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Close Up

한국식 적당주의, 日 완벽주의 넘다

서진영 | 103호 (2012년 4월 Issue 2)



한국의 경영과 일본의 경영을 비교해보자. 그런데 비교를 한다는 의미는 누가 낫고 못하고를 가리자는 의미가 아니다.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 이런 말이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는 다른 사람을 보면 좋은 것은 배우고 나쁜 것은 고치니 좋은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나쁜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비교를 한다는 것은 배우기 위함이지 우열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과 일본은 늘 비교되고 어쩌면 근대 역사에서 한국은 일본을 배우는 과정에 있었다고 평가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2010 125일 자 <닛케이비지니스>의 특집 기사는 일본 비즈니스계에 큰 충격을 줬다. 2009 2분기의 삼성전자 수익이 일본의 상위 9개 전자회사의 총 수익을 모두 합친 숫자보다 한참 앞섰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충격이 커진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일본은 전쟁 후전자입국을 국가전략의 하나로 설정했을 정도로 전자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왔다. 그 결과 소니와 마쓰시타(현재의 파나소닉), 히타치, 도시바, NEC, 샤프, 후지쓰와 같은 세계적인 전자 기업들이 탄생해 전후 일본의 경제발전을 선도했다. 이렇게 육성한 기업들의 전체 수익이 한국의 한 기업 수익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성과를 낸 것이다. 그만큼 <닛케이비즈니스> 기사는 일본 비즈니스계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과거 따라가던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을 앞선 이유가 무엇일까? 그 답을 주는 책이 바로 <한국의 황제경영 VS 일본의 주군경영>이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일본 전공 교수인 김현철 교수가 일본에서 출간한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도요타자동차의 후지오 사장이 전 사원 필독서로 추천하기도 했다. 일본에 한국의 기업경영을 소개하는 책자임을 감안하면 비교적 객관적인 한국 기업평가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과연 한국과 일본 기업의 경영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일본 기업에 대비한 한국 기업의 강점을 여러 가지 제시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재미있는 3가지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는 놀랍게도 한국 기업의적당주의.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장인정신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장인정신이 과거에는 일본 기업의 위상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 데 반해 최근에 들어서는 지나치게 완벽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일본 기업의 발목을 잡고 대체로 적당주의로 일관하는 한국 기업이 역전하는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완벽주의와 적당주의가 반영된 재미있는 사례는 한국 소주인 진로와 일본의 술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일본은 각지마다 뛰어난 품질의 술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해당 지역에만 한정돼 있으며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지 않은 상태다. 오로지 품질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에만 주력하다 보면 옆으로 확대하겠다는 발상이 나오지 않는다.

 

그 때문에 일본 전체의 대중 시장은 공백 상태였다. 여기에 효율적으로 파고든 것이 진로다. 한국의 서민적인 소주인 진로는 일본 장인이 만든 소주에 비하면 고만고만한 품질의 제품이다. 장인정신과 기술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품질의 일본 소주와는 당연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에는 그다지 품질에 연연하지 않는 서민들이 있었다. 모든 소비자들이 장인 기술로 만든 최고 품질의 술만을 찾는 것은 아니었다. 퇴근길에 대폿집이나 노래방에 들러 알코올의 힘을 빌려 가볍게 기분전환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진로의 품질은 세계적인 잣대에서 보면 높은 수준이다. 서민들을 만족시키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행운도 뒤따랐다. 일본 서민들은 소주를 그냥 마시기보다는 탄산이나 주스에 타서 마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 소주는 탄산이나 주스 등을 타서 마시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완벽한 제품이기 때문에 주스와 섞어도 기존의 맛과 냄새가 강하게 남는다. 소주를 쉽게 마시기 위해 희석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소주 맛과 냄새가 강하게 남는 것은 오히려 단점이다. 그렇지만 진로는 주스 등으로 희석하면 소주 맛과 냄새가 그다지 남지 않는다. 소주보다 탄산이나 주스의 맛이 더 강하게 나 음료처럼 마실 수 있다. 즉 품질이 적당하다는 점 때문에 여러 음료와 섞어 마시기에는 최적의 제품이 된 것이다. 이처럼 생각지도 않은 순풍에 힘입어 진로는 일본 소주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한국 기업의 속도전이다. 한국 기업은 빨리빨리 문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을 불과 6개월 만에 완공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2년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야말로 총알택시 설계를 한 다음 토목공사를 하고 착공을 한 뒤 장비를 투입하듯이 절차에 따라 공사를 진행했다. 설계를 진행함과 동시에 토목공사를 하고, 설계도가 없는 상태에서 기초공사를 하고 발주도 한다. 나아가 설비와 기계도 함께 발주한다. 공사 자체도 하루 8시간이 아니라 24시간 체제로 진행한다. 현장인력은 3교대로 공사에 투입한다. 공사 현장에는 고함소리가 난무해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절차를 무시하기 때문에 기존의 계획이 도중에 변경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러나 발주처인 건설회사와 장비회사는 그것을 감안해 변경 사항이 생기면 즉시 대응한다. 다음날 아침까지 필요한 자재를 납품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덕분이다. 적당주의는 이럴 때도 도움이 된다. 이와 같은 한국식 공사를 이용해 2년이 걸리는 공기(공사기간) 4분의 1로 단축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공군형 마케팅 전술이다.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일본 기업이 가장 먼저 실행하는 것이 유통망 조사다. 어떤 대리점이 있고, 어떤 판매망을 이용할 수 있는지 조사해 시간을 들여 유통 채널을 정비한다. 반면 한국 기업은 먼저 시장조사를 한 후 현지 고객에게 어떤 광고 프로모션을 할지 논의한다.

 

이러한 발상의 차이는 과거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일본 기업은 영업력으로 승부할 경우 대체로 채널을 통해 공략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시간을 들여 계열 유통망을 정비한 뒤 이를 바탕으로 판매한다. 이 때문에 제대로 판매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한번 이 시스템을 구축하면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또한 채널을 소중히 여기고 이들에게만 제품을 판매하는데 이를 마케팅 용어로는 푸시(Push) 마케팅이라 한다. 이에 반해 한국 기업은 채널 영업보다는 마케팅 기법을 구사해 시장에서 직접 승부하는 방식을 더 선호한다. 성미가 급해서 그런지 꾸준히 채널을 정비하고 장기적으로 판매하기보다는 단기에 승부를 내려고 한다. 이를 위해 광고와 판촉을 빈번히 동원하고 유통망보다는 소비자들에게 직접 소구한다. 이를 마케팅 용어로는 풀(Pull) 마케팅이라고 한다.

 

군대에 비유하자면 일본식의 세일즈는 육군에 해당한다. 진지를 구축한 뒤 조금씩 돌격하면서 적의 고지를 탈환하는 것이다. 반면 마케팅은 공군에 해당한다. 전투기를 이용해 적의 주력 부대를 직접적으로 공격한다. 일본 기업은 육군을 더 잘 활용하고 한국 기업은 공군을 더 잘 활용한다. 특히 해외시장을 공략할 때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삼성전자와 소니의 비교사례를 보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삼성전자의 LED TV는 광원 부분에 LED를 이용할 뿐 구조는 액정 TV와 거의 동일하다. 사실 LED TV를 가장 먼저 시장에 출시한 것은 소니다. 하지만 소니는 마케팅보다 채널 영업을 통해 점진적으로 판매하고자 했다. 출시 시기가 아직 이르다고 보고 점진적인 확대 판매를 노렸던 것이다. 반면 후방에서 소니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삼성전자는 적극적으로 세계 각국에서 대대적인 광고 프로모션을 전개해 특별한 기술로 무장한 LED TV가 등장했음을 널리 알렸다. 소니는 특별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먼저 선수를 치는 쪽이 우위를 점한다. 화질의 차이 등을 절묘하게 호소한 전략이 적중해 소비자들은 LED TV가 새로운 차원의 TV라고 인식했다. 게다가 형광등이 LED로 대체되는 움직임도 일어나 LED TV에 대한 반응이 의외로 뜨거웠다. 기술적으로 보면 그다지 뛰어나지 않더라도 집중적인 광고 공세로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으로 인식해버리면 그것으로 승부는 판가름 난 것이다. 삼성의 승리였다.

 

결론적으로 그동안 일본은 먼 선진국이었고 가까운 경쟁 상대였다. 하지만 이제는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의 성공 요인을 제시한 이 책을 읽으며 한국 기업인들은 장점만을 볼 것이 아니라 특징을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특징을 가진 리더인가? 일본 경영과 비교한 한국 기업 경영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알고 미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꼭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sirh@centerworld.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 (Centerworld Corp.) 대표이며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 서진영 서진영 | - (현)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
    -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운영 - OBS 경인TV ‘서진영 박사의 CEO와 책’ 진행자
    sirh@centerworld.com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