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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보다 식단부터 챙긴 아르센 벵거

하정민 | 64호 (2010년 9월 Issue 1)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4대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아스날, 리버풀) 중 하나인 아스날의 수장 아르센 벵거 감독은 여러모로 독특한 인물이다. 알렉스 퍼거슨, 거스 히딩크, 호세 무링요 등 인기와 화려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감독들이 넘쳐나는 축구계에서, 그는 자신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조용함으로 아스날의 성공을 주도해왔다. 이런 캐릭터와 프랑스 명문 스트라스부르크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딴 이력이 더해져 별명도 ‘교수’다.
 
1996년 아스날에 부임한 벵거가 처음 한 일은 선수단 파악이 아니었다. 그는 식단에서 적색 육류를 없애고 찐 생선과 삶은 채소 위주로 메뉴를 바꿨다. 맥주도 금지했고 커피의 설탕 양까지 점검했다. 당시 선수들은 기름이 줄줄 흐르는 베이컨과 소시지, 튀긴 생선, 짠 맥주, 설탕이 가득 든 커피 등을 즐겼기에 벵거의 지시를 못마땅해 하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이를 밀어붙였다. 아스날에 오기 전 일본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의 감독이었던 벵거는 체계적인 훈련과 식단, 절제된 사생활 등 일본 스타일에 매료됐던 인물이었다. 변화가 결과물로 나타나자 선수단 분위기도 달라졌다. 부임 첫 해인 1996∼1997년 시즌 아스날은 만년 하위권이라는 오명을 벗고 리그 3위를 기록했다. 1997∼1998년 시즌에는 강력한 라이벌 맨유를 넘어 우승했다. 2001∼2002 시즌에는 100년이 넘는 EPL 역사상 처음으로 원정 경기 무패 우승까지 달성했다.
 
1990년대 후반 아스날을 이끌었던 토니 애덤스, 리 딕슨, 나이젤 윈터번 등 노장들은 벵거의 부임 이후 자신의 몸에 큰 변화가 나타났으며, 덕분에 선수 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다고 칭송했다. 프랑스 출신 이방인에게 적대적이었던 영국 감독들도 결국 그의 방식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제 대부분의 EPL 구단들은 지방 및 염분을 제한한 식단을 내놓고 있다. 히딩크 감독도 한국 대표팀을 지도하던 시절 염분이 많다는 이유로 김치찌개와 고추장 등을 금지하려고 했었다.
 
벵거의 방식이 옳으냐 그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선수 개개인의 몸에 엄청난 돈이 걸려있고,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EPL에서도 벵거 이전에는 선수단 건강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축구 종주국이라는 전통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영국 축구계가 낯선 프랑스인의 변혁을 받아들인 것도 벵거가 이 점을 포착하고 개혁에 착수한 첫 번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축구계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이제 직원 건강이 곧 기업 경쟁력인 시대가 왔다. 핵심 인재를 뽑는 일도 중요하지만 기껏 뽑아놓은 핵심 인재가 질병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려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기업에 이보다 더 큰 손해는 없다. 기업이 직원 건강관리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건강보험 비용을 줄이려는 의도도 있지만 미국 기업은 일찍부터 직원 건강관리에 열심이다. 구글은 사내 음식점에서 건강에 유익한 정도에 따라 음식을 녹색, 노랑색, 빨강색으로 분류해 판다. 유기농 식품 업체 홀푸드마켓은 비흡연자나 적정 수치의 혈압을 가진 직원이 매장에서 물건을 사면 할인 혜택을 준다. 인텔, 파파존스 피자 등도 직원이 살을 빼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면 인센티브를 주고, 다양한 운동관리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동참자가 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부터 비만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의 비만도를 측정해 수치가 130 이상인 중등도 비만 직원을 대상으로 사내 피트니스센터에서 8주간 주 3회 운동을 의무적으로 시킨다. 비만관리 성공 여부를 고과에도 반영한다. 구내 식당에서는 요일별 다섯 가지 테마 건강식단을 제공하고 금연과 자전거타기 운동도 벌인다. 미국계 제약회사인 한국애보트는 비만관리에 성공한 직원에게 휴가비를 지급한다.
 
미국 경제조사기관 컨퍼런스보드는 미국 기업들이 2008년 직원 비만 때문에만 연간 450억 달러를 지불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건강보험 개혁법의 통과로 앞으로 기업이 부담할 건강보험 비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성인병이 날로 증가하는 한국의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거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짝패’에서 배우 이범수가 남겼던 명대사다. 무한 경쟁 시대를 이보다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한 말이 있을까. 오래 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건강이다. 직원 건강관리는 직원과 기업의 공동 책임이자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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