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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 인턴 체험, 美기업의 몰입을 배운다

| 63호 (2010년 8월 Issue 2)
대다수의 MBA 1학년생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서머 인턴십을 수행한다. 미국 주요 도시 및 홍콩, 싱가포르, 서울 등지에서 컨설팅, 투자은행, 대기업 등 각자의 커리어 목표에 부합하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필자는 슬론 MBA 스쿨에 입학하기 전 4년간 근무했었던 컨설팅회사 올리버 와이먼의 샌프란시스코 사무소에서 인턴 업무를 시작했다. 현재 시애틀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개발기업의 신제품 개발 및 신규시장 진출 전략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MBA 지원자들은 모두 ‘나는 왜 MBA를 원하는가?’에 대한 본인만의 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는 미국 현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점이 정말 중요했다. 졸업 이후 미국에 본사를 둔 외국계 경영컨설팅회사를 5년 넘게 다녔지만, 소위 자본주의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미국 기업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미국 현지의 컨설팅회사들은 그 쟁쟁한 고객들을 어떻게 다루면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약간의 노력 끝에 예전부터 큰 관심을 가졌던 한 회사에서 일할 수 있었다. 한 달 반 동안의 인턴 생활을 돌아보며 학교에서 배웠던 ‘경영’과 기업 현장의 ‘경영’이 어떻게 다른지 논해보고자 한다.
 
‘공기’처럼 느껴지는 구성원의 다양성
필자가 지난 한 달 동안 수행했던 프로젝트의 팀원들을 간단히 소개한다. 필자를 포함해 총 7명이 있었는데 나머지 여섯 명의 국적은 미국이었다. 그러나 인종적 배경은 러시아계, 중국계, 인도계, 레바논계, 덴마크계 등으로 매우 다양했다. 고객회사의 제품기획 매니저 또한 일본계 미국인이었다. 미국 기업 현장에서 이러한 구성원의 다양성은 너무나 일상적이고도 당연했다.
 
다양성이 기저에 깔려있는 업무 환경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쉴새 없이 교차했다. 아이디어 교환의 결정판이라 할 회의에 참석하고 있을 땐 신이 날 정도였다. 과거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들이 비생산적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일을 직장생활에서 경험하는 최악의 순간으로 꼽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 회의 진행 방식과 진행자의 역량도 물론 회의의 효율성과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지만, 구성원들의 다양성이 창출해내는 본원적인 즐거움과 재미가 쏠쏠하다.
 
다양성은 미국 기업현장의 기저에 흐르는 중요한 규칙, 즉 상호 존중(mutual respect)의 기반이다. 워낙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일하다 보니,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혹은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는 하나의 정답’이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인식을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에 구성원 간 관점과 견해에 차이가 생기더라도 서로 그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려 애쓴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대개 연령이나 직급이 높은 사람, 혹은 회사 내 다수가 생각하는 의견을 따르거나 따라야만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연령, 직급, 숫자 상의 다수와 상관없이 각자가 가진 의견, 개성, 스타일 등이 모두 그 자체로 존중 받는다.
 
업무 시간엔 오직 업무만
필자가 서울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던 시절, 퇴근 시간은 대개 밤12시를 넘겼다. 정신 없이 바쁜 시기에는 주당 100시간이 넘게 업무에 매달렸던 기억도 난다. 가끔 해외에서 열리는 사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미국, 유럽 등지에서 온 동료 컨설턴트들과 업무시간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항상 “어떻게 그렇게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느냐”며 혀를 내두르곤 했다. 자연스럽게 ‘미국에서 일하게 되면, 서울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여유롭게 일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서머 인턴 첫 주를 보내면서 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평균 퇴근시간은 서울보다 빠르다. 아무리 늦어도 밤 9시 이전에는 퇴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 평균 업무량을 비교해보면 서울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이 일한다. 즉 시간당 처리 업무량과 업무 생산성이 훨씬 높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미국에서는 점심 및 저녁식사 시간을 한국처럼 소비하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보통 점심 식사를 위해 1시간(12시∼1시), 저녁 식사를 위해 약 1시간∼1시간 30분(6시∼7시30분) 정도를 소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일하는 동안엔 점심과 저녁을 합쳐서 1시간을 쓴 기억도 거의 없다.
 
회의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는 흡사 끝장 토론을 연상케 하는 무한 반복 회의를 종종 경험했다. 반면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회의가 30분 이내, 아무리 길어도 1시간 이내에 끝난다. 필자는 조직 전체의 업무 몰입도를 높이려면 회의 시간을 짧게 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회의를 하다가 다른 이야기로 빠지거나, 의견 충돌을 일으킨 사람들이 감정 싸움으로 시간을 소모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필자를 포함해 업무 시간 전체를 업무에만 소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국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다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항상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필자 또한 업무 시간 중간에 커피 타임, 동료들과의 잡담, 인터넷 서핑 등 딴짓을 즐겼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이런 딴짓을 하기가 어렵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주위에 딴짓을 하는 이들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에게 업무 시간은 말 그대로 업무 행위를 하는 시간이다. 어떤 면에서는 지독하게 엄격하고 고지식한 사람들이다. 또 상사로부터 매우 상세한 업무 지시, 완전히 몰입해야만 마칠 수 있는 빡빡한 마감 기한을 부여 받기에 물리적, 정신적으로 딴짓할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미국 기업의 중견 관리자들은 부하 직원의 업무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다. 개입 및 관리 정도 또한 한국 기업의 중견 관리자보다 훨씬 높다.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를 키우는 시스템
다소 외람되지만 한국에서 자칭 타칭 비즈니스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 중 진정한 의미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필자가 현재 일하고 있는 이 회사는 올리버 와이먼으로부터 25년 넘게 경영 자문을 받고 있다. 25년 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이 회사에서 자신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올리버 와이먼 컨설턴트들은 지금 파트너가 되어 여전히 이 회사의 자문을 담당한다. 경영 전략 시간에 배웠던 용어로 표현하자면 이들은 ‘Inside Outsider’다. 그 누구보다도 이 회사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으면서도(inside), 동시에 객관적으로 회사를 진단할 수 있기에(outsider)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들이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경영컨설팅을 ‘one-shot 서비스’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이 방식도 나름의 장점은 있다. 하지만 회사의 전후 사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통찰력 깊은 권고안을 제공하기에는 축적된 경험도, 주어진 시간도 너무 부족할 때가 많다.
 
한국 대기업들이 진정으로 통찰력 있고 구체적인 권고안을 원한다면, 일단 중장기적 관점에서 컨설팅 회사와의 파트너십 관계 설정부터 검토해야 한다. 당연히 한국의 컨설팅 회사들도 겸허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과연 고객 회사가 충분히 인정하고 만족할 만한 경영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는가’ 등에 대해서 말이다.
 
미국 기업에서 일하며 느낀 그들의 장점은 분명 필자와 같은 이방인에게 매력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했던 시절이 그리울 때도 많다.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어차피 필자는 이곳에 단기간만 머물 이방인이기에 쉽게 동질감이나 연대의식을 느끼기 어렵다. 때로는 한국 직장에서 느꼈던 끈끈한 동료애나 형제애가 그립다. 노트북 스크린을 보며 샌드위치로 10분 만에 끼니를 때울 땐, 식사 자리에서 동료들과 나누던 일상의 잡다한 얘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직장 동료와 나누는 남다른 유대감과 우애를 잘 개발하기만 한다면 이는 분명 한국 기업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장점이 될 수 있다. 남은 인턴 기간, 아니 남은 MBA 1년 동안, 한국 기업들이 가진 장점들을 최대한 살려내는 동시에, 소위 글로벌 일류 기업들이 가진 강점과 경쟁력에 어떻게 이를 효과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해보고 싶다. 그 답을 필자의 머릿속과 가슴에 담은 채 졸업할 수 있다면, MBA 2년을 통틀어 가장 귀하고 값진 배움의 결과물이 아닐까.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스쿨,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 중국 유럽국제공상학원(CEIBS) 등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MIT 슬론 MBA스쿨은1914년 GM의 CEO였던 알프레드 슬론이 설립했다. 수리와 계량적 접근을 중시하는 실사구시 학풍을 기반으로 혁신, 창업, 계량분석, 정보기술(IT) 분야 등에서 세계 최고의 MBA스쿨로 꼽힌다. 매년 39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입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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