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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창조경영

“하느님과도 계약을 했다?”유대인,미국의 정치·사법 장악 나섰다

육동인 | 138호 (2013년 10월 Issue 1)

 

 

 

 

편집자주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의 약 0.2%에 불과한 소수민족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모진 핍박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천재적인 두뇌와 시대의 흐름을 볼 줄 아는 안목을 바탕으로 전 세계 각 분야에서 최고위층의 지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주변부에서 핵심부로 올라선 유대인들의 지혜를 통해 초경쟁 시대의 생존 전략에 대한 통찰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매년 3월 초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선 미국ㆍ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란 단체의 연례총회가 열린다. 이 총회는 참석자의 면면만 봐도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올해도 미국 상원의원 100명 중 66, 하원의원 435명 가운데 320여 명이 참석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전체 의원의 70% 이상에 달하니 미국 의회를 통째로 옮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바이든 부통령이 참석했으나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지난해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당시 롬리 공화당 후보 모두 참석하기도 했다.

 

정치권의 강자로 부상한 유대인

 

이 총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롤 콜(roll call)’이라는 이벤트로 이 행사는 미국 정치권의 큰 관심사 중 하나다. 점호 또는 출석조사라는 뜻의롤 콜은 미국 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분석해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인 활동을 벌인 200명의 의원을 성적순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여기에 포함돼야 돈 많은 유대인들이 선거자금을 기부하고 선거운동도 적극적으로 해준다. 미국 정치인들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돈줄을 쥐고 있는 미국 유대인들이 이를 바탕으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제 상식처럼 돼 있다. 흥미로운 건 최근 들어 유대인들이 정치 일선에 직접 나서는 경향도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상원의원 100명 중 유대인은 모두 11명이다.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 인구 비중이 2% 안팎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비율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1978년 이후 미시간 주 상원의원직(6년 임기)을 계속 맡고 있는 칼 레빈이다. 1934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80살이나 아직도 상원의 요직 중 요직인 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임기 2년의 하원의원(총원 435) 중 유대인은 25명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상원이나 하원 모두 공화당이나 무소속 한두 명을 제외하면 거의 전원 민주당 소속이라고 보면 된다.

 

주요 도시의 시장들도 속속 유대인들이 장악하는 추세다. 인구 규모로 미국의 3대 도시는 뉴욕, 로스앤젤레스(LA), 시카고순인데 뉴욕 시장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블룸버그통신 창업주, 시카고 시장인 람 이매뉴얼 오바마 대통령의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 지난 7 LA 시장에 취임한 에릭 가세티 모두 유대인이다. 이매뉴얼 시장은 이스라엘과 이중국적을 갖고 있는 인물로 1991년 걸프전 당시 이스라엘 군대에 자원 복무했을 정도로 친이스라엘 성향을 보이는 정치인이다. 에릭 가세티 시장은 멕시코계로도 알려져 있지만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서 유대계로도 분류되는 인물이다. 유대교는 모계 혈통을 따르는 탓에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무조건 유대인으로 간주한다.

 

 

 

유대인 정치인의 특징

 

 

유대인 정치인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다는 아니겠지만 일반적인 정치인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들이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이다. 1942년 보스턴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블룸버그는 존스홉킨스대와 하버드대 MBA를 마친 뒤 유대계 투자회사인 살로먼브러더스에 입사하면서 월가에 뛰어들었다. 그는 1981년 수작업으로 관리하던 금융시장 관련 데이터를 컴퓨터 전용회선 및 단말기를 통해 제공하는 금융정보매체인 블룸버그를 설립해 억만장자가 됐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2012 3월 기준 그의 재산은 220억 달러, 우리 돈 약 235400억 원으로 세계 20위에 랭크될 정도의 큰 부자다.

 

불룸그는 2001년 뉴욕 시장에 당선된 뒤 내리 3선에 성공, 12년째 재직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공직에 임하는 그의 자세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는 공직수행을 일종의 자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번 칼럼에서 얘기했듯이 유대인들은 돈을 많이 벌어 자선하는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는데 블룸버그의 경우 자기 돈은 물론 자신의 능력을 정치에 쓰는 것도 중요한 자선행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 블룸버그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뉴욕 시장 선거에서 한 푼도 모금을 하지 않고 순전히 자기 돈만을 쓰면서 세 번의 선거를 치렀다. 시장직을 수행하면서도 월급을 상징적으로 1달러만 받았다. 그동안 모교인 존스홉킨스대에 모두 11억 달러(우리 돈 약 11770억 원)를 기부해 개인이 단일 대학에 낸 기부금으로는 사상 최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가진 능력도 자선에 쓰겠다고 하니 참 놀라운 발상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블룸버그는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창출이 가장 중요한 목표지만 공공영역에선 계층별 갈등조정, 빈부격차 해소 등 사회문제가 중요하다며 생활환경 개선과 빈민 구호에 시정 우선순위를 뒀고 뉴욕 시민은 그런 블룸버그를 세 번 연속 당선시켜 줬다.

 

물론 블룸버그 같은 유대인이 각광을 받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것도 사실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나 유대인 최초의 부통령 후보였던 조셉 리버맨 전 상원의원 같은 선배 유대인들이 보여준 공직사회에서의 활약도 큰 밑거름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미국 정계의 원로역할을 하고 있는 헨리 키신저는 15세 때인 1938년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뉴욕의 조지워싱턴고등학교에 입학한 키신저가 받은 첫 작문 숙제의 제목은 미국인이 된 소감을 적으라는 것이었다. 키신저는 이때미국은 누구나 머리를 똑바로 들고 다닐 수 있는 나라라서 좋다고 썼다고 한다. 1943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키신저는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로 미국 전략정책의 최고 권위자가 됐고, 국무장관으로 소련과의 데탕트, 중국과의 관계 개선, 베트남 분쟁 해결 등 1970년대 미국 외교정책의 큰 골격을 세운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정책들은 지금도 미국 대외정책의 큰 틀로 유지되고 있다.

 

지난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조셉 리버맨 코네티컷 주 상원의원을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대인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이는 유대인 사회에서 폭발적인 환영을 받았는데 당시 미국 유대교의 정신적 지도자 중 한 명인 마빈 하이어 랍비는인간의 달나라 착륙과 같은 정도의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개인의 종교적이고 인종적인 배경이 미국 정부의 정치적인 최고위직에 오르는 것을 막지 못하게 됐다는 점에서미국 사회의 마지막 정치적 터부를 깼다는 설명이었다. 후에 대통령 후보로도 도전했던 리버맨은 가장 신앙심이 투철한 정통교단 소속의 유대인으로어린 시절 신앙심이 깊었던 할머니가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부인과 함께 유대교 신앙생활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

 

유대인들의 정치적 성장은 미국 사회에 뿌리 깊었던 반()유대주의가 크게 줄어든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앨 고어가 리버맨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하자 각종 여론 조사에서 90% 이상의 유권자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지는 않겠다고 응답했다. 1940년대에는 이처럼 응답한 비율이 40%를 넘지 못했었다. 요즘 선거에서 돈과 미디어가 중시되는 것도 유대인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미국 사회에서 자본과 미디어를 장악한 유대인들이 이를 활용해 마음껏 정치적인 욕망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유대인들의 정치 참여를 다룬 <미국 정치의 유대인(Jews in American Politics)>이란 책의 작가 샌디 마이젤은 이 책에서앞으로 점점 더 많은 젊은 유대인들이 공직에 진출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실제 이 책 마지막 장의 제목은 ‘Hosts, Not visitors’이다. ‘방문객이 아닌 주인이란 뜻으로 미국의 주인이 되기 위해 정치권에 더욱 진출할 것이란 도전장인 셈이다.

 

 

사법부의 유대인 파워

 

미국에서 정치 분야 못지않은 권력을 가진 곳이 사법부다. 철저한 3권 분립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 분야에서도 유대인들의 파워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미국 법조인의 꿈이라고 불리는 대법관의 숫자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종신직인 미국 대법관은 모두 9명으로 구성돼 있다. 1916년 루이스 브랜다이스가 미국 역사상 첫 유대인 대법관으로 임명된 이후 1969년까지 유대인이 물러나면 후임으로 유대인을 임명하는 게 관례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닉슨 대통령 시절 그런 관례가 깨졌다. 그 이후 탄생한 유대인 대법관은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임명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처음이었다. 유대인과 밀월관계를 지냈던 클린턴은 다음 해 다시 스티븐 브레이어를 대법관으로 임명해 사상 첫 2명의 유대인 대법관 시대를 열었다. 지난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은 유대인인 엘레나 케이건 당시 하버드대 로스쿨 학장을 추가로 대법관에 지명, 이제는 유대인 대법관이 세 명에 이르고 있다. 정말이지 놀랄 정도로 빠른 영향력 확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지금도 유명 로스쿨 학생의 평균 30% 이상은 유대인이다. 이들은 각 대학에서 JLSA(Jewish Law students Association)라는 유대인 법대생연합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데 하버드 법대에만 회원이 300명을 넘는다고 한다. 이들 유대인 법학도들의 우상은 단연 첫 유대인 대법관인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Brandeis).

 

1856년 켄터키 주 루이스빌에서 태어난 브랜다이스는 1877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보스턴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노동운동과 여성들의 권익 옹호에 앞장선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근로자들의 최저임금과 반독점 운동 같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는 무료 변론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당시 대통령에 출마한 우드로 윌슨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수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그 덕에 윌슨은 당선 후 그를 대법관에 임명했다. 유대인 사회에서첫 대법관탄생이 얼마나 영예로웠던지는 1948년 설립된 유대계 대학인 브랜다이스대가 바로 이 대법관의 이름을 딴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컸다. 제임스 맥레이놀드라는 동료 대법관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브랜다이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 옆에 앉거나 대화 나누기를 거부했다는 유명한 얘기는 당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말해준다.

 

물론 유대인 법률가들이 모두 브랜다이스처럼 인권을 중시하고 핍박받는 소수를 옹호해주는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유대인들이 느끼기에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변호사들이 수두룩하다. 유대인 변호사라는 말이 마치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아주 이기적이고 냉혈한 법률가의 전형처럼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민간 변호사 업계에서도 유대인들이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08년 미국 덴버대 로스쿨의 엘리 왈드 교수는 20세기 후반 들어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 법조인들의 급성장을 분석한 논문(‘The Rise of the Jewish Law Firm or is the Jewish Law Firm Generic?’)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선 유대인 법조 파워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 잘 보여준다. 1950년대에는 뉴욕에 유대인이 경영하거나 유대인 변호사가 절반 이상인 유대계 로펌이 한 곳도 없었으나 1960년 중반에는 20대 대형 로펌 중 6개를 차지했고 1980년대엔 10대 로펌 중 4개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엘리 왈드 교수는 이런 현상을미국 사회에서 반유대인 정서가 크게 줄어들었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유대인 변호사들이 강한 기업 관련 법률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경영하거나 유대자본으로 운영되는 기업들이 급격히 성장한 것도 유대인 변호사의 지평을 넓혀준 요인으로 해석된다. 복잡한 송사에 휘말렸을 때 반드시 이기려면 수임료가 아무리 비싸도 유대인 변호사를 써야 한다는 것은 요즘 미국 사회에서 하나의 불문율일 정도다.

 

 

철저한 계약 문화

 

유대인들이 법률 분야에서 강자가 된 것은 이들의 철저한 계약문화를 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유대인 계약문화를 상징하는 인물은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5대 희극 중 하나인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이다. 빌려간 돈을 기한 내 갚지 못하면 채무자인 안토니오의 살 한 파운드를 베어가겠다는,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계약의 당사자로 잘 알려져 있는 소설 속 주인공이지만 유대인의 냉정한 계약문화를 얘기할 때 늘 사례로 인용된다.

 

굳이 샤일록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유대인은 계약에 죽고 계약에 사는 철저한계약의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유대인들은 일단 계약한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려 하고, 그 대신 상대방에게도 엄격한 계약 이행을 촉구한다. 아마 유대인들과 비즈니스를 해본 사람들은 이들의 까다롭고 철두철미한 계약습관에 혀를 내둘렀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왜 그토록 계약을 중시 여길까. 아마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들의 종교 자체가 바로 계약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10계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믿는다. 따라서 바로 그 10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계약이란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유대교와 유대민족은 계약으로 생겨난 종교이자 민족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수천 년을 영토 없이 떠돌아 다녔던 유대인들을 통합시킨 힘은 종교였는데 그 종교가 바로 계약을 토대로 한 것이다 보니 이들은 계약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유대인들은 10계명을 토대로 ‘∼하라는 긍정적 내용의 율법 248, ‘∼을 하지 말아라는 부정적인 율법 365개 등 모두 613개의 율법을 구체적인 생활기준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이 점이 바로 이성보다는 주로 감성적인 면에 호소하는 대부분의 다른 종교들과 결정적인 차이가 나는 대목일 것이다.

 

유대인들의 계약문화나 법률 의식은 우리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정이 강조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계약과 법을 너무 강조하는 것을 좀 야박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계약과 법에 좀 느슨한 편이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런 대충대충 문화로는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세기적인 특허분쟁에서 보듯 이제는 기술전쟁이 아닌 법률전쟁의 시대라고도 볼 수 있다. 계약과 법률싸움이 세계 경제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나님과도 계약을 했다는 유대인들과도 경쟁해 지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한 법률과 계약 마인드로 빈틈없이 무장해야 할 것이다.

 

 

육동인 커리어케어 대표 dongin@careercare.co.kr

 필자는 서울대 서양사학과와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뉴욕특파원을 거쳐 논설위원, 금융부장, 사회부장을 역임했다. 국회사무처 공보관 및 홍보기획관직도 맡았다. 현재 한국컨설팅산업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유대인처럼 성공하라(2004)> <육동인, 소통 정치를 말하다(2010)> 등이 있다.

  • 육동인 | - (현) 커리어케어 대표이사 사장 재직 한국컨설팅산업협회 부회장
    - (전)한국경제신문 뉴욕특파원논설위원
    - (전)국회사무처 공보관 홍보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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