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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직원 복지에 투자한 이유

김선우 | 129호 (2013년 5월 Issue 2)

 

 

 

“회사 경영은 내가 책임져. 지금 당장 사원사택 지을 계획을 시작하겠나, 아니면 사표를 쓰겠나? 이 자리에서 결정해.”

- 1965년 대한중석 사장으로 강원 영월 상동광산을 방문했을 때

 

청암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1927∼2011)은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세우기 전 만성적자 기업인 대한중석의 사장을 맡아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은 적이 있다. “포스코가 곧 박태준이고 박태준이 곧 포스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청암은 포스코와 동일시되기 때문에 이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전구의 필라멘트를 만드는 데 쓰이는 중석(텅스텐)을 생산하는 대한중석은 1960년대 초반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이었다. 당시 한국의 연간 총수출액이 3000만 달러였는데 대한중석의 수출액이 500∼600만 달러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한중석은 쉽게 정치적 스캔들에 휩싸이곤 했고 부패의 온상이 돼가고 있었다. 1964 12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미국 시애틀로 유학을 가려던 청암에게 대한중석을 정상화시켜 달라고 부탁했고 청암은 정부나 여당의 경영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사장에 취임했다.

 

사장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청암은 중석을 캐내는 강원 영월의 상동광산을 방문했다. 생산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광산을 둘러보던 청암의 눈에 띈 건 헛간 같은 다 쓰러져가는 사원주택단지였다. 그는 사택 앞의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광부 부인들에게 다가가 새로 부임한 사장이니 건의할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이야기하라고 했다. 망설이던 한 부인이사택에 빈대약 좀 쳐주세요. 빈대가 너무 많아서 식구들이 잠을 못자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청암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그 길로 광산 행정부소장을 찾아갔다. 어서 DDT를 구해 사택에 뿌리라고 부소장을 질책했다. 하지만 부소장은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어렵다. 더군다나 DDT는 시중에 없어서 암시장에서 구해야 하는데 값이 엄청나고 회사 규정상 암시장 구입은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고 답했다. 안 되는 이유가 너무나 많았다. 청암은여러 말 할 것 없이 당장 사택에 DDT 뿌리고 사택을 새로 짓는 데 필요한 예산과 절차를 보고하라고 했다. 그러자 부소장은우리 회사는 수년 동안 적자를 면치 못해서 매달 제때 월급 주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청암은 이때사표를 쓰든지, 사원사택 건설 계획을 세우든지 고르라고 독촉을 했던 것이다. 부소장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청암은 국가 경제개발계획에는 참여해봤지만 기업 경영은 대한중석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직원 후생복지에 신경을 썼고, 업무 절차의 표준화 등 선진경영 체제를 도입했다. 외부 인사청탁은 철저하게 배제했다. 그리고 1년 만에 흑자전환을 했다. 대한중석에서 보여준 그의 뛰어난 경영능력은 후일 포스코 경영을 위한 일종의 예습이었던 셈이다.

 

포스코에서도 직원들에 대한 청암의 배려는 변함이 없었다. 포항제철소 건설 때 외국 차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공장을 지을 돈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청암은 직원들 집 걱정을 했다. 임원들은 괜한 걱정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이라며직원의 생활이 안정돼야 회사가 커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의 기업들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사원 후생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기농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구내식당에서 무료로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구글의 사례는 구문이 됐을 정도다. 굿싱크 CEO 숀 아처는 <행복의 특권>에서 기업은 직원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길 때 생산성이 30% 정도 향상됐다고 밝혔다. 비슷한 예로 독일 헤르티에재단은가족 친화적 기업의 생산성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30% 정도 높다고 지적했다. 직원의 60% 이상이 맞벌이를 하는 IBM은 탁아 서비스 프로그램을 운영해 600만 달러의 생산성 증대 효과를 봤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직원들이 회사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는 연구결과는 이처럼 숱하게 많이 나왔다. 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1960년대 한국의 만성적자 기업에서조차직원을 제대로 대접해줘야 회사가 산다는 발상은 청암과 같은 탁월한 인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생각이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필자는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인문지리학을 전공하고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2001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문화부, 경제부, 산업부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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