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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위한 인문고전강독

애틋한 마음, 세상 품은 王道의 시작

권경자 | 88호 (2011년 9월 Issue 1)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DBR은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유기견을 학대하고 잡아먹기까지 한 노부부가 있어 충격을 주었다. 그들 부부는 버려진 개뿐 아니라 자신이 기르던 개까지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7월부터 동물 치료비에 10%의 부가가치세가 추가되면서 병든 반려동물을 유기견 보호소에 맡기거나 안락사를 시키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때 주인의 사랑 속에서 세상 걱정 없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버려졌을 때 얼마나 캄캄했을까!
 
2300년 전, 전쟁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흔하던 당시 끌려가는 소에게 애틋한 마음을 보인 왕이 있었다. 왕은 흔종(釁鐘)을 위해 끌려가는 소를 본 순간 눈망울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과 벌벌 떠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소를 놓아주라고 명령한다. 맹자는 그 마음이 왕도(王道)를 행할 수 있는 마음이라며 왕을 치켜세운다.
 
당시는 전쟁의 시대였다. 제후들은 부국강병을 위해 유세가(遊說家)를 찾았고, 유세가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제후를 찾았다. 하지만 맹자(B.C.372∼B.C.289)는 달랐다. 성인(聖人) 다음이라는 의미인 아성(亞聖)으로 불리는 맹자는 이름이 가(), 자()가 자여(子輿), 자거(子車)로, 전쟁의 시대에 평화의 길을 닦는 수레가 되고자 했다. 맹자가 주장한 것은 왕도(王道)였다. 그는 인()과 의()라는 나침반을 들고 각국을 다니면서 제후들에게 인의를 바탕으로 왕도정치를 할 것을 요구했다. 백성 중심의 정치, 백성들이 국가의 기반이 되는 세상, 백성들이 자신의 삶의 질에 대해 고민하고 공동체에 대해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이루는 것, 이것이 왕도정치다. 맹자는 인과 의로 다스림을 행하면 억울하거나 소외되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의식주가 풍족해져서 백성의 삶이 넉넉해진다고 봤다. 이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도리를 가르치면 백성들 모두가 열린 마음을 지니게 돼 ‘너’를 자신처럼 여기고 통치자의 기쁨과 건강까지 염려하고 챙기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맹자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거침이 없었다.
 
당시 제후들의 관심은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였다. 이는 과거에도 권력자들의 꿈이었고 오늘날에도 통치자의 희망이고 염원이며 근심이다. 부국강병은 시대를 넘어 권력자들이 꿈꾸는 가치다. 그들에게 맹자의 왕도는 뜬구름 같은 몽상(夢想)일 뿐이다.
 
하지만 맹자는 왕도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백성이 없는 것, 즉 백성들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왕도의 출발이라는 의미다. 사실 이는 통치의 기본으로 통치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지만 부강한 나라를 갈구하는 제후들의 욕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각국에 제후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유세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맹자가 ‘하루 따뜻하고 열흘 동안 춥다면 초목이 자랄 수 있을까(일포십한·一暴十寒)’라고 안타깝게 여겼던 것도 그 때문이다. 왕도를 들었다 할지라도 백성들의 삶은 철저하게 외면당했고 백성들은 제후들의 꿈을 원망했다. 이것이 당시의 모습이었다.
 
맹자는 의식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없다고 보았다. 백성들이 풍족해야 임금이 풍족해지고 그런 뒤에야 임금이 꿈꾸는 부강하고 막강한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맹자의 생각이었다. 공자의 제자인 유약(有若)이 흉년으로 국가재정이 부족하자 세금 인상을 생각하는 애공(哀公)에게 “백성이 풍족하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부족하며 백성이 부족하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풍족하겠습니까?(<논어> 안연9)”라며 과다한 세금징수를 말리고, 순자(荀子)가 “백성이 가난하면 임금도 가난하고 백성이 부유하면 임금도 부유하다(<순자>, 왕제)”면서 백성들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통치자의 안정된 삶임을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강한 나라와 임금의 안위는 백성들의 삶이 안정될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통치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선 백성들이 인간다움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하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삶의 기본인 의식주조차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부강한 미래는 환상이며 허상이다. 먼저 삶의 문제를 해결해 최소한 제 앞가림은 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를 설계하고 노력 여하에 따라 이룰 수 있는 열린사회, 삶의 질을 고민하는 사회는 그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 그럴 때 통치자의 비전을 국민들이 함께 염원하고 통치자의 기쁨을 국민들도 열광한다. 통치자의 안위와 건강, 행복을 바라고 그것을 기뻐하는 국민들이라면 국가를 위해 무엇인들 못할까? 이것이 왕도정치의 효과다.
 
죄 없이 끌려가는 소를 불쌍하게 여긴 왕은 제()나라의 선왕(宣王)이었다. 그의 관심은 패자(覇者)였던 제환공(齊桓公)과 진문공(晉文公)의 일에 있었다. 하지만 맹자는 그에게 왕도를 말한다.
 
“제가 과연 백성을 보호해 왕도정치를 할 수 있을까요?”
 
그는 설궁(雪宮)을 만들고는 으쓱해하며 군자도 이런 즐거움이 있냐고 물었으며, 자신은 유행가를 좋아하고 용맹을 좋아하며 여색을 좋아하고 돈을 좋아한다면서 왕도에 미리 선을 그었던 왕이다. 자신의 안전과 호사스러운 생활, 부강한 나라에 관심 있던 왕이다. 그런 왕에게 맹자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무엇을 보고 그리 장담하십니까?”
 
“왕께서 흔종을 위해 끌려가던 소를 불쌍하게 여겼다는 말을 호흘(胡齕)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지요?”
 
“아, 네! 그런 일이 있었지요. 두려움에 떨며 죄 없이 사지(死地)에 끌려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이것이 왕도를 행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답한다. 사지로 끌려가는 소에 대한 연민과 측은함이 왕도를 할 수 있는 근거라는 것이다. 그 마음을 넓혀서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긴다면 기본적인 삶을 지탱하지 못해 좌절하거나 자살에 이르지 않고 생존이 보장되는 사회라면 나아가 꿈도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타인을 안쓰럽게 여기거나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다. 이 마음이 있기에 역사 이래 폭력이 난무하고 어지럽던 시절이 있었어도 세상이 유지될 수 있었다. 맹자는 ‘남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마음(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인 이 마음이 인간감정의 기본이라고 봤다. 인간의 선함을 증명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마음이 인정(仁政)을 행할 수 있는 씨인 것이다. 이 마음으로 왕도까지 행할 수 있다.
 
매우 이상적인 정치행위인 왕도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맹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특별하거나 선하거나 능력 있는 사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단서가 있다. 나와 가깝거나 친할 때 그 마음은 더 깊이 작동한다. 교통사고안내 전광판의 숫자를 보면서, 먼 나라에서 날아온 비보를 들으며 잠시 안타까움을 느끼다가도 곧 무덤덤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제선왕이 불쌍한 소 대신 양으로 바꾸어 흔종하라고 지시한 것 또한 이런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는 “동정심이 숭고한 도덕의 원천이 될 수 없으며 도리어 때에 따라서는 경멸받아 마땅한 정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맹자는 끌려가는 소에게 동정심을 발휘했던 제선왕의 태도를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왕을 위해 변명해준다. 본 것과 보지 않은 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보지 않은 것에는 마음이 없지만 보고 느낀 것에는 마음이 담긴다. 결국 마음의 문제이다. 마음이 있을 때 안타까움도 동정심도 느끼고 그와 하나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인()의 정치이고 왕도의 시작이다.
 
흔종은 새로 만든 종에 피를 바르는 종교의식이며 제사의식이다. 따라서 흔종에 쓰이는 짐승은 구별해 기른 희생(犧牲)을 쓴다. 희생의 피는 갓 주조한 종의 거친 표면에 막을 입혀 보이지 않는 틈을 없애 조화로운 소리를 낸다. 이 세상뿐 아니라 저 세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생의 번뇌를 쉬게 하기에 흔종은 세상의 조화를 위한 행위이다. 이를 위해 가장 귀한 짐승을 쓴다.
 
리더는 보았기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소 닭 보듯 해서는 안 된다. 내 품 안에 담을 수 있는 조직을 넘어 세상을 안타까운 눈으로 보아야 한다. 맹자가 소에 대한 애틋함을 왕도를 행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한 것은 그 마음을 씨로 삼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것이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힘이다.
 
2300년 전, 제()나라의 선왕(宣王)은 흔종(釁鐘)을 위해 끌려가는 소의 눈망울을 본 순간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너무 애처로워 소를 놓아주라고 명령한다. 맹자는 그 마음이 왕도(王道)를 행할 수 있는 마음이라며 왕을 치켜세운다. 그 마음을 넓혀서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백성들도 불쌍하게 여긴다면 왕도를 행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매우 이상적인 정치행위인 왕도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맹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특별하거나 선하거나 능력 있는 사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단서가 있다. 나와 가깝거나 친할 때 그 마음은 더 깊이 작동한다. 특히 보지 않은 것에는 마음이 없지만 보고 느낀 것에는 마음이 담긴다. 리더는 보았기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소 닭 보듯 해서는 안 된다. 내 품 안에 담을 수 있는 조직을 넘어 세상을 안타까운 눈으로 보아야 한다. 맹자가 소에 대한 애틋함을 왕도를 행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한 것은 그 마음을 씨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힘이 된다.권경자 철학박사 iyagy2@hanmail.net
 
필자는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유교철학·예악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조선교육문화센터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유학, 경영에 답하다> <내 인생을 바꾸는 5분 생각> <한국철학사전(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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