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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학 연구

작은 실패를 통찰하라, 파국을 피할 수 있다

심형석 | 78호 (2011년 4월 Issue 1)

편집자주

과거의 실패는 미래의 성공을 위한 소중한 자산입니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연구에 비해 실패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약합니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 포럼에서 실패 경영 관련 포럼을 운영하고 있는 심형석 교수가 실패 경영에 대한 통찰을 제시합니다.

실패학이란 실패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아직 학문으로서의 체계를 갖추지는 못하고 있지만 연구의 대상은 실패 그 자체다. 실패의 사전적 정의는일을 잘못해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백과사전)’ ‘어떤 일에서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함(국어사전)’ ‘일에 성공하지 못하고 망함(한자사전)’ 등이다. 즉 어떤 목표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고 처음 세웠던 목표와 다른 결과물이 발생했을 때를 실패라고 본다. 하지만 학문적 연구를 위한 실패의 정의는 이렇게 간단하게 봐선 안 된다. 실패는 상대적 개념으로 판단의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조직이나 개인에 따라 설정하는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판단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실패를 판단하는 기준

실패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2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바로 기간 개념과 실패 판단 기준의 다양화다. 우선 실패는 특정 시점(point of time)이 아닌 일정 기간(period of time)을 놓고 판단해야 한다. 개인이라면 길게는 한평생, 기업이라면 전() 영업활동 기간을 놓고 실패 여부를 가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종종 단기적 관점에서 실패를 판단하곤 한다. ‘빨리빨리라는 말로 대변되는 우리 국민들의 조급성이 작용한 탓이다. 하지만 실패를 특정 시점만 놓고 판단한다면 현재 IT업계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부도났던 회사가 다시 회생하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고, 한때 실패했던 개인이 화려하게 재기하는 케이스도 부지기수다. 실패를 판단할 때 특정 시점이 아니라 일정 기간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실패를 판단하는 기준도 층위를 달리해야 한다. 크게 기술적, 경제적, 관리적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기술적 기준은 기술개발의 성공 여부를, 경제적 기준은 사업화의 성공 여부를, 관리적 기준은 운영이나 관리의 지속성 여부를 뜻한다. 기업 경영을 하다 보면 기술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 R&D 기획 역량 부족)도 있고, 기술 개발과 사업화에는 성공했지만 회사 관리 및 운영상 지속성 여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경영권 승계 실패)도 있다. 이를 모두 똑같은 실패로 간주한다면, 이는 스티브 잡스를 실패자로 성급히 낙인찍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요약하면, ‘진정한 실패는 상당한 장기 기간을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경제적, 관리적 기준에서 모두 실패했을 때로만 국한해야 한다.

진정한 실패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은 좋은 실패를 구분해내기 위해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태도다. 실패학이 궁극적으로 성공을 지향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연구·분석하는 이유는 실패를 자산으로 삼아 향후 성공을 위한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기간 개념과 다양한 기준 없이 모든 실패를진정한 실패라고 규정한다면 수많은 실패 사례 중 향후 성공을 위해 자산화할 수 있는좋은 실패를 분간해내기 어려워진다. 이는 궁극적으로 실패를 반복하고 실패를 배울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실패의 유형

조직 측면에서 볼 때 실패는 크게성장단계별업종별시기별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1) 우선 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실패는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신규 기업은 경험과 자금력 부족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성장기업은 종종 과도한 경험과 복잡한 기업시스템으로 인해 실패하곤 한다. 기업의 산업수명주기(industry life cycle) 측면에서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면, 도입기 때는 자금이나 시장 진입, 품질 확보에서 실패를 경험한다. 성장기에는 새로운 차원의 과제들이 부상하게 된다. 인재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이 중요해지며, 경쟁 격화와 규모 확대에 따라 경영의 시스템화 니즈도 커진다. 이에 따라 성장기는 기업경영에 가장 좋은 시기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실패를 잉태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기술 금융, R&D 투자, 생산구조 개선 등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 실패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성숙기에는 기존 운영의 효율 극대화를 통한 원가절감과 신규 사업 및 시장을 모색하게 된다. 경영 안정에 중점을 두면서 비용 절감에 주력해야 하는 시기인데,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실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재성장기는 기업이 새로운 목표와 비전을 설정하는 단계인데, 이에 실패할 경우 인재 유출, 회사 분위기 침체 등을 통해 쇠퇴기로 접어들게 된다.
 

업종별로 나타나는 실패의 양상도 차이가 있다. 제조업은 시스템적인 문제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서비스업은 비()시스템적인 문제, 즉 고객접점인 MOT(moment of truth) 관리에서 실패한 경우가 상당수다. 궁극적으로 기업은 시장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제조업 또한 서비스업화 되는 것이 실패를 예방하고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서비스업 또한 본질적으로 제조업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으므로 생산성 향상을 통해 실패 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

시기별로는, 과거에는 주로 자원의 부족으로 실패한 경우가 많은데 반해 현재는 소통의 부재나 감성적 요인의 문제로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물론 조직 실패의 주요 원인이 소통부재는 아니지만 대다수는 소통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게 일반적이다. 소통은 포괄적인 개념이다. 단순히 언어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상호배려와 이해, 협력 등이 전제돼야 한다. 조직차원에서는 소통구조를 개선하고 경로를 다양화하며, 방식 또한 유연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요 실패 요인

국내외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실패 관련 연구는 대개 실패 기업에 대한 사례 분석이다. 필자가 국내외 대표적인 실패분석 연구 9가지( 1)를 비교 분석한 결과, 이 중 3가지 이상의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요인들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는변화에 저항무리한 확장 전략기술에 대한 맹신시장 실체 파악 실패 등 4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1) 변화에 저항 사회나 경영환경은 개인이나 조직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거부해 궁극적으로 실패에 이르는 경우다. 허츠(Hertz)는 렌터카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다. 그러나 허츠는 고객을 여행자로만 한정하고 정비소에 차를 맡긴 후 렌터카를 필요로 하는 도심의 렌터카 수요를 간과했다. 그 결과 엔터프라이즈(Enterprise)에 추월당하는 뼈아픈 실책을 저질렀다. 코닥(Kodak) 역시 기존 사업에 대한 미련 때문에 큰 화를 맞게 된 대표적 사례다. 코닥은 일찍이 1981년도에 디지털 사진이 100년 전통의 필름, 종이, 화학약품사업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변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심지어 코닥은 회사의 기존 사업을 확대하는 데 디지털 기술을 역이용할 수 있다고 보고 기존 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새로운 시장과 경쟁자의 부상 가능성을 간과하거나 과거의 성공에서 비롯된 지나친 자신감으로 변화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면 경쟁 우위를 상실하게 된다. 런던 비즈니스스쿨의 도널드 설 교수는 이를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활동적 타성이란 기업이 시장의 변화를 무시하고 과거 성공의 발자취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성향을 말하는데 잘 나가는 기업일수록 이 활동적 타성의 덫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한다.

2) 무리한 확장 전략 두 번째 빈번히 나타나는 실패 요인은 M&A나 신규 사업 등 무리한 확장전략을 추구하는 경우다. 일시적으로 성공을 거둔 개인이나 기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역량을 넘는 전략적 자원 배치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사례가 많다.

기업의 인수합병은 산업이 성장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확장전략의 절반 이상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 통합은 보통 대기업과 관련이 많다. 대기업은 대체로 견고한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 문화가 기업통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인수와 피인수라는 구조 또한 통합을 힘들게 한다. 한쪽은 승리(인수자)하고 한쪽은 패배(피인수자)하는 상황을 만들게 돼 패배한 쪽이 통합을 거부해 승자에게 협조하지 않거나 회사를 떠나게 된다.

자기 역량을 초과한 인수합병의 사례로 미국 에임스(Ames Department Stores)를 꼽을 수 있다. 1958년 창립한 에임스는 소매할인점의 개념을 가장 먼저 생각해낸 유통업계의 거물로 한때 월마트(Walmart), K마트(Kmart), 타깃(Target) 등의 뒤를 잇는 미국 내 4위 규모의 대형 할인점이었다. 하지만 에임스는 미국 최대 할인점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일련의 잘못된 인수 작업을 지속해 몰락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에 할인매장 체인인 G.C. 머피(G.C. Murphy)와 제이어(Zayre)의 할인매장사업부 등을 인수한 여파로 파산보호신청(1990)을 냈다가 겨우 살아났음에도 불구하고 1999년 힐스 스토어스(Hills Stores)를 또 다시 인수하는 등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저질렀다. 그 결과 이 회사는 2002년 청산 절차를 밟게 됐다.

상당수의 인수합병이 잘못되고 있지만 여전히 엄청난 규모의 거래들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KPMG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우리는 다르다는 규칙의 완벽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기업들이 인수합병에서 많은 실패를 저질렀다고 해서 우리도 실패하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기업이 많다. 실패한 사례를 자산으로 여기지 못해 계속해서 반복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전형적인 실패경영의 잘못된 사례다. 개리 하멜 교수는술 취한 사람 두 명을 합쳐놓는다고 멀쩡한 사람 한 명이 되지는 않는다고 인수합병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1

3) 기술에 대한 맹신 주로 기술기업에서 자주 나타나는 실패 요인이다. 대표적인 기술 전략의 실패 사례로 1991년 모토로라가 주축이 돼 추진한 이리듐 위성전화 사업을 꼽을 수 있다. 10여 년 가까운 개발 기간 여러 가지 문제점과 한계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모토로라는 이리듐 사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위성을 통해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화를 할 수 있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모토로라 기술진의 기술지향 호르몬을 과도하게 자극한 탓이다. 시스템 개발비로만 무려 50억 달러가 투입된 이리듐 사업은 결국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자발적으로 파산 신청을 냈다. 모토로라가 유무형의 막대한 피해를 본 것은 물론이다. 이리듐 사례는 기술에 정통한 기업마저도 신기술의 가능성을 평가할 때 엄청난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에 속고 싶은 유혹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춘카무이에 따르면 모든 기업은 성배와 같은 존재인 킬러 애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획기적인 제품은 엄청난 보상을 안겨줄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더 많은 개발예산을 집행하게 되고 이러한 기대와 복잡성으로 실패 확률은 더욱 커진다. 평범한 프로젝트보다 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실패 확률은 더 커지게 된다.

4) 시장 실체 파악 실패 마케팅적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복잡한 경영환경으로 경쟁자나 소비자가 달라졌거나 수면 아래에 니즈가 잠재돼 있어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다. 경쟁 기업을 잘못 해석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기업으로는 1980년대 GM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사람을 기계로 대체하면 일본기업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도요타를 포함한 일본 자동차회사들의 생산체계는 자동화보다는 낭비 없고 간결한 제조기술에 가까웠다. 로봇자동화에 대한 망상에 사로잡혀 GM은 노동자들을 감축하고 로봇으로 대체하려 했다. 저비용 생산의 핵심적인 성공요인을 알지 못했다는 말이다. 결국 GM 1980년대 자동화를 위해 450억 달러를 투자했으나 생산성은 오히려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자동화를 위해 투자한 금액은 당시 도요타와 닛산을 모두 살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한다.

<성공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를 저술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2  교수는일류기업들이 실패하는 최대의 원인은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개선해 더 많이 제공할 수 있도록 기술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시장 경향을 철저히 분석해 최대의 수익을 약속하는 혁신에 투자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언뜻 듣기에는 기업들이 성공으로 이르는 방식과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역설적이게도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경쟁을 분석하는 게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패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인식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으며, 고객과 경쟁을 분석하는 것이 기업의 주요 활동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임을 인식시켜 준다.

결론

4가지 실패 요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실패는 조직의 경영이 외부 환경과의 소통과 교류없이 내부로 향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 변화에 저항하거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해 특정 부문에 집중할 때, 다른 방향으로 잘못된 전략을 추구할 때, 조직이나 개인이 어려움을 겪게 되고 궁극적으로 파국에 이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실패 요인이 반드시 실패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적합한 환경과 적절한 조직이 결합되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성공을 이룰 수도 있다. 실패와 성공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 않던가.

다양한 실패 연구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런 실패 요인들이 모두 위험 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위험 지대에서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이냐의 문제다. 4가지 요인 중 어느 하나라도 발견하게 되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다시금 살펴보고 파국에 이르기 전에 대응할 준비를 사전에 갖춰야 한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핀란드 알토대에서 경영학 석사, 부산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학과장 및 동 대학 부동산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2009 11월부터 실패 경영과 관련한 온라인 포럼(www.seri.org/forum/bizfail)을 운영중이다.

심형석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 hsshim@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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