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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부동산 포트폴리오 전략

부동산이 기업 가치 차원을 바꾼다. 스타벅스처럼…

고성수 | 90호 (2011년 10월 Issue 1)



이정록 - Tree of life #1-3 Pigment print, 75x100cm, 2009

나는 햇살 좋은 날, 영겁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한 광활한 갯벌이나 해뜨기 직전의 안개 자욱한 호수 같은 풍경을 대할 때면 하늘에서 신령스런 알이 내려와 그 속에서 영웅이 탄생할 것 같기도 하고, 안개 낀 저 호수 너머로부터 영웅의 배필이 될 신비한 여인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

작가는어떤 특정한 풍경과 마주하게 됐을 때 마치 자신이 현실세계를 넘어선 피안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생명나무 연작을 통해 나무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실체, 영적 아우라의 상상을 담았다. 땅과 건물이라는 물리적 실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생명을 끌어들이는 것은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다양한 시선과 상상이 아닐까.





오래전 대니 드비토라는 코미디언이 주인공으로 나온타인의 돈(Other People's Money)’이라는 영화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 대니 드비토는 미국 월가의 탐욕스러운 기업 사냥꾼 역할로 출연했다. 마음먹은 기업은 무슨 수를 내서라도 싼 값에 사들여분쇄기 래리라는 별명까지 얻은 인물이었다. 영화 속에서분쇄기 래리 81년 역사를 가진 보스턴 근교 작은 마을의 전선 생산 공장인뉴잉글랜드 전선을 탐내고 있었다. 마을 주민의 대부분이 이 공장의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서로를 아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일했다. 하지만 중국 등에서 값싼 전선 제품이 쏟아져나오자 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졌고 마을 분위기도 침체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니 드비토는 이 회사의 우리사주를 갖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주식을 매입하겠다고 제안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고민해온 마을 사람들은 좋은 조건으로 주식을 매각할지, 오랜 터전을 떠나는 게 나을지에 대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회사의 이사장(그레고리 펙 분)은 할아버지 때부터 경영해온 회사를 매각할 마음이 없었다. 결국 회장 비서의 딸인 변호사 케이트와 힘을 합쳐 돈에 눈이 먼 대니 드비토를 우여곡절 끝에 물리쳤다. 마을은 다시 평화로워졌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현실은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 전선공장은 중국 등 개도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사업을 지속하려면 생산비 절감을 위해 보스턴 근교보다 인건비와 땅값이 저렴한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대니 드비토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 회사를 매입해 사양산업인 전선 사업을 정리하고 공장 부지에 대형 쇼핑몰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보스턴 등과 같은 대도시권을 배경으로 충분한 시장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쇼핑몰 부지 가격으로 생각한다면 그가 제시한 공장 매입 가격이 그리 높은 것도 아니었다. 동일한 토지라도 공장부지로서의 가격과 쇼핑몰로서의 가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개발업자의 아이디어와 전문성을 배경으로 부동산의 효용을 극대화하고 추가적으로 생성된 이익을 마을 사람들과 나눠가졌다면 어땠을까? 부동산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지난해 말 관련 법률의 개정을 통해 개발이 가능해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부지도 비슷한 사례다. 애초 봉은사의 사하전(寺下田)이었던 이 땅은 강남 개발이 시작되던 1970년에는 허허벌판이었다. 한전은 이 땅 12만 평을 평당 6200원에 매입했다. 기껏해야 7억 원 남짓에 사들인 땅이 현재 공시지가만 12000억 원에 이른다. 상업용지로 개발된다면 그 가치가 5∼7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불과 40년 만에 1만 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한전은 부동산 개발을 통해 얻은 수익금을 노후 전기 송전시설을 개량하는 데 사용하고자 한다. 이렇게 되면 재무상황과 수익구조도 나아져 향후 기업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기업 경영자들은 부동산을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자산으로 보고 중장기적 전략의 관점에서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1.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부동산 자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유하고 있는 재산 중 가장 값나가는 것을 물으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꼽는다. 같은 질문을 기업에 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제조업이건 서비스업이건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 중 가장 비중이 큰 게 사옥, 공장 등 부동산 자산이다. 부동산은 생산 및 영업활동에 필수적인데다 부동산 자산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많은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과거 개발경제 과정에서는 기업과 부동산의 관계를 논의할 때 일부 대기업의 부동산 투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기업이 본연의 생산 활동에 전념하지 않고 값싼 이자로 차입한 자금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했던 사례가 많아 이런 부정적인 인식을 형성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 기업 경영에서는 부동산을 투기의 대상만으로는 보지 않는다.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의 가치 상승으로 해당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미국의 경우 오피스 빌딩을 포함한 상업용 부동산의 75%를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춘(Fortune)>에서 선정한 500대 대기업의 보유자산을 살펴보면 장부가 기준으로 3분의1가량이 부동산 자산이다. 실제 시장가치는 장부가보다 더 높을 것이다.

경영자 입장에서 장부가로 보유자산의 3분의1을 차지하는 부동산은 해당 기업가치의 3분의1 이상을 책임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교과서대로 기업가치의 극대화가 경영자의 목표라면 평균적으로 기업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하는 보유 부동산의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그만큼의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만일 보유 부동산을 비효율적으로 운영하거나 적기에 자산재평가를 통한 부동산 가치의 유지나 제고를 하지 않는다면 기업가치가 떨어지고 주식도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과거 기업의 인수합병(M&A)이 유행하던 시절 앞서 소개한 대니 드비토의 영화에서처럼 부동산 관련 전문가가 기업사냥꾼에 반드시 포함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부동산 자산의 보유는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수익성 제고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레버리지 효과라고 하면 차입 등을 통한 이자지급 등의 고정적인 금융비용을 지렛대로 삼아 수익의 변동성을 확대하는 금융 레버리지를 일컫는다. 이와 함께 건물 및 설비 등 실제로 비용이 발생되지 않는 자산으로부터 고정적으로 발생되는 감가상각 등을 이용한 운용 레버리지도 있다. 부동산 투자는 일반적으로 모기지 등 흔히 타인자본을 이용해 투자하기 때문에 금융 레버리지는 물론 운용 레버리지를 포함한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 1차적인 이유는 업무수행에 필요한 사용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공급이 충분한 완전시장에 가까운 상황에서는 임대료가 합리적으로 책정돼 부동산 소유나 임차에 따른 기대이익의 차이가 크게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다르다. 안정적인 사업공간 확보 등 다양한 이유로 임차보다 소유가 더 편리할 수도 있다. 아울러 부동산 가치가 상승한다고 예상될 때는 부동산을 임차하는 것보다 소유하는 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기업들이 사업목적의 부동산을 소유할 것인지, 임차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재무적 분석에서는 임차를 통해 예상되는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과 소유의 경우 발생되는 미래 현금흐름을 비교해 정하게 된다. 이 과정은 단순 임대료 비교에 한정되는 게 아니다. 소유에 따른 감가상각 및 금융비용으로 발생되는 레버리지 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분석한다. 아울러 부동산을 보유하는 경우 예상되는 가치상승에 대한 전망도 필요하며 감정평가사의 가치추계와 유사한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유통업이나 은행 등 금융업을 하는 기업의 경우는 고객과의 접점을 확보하기 위해 영업점 등 다수의 부동산을 운용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경우 수백 개에서 1000여 개에 이르는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A은행 지점의 대부분은 고객접근성이 좋은 위치에 있고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높은 건물에 입주해 있다. 부동산 매입 단계에서는 본사의 전문적인 점포 개발부서가 철저한 시장조사 등을 통해 신규 지점의 위치를 결정한다. 그러나 일단 영업이 시작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부동산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점포장이 기존 임대차 계약 만기가 도래할 때마다 연장하는 식의 형식적인 관리만 하게 된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의 환경도 다른 시장처럼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역 경기 및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임대차 계약을 위한 조건들이 수시로 바뀐다. 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부동산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보다 전문적인 점포 임대계약과 관리를 통해 은행의 가치를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

적극적인 부동산 관리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사례도 많다. 커피 전문점인 스타벅스가 대표적이다. 스타벅스 경영진은 맛있는 커피를 구하기 위해 남미의 정글을 헤매는 데 모든 시간을 쏟아붓지는 않는다. 매장의 수익성이 커피에만 달려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커피 외에도 지점 입지 선정과 적극적인 관리를 통해 매출을 늘리고 부동산 자산을 극대화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있다. 최근 국내 커피전문점의 경영진 중 상당수가 과거 건설회사 등 부동산 관련 회사의 임원 출신이며 필자가 재직 중인 부동산학과의 졸업생 진로도 부동산 관련 회사 외에 피자 전문점, 제과점 등 제조나 서비스회사로 다양해지고 있는 점을 봐도 그렇다

2. 소유냐 임대냐, 기업부동산의 보유 결정요인

기업이 부동산을 보유하는 데는 미래의 기대현금흐름을 바탕으로 한 재무적 분석 외에도 추가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많다. 소유, 임대 등의 부동산 보유 형태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공간 소요량과 사용기간

회사의 공간 소요량이 검토 대상 부동산의 최적 개발규모보다 훨씬 작을 경우는 임차가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부동산 사용기간이 길지 않아 영업완료 후 철수할 계획이 있는 기업이라면 사용 후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의 처분 비용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때도 임차가 유리할 수 있다.

투자의 성격과 시장 환경

부동산 가치상승을 기대한 투자의 성격으로 부동산을 보유한다면 이에 따른 위험부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의 가치는 지역 내 부동산 시세의 변동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소유/임차의 결정은 기업의 영업가치 및 지역 내 부동산 시장을 주도하는 요인 간의 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다른 부동산 투자가들이 역내 부동산시장에서 위험관리에 보다 더 우월한 역량을 확보하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레버리지 없이 부동산을 투자하는 연기금은 지역별 분산투자를 통해 기업들보다 효율적으로 부동산 시장 위험을 다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사업지역이 분산된 대기업은 특정 지역에 집중된 소기업보다 부동산을 소유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경영 능력

부동산을 매입해 보유만 한다면 부동산의 가치를 유지하고 끌어올리지 못한다. 따라서 부동산 자산에 대한 경영능력이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부동산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부동산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게 기업 활동의 일반적인 사항이 아니므로 부동산에 대한 경영관리 능력이 부족한 경우 부동산에 대한 잘못된 투자를 결정할 수도 있다. 또 관리능력이 모자랄 경우 사용비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소유한 부동산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특히 부동산 관리 및 처분과 관련한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 부동산 관리와 부동산 가치가 밀접하게 연관된 부동산에 무작정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유 부동산의 관리업무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외부 전문회사에 위탁 관리하는 방안이 별도로 필요하다. 최근 보험 등 보유 부동산이 많은 대기업들이 보유 부동산의 관리업무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세우는 것도 이런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간의 형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공간이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특수한 형태라면 임차보다 소유를 선호한다. 예컨대 하이테크 연구개발(R&D) 건물은 대형 물류창고에 비해 임차보다 소유의 형태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화된 시설을 이전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 등을 감안할 때 소유를 하는 게 더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임대인의 관점에서 이러한 특수한 형태의 공간에 건물을 임대해줄 경우 임차기업의 영업실적에 보유한 부동산가치가 연동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는 임차기업이 발행한 유가증권에 투자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임대를 꺼리게 된다

기업 재무상황

앞서 설명한 레버리지의 효과는 기업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영업이익이 부진한 기업의 경우 레버리지 효과는 최소화되고 오히려 고정적인 비용에 따라 당기순이익이 축소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에 비해 영업이익이 큰 기업의 경우 고정비용에 따른 세금효과가 크게 나타나 부동산을 소유하기에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부동산 투자는 모기지 등 타인 자본을 활용한다. 이 때문에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은 쉽사리 부동산 소유 결정을 하기 어렵다. 반면 기업의 신용도가 높아 시장 내 다른 투자자들보다 자금을 유리하게 조달할 수 있는 기업은 부동산 소유하는 결정을 더 쉽게 내릴 수 있다.

영업권

아울러 영업권의 확보가 중요한 기업도 부동산 소유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는 임대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영업권이 보호되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외국보다는 부동산의 소유 의사결정에서 영업권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

3. 주가 저평가와 인수합병 리스크

기업이 미래에 실현될 자본차익 등을 목적으로 부동산에 투자할 경우 재무제표에 예상하는 기대수익이 반영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동안 해당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정기적으로 자산재평가를 해야 하나 이때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대해 세금이 발생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향후 적대적 M&A가 보편화될 경우 주식의 저평가를 방치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현행 회계 기준에서 시가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지 않고 부동산이 이익 공시에 미치는 영향도 작다. 따라서 많은 시장 관계자와 투자자들은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어렵고 부동산 가치가 주가에 반영되지 못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회계적인 상각액이 실제 경제적인 가치 감소액을 넘어서기 때문에 회사가 공표하는 이익에 영업현금흐름이 과소평가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와 같이 부동산 가치가 주가에 적절히 반영되지 않을 때는 해당 기업이 기업사냥꾼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따라서 기업경영자들은 기업부동산이 저평가됐다고 인식될 때는 자산목록을 점검하고 불용자산을 매각처분하거나 매각 후 재임대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이 주식의 저평가를 가져오는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경영진이 부동산 가치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이를 투자자와 교감하지 못할 때다. 외부투자자들이 해당 부동산의 가치를 확인하는 데 드는 비용이 커져 주식이 저평가될 수 있다. 둘째, 투자자들은 현재 운영 수익이 없는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개선하려는 경영진의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면 미래 기대가치를 대폭 할인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미개발 토지의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경영진이 이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면 투자자들은 이 회사에 대해 낮은 가치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투자자들이 부동산의 숨은 가치(hidden value)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통제권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 수익부동산의 경우 경영진이 부가가치가 더 높은 대체 용도가 있는데도 현행 용도만을 고집할 때 주가가 저평가된다. 앞서 얘기한 뉴잉글랜드 전선의 상황을 주식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 여기에 해당된다

4. 기업 구조조정에서 부동산의 역할

최근 반복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예기치 못한 환경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일부의 회사에는 이런 위기가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업은 이론적으로는 영속적인 조직을 가정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생로병사를 경험한다. 기업이 내부적 요인이나 경제 환경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있으며 때때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많은 기업들이 이런 변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부실기업에 대한 다양한 연구도 진행됐다. 일반적으로 부실기업의 원인을 단기적으로 자금 수급에 문제가 있는 재무적 부실과 사업성이 저하돼 발생하는 경제적 부실로 나눌 수 있다. 사업성이 문제가 되는 경제적 부실이 발생할 경우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의 매각/처분 등 본격적인 인적/물적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을 시도할 수 있다. 재무적 부실로 판정될 경우 주간사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채무 재조정, 출자전환 등의 회생 작업이 진행될 수 있다.

보유 부동산이 있는 기업의 경우 불용자산의 매각 등 보유 자산의 재편을 통해 고비용 악성 금융 부채를 줄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와 같은 부동산 자산 활용은 1980년대 미국 등 선진국 기업들에 유행처럼 번진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 전략으로 광범위하게 적용된 바 있다. 1980년대 미국의 사업 환경은 규제 완화, 국제경쟁 심화, 주주활동의 증가, 주식가치 제고를 위한 사업 내용 재검토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진은 효율성을 추구했고 대형 M&A, 사업매각, 분사, 차입매수(LBO) 등을 통한 시장구조의 재편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기업보유 부동산이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수차례 경험한 바와 같이 부실기업으로 지정된 기업은 일련의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본사 건물을 매각한다. 이때도 기업의 영업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대부분 재임대(sale-leaseback) 형태로 사용 공간을 유지하게 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기업이 본사 건물을 소유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저평가된 건물의 가치를 현실화해 필요로 하는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아울러 부실기업의 대부분은 영업이익이 전혀 없거나 낮은 수준에 불과해 건물 매각으로 발생되는 자본차익에 대한 세금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부동산 매각을 통해 포기한 이익 중 레버리지 효과의 경우 영업이익이 발생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리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손실이 축소될 수 있다. 본사 건물의 매각은 시장에서 해당기업의 구조조정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즉각 인식돼 주가회복 등에 미치는 영향도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본사 건물의 매각에는 이르지 않더라도 보유 부동산자산의 가격이 상승한 경우 금융회사로부터 추가적인 자금을 차입 받는 차환(refinancing)도 가능해질 수 있다. 이는 구조조정을 쉽게 진행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자산은 반복적으로 발생되는 경제위기에 기업의 생존을 보장하는 상시적인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도 있다

5. 결론

부동산 자산에 대한 투자는 기업 본연의 업무는 아니다. 이 때문에 경영자의 전략적 관심의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부동산 자산은 개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업이 보유한 자산 중에 가장 비싼 물건이며 아울러 가장 큰 투자이기도 하다. 본연의 업무 이외의 다른 부문에 대한 투자의 성격이기 때문에 기업자산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볼 때 분산투자로서의 의미도 크다. 따라서 개인이 주택을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사 및 영업용 건물 등 사용목적이 분명한 부동산을 보유할 때도 본연의 사용목적 이외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보유가 장기적 관점에서 자본차익 등을 기대하는 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실제 오피스 시장에서 기업들이 가장 큰 투자자가 되고 있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경영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부동산이 장부가로 기업 보유자산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하는 투자라는 점을 감안해 다른 투자와 마찬가지로 신중한 검토와 과학적 분석을 충분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경영자가 잘 모르는 영역에 실제로 기업가치의 3분의1 이상이 투자되고 있다면 이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다수의 영업점을 운영해야 하는 유통업, 금융업 등처럼 부동산 관련 의사결정을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업종일수록 이를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업가가 부동산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전문기관 등을 이용해 부동산 자산의 운용 및 관리의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물론 이때도 기업 경영진이 어느 정도 부동산 자산의 관리 및 운용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sskoh@konkuk.ac.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MA, Ph.D)를 취득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2001년부터 건국대 부동산학과에서 부동산금융을 강의하고 있다. 관심 분야는 모기지, REITs, 부동산펀드, 부실채권정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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