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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山開道: 산을 만나면 길을 내라

박재희 | 85호 (2011년 7월 Issue 2)

얼마 전 열렸던 제3차 미·중 경제 전략회의에는 동양 고전에서 유래한 고사성어의 경연장이 됐다. 다이빙궈(戴秉國)를 단장으로 한 중국 대표단을 맞이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그들을 환영하는 만찬장에서 ‘봉산개도(逢山開道), 우수가교(遇水架橋)’라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고사를 꺼냈다. ‘산(山)을 만나면(逢) 길(道)을 만들고(開), 물(水)을 만나면(遇) 다리(橋)를 놓자(架)’라는 뜻이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해 도망갈 때 산에 막혀 갈 곳이 없다고 보고한 장수에게 한 말인데 산과 물이 가로막아도 길을 만들고 다리를 만들면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 고사성어로 미국과 중국이 동반자가 돼 난관을 돌파하자고 역설했다. 미·중 관계에 산이 막혀 있으면 길을 내서 돌파하고, 물이 놓여 있으면 다리를 만들어 만나자는 심중(心中)의 뜻을 전한 셈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전의 전략회의에서도 ‘인심제(人心齊), 태산이(泰山移)’라는 고사를 사용한 적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태산과 같이 높은 산도 능히 옮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 역시 양국 간의 어떤 문제든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풀어나가자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말이다.
 
미국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중국 베이징대에서 어학연수를 한 경험이 있는 중국통 고위관료로 알려져 있다.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유창한 중국어로 중국 고사성어를 인용해 중국 대표단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이전 1차 전략회의에서 손자병법에 나오는 오월동주(吳越同舟)를 변형해 ‘풍우동주(風雨同舟)’라는 사자성어를 만들고 직접 중국어로 발음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함께 험난한 환경을 극복해나가자는 화두는 중국과 미국의 동반자 인식을 기초로 한 것이다. 그가 이번 전략회의에서 던진 고전 어구 역시 ‘유복동향(有福同享), 유난동당(有難同當)’이었다. 좋은 일은 함께 나누고 나쁜 일은 함께 극복하자는 뜻으로 청나라 문장가였던 황소배(黃小配)의 책에 나오는 글에 기초한 문장이다.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동양고전을 인용한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중국을 포함한 동양을 그들의 관점에서 봉건과 불합리로만 생각하던 서양인들의 생각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편견의 종말을 고하는 듯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월가가 대재앙을 겪고 난 뒤에 ‘서양=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라는 틀이 깨지고 있다. 중국의 약진과 한국을 포함한 동양권 국가의 비약을 바라보는 서양인들의 눈길도 달라지고 있다.
 
중국과 동양에 대한 서양의 관심이 고조되는 요즘 우리는 얼마나 우리 문화와 인문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지나간 과거의 유산을 기반으로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내라! 동양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긴 것 같다. 동양 인문을 기반으로 조직문화를 다시 한번 점검해봐도 좋을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산이 가로 막고 물이 놓여 주춤할 때 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아 그 험난한 상황을 극복하자는 ‘봉산개도(逢山開道), 우수가교(遇水架橋)’ 화두는 우리에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조직이 어려움에 부닥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이런 고사를 인용해 직원들의 사기를 돋운다면 직원들의 마음을 능히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 박재희 박재희 | - (현)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taoy2k@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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