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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CEO의 격정토로, 미래CEO를 사로잡다

| 72호 (2011년 1월 Issue 1)

 

 
이번 글에서는 필자가 이번 학기에 수강하고 있는 ‘Managing in Adversity’라는 수업을 소개하려 한다. 세계적인 시장조사 업체인 ‘양키 그룹(The Yankee Group)’의 창업자인 하워드 앤더슨(Howard Anderson) 교수가 진행하는 이 수업은 슬론 스쿨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좌로 꼽힌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수업은 ‘기업의 존립마저 위협받는 극도의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CEO가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고 타개할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앤더슨 교수는 매주 수업 전에 특정 기업이 겪었던 실제 위기 상황에 대한 자료를 나눠준다. 수강생들은 ‘내가 해당 회사의 CEO라면 어떻게 하겠다’ 는 해결 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 수업에 그 위기 상황을 직접 마주했던 해당 회사의 CEO가 온다는 점이다. 학생의 발표가 끝나면, 진짜 CEO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당시 자신은 실제로 어떤 고민을 했으며, 위기 타개를 위해 어떤 행동을 취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미국 경영대학원 특유의 교육방식인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의 완결판이다.
 
얼마나 심각해야 ‘위기’인가?
CEO들은 대체 어느 정도 심각한 상황을 위기라고 인식하고 있을까. 매출이나 영업이익 15% 감소? 납기 지연? 고객 불만의 지속적 증가? 아니다. 대부분의 CEO들은 이런 일은 사소한 위기이거나 위기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언제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위기는 무엇일까. 수업 시간에 다룬 위기 상황은 다음과 같다.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을 위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개발한 어느 업체 앞에 어느 날 페이스북이라는 강력한 SNS가 등장했다. 그 기업의 CEO는 말했다. “개발자이자 CEO인 내가 봐도, 고객이 왜 페이스북을 놔두고 굳이 우리 서비스를 써야 할지 답을 못하겠더군요.”
 
미국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해온 외식 체인업체 는 어느 날 자사 고객의 신용카드 결제정보가 해킹 당하는 사고를 겪었다.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산정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한 은행이 하루 동안 무려 300만 달러의 부정 거래가 발생했다며 이 회사에 변상을 요구해왔다. 한 달이 지나자 이 금액은 무려 5000만 달러(한화 약 600억 원) 규모로 불었다. 의 1년 매출보다도 큰 금액이다. 한 전문 의료기기 회사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다수 고객, 즉 대형 병원들이 기기 구입 예산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바람에 1년 가까이 매출이 제로 수준이었다.
 
이 수업의 담당 교수이자 CEO인 하워드 앤더슨 역시 양키 그룹의 2인자이자 리서치 및 보고서 제작 부문의 총 책임자가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독립해서 경쟁 회사를 차리겠다’며 터무니없이 과도한 권한과 보상을 요구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미국 3위의 전자부품 도매업체는 자사의 물류기지(창고)가 갑작스러운 허리케인에 의해 완전히 파괴돼 경쟁사에 핵심 고객들을 빼앗길 상황에 놓였다. 이런 악몽 같은 상황들이 이 수업 시간에 다뤄진 위기다. 즉 다른 사람이 아닌 CEO 바로 자신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란 이렇게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상황들이다.
 
CEO들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CEO들은 고유의 성격과 경력을 갖고 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취하는 행동도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필자는 수업을 계속할수록 그 다양성 안에 면면히 흐르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가 수업을 통해 얻은 ‘성공적인 위기 타개를 위한 CEO 리더십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위기 상황에서도 늘 확신에 찬 모습을 보여야 한다. 확신이 없다면 확신이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대미문의 위기가 벌어지면, 임직원, 주주, 이사회 멤버, 공급회사, 소비자 등 해당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은 본능적으로 CEO만 쳐다본다. 이들의 시선과 마음 속에 존재하는 질문에 대응하고 답하는 일이 CEO만의 책임이자 존재 이유다. CEO가 침착하고 확신에 찬 모습을 보이면, 일단 모두가 안심한다. 반대로 CEO가 불안함에 쌓여 허둥지둥 대는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위기 상황을 실제보다 훨씬 더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한 CEO는 “내성적인 성격을 타고난 사람, 염려와 근심이 얼굴에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 CEO가 되려면 연기 학원이라도 다녀야 한다. 자신이 없어도 자신감 있는 표정과 태도를 지니도록 부단히 연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CEO의 침착하고 확신에 찬 자세와 태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둘째, 현장에 나타나 CEO의 존재감을 입증해야 한다. 위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동요하고 있는데, CEO가 자신의 집무실에 박혀서 혼자 이 궁리 저 궁리만 한다면 사람들의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다. 문제의 진원지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상황의 실체, 범위, 규모를 파악해야 한다. 지진으로 공장이 무너졌다면 설사 여진의 위험이 남아있다 해도 CEO가 해당 현장에 직접 나타나야 문제 해결을 위한 그의 강력한 의지와 헌신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최근 자사 제품의 결함과 관련해 침묵 및 아래로의 책임 전가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는 존슨앤존슨(J&J)의 윌리엄 웰든 CEO에게 특히 필요한 원칙이라 하겠다.
셋째,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만큼 높은 목표를 설정한 후 조직을 독려해야 한다. 이 원칙은 일상적인 경영 상황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어떤 조직원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는 목표를 달성하려 애쓰겠는가. 수업에 참석한 많은 CEO들은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위기 때 제 마음 속에 직감적으로 떠오른 수습 계획은 저조차 수긍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저보고 하라고 해도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그렇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해야만 한다는 점도 자명했습니다.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거나, 다같이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미국 3위 전자부품 유통업체의 CEO는 허리케인으로 물류 기지가 파괴되자 즉각 위기 대책 본부를 구성하고 회사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위기대책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COO에게 이런 미션을 내렸다. “이 지역에 임시 물류기지로 사용할 만한 건물이나 빈 창고를 찾아 계약하게. 또 파괴된 창고 안에서 그나마 판매가 가능한 제품들을 골라내 임시 창고로 즉시 옮기게. 이 모든 일은 72시간 안에 이뤄져야 하며, 그 후에는 고객에게 정상적인 납품이 가능해야 하네. 나는 고객들에게 72시간만 기다려달라고 지금부터 전화하겠네.”
 
수업에 동행했던 COO는 이 CEO로부터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너무 큰 사고를 당해서 이 노인네가 미친 거 아닌가?” COO는 “진심이십니까”라는 질문을 CEO에게 세 번이나 되물었다고 했다. 그때마다 CEO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물론이야”라고 답했다. COO는 이렇게 말했다. “CEO의 명령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의 방을 나왔다. 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마력에 홀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불가능할 미션이지만, 왠지 해야 할 것 같고, 하다 보면 정말 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책임과 권한을 부여 받은 COO는 파트타임 직원은 물론 그들의 가족까지 불러모아 전사의 인원을 총력 투입하며72시간 철야 작업을 수행했다. “불가능한 일을 이뤄내고 살아남겠느냐, 다같이 죽겠느냐?”는 CEO의 말 한 마디가 모두의 마음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한다’가 아니라 모두가 ‘내 일터를 내가 지킨다’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 그들은 기적을 이뤄냈다. 73시간이 지난 후, 첫 번째 수송 트럭이 임시 물류 기지를 출발했다.
 
CEO 리더십의 핵심
필자가 느낀 이 세 가지 원칙 이외에도 수업에 참석한 CEO들은 다양한 교훈들을 전달했다. 대표적 예가 “정리해고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과 같은 구조조정은 불경기가 아니라 회사가 가장 잘 나가거나 경제가 좋을 때 해야 한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지만, 사람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원칙도 감명 깊었다.
 
더 중요한 점은 의외로 많은 CEO들이 ‘해박한 경영 지식, 혹은 최신의 경영 이론으로 무장하는 일은 CEO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그들이 경영 지식이나 이론의 무용론을 이야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초대된 모든 CEO들은 미국 유수 경영대학원의 MBA학위 소지자들이었다. CEO들은 “내가 경영 지식과 이론으로 무장하는 일보다 유능한 참모들을 곁에 두고, 그들의 지적 자산을 충분히 활용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CEO의 임무”임을 강조했다.
 
즉 경영 지식은 빌릴 수 있지만 조직의 리더로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용기, 확신, 자신감, 상황 판단 및 장악력 등은 그 누구에게도 빌려올 수가 없다. 이런 덕목은 절대 타고나거나, 거저 주어질 리 만무하다.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절감하고 꾸준히 연습하고 배양해야만 보유할 수 있는 덕목들이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경영컨설팅회사 올리버 와이먼에서 금융, 하이테크, 통신 분야의 컨설팅을 수행했다.
 
MIT 슬론 MBA스쿨은 1914년 GM의 CEO였던 알프레드 슬론이 설립했다. 수리와 계량적 접근을 중시하는 실사구시 학풍을 기반으로 혁신, 창업, 계량 분석, 정보 기술(IT) 분야 등에서 세계 최고의 MBA스쿨로 꼽힌다. 매년 39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입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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