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이단아' 소로스, 강단에서 금융위기를 논하다

김영권 | 57호 (2010년 5월 Issue 2)
런던비즈니스스쿨(LBS)은 라는 별도의 강의를 마련해 학생들에게 정재계 저명 인사들과 만날 기회를 준다. 이 강의는 최근 세계 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해 저명 인사들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후 LBS학생, 교수진, 동문들이 이에 대해 직접 토의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국제 금융의 중심인 런던에 위치한 만큼, 최근 헤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 런던증권거래소의 CEO 자비에르 롤렛 등 저명 인사들이 잇따라 방문해 교수진 및 학생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이중 조지 소로스의 강의가 학생들로부터 특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 LBS 학장인 앤드루 리키먼의 개회로 시작된 이 자리에는 금융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LBS의 리처드 포티스, 줄리안 프랭크스, 락시마난 시바쿠마 교수와 2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해 최근 국제금융 시장의 상황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소로스 “효율적 시장 가설의 효용성 떨어져” vs LBS 교수진 “글쎄…”
소로스는 최근의 금융시장 위기와 관련, 자신을 포함한 모든 시장 참가자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며 이는 정책 담당자 또한 마찬가지라고 운을 뗐다. 위기 상황에서 이들은 위기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고, 적합한 정책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낼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리먼 브러더스 파산 등 금융시장 및 실물경제 붕괴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특히 소로스는 경제학 및 재무관리의 기존 이론에 몇 가지 다른 주장을 던졌다. 첫째, 그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 실제 시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둘째, 행동 경제학에 기반한 최근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장의 가격 불일치(Mis-pricing)’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가격 불일치 자체가 시장의 펀더멘털에 다시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셋째, 시장 균형에 기반한 위험 관리 모델은 시장이 균형으로부터 많이 떨어져 있을 때는 효과적으로 적용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소로스의 주장에 대해 LBS 교수진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리처드 포티스 교수는 “경제활동 주체들의 행동과 데이터가 서로 영향을 준다는 소로스의 이론이 일부 경제 모델에는 부합하지만 모든 경제 이론과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 최근 10여 년간 세계 각국 금융 시스템의 규제 완화(Deregulation)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 원인”이라며 “현재보다 더 나은 규제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줄리안 프랭크스 교수는 “효율적 시장 가설에 몇 가지 예외가 존재하는 점은 사실”이라면서도 “소로스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재무관리의 위험수익 모델, 순현재가치(NPV) 규칙, 분산투자 이론의 존재 근거가 위협받는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재무 경제학의 기본 이론 틀을 현 시점에서 완전히 해체하거나, 금융위기의 원인을 섣불리 단정짓기보다는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바쿠마 교수는 “효율적 시장 가설의 핵심은 이미 시장에 알려진 정보를 이용해서는 비정상적인 이익을 얻을 수가 없다는 점”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주식시장에서 초과 수익률을 얻지 못한다는 점은 이 가설이 옳다는 걸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 역시 “많은 뮤추얼 펀드가 시장 초과 수익률을 달성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소로스 펀드가 과거 우수한 투자 수익률을 올렸다는 점은 효율적 시장 가설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시바쿠마 교수는 시장을 설명하려고 할 때 행동경제학을 고려해야 한다는 소로스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또 소로스의 의견이 자신의 ‘Catering Theory of Earnings Management(투자자들이 예상치 못한 실적 호재에 반응한다는 이유로 많은 경영자들이 기업인수(M&A), 경영정책 및 회계기준 변경을 통해 이익을 부풀리려고 하는 경향)’과 일치하는 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LBS 교수진의 의견에 대해 소로스는 “나는 기존 경제학을 해체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불확실성 하에서 다른 가설이 더 나은 결과를 줄지도 모른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고 답했다. 그는 금융위기 동안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상당부분 헤지(Hedge)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소로스는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모두 금융시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금융위기의 교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현재 존재하는 위험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제 자산 거품 조정에 나설 때
교수진과의 토론 이후 소로스는 약 1시간 동안 행사장을 가득 메운 200여 명의 학생들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소로스의 오랜 경험과 깊은 사고를 느낄 수 있었다.
 
한 학생이 이번 금융위기에 대한 견해를 묻자 소로소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결국 각국 정부가 금융회사들에 대한 잇따른 지원과 보증을 통해 이제 겨우 시장이 안정을 찾고 금융 시스템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긴 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모럴 해저드가 새로운 차원으로 확대됐다. 근본적인 시스템의 정비가 없으면 이번 금융위기와 같은 문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기회를 통해 배우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규제 시스템을 개혁해서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거품(Bubble)에 대한 질문에 소로스는 이런 답변을 내놨다. “거품에는 크게 신용 거품(Credit Bubble)과 자산 거품(Asset Bubble)이 있다. 최근 시장 동향을 보면, 금융위기 전과 마찬가지로 금이나 원유 같은 원자재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금융위기로 신용 거품은 다소 가라앉았지만 자산 거품의 위험은 여전하다. 자동차가 미끄러질 때, 일단 같은 방향으로 진행한 다음 방향을 조정해야 안전하듯 금융시장에서도 이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지금 두 번째 단계의 거품 조정기에 있다. 자산 거품을 잘 조정하지 못하면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일본은 자산 거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결국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하고 경제의 성장동력을 잃어버렸다. 이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한 학생은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각국의 국가 부채가 많이 증가했다. 민간 부문의 위기가 공공 부문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소로스는 “각국 정부는 중앙은행의 통화공급과 국채 발행을 통해 금융위기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나라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영국은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미국은 아직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듯 보인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가 170%에 달하지만 아직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일본의 저축률이 감소하고 있고, 인구감소와 노령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지금은 세계 각국 모두 경제의 균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이므로 어떤 식의 획기적 정책을 도입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소로스의 마지막 말이었다. 소로스는 “과거 저서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내 주장을 피력하곤 했지만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며 “최근의 금융위기를 통해 이제서야 내 주장이 재조명 받고 있다는 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나는 그 동안 많은 학자들과 의견 교류를 갖지 못했다”며 “내 주장을 LBS 교수진 및 학생들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져 기쁘다”는 말로 토론을 마무리했다.
 
아무리 헤지펀드 업계의 제왕이라 해도 주류 경제학, 각국 정부 관계자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그의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주류에서는 동떨어진 시각이라도 어떤 아이디어가 다른 의견과 만나 더욱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직접 목격했다는 점이 이번 강의에서 얻은 소득이다.
 
런던비즈니스스쿨(LBS)은 1964년 설립됐으며 2010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글로벌 MBA 랭킹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세계의 금융 허브인 런던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 외에도 ‘핵심 역량’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게리 하멜 교수 등 우수한 교수가 많다. 약 400명의 풀 타임 MBA 과정 학생 중 90%가 비(非) 영국 국적 학생들일 정도로 다양성과 글로벌화를 강조하고 있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스쿨,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 중국 유럽국제공상학원(CEIBS) 등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