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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과 직관, 당신이 믿는 쪽은?

김남국 | 53호 (2010년 3월 Issue 2)
‘기업이 성공하려면 훌륭한 기획(planning)이 필요하다.’
 
너무나 당연한 명제 같지만 경영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이와 관련한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다. 논쟁의 핵심은 치밀한 ‘기획’이 중요한지, 아니면 경영자의 직감이나 현장에서의 학습이 중요한지 여부다.
 
기획이 중요하다는 입장에 선 대표적인 학자는 경영 전략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고르 앤소프다. 그는 기획을 잘해야 자원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하고,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져 기업 성과도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또 다른 경영 대가인 헨리 민츠버그는 엄밀한 기획이 기업의 경직성(rigidity)을 유발하고 유연성(flexibility)을 떨어뜨려 성과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획이 중요하다는 게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치밀한 기획 없이 성공한 사례도 많다. 고전적인 예가 혼다의 미국 오토바이 사업이다. 혼다는 1950년대 말 미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 덩치가 크고 소득이 높은 미국인들이 소형 오토바이를 절대 사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당연히 초기에 대형 오토바이만 출시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회사는 어려워졌다. 그런데 미국 현지 혼다 직원들이 자국에서 인기를 얻었던 소형 스쿠터를 타고 다녔는데 딜러들은 예상 밖으로 여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잃을 게 없다는 심정으로 혼다는 소형 오토바이를 출시했는데 시장 반응은 뜨거웠다. 혼다는 이를 발판으로 중대형 오토바이 시장도 장악했다.
 
서양에 비해 한국에서는 특히 체계적인 기획보다 감이나 개인적 경험에 의존하는 경영자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MBA 교육 등으로 경영학이 광범위하게 보급된 게 최근 일이고, 복잡한 경영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관리자가 늘어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특히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경험과 감을 중시한다.
 
최근 미국 시카고 로욜라대 잰 브린크만 교수 연구팀은 이 문제와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비즈니스 기획이 중소·벤처 기업의 성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분석한 47개 선행 연구에 대한 ‘메타 분석(meta analysis)’을 실시했고 그 결과를 저명 학술지인 (Vol. 25, 24∼40)에 발표했다.
 
분석 결과, 비즈니스 기획은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은 외부 환경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내부 대응책을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에 기업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기업의 특성에 따라 그 영향은 달랐다. 설립된 지 8년 미만의 신생 기업보다는 8년 이상 지난 기업에서 비즈니스 기획이 성과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신생 기업에서는 생존을 위해 제휴, 신기술이나 새로운 역량 확보, 판매 마케팅 활동 등이 기획보다 상대적으로 더 중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8년 이상 지나 안정 궤도에 들어선 기업이라면 기획의 역할이 더 커졌다.
 
이 연구 결과는 경영학계의 오랜 논란과 관련, 기획이 중요하다는 입장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기획과 직관은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다. 기획은 현실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이지만 경직된 기획은 기업 유연성을 축소시킨다. 경험과 직관은 이성적 판단만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좋은 수단이 되지만 틀릴 확률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기획이 일반적으로 기업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지만, 기업 상황에 따라 그 영향력이 달라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 논란과 관련한 대안으로, ‘기획-실천-학습’의 유기적 연계를 제안했다. 기획을 모두 끝낸 후에 실천을 했던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 기획과 실천을 동시에 하면서 학습을 하고 이 과정에서 생긴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보다 정교한 기획과 실천을 거듭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기획과 직관 가운데 어느 한쪽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경영자라면 다른 대안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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