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고전 읽기

‘목표+끈기’ 세계1등 중소기업의 비결

98호 (2012년 2월 Issue 1)








 
편집자주  경영학이 본격적으로 학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경영학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학문이자 현대인의 필수 교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영학 100년의 역사에서 길이 남을 고전들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저자들의 통찰력은 무엇인지 가톨릭대 경영학부 이동현 교수가 ‘경영고전읽기’에서 전해드립니다.
 
 
198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이념이 확산되면서 이미 기업의 양극화는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이념이 무엇인가? 결과적으로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의 게임 규칙이라 할 수 있다. 정부 규제 완화와 공기업 민영화가 확산되면서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이 열렸고 최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1등 기업에는 무한한 기회의 창이 제공됐다. 반면에 2등 이하 기업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사실이지만 초일류 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들도 이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1982년 출간된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이 대표적이다. 비록 미국 기업에 국한됐지만 소위 잘나가는 대기업들의 성공요인을 도출해서 교훈을 정리하는 접근법은 초일류 기업에 대한 전형적인 연구방법이 됐다. 그 후 지금까지도 ‘초일류’는 경영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단어이자 선망의 표상인 것 같다. 상황이 이쯤 되니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충분할 리 만무하다. 20세기 들어 겨우 시작된 경영학 연구는 초기에 기업의 본질과 경영의 원리를 탐구하는 데 치중했다가 후기 들어 관련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대부분 대기업에 쏠렸다. 하물며 글로벌 시장에서 무한경쟁을 외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중소기업이 학계나 언론의 관심을 끌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측면에서 1996년 출간된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s)’은 가뭄에 단비 같은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세계적인 중소기업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저자인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은 책에서 기존 경영학 연구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대기업들은 언제나 학자, 애널리스트, 투자자나 언론의 높은 관심을 받아왔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저마다 그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정작 중소기업의 성공을 다룬 연구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는 독일 경제가 강한 이유 중 하나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들었고 이들의 성공 비결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약 70% 정도의 히든 챔피언들이 산업재를 생산했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시장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성장세와 시장지배력은 충분히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히든 챔피언들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특히 성장과 시장지배력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뚜렷하게 눈에 띈다. 이런 목표는 실현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야심에 차 있으며 그 시기도 매우 이르다. 게다가 히든 챔피언들은 목표를 끈기 있게 실행하는 특징이 있다. 1등이 되고자 하거나 1등을 유지하려는 의지는 결코 느슨해지지 않는다.’
 
저자가 책에서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히든 챔피언의 성장 전략은 그동안 대기업 중심으로 분석됐던 연구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비록 규모면에서는 대기업과 비교해 턱없이 작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가진 역량을 고려해 자기만의 방법들을 찾아낸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히든 챔피언의 핵심 전략은 우선 ‘집중화’와 ‘세계화’로 요약할 수 있다. 히든 챔피언들은 틈새시장을 공략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있는 좁은 영역에 집중한다. 예컨대 포장이 아니라 약품 포장, 식기세척기가 아니라 호텔과 레스토랑을 위한 식기세척기, 헬멧이 아니라 스키용 헬멧, 나사가 아니라 특수 나사에 집중하는 식이다. 이들은 업계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시장 구분법을 따르지 않는다. 시장에 대한 정의를 외부에서 미리 정해준 것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의도에 따라 자율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전략적 변수로 이해했다. 규모가 작아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히든 챔피언에게는 시장을 정의하는 작업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전략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히든 챔피언들은 자신의 목표 시장을 좁게 정의했고 오랫동안 이에 몰입했다. 특정 분야에 집중하기 때문에 경쟁사가 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러한 집중화 전략이 틈새시장에서 70∼100%라는 경이적인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원동력인 셈이다.
 
1961년 설립된 독일회사 델로(Delo)는 스마트카드의 칩 모듈을 위한 접착제 시장에 집중해서 80%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 1975년 설립된 프랑스 기업인 페츨(Petzl)은 동굴탐험과 안전장비로 출발해 수직세계의 선두적인 신기술로 인정받고 있었다. 바위타기, 등산, 동굴탐험 등 수직세계에 필요한 등산용 장비, 강철고리인 카라비너, 헤드램프 등의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물론 히든 챔피언들도 일부는 사업 다각화를 전개하지만 역시 그들의 주된 전략은 좁은 시장을 찾아 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다.
 
시장을 지나치게 좁게 정의하면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히든 챔피언들은 세계화라는 전략을 통해 좁은 시장을 넓게 만들었다. 특정 지역에 있는 다양한 시장에 진출하기보다는 차라리 좁지만 하나의 시장에 집중하고 이를 전 세계로 확장하는 방법이다. 히든 챔피언들 중 약 75%의 기업은 처음부터 수출을 시작했고 34%의 기업은 회사를 창립함과 동시에 해외 지사를 뒀다. 대부분 혼자 힘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선호했다. 개척자로서의 장점과 자체적으로 세운 지사를 통해 고객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컴퓨터 마우스로 유명한 로지텍(Logitech)이나 와인 운송에 전문화된 힐레브란트(Hillebrand) 등은 공격적인 세계화로 40개가 넘는 해외 지사를 설립하고 글로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고압력 청소기로 세계 시장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카처(Kärcher)도 1975년 이후 매년 한 개 이상의 새로운 시장에 진출했다. 게다가 이들은 대중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브랜드다. 덕분에 자신의 브랜드를 세계화하는 것은 큰 장애가 아니었다. 오히려 해외의 시장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당연히 세계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히든 챔피언들에게 세계화는 장기적이고 끈기를 요하는 과정이었다.
 
혁신성과 고객 친밀성도 히든 챔피언들의 성공에서 뺄 수 없는 요인들이다. 이 두 가지는 집중화와 세계화라는 두 핵심전략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히든 챔피언의 핵심역량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중소기업이 혁신이나 고객 친밀성 측면에서 대기업을 능가할 수 없다고 오판하기 쉽다. 하지만 지몬 교수의 조사결과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고 있다.
 
당장 R&D 투자를 살펴보면 절대 금액에서는 대기업들을 뛰어넘을 수 없었지만 매출액 대비 상대적인 비중 측면에서는 히든 챔피언들이 대기업들을 능가하고 있었다. 히든 챔피언들은 매출액 대비 평균 5.9%를 R&D에 투자하고 있었는데 이는 독일 기업 평균인 3.0%는 물론 글로벌 1000대 기업의 4.2%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다. 또한 히든 챔피언들의 특허 생산성도 좋았는데 특허 개발에 들어간 비용은 적으면서 종업원 수 대비 특허 개수는 훨씬 많았다. 풍력 터빈을 생산하는 독일 기업 에네르콘(Enercon)은 풍력 에너지 생산 분야에서 전 세계 특허의 무려 42%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고객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히든 챔피언들은 마케팅 전문성 측면에서는 대기업에 비해 부족했지만 이를 고객 친밀성을 보완하고 있었다.
 
‘히든 챔피언들은 고객과 매우 친밀하다는 특징이 있다. 정기적으로 고객과 접촉하는 직원은 대기업과 비교할 때 대략 5배가 더 많다. 이들이 고객 친밀성을 실현할 수 있는 이유는 규모가 작아서 부서가 심하게 세분화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고경영진은 고객과 직접적으로 또한 정기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매일 실천했다.’
 
특히 고객관리 측면에서 히든 챔피언들은 최고의 고객, 즉 VIP에 집중했다. VIP들은 각종 요구가 매우 까다롭지만 이들을 만족시키면 나머지 시장에 진출하기가 용이했다. VIP들이 추천자가 되거나 자연스럽게 제품에 대한 신용보증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VIP들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사항들을 해결하다 보면 새로운 혁신을 창출할 수도 있었다. 실제 생산 시스템이 전문 분야인 그로만(Grohmann) 엔지니어링은 인텔, 보시, 지멘스 등 글로벌 톱 30개 기업을 목표 고객으로 삼고 있었다.
 
이 밖에 일하는 기업 문화와 생산성 높은 직원들을 유지한다거나 젊은 CEO가 많고 여성 경영자의 비중이 높다는 것도 세계 시장을 제패한 숨은 1등 기업의 흥미진진한 비밀들이다. 중소기업도 장기적인 비전과 적합한 역량을 갖춘다면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풍부한 증거를 제시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이 아닌가 싶다.
 
 
 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dhlee67@catholic.ac.kr
 
이동현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로 연구 활동을 벌였다. <MBA 명강의>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경영학 지식을 다양한 조직에 확산하는 일에 역량을 쏟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73호 언더그라운드 정보와 기업 전략 2019년 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