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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트렌드

리듬감 있게 깜빡이는 맥북의 LED 무생물에 생명력 줘 몰입감 높이다

조진서 | 142호 (2013년 12월 Issue 1)

 

 

라스베이거스의 대형 카지노들은 새벽시간마다 객장 안에 산소를 불어넣는다는 설이 있다. 고객들의 잠을 깨워 객실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인데 밝혀진 바는 없지만 사실이라면 물론 불법이다. 실제로 카지노들은 그렇게 위험한 방법으로 고객을 붙잡지 않는다. 객장 구조, 슬롯머신의 알고리즘, 게임기 디자인, 객장 내 동선, 직원의 태도 등을 인간공학적으로 설계해 고객 스스로가 카지노에 조금이라도 오래 남아 있고 싶게 만든다.

 

MIT대에서 인류학을 연구하는 나타사 슐(Natasha Schull) 교수는 15년 동안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산업을 연구해 2012 <중독 설계(Addiction by design)>라는 책을 펴냈다. 그에 따르면 과거의 카지노는 007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술과 낭만이 있었고 포커처럼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카드게임이 중심이었다. 중독성도 훨씬 적었다. 하지만 현대의 카지노에는 훨씬 비인간적이고 중독성이 심하다. 도박의 주무대는 이제 여럿이 둘러앉는 포커테이블이 아니라 1인용 슬롯머신의 현란한 LCD 스크린이다.

 

슐 교수에 따르면 슬롯머신 중독자들은 이기기 위해, 혹은 돈을 따기 위해 게임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게임 그 자체다. 상금은 단지 게임을 좀 더 오래 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에 불과하다. 중독자들은 현실의 자아를 잃어버리기 위해 슬롯머신에 몰입한다. 카지노 운영자들이 객장을 그렇게 디자인한 측면이 있다는 게 슐 교수의 관찰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설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비자들이 쉽게 몰입되고 또 오래 사용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쳐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중독성을 가져서는 안 된다. 소비자가 쉽게 몰입할 수 있으면서도 거부감을 갖지 않고 중독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독과 몰입의 경계선은 어디에 있을까? 학자나 규제당국이 아닌 기업 실무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국내에서 UX 디자인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기업 중 하나인 SK텔레콤의 나대열 UX 팀장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그는 리얼네트웍스, LG전자 등을 거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모두 경험한 20년 가까운 UX 경험이 있는 전문가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UX(user experience)를 설계하는 기업 담당자로서 중독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중독과 몰입은 어떻게 다른가?

 

우선 중독이 무언지 생각해보자. 흔히 사람이 어떤 일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들 한다. 지식 기반(knowledge-based)의 행동, 규칙 기반(rule-based)의 행동, 기술 기반(skill-based)의 행동이다. 지식 기반의 행동은 완전히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처음 자동차 운전을 배웠을 때를 기억해보자. 자동차에 딸려 나오는 매뉴얼을 보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시동을 켜는 법, 기어를 조작하는 법, 핸들을 조작하는 법 등을 익혔을 것이다. 커브를 틀 때면 운전대를 잡고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돌려야 하는지를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운전대의 회전에 따라 차가 얼마나 회전하는지를 조심스레 관찰하고, 또 그에 맞게 운전대를 더 돌려야 하는지, 덜 돌려야 하는지 가늠해본다.

 

운전이 완전히 숙달되면 이렇게 의식적으로 움직이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운전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 가야 하면 굳이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내 팔이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다. 이것이 기술 기반의 행동이다. 몸에 완전히 익은 상태다. 마지막으로 규칙 기반은 이 중간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면 앞으로 나가고 빨간불이 들어오면 멈추고 등 어떤 규칙에 맞게 반응하는 상태다.

 

중독은 몸과 마음이 기술 기반의 상태가 될 때 생긴다. 사람의 뇌는 다른 신체기관이나 근육과 마찬가지로 관성이 있다. 팔다리 근육이 어떤 움직임에 익숙해지면 그 움직임만을 계속 하게 되는 경향이 있듯이 뇌 역시 어떤 활동을 계속 반복하면서 익숙해지면 자꾸 그 활동을 하려고 하는 관성이 있다. 이런 각인 효과가 곧 중독이다. 중독은 반복에 따른 관성이 커지고 정상적인 생활에 지장을 주며 자제력으로 극복이 안 되는 상태다.

 

반면 몰입은 어떤 일의 즐거움이 증가하고 생산적인 일이 될 때,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상태일 때를 말한다. 만일 우리가 게임적인 요소를 도입해 몰입성 높은 휴대폰을 만든다고 하자. 그런데 몰입의 정도가 지나쳐서 중독성이 강해서 사용자가 휴대폰을 조작하는 행위 그 자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가 되면 그건 더 이상 휴대폰이라고 부를 수 없다. 중독성 있는 게임기기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부에서도 게임기에 해당하는 규제를 할 것이다.

 

, 제품이나 서비스를 디자인할 때는 관성의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출구가 없다면 중독이 된다. 따라서 사용자가 원할 때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 창구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중독성 있는 UX의 예를 들자면?

 

카지노의 슬롯머신이나바다이야기같은 중독성 높은 도박 게임은 간단한 경쟁 속에서 상대적 이익을 취하는 단순 반복적 행위로 이뤄져 있다. 여기의 참여자의 행위라는 변수가 추가되고 그 변수에 따라 이익이 변화한다.

 

TV의 홈쇼핑 채널도 이런 측면이 있다. 홈쇼핑을 보면 일단 판매자는 일부러 제품을 조금 부족하다 싶게 준비해 놓는다. 마치 애플이 신제품 출시하는 날 일부러 한정된 개수만 매장에 풀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는 시간이 째깍째깍 흐르면서 홈쇼핑 호스트가 몇 개 팔렸고 몇 개 남았다는 정보를 반복적으로 전해준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한정된 자원을 쟁취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시간이 가면서 자꾸 줄어드는 제품을 보고다 없어지기 전에 나도 하나 챙겨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주문은 보통 전화기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이뤄지는데 이 과정 역시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전화기 버튼을 마치 게임기 다루듯이 여러 번 눌러야 한다. 일종의 도전이고 과업(task)이다. 이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지만 꽤나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업을 마치고 구매를 확정하는 순간, 즉 어려움을 이겨내고 상을 받는 순간 소비자는 게임에서 이긴 것과 같은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홈쇼핑은 짧은 시간, 쇼호스트의 재촉, 매진 배너의 등장 등 사람을 긴장시키면서 박진감 넘치는 게임처럼 만들어 고객을 몰입시킨다. 심지어 홈쇼핑을 많이 하는 고수들은 일부러 구매 시간을 최대한 뒤로 늦춘다. 자동 ARS 기능을 이용하면서 모든 단계를 다 거치고 최후의 구매 확정 버튼만을 누르지 않고 붙들고 있다가 매진되기 직전에야 누른다. 홈쇼핑뿐 아니라 경매에서도 마감 직전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현상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중독의 폐해는 없으면서도 몰입성은 좋은 UX의 예는 어떤 것이 있을까.

 

좋은 영화에 사람들이 몰리듯이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의 콘텐츠가 좋아도 몰입성이 생기지만 콘텐츠가 아닌 인터페이스, UX에 스토리가 결합될 때도 사용자 몰입성이 증가한다.

 

애플이 만드는 맥북에는 수면(sleep) 모드가 있다. 맥북을 닫으면 작은 LED불이 깜빡이는데 그냥 깜빡이는 게 아니라 마치 동물이 잠을 자면서 새근새근 숨을 쉬는 것처럼 리듬감 있게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이걸 보고 사용자는 무생물인 맥북에서 생명력을 느낀다. 이렇게 UX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줄 때 그게 사용자에게는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

 

반면 일반적인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의 LED 등을 보자. 메시지가 도착하면 LED가 깜빡거리는데 이건 그냥 무언가를 알리기 위한 ‘notifier’의 역할에 불과하다.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고 스토리도 없다. 몰입성이 없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기본화면)도 좋은 예다. 타임라인에는 여러 사람들이 올리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데 간단한 클릭 한두 번 만으로좋아요’‘댓글달기’ ‘공유하기등의 기능을 통해 자기 주도적으로 콘텐츠의 반복적인 재생산이 가능하다. 이것도 두뇌에 각인되면서 몰입을 유발시킨다.

 

간단하게는 스마트폰 화면을 위아래 혹은 좌우로 움직일 때 화면이 튀었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는바운싱’, 버튼을 누르고 있을 때 화면이 흔들리는셰이킹효과 같은 것도 몰입성을 높여준다.

 

또 다른 재밌는 예로는 현금인출기가 있다. 현금인출기에서 입금 혹은 출금을 하면 기계에서 드르륵 돈을 세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진짜 돈 세는 소리가 아니라 녹음된 소리를 틀어주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사용자 입장에서는 현금인출기를 조작하는 것도 꽤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과업이다. 수많은 번호를 눌러야 하고 스크린에 집중하지 않으면 업무를 마칠 수 없다. 이 과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신호를 주기 위해 돈 세는 소리를 크게 들려주는 거다.

 

요즘 나오는 고급 자동차들은 열쇠 대신 스마트카드로 문이 열리고 시동이 걸린다. 카드를 대시보드에 갖다대고 조금 기다리면 소리가 나며 시동이 걸린다. 카드를 갖다 댄다고 바로 시동이 걸리지 않고 아주 약간 기다리게 하는 것도 그 자체로 몰입성이 있다. 그에 따른 보상으로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받은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중독성, 몰입성에 대한 최근 UX 트렌드는 어떤가?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을 자사 제품과 서비스에 오래 잡아놓을 수 있다면 중독성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넓게 보면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 서비스도 검색을 하러 들어온 사용자들을 자신들의 서비스 울타리 안에 잡아두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 않나. 사용자가 서비스 안에 머무르는 시간(retention time) UI, UX 디자이너의 핵심성과지표로 측정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최근에는 몽땅 다 중독성 있게 만드는 것보다는 소소한 게임 요소들을 집어넣어 재미를 주는 것이 트렌드다. 페이스북의 채팅 기능을 사용하면 ‘chat head’라 불리는 그림이 나온다. 채팅방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둥그런 아이콘으로 만들어 여기저기 움직이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런 요소들을작은 게임 요소라는 뜻에서게임렛(gamelet)’이라 부른다. 게임렛은 사소해 보이지만 기업이나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이 두 다리로 걸어가는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사람마다 걷는 모습에 따라촐싹촐싹’ ‘성큼성큼’ ‘느직느직등 다른 형용사가 붙지 않는가? UX도 마찬가지다. 작은 UX 요소에 따라 기업의 이미지까지 달라진다.

 

이런 것들을 긍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또 절제할 수 있게 이용할 수 있다면 비즈니스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기본은 그대로 있지만 서비스를 더 재미있고 편하게 쓸 수 있는 목적으로 유희적 요소를 도입한다면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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