장으로 아웃소싱했다. 앤더슨 본인이 한 일은 완성된 비행기 몸체가 도착하면 부엌 바닥에 늘어놓고 소프트웨어를 탑재시킨 후 박스로 포장한 게 전부였다.

 

3D로보틱스의 소형 무인항공기

 

재미삼아 시작한 일이었지만 소형 드론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군사용 드론은 거대 방위산업업체에서 독점하기 때문에 민간 개발자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나 항공촬영, 작은 물품 운송 등에 쓰이는 저가형 드론은 관련 규제도 적고 작은 규모로도 충분히 완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자 앤더슨은 <와이어드>를 그만두고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아 샌프란시스코 인근 버클리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R&D 센터는 샌디에이고에, 제조공장은 멕시코에 세웠다. 이렇게 해서 파트타임 발명가였던 언론인은 얼렁뚱땅 중견 제조기업의 창업자겸 CEO가 됐다. 자기 돈은 거의 들이지 않았다.

 

 

메이커스 운동을 가능하게 한 네 가지 요인

 

어떻게 해서 이처럼 IT 분야와 마찬가지로 제조업 분야에서도 발명과 창업 사이의 벽이 낮아지게 된 걸까? <메이커스>에서 앤더슨은 네 가지 이유를 말한다.

 

첫째, 3D프린터와 레이저커터를 비롯한 소형 공작기기의 보급이다. 예전에는 기계를 깎거나 만드는 밀링머신, 자동화 선반 등에 필요한 공구는 값도 최소 수천만 원씩 했고 덩치도 커서 집안에 들여다 놓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집이나 연구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저가의 제조장비들이 보급되고 있다. 과거 대학교나 정부기관에서나 썼던 컴퓨터가 이제는 집집마다 몇 대씩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저가 장비들로 기계를 대량 생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제품을 만들고 시험하는 데는 충분하다.

 

둘째, 인터넷의 발달, 그리고 국제 택배와 같은 유통망의 발달로 부품조달과 아웃소싱이 쉬워졌다. 알리바바닷컴을 이용하면 내가 원하는 부품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중국 어디에 있는지 금세 찾을 수 있다. 페이팔(Paypal) 등의 온라인 결제수단을 통해 대금 지급도 간편해졌다. 또 국제 물류망의 발달로 중국에서 만든 부품이 일주일이면 캘리포니아에 도착한다. 심지어 이제는 자본도 인터넷에서 조달한다. ‘킥스타터같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아이디어만 가지고도 전 세계 투자자들을 쉽게 끌어모을 수 있다.

 

셋째, 도요타식 JIT(Just-In-Time) 제조기법의 확산과 공급망의 민주화다. 현대의 자동차 회사들은 점점 더 많은 부품을 아웃소싱한다. 수천 개의 협력업체들과 재고상황을 24시간 공유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의 부품만 받는다. 이런 부품 업체들에 메이커스 기업이 소량의 부품을 주문하면 우선순위는 대기업에 밀리고 단가도 상대적으로 높지만 어쨌든 생산은 해주기도 한다. 자신만의 제조시설 없이도 제조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종 조립과 포장까지 대신 해주는 공장들도 많이 생겼다.

 

넷째,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에서부터 보람을 찾는 메이커스 문화의 확산이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대형 커피숍 체인보다는 손으로 내려주는 커피 공방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공산품 역시 대량 생산된 물건보다는 나만의 취향에 맞춘 물건들을 찾거나 아예 직접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LCD TV 같은 고가의 가전제품도 부품을 사다가 집에서 직접 조립하는 사람들이 있다.

 

3D로보틱스의 경우 정규 연구인력은 20여 명에 불과하지만 온라인 드론 동호회 회원 80여 명이 무보수로 개발에 참여한다. CTO인 조르디 무노즈(Jordi Munoz) 역시 동호인 출신이다. 그는닌텐도 Wii’ 게임기의 행동인식 센서를 개조해 드론의 자세제어장치를 만들어 온라인상에서 유명해졌다. 당시 그는 불과 22세였고 영어도 못하는 멕시코인인데다가 대학 졸업장도 없었다. 하지만 앤더슨은 그를 CTO로 전격 발탁했고 무노즈는 동호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신화가 됐다.

 

3D로보틱스가 자발적인 메이커스 문화를 이용해 성공한 비결은 무얼까? 또 이렇게 메이커스 문화에 기반을 둔 기업이 틈새시장 공략을 넘어서 글로벌 대기업들이 지배하는 주류 제조업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까? 앤더슨은 전작 <롱테일 경제학>에서 이미틈새상품 각각의 매출은 적지만 그것의 총합은 히트상품과 맞먹거나 능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의견을 듣기 위해 앤더슨을 전화 인터뷰했다. 통화는 어렵게 이뤄졌다. 그는 낮에는 100여 명의 직원을, 밤에는 다섯 명의 자녀를 돌본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이 유일한 자유시간이라면서 운전 중에 무선 헤드셋으로 전화를 받았다. 대화는 일주일 후 현지시간 오전 7시에 다시 이어졌다.

 

사업은 잘되나?

 

잘된다. 매년 100%씩 성장하자는 목표를 계속 달성해왔다(비상장 기업으로 자세한 수치는 밝히지 않았다). 드론 산업 전체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창업에 자본금은 얼마가 들었나?

본인의 돈은 얼마나 투자했나?

 

벤처캐피털로부터 510만 달러를 받아 창업했다. 조만간 두 번째 라운드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2  내 돈은 전혀 넣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돈 없이도 얼마든지 창업이 가능하다. 내 주위에서 자기 돈으로 창업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25세 안팎의 청년들이고 이들은 대부분 돈이 없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창업자의 열정과 헌신을 판단할 때 돈이 아니라 시간을 본다. 창업자가 자신의 시간 100%를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

 

3D로보틱스에서는 동호인들이 제품 개발에 큰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동호인들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동호인들에 의해서, 그리고 동호인들을 위해서 만들어진다. 이들은 드론 개발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는 것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소프트웨어 시스템들은 특허 출원 없이 모두가 온라인상에 공개된다. 그래서 수백 명이 동시에 같은 주제를 놓고 연구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다. 창업 초기에는 하드웨어 제작에도 커뮤니티가 많이 기여했지만 현재 하드웨어는 대부분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다.

 

CTO인 조르디 무노즈도 동호인 출신으로 채용 당시 22살이었다고 들었다. 나이가 걱정되진 않았나?

 

 

 

처음 온라인상에서 그를 봤을 때는 나이를 몰랐다. 워낙 뛰어난 사람이었으므로 나이 같은 걸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아마 1년쯤 지난 후에야 그의 나이를 알게 된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이 어려서 놀랐지만 그게 채용에 문제가 되진 않았다.

 

사람에게 좌뇌와 우뇌가 있듯이 사업에는 외향적인비즈니스 가이와 내성적인테크 가이가 모두 필요하다. 나와 무노즈는 나이 차이도 많고 국적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그런 차이점들은 문제가 되기보다는 CEO CTO로서 서로를 보완해주고 좋은 팀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커뮤니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회사 일을 도와주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리가 안 돼서 힘들 것 같다. 기업에서처럼 매니저가 강제로 시킬 수도 없지 않은가?

 

천만에.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도 기업 내부 프로젝트의 진행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커뮤니티의 프로젝트 리더들은 회사에서 하듯이 개발 로드맵을 만들고 매일, 혹은 매주 미팅을 갖는다. 개발 목표, 납기 기한과 마일스톤도 정해진다.

                          

물론 강제적인 것은 아니므로 자원봉사로 일하는 사람들이 기한에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커뮤니티 안에서 그 멤버에 대한 실망감이 높아지므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기 마련이다. 오픈소스 커뮤니티 안에는 팀에 대한 강력한 충성심이 형성돼 있다. 또 수백 명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책임감도 생긴다. 동료들 간의 압력(peer pressure)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책에도 썼지만 이런 자발적인 참가자들에겐 돈만이 보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많은 기여를 한 사람에겐 스톡옵션을 줄 수도 있지만 조금 기여한 사람에겐 머그컵을 주는 것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한 체계가 우리가 실제로 쓰고 있는 시스템이다.(그림 3)

 

 

커뮤니티에서 개발을 잘하는 팀을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채용한 적은 없는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커뮤니티 참여자들은 자기 직업이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같은 좋은 직장에서 괜찮은 연봉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월급 많이 받으며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들에게 드론 시스템 제작은 밤에, 주말에만 하는 활동이다. 직업(vocation)이 아니라 취미(avocation), (profession)이 아니라 열정(passion)이다.

 

커뮤니티를 위한 오프라인 행사도 개최하나?

 

물론이다. 드론콘(DroneCon)이라는 행사를 콜로라도에서 매년 개최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업계 관계자들이 모두 모인다. 작은 규모의 행사는 좀 더 자주 열린다.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게 커뮤니티 문화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메이커스’ 기업들이 제조업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패션이나 맥주 산업 등의 예를 보면 이런 식의 기업들은 산업을 좀 더 다채롭고 혁신적으로 만들어주지만 주류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나도 주류가 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메이커스 운동은 혁신과 기업가정신의 근원이고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는 주로 창업 단계에 해당하고, 사업이 커지고 대량 생산에 들어가려면 메이커스 모델에서 빠져나와 전통적인 제조업 모델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커뮤니티 활동에 많이 의존하고 있지만 이제 제조는 생산라인 위에서 이뤄진다. 나 개인적으로도 여전히 메이커스 운동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지만 회사에서는 제조업체의 CEO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많은 측면에서 우리는 이미 삼성 같은 전통 제조업체와 다르지 않다.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삼성이나 우리나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플랫폼을 완전히 오픈해서 누구나 이를 기반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구글이 만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모토로라나 삼성, LG 같은 회사는 자체 생산라인에서 핸드폰의 하드웨어를 만들지만 이들은 모두가 안드로이드라는 플랫폼 위에서 돌아가고 또 그 플랫폼 위에서 혁신적인 앱과 서비스를 만든다. 그것이 플랫폼의 힘이다. 우리가 하는 게 바로 그런 거다. 플랫폼을 만들면 커뮤니티 안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들이 개발된다.

 

제조 경쟁력도 문제지만 마케팅 측면에서도 메이커스 기업들은 대기업에 비해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아니다. 정반대다. 대기업보다 메이커스 기업들이 마케팅에 훨씬 유리하다. 메이커스 기업의 마케팅은 제품만 홍보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 자체, 그들의 아이디어 자체가 커뮤니티의 일부다. 마케팅을 잘 못하는 사람은 애초에 메이커스 기업을 차리지도 못한다.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때만이 메이커스 기업을 만들 수 있다. 메이커스들은 스스로도 이런 커뮤니티 활동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 다만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에반젤리즘(evangelism)’ ‘커뮤니티 빌딩(community building)’ 등의 용어를 쓴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 다른 강점은 커뮤니티의 피드백이다. 일반 제조기업들은 가지고 있는 기술을 대외 비밀로 유지하지만 메이커스들은 아이디어가 생길 때마다 이를 커뮤니티에 공개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이를 기반으로 제품을 개선시켜 나간다. 우리 회사 역시 어떤 기술도 특허로 등록하지 않는다. 커뮤니티에 100% 공개한다. 미래에도 계속 이렇게 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방침을 바꿀 생각이 없다.

 

특허제도를 불신하는 것 같다.

 

특허는 원래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드러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다. 혼자서만 알고 있지 말고 특허로 등록해서 다른 사람도 볼 수 있게 만들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남들에게 내 기술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기술을 남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쓰이고 있다.

 

현대에는 오픈소스(open source) 운동이 그런 취지에 더 부합한다. 소프트웨어를 보자. 당신은 어떤 인터넷 브라우저를 주로 쓰는가? (기자: “크롬”) 오픈소스다. 전화기는 어떤 운영체제를 쓰는가?(기자: “안드로이드”) 역시 오픈소스다. 이미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오픈소스가 보편화됐다.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일어난 일들을 하드웨어 산업에서도 해보자는 게 바로 메이커스 운동이다.

 

그렇다면 메이커스 운동의 중심지도 실리콘밸리인가?

 

그렇지 않다. 이탈리아나 영국, 베트남 같은 나라에서도 메이커스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중국 역시 강력한 제조, 혁신 경쟁력을 갖고 있는 메이커스 국가다. 물론 중국에서는 오픈소스의 전통이 그리 길지는 않다. 오픈소스보다는산자이문화인데, 이걸 굳이 설명하자면도둑질(piracy)이긴 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혁신 커뮤니티 기반의 도둑질이라 볼 수 있다.3

 



한국처럼 시장이 작은 나라에서도 메이커스 기업이 통할 수 있을까?

 

한국은 대기업이 경제를 주도하는 나라지만 그래도 똑똑한 사람들과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부족하지는 않으니 메이커스 기업들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처럼 작은 나라뿐 아니라 이젠 어떤 나라에서도 자국 시장만을 보고 제품을 개발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을 잘 이용해서 창업 첫날부터 글로벌 시장을 노린다는 생각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영어 실력이 부족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사실이다. 이에 대해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안타깝다.

 

메이커스 운동이 퍼져가는 동시에 3D컴퓨터 등 소형 제조 장비의 보급으로 불법 총기를 만든다거나 하는 등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높다. 드론 역시 불법적인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드론은 컴퓨터와 같은 범용 기술이다. 누군가가 컴퓨터로 바이러스를 만들어 뿌릴 수도 있지만 컴퓨터라는 기술을 만든 사람에게 상상 가능한 모든 나쁜 행위를 방지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컴퓨터나 드론, 3D프린터가 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 기술을 안전하고 착하고 책임감 있게 사용하라고 권할 뿐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 법의 테두리 안에서 드론을 사용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누군가 한국에서 법을 지키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설령 우리 같은 기술 제공자가 불법적인 용도의 사용을 강제로 막으려고 시도한다 해도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불법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낼 것이다.

 

다른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기술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장난감 가게에서도 드론을 팔고 있다. 사회가 기술의 사용을 적절히 규제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은 책에서메이커의 궁극적 꿈은 자연이 생물을 만들 듯 물질을 프로그램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드라마 <스타트렉>에 나오는 물질재조합장치(replicator)4 드라마에선 원자를 마음대로 재조합해서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주는 장치로 묘사된다. 식량, 생필품, 각종 장비와 자재에 이르기까지 컴퓨터가 원자의 배열을 알고만 있다면 그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일종의 3D프린터다. 닫기 SF소설에 나오는 물질편집기(matter compiler)5 의 예를 들었다. 이런 것들이 정말 미래에는 현실이 될까?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이 바로 물질편집기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한 그루의 나무는 탄소, 수소와 같은 원자들로 이뤄져 있다. 그것이 어떤 마법과 같은 자연의 힘에 의해 DNA구조대로 조합돼 나무를 이루고 있다. 자연은 물질을 재조합하고 물질을 편집한다. 그러니 사람도 물질의 재조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기계들은 공장에서 상자, 책상 같은 것들을 자동으로 조합해내고 있다. , 자연이 하고 있는 수준까지 이르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가 문제다.

 

석기 시대의 기술 수준을 1단계, <스타트렉>에 나오는 물질재조합장치의 기술 수준을 10단계라 해보자. 현재 인류의 과학기술 수준은 1단계에서 10단계 사이 어디쯤 와 있다고 생각하나.

 

아직 시작 단계, 1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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