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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Marketing

지역 개발 공약도 시뮬레이션 생생히

홍성용 | 56호 (2010년 5월 Issue 1)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지방선거 시즌이 돌아오면 수많은 후보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개발 공약을 내세운다. 이런 개발 공약들을 보면 두려움이 든다. 대부분 유사한 개발 공약들을 시간에 쫓기듯 토해내기 때문이다. 이런 개발 공약의 결과물로 도시에서는 하나둘씩 거대한 건물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과연 ‘세계 최고’를 내세웠던 개발 공약들은 매력적인 효과를 만들어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대부분 막대한 재원만 소진했고 보다 나은 기회는 상실됐다.
 
개발 공약, 집객 효과와 지속가능성이 중요
제한된 기회에서 실패 확률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페이스 마케팅은 개별 상점뿐 아니라 도시의 거대한 건축 공간에도 적용할 수 있다. 공간과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마케팅의 실천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사용자적인 시각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스페이스 마케팅의 궁극적 목표인 ‘집객(集客)’ 효과를 높이려면 이용자들, 즉 주민들과의 접촉 빈도수를 높이고 이들의 만족도를 올려야 한다. 더불어 유지 관리 비용까지 고려한 재정적 흐름도 좋게 만들어야 지속가능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모범 사례로 꼽을 만하다. 구겐하임 미술관 자체로는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빌바오 시는 초반에 예상 규모를 훨씬 넘는 건축비를 지원해야 했다. 이는 시에 큰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소장한 미술품들을 아무리 멋지게 전시해도, 입장료 수입은 건축비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소도시에 불과한 빌바오 시에는 인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자체 수익성이 낮은 구조로, 경제적인 논리로 따지면 선택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겐하임 미술관의 파급 효과는 ‘빌바오 이펙트’라 불릴 정도로 매우 컸다. 첫 번째 성공 이유는 그 자체가 역사적 유적이 될 정도로 높았던 건축 작품의 완성도였다. 세계적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의 철학적, 사유적 완성도가 단순히 특이한 디자인에 머물지 않고 본질적인 차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풍부한 콘텐츠의 확보였다. 세 번째는 프랭크 게리와 구겐하임이라는 브랜드 파워였다(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통한다). 이는 빌바오라는 낙후된 도시와 대비되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네 번째는 문화 복지 차원의 훌륭한 운영 프로그램이었다. 이는 문화 소비가 강한 유럽이라는 배경과 맞물려 충분히 빌바오까지 사람들을 끌어올 수 있게 했다. 사람들의 방문은 입소문과 신문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다. 그 결과 빌바오는 새로운 문화 산업의 기틀을 확보했고, 관광 산업도 일으킬 수 있었다.
 
결국 디자인 완성도와 통계 및 자료에 기반한 공간 프로그램, 재정적 흐름이 모두 균형을 이룰 때 개발 프로젝트의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체계적 운영 프로그램과 사회적 접근이 성공 요인
이와 반대로 운영 프로그램이 허술해 실패한 사례도 있다. 일본의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한동안 성공 사례로 언급됐지만, 미흡한 접근성으로 관광 자원화에 실패했다. 산골짜기 등 외진 곳에 흩어져 있어 도심 건축물까지 이동 연계성이 미약했던 것. 크고 작은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있었지만, 이들 간 연계 프로그램들이 미비해 그 효과가 증폭되지 못했던 셈이다. 더욱이 최근 지역민들의 참여에 대한 불만으로 지역 기반 건축가와 관료들이 참여한 작품들을 후속 프로그램으로 추가했지만, 작품 수준은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이 프로젝트는 지속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고,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일본 유명 건축가들도 관료적 사고방식과 부대끼며 차츰 참여 의지를 잃어갔다.
 
진지한 사회학적 고려 없이 가시적 성과물만 만들어도 실패한다. 미국의 ‘프루이트 이고’라는 주거 단지는 인종 화합이라는 유토피아적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지어졌다. 미국에서 그해의 최고 건축상까지 받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초반의 디자인과 다르게 축소돼 지어졌다. 그 결과 초반부터 입주와 관련한 문제가 생기더니 급기야는 ‘깨진 유리창 이론(깨진 유리창과 같이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그 지점에서부터 범죄가 확산된다는 이론)’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며 강도 폭행 등 수많은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결국 이 공간은 1972년 폭파됐다.
 
지자체 선거에서 개발 공약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유사하다. ‘멋진’, ’최고의’ 등 수식어로 가득하지만 조금 더 뜯어봐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떤 효과’가 만들어지는지 구체적인 시뮬레이션이 있어야 한다.
 
2002년 자치 문화체육시설로 준공된 서울 마포아트센터는 이런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초반에는 다른 지역의 유사한 프로그램을 갖춘 시설들 보다 지역 체육 공간으로서 활용도가 높았다. 하지만 운영 프로그램에 대한 기획이 미비해 전체 공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공연장은 민방위 교육장 역할에 그쳤다. 총 예산 446억 원이 투입된 점을 감안하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지역 여론이 일었다. 2008년 4월 마포아트센터는 시설을 리모델링하고 운영 프로그램을 강화해 다시 개관했다. 이후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수준 높은 공연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마포아트센터는 마포 지역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이 됐다. 지역 주민들의 문화 소비 욕구 증대라는 시대적 흐름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었던 셈이다.
 
지속성과 관계를 고민하는 리더가 스페이스 마케팅 이끈다
스페이스 마케팅의 핵심은 ‘지속성’과 ‘관계’에 있다. 이는 인문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관점이 반영된 매우 섬세한 프로그램만이 가져오는 결과다. 지속성과 관계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와 연구, 아이디어가 있으면, 오래된 물탱크(미국 시카고 시는 대화재의 상징으로 남은 물탱크를 관광 자원화했다) 하나라도 충분한 가치를 갖게 된다.
 
스페이스 마케팅의 관점에서 개발 공약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주거 등 생활 공간과 전통 시장 개선을 통한 지역 소득 증대 공약, 디자인 이슈와 연관된 관광 상품화 공약, 역사적 경관 보존 등을 통한 인문학적 접근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어떤 유형이든 간에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지역의 한계와 비전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선거에서 선출된 자치단체장은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이후의 모든 책임은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잘못된 개발 공약을 선택해 혜택을 입지 못하는 주체도, 실패로 인한 부채를 부담해야 하는 주체도 모두 지역 주민이다.
 
편집자주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공간’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공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직원들의 삶의 터전이자 고객과 만나는 소중한 접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영학에서 공간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합니다. 이 분야의 개척자인 홍성용 모이스페이스디자인 대표가 공간의 경영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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