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여우’ 롬멜, 파격으로 원칙을 이기다

102호 (2012년 4월 Issue 1)

PDF 다운로드 횟수 10회중 1회차 차감됩니다.
다운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아티클 다운로드(PDF)
4,000원
임용한 임용한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1940년 북아프리카전쟁에서 이탈리아군은 영국군의 반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당황한 무솔리니는 곧 히틀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사막의 여우롬멜이 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다. 그는 아프리카에 오자마자 정찰기를 타고 현지 정찰에 나섰다. 그리고 신사적 방법에 익숙한 영국군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시점에 기습을 감행, 적군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적보다 열세인 상황에서 병력을 분할하지 말라는 전술의 기본 원칙도 무시한 채 부대를 세 개로 나눠 진격했다. 그는 전황을 단숨에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시켰고 영국군의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오코너를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롬멜의 성공을 이끈 능력은 무엇보다 그의 남다른 상황 판단력이었다. 그는 모든 교리와 전술 원칙은목적이 아니라도구라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다.

 

롬멜(Rommel)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사막의 여우다. 그러나 정작 롬멜은 사막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1940 3월 아프리카 현지 시찰에 나선 롬멜은 상공에서 모래폭풍을 만났다. 조종사가 회항하려고 하자 롬멜은 목적지로 강행하라고 다그쳤다. 조종사는 사령관의 명령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항으로 기수를 돌렸다. 나중에 모래폭풍의 실체를 경험한 롬멜은 마음속으로 조종사에게 용서를 빌었다. 아프리카에서 몇 년째 싸워온 이탈리아군 사령관들은 사막을 모르는 롬멜이 겁 없이 덤벼든다고 분노했다. 전사를 보면 현지 지형과 기후를 모르면서 현지인과 경험자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오만한 지휘관은 반드시 실패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롬멜은 달랐다.

 

1940년 북아프리카 전선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영국이 고립되자 리비아를 식민지로 장악하고 있던 이탈리아가 영국 식민지였던 이집트에 눈독을 들였다. 1940 9월 이탈리아군이 이집트로 침공했다. 그러나 롬멜의 분석에 의하면 1차 대전 수준의 장비와 그보다 못한 지휘관, 전투의지가 별로 없는 병사로 구성된 이탈리아군은 영국군의 반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카푸초 전투에서 영국군은 이탈리아군 38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영국군 손실은 부상 500명이었다. 계속된 전투에서 영국군은 총 13만 명을 포로로 잡고 리비아 영내로 들어가 트리폴리(Tripoli) 앞까지 진격했다.

 

당황한 무솔리니는 히틀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러시아 침공을 준비하던 히틀러는 가용병력이 없었다. 이탈리아를 무시할 수도 없어서 영국군을 저지할 정도로 최소한의 병력을 파견하기로 한다. 그래도 병력이 너무 적었다. 나중에 아프리카 군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되는 독일군 파병부대는 겨우 1개 기갑사단에 1개 경장비 사단이었다.(나중에 2개 기갑사단과 1개 경장비 사단으로 증강된다.) 이탈리아군은 있으나 마나 했고 영연방군(영국군은 영국, 호주, 인도군의 혼합부대였다) 4개 사단이었다. 제해권과 제공권도 영국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대담함과 천재적인 영감을 갖춘 지휘관이 필요했다. 히틀러의 머릿속에 적격인 인물이 떠올랐다. 1차 대전 때 1개 대대로 3일 만에 5개 연대를 궤멸시키고 프랑스 침공에서 1개 사단으로 보름 만에 10만의 포로를 잡은 지휘관, 바로 롬멜이었다.

 

기동과 공세적 방어

리비아에 도착한 롬멜은 당장 정찰기를 타고 현지 정찰을 시작했다. 최고 사령관이 무장도 안 된 정찰기를 타고 직접 전선을 순회하고 전황을 판단하는 방식은 이후 대담한 지휘관들 사이에 큰 유행이 된다. 한국전쟁 때 8군 사령관이 된 워커(Walker)와 리지웨이(Ridgway)도 항공시찰을 선호했는데 롬멜과용기 경쟁이라도 하듯이 각자 무모하고 대담한 일화를 남겼다. 그러나 이때는 미군이 제공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롬멜은 제공권도 위태로운 상황에서 적진을 날아다녔다.

 

훌륭한 지휘관이 되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 지형 파악능력이다. 우수한 지휘관들은 예외 없이 이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그런 장군들의 눈으로 보아도 롬멜의 방향감각과 지형을 보는 눈은 신이 내린 수준이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올 때부터 롬멜은 방어전으로 일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항공정찰을 시작할 때부터 그는 방어지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매의 눈처럼 적을 파고들 지점만을 찾았다. 이 점에 대해서 롬멜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지나치게 공격적이라거나 평생 1차 대전 때 경험한 돌격대 전술을 신봉했다고 비난한다. 심한 경우는 그의 전술을 과한 과시욕과 영웅주의, 타인과 독일의 전체 전쟁수행 전략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심의 소산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롬멜이 탁월했던 이유는 현대전의 핵심이 기동전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간파했다는 데 있다. 그는 공격 지상론자가 아니다. 현대전에선 요새와 고정된 방어선에 집착하는 방어전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일찌감치 알아차렸을 뿐이다. 이 진리는 놀랍게도 남북전쟁(1861∼1865)에서부터 노출됐다. 역설적으로 남북전쟁은 근대 콘크리트 건축술의 위력을 제대로 증명한 전쟁이었다. 요새화된 축성진지는 병사들에게는 말 그대로죽음의 신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되자 기관총과 고성능 야포까지 장착한 죽음의 신은 10배의 제물을 거두어 갔다.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강철과 콘크리트의 신에게 매료됐고 프랑스군은 맹신도가 돼 마지노선을 건설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돌이켜 보면 남북전쟁이 배출한 최고의 지휘관인 로버트 리(Robert E Lee)와 잭슨(Jackson)은 강철과 콘크리트에 의존하지 않고 기동을 이용한 공세적 방어에 승부를 걸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천재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축성진지 안에 들어앉아서는 지킬 수도 이길 수도 없다는 사실을 간파했던 것이다.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전술가들이 고정거점에 의존하는 방어전에 대한 이상한 기대를 버리지 못해 왔다. 그것은 수많은 경영자들이 모험도 투자도 필요 없는, 현상유지만 해도 되는 안정적인 경영환경에 집착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패망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을 연장시킬 뿐이다. 일단 미국 평원과 북아프리카 사막에는 우회로가 얼마든지 있다. 아무리 철통같이 지켜도 병사들은 언젠가는 졸고 철조망에는 녹이 슨다. 최악의 약점은 고정 거점에 의지하는 순간, 우리의 전술과 행동방식도 고정되고 적에게 예측된다는 것이다.



 

영국군 총사령관을 포로로 잡다

1941 3월 하순, 롬멜의 공세가 시작됐다. 이 공세는 롬멜 스스로 자랑했듯이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실시한 유일무이한 사례였다. 이 말의 의미를 알고 보면 공포스러울 정도다. 공세를 시작할 때 주력인 15기갑사단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 롬멜은 먼저 도착한 제5경장비사단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는 이탈리아군 1개 사단만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5사단은 2개 대대의 전차 부대밖에 없었다. 전차는 150대로 신형인 3, 4호 전차는 80대뿐이었다. 그러나 3호든, 4호든 영국군 전차를 격파할 능력이 없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15사단이고 5사단이고 롬멜과 단 1분도 함께 있어본 적이 없는 부대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트리폴리항에 도착해서 비로소 롬멜을 만났다. 첫 대면 자리에서 롬멜이 내린 명령은 당장 전선으로 나가 공격을 개시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군은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탈리아군을 궁지로 몰아넣은 영국군 주력 부대는 처칠의 명령으로 그리스로 파병되고 일부는 이집트로 돌아갔다. 훈련과 장비가 부족한 신참사단이 전선을 교체했다. 영국군을 지휘한 오코너(O’connor) 장군도 이집트로 돌아가고 무능한 님(Neame) 장군으로 교체됐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이었던 건 영국군의 안이한, 아니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영국군은 독일군이 항구에 도착하면 전차를 조립하고 부대를 정돈한 후 롬멜과 장교들이 대면식을 하는 데만 한참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전계획을 토론하고 확정한 후 사막 적응 훈련을 하고 장비를 사막전에 맞게 개조하려면 5월이나 돼야 전투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신사 국가 영국군의 방식이었다. 무엇보다도 독일군이 이 적은 병력으로 공격에 나설 리는 없다고 믿었다.

 

반면 롬멜은 영국군이 방심하고 신병으로 교체된 지금이 적기라고 믿었다. 영국군이 적응하고 진지를 보강하면 독일군의 공세는 불가능해진다. 그는 사막을 본 적도 없는 병사들을 전선으로 내몰았다. 원래 사막에서 전차를 운행하면 모래가 들어가 쉽게 고장이 난다. 그러므로 몇 시간마다 분해 청소를 해야 하고 장거리 운행은 금지였다. 그 외에도 모래 위로 운전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했다. 그러나 롬멜은 일면식도 없는 병사들이잘해 줄 것이라 믿고생면부지의 땅으로 내몰았다.

 

기습을 당했지만 영국군은 잘 싸웠다. 독일군의 공세는 시작부터 좌절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롬멜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몸소 최전선을 시찰하며 어딘가에서는 발생하고야 마는 방어선의 약한 고리를 찾았다. 결국 그는 적 후방으로 돌입해서 보급로를 차단한다. 현대전에서는 보급로가 차단되면 하루도 버틸 수 없다. 영국군은 무너졌고 롬멜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42일 독일군은 아제다비아(Agedabia), 그 다음 날엔 벤가지(Benghazi)를 차례로 함락했다. 다음 목표는 메킬리(Mechili)였다. 메킬리까지 이르는 길은 세 갈래가 있었다. 롬멜은 적보다 열세인 상황에서 병력을 분할하지 말라는 전술의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5사단을 분할해 세 방향으로 모두 진격시켰다. 롬멜은 적이 당황하고 무너지고 있으므로 아군 병력이 많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적이 무너지는 순간에 압박해야 적군을 돈좌(頓挫)시킬 수 있다는 건 전술의 모든 기본원칙에 우선하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하고 대담한 지휘관들만이 할 수 있는 전쟁의 예술이기도 했다. 전해에 롬멜은 프랑스에서도 보급선을 무시하고 고기떼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상어처럼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쾌속진격을 했다. 이때 사령부의 진격중지 명령을 피하기 위해 전 부대가 무전을 끄고 돌입하는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다. 나중에 히틀러는 롬멜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군이 진격하는 동안 나는 매일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소.”

 

병력을 분산하지 말라는 원칙은 적군과 기동능력이 동일하고 직접 격돌할 때의 이야기다. 지금 영국군은 무너지고 있고 병력 분산 금지의 원칙에 따라 세 길 모두에서 방어선을 구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길에서 저지된다고 해도 다른 길을 통해 한 부대는 신속하게 메킬리에 도달할 수 있다. 영국군은 놀랄 것이고 메킬리를 점령하면 나머지 두 개의 길에 있는 영국군은 퇴로가 막혀 항복할 것이다. 이로써 리비아의 영국군은 궤멸되고 이집트까지 무방비 상태가 된다.

 

단 한판으로 끝날 뻔했던 북아프리카 전쟁은 독일군의 보급부족과 훈련부족이란 암초를 만나 성공 일보직전에 좌절됐다. 롬멜은 두 달만 자신이 훈련을 시켰어도 전쟁을 끝냈을 것이라고 땅을 쳤다. 그러나 전황을 단숨에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시켰고 영국군의 최고 명장 오코너를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영국은 무능한 님을 해임하고 오코너로 교체했는데 교대를 하기 위해 오코너가 사령부에 도착했을 때 독일군이 쇄도한 것이다. 오코너조차 롬멜이 이렇게 빨리 진격할 줄 몰랐다고 회고했다.

 

롬멜의 성공을 이끈 첫 번째 능력은 남다른 상황 판단력이다. 그 숨은 비결은 모든 교리와 전술 원칙이목적이 아닌도구라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기가 승부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 무기는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성능이 결정된다. 교리와 원칙도 마찬가지다. 현장의 상황 분석과 시장의 전망에 자신이 없는 리더일수록 교리에 의지하려 한다. 그러나 승리하는 리더는 상황파악에 전력을 다하고 적절한 도구(교리)를 선택해 최적의 사용법을 창조해 낸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yhkmyy@hanmail.net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37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 교육 2017년 1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