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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5와 쥬네브, 개점 휴업 이유는?

홍성용 | 52호 (2010년 3월 Issue 1)

최근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몇 년간에 걸친 대규모 건축 사업이 끝났다. 지난해부터 톱스타를 내세운 대대적인 광고를 내보낸 ‘가든 5(동남권 유통 단지)’다. 하지만 이 단지는 개장 이후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방문객이 뜸해 매장이 썰렁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개점 휴업’이 아니냐는 지적마저도 나오고 있다. 몇 년째 제대로 분양이 안 돼 실패한 투자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경기 용인 동백 지구의 쇼핑몰인 ‘쥬네브’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들 쇼핑 공간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몰링(malling)’ 기법을 도입했고, 과감한 건축 디자인도 선보였다. 첨단 부동산 개발 금융 기법을 도입해 엄청난 돈을 조달했고, 톱스타를 기용한 광고를 선보이는 등 마케팅도 아까지 않았다. 공간도 쾌적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다. 이런 사례들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나올 것이다. 스페이스 마케팅의 많은 요소들을 적용했는데도 실패한 원인이 무엇일까?
 
시장에 대한 착시
공간을 매개로 하는 사업에는 몇 가지 핵심 요인이 상호작용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재무 요소다. 투자자와 개발자에게 토지 구입비용부터 공간 실현을 위한 건축비용까지 투자에 소요되는 자금 흐름은 매우 중요하다. 투자 회수뿐 아니라 이익 실현을 위한 재무적 예측이 사업의 성공 여부뿐 아니라 공간의 생존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핵심 요인은 공간의 구체성이다. 공간은 시각으로 지각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디자인 등 시각적 성공 요인들이 포함돼야 한다. 세계 각지의 랜드마크 빌딩들은 저마다 유수한 건축가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 최종 낙점을 받은 세련된 디자인을 뽐낸다. 아무리 많은 자원이 동원돼도 시각적인 특성이 반영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충분한 효과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요소는 마케팅적 관점이다. 흔히 공간을 매개로 한 전략에서 마케팅은 공간 판매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이미 완성된 결과물이나 완성될 결과물에 대한 판매 전략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스페이스 마케팅의 시각으로 보면 이는 위험한 전략이다.
 
재무적 접근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이용을 전제로 한다. 모든 사업이 그렇겠지만, 최초의 발상 단계에서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사업을 더 진행할 수 없다. 가든 5나 쥬네브 역시 사람들이 찾아올 공간에 대한 확신으로 엄청난 재원을 동원해 설계했다. 그런데도 실패한 이유는 시나리오의 출발점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즉, 무엇을 만들겠다는 생각만 가득할 뿐,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어떻게’라는 전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시장 전체에 대한 입체적인 시각과 주어진 상황을 잘 이해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쥬네브의 가장 큰 실책은 신도시 주민들의 생활 패턴에 대한 분석 착오다. 초기 개발 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신도시에 상업 시설을 세우면 공간 측면에서 독점적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이 높아질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동백 지구라는 신도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입주하지 않았고, 생활 기반 시설 역시 한꺼번에 채워지지 않았다. 동백 지구는 일종의 베드타운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동백 지구에 생활 기반을 두지 않고 서울, 경기 성남시 분당구, 경기 수원시 등을 오가며 출퇴근한다. 주중에 동백 지구 주민 대부분이 외부로 빠져나갔다. 따라서 주간에는 쥬네브로 유입되는 인구가 매우 작았다. 게다가 쥬네브는 대부분의 공간을 상가로 구성했기 때문에 기업 사무실이 거의 없었고, 상주 인구도 적었다.
 
이는 초기 개발 시나리오의 가설이 잘못된 데에 따른 것이다. 분당보다 상가가 적다는 ‘수치’에만 집중한 나머지 사람들의 행태를 간과했다. 실제로는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경기 죽전 신세계 백화점, 경기 여주 첼시 아울렛, 경기 죽전의 각종 패션 아울렛 등 행정 구역은 다르지만 심리적으로는 거리가 가까운 공간에 막강한 경쟁자들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 경쟁이 없는 독점 시장처럼 보였지만, 소비자들의 행태를 분석해보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이었던 셈이다. 쥬네브는 이 치열한 시장에 진입한 후발 주자에 불과했다. 여기서 개발 시나리오의 착오가 시작됐다.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시설인 대형 서점 같은 시설이 상징적으로 중요한데도, 이런 시설들을 유치하는 데에 실패했다. 결국 첨단 개발 금융 기법을 도입한 쥬네브는 완공이 한참 지난 지금도 공간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가든5의 상가도 쥬네브도 유사한 경로를 걷고 있다.

수치에 매몰된 판단 오류
스페이스 마케팅은 기능을 뛰어넘는 감성을 표현해야 한다. 문제는 감성이 쉽게 수치로 나타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감성적 부분을 간과하고, 수치에 집중하기 쉽다. 오늘날의 공간들은 엄청난 재원을 필요로 하는 대형 프로젝트인 경우가 많다. 경쟁이 치열한 데다 이익 실현 기회도 적어서 사람들은 도박에 가까운 이익 실현 가능성에 빠져든다.
 
이는 판단의 오류로 이어진다. 공간을 이용할 사람들에 대한 분석이나 시각, 해석보다 매력적인 투자수익률(ROI)만 주목하고 미소 짓는 식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우리 속담처럼 부정확한 전제에 기반한 숫자만 믿고 고수익의 환상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직접적인 경쟁자뿐 아니라 전혀 다른 조건과 환경들로 인한 대체 수단의 위협, 사회의 변화는 이들의 환상을 마지막 결승점에서 깨버린다.
 
사람에 주목한 ‘롯폰기힐즈’에서 배워라
일본 도쿄 모리부동산의 ‘롯폰기힐즈’ 개발 성공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리 미노루 사장은 ‘경쟁력 있는 살아 숨 쉬는 문화 도시 만들기’를 롯폰기힐즈 개발 전략으로 내세웠다. 사람들의 이동이 자연스러운 시설과 개방된 공간을 만들어 롯폰기힐즈에 오는 사람을 도시의 구성원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조달한 자본의 상당 부분을 디자인에 투자해 시각적인 요소를 강조했다. 비효율적인 투자처럼 보였지만 디자이너들은 걸작을 만들어냈고, 롯폰기힐즈의 매력도 더 높아졌다.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일하고 싶고, 그 자체가 목표가 되는 공간을 만들어내겠다는 모리 사장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 그 결과 엄청난 투자비용의 조기 회수도 가능했다. 쥬네브와 롯폰기힐스의 사례는 스페이스 마케팅의 가설이 잘못되면 어떤 재무 분석이나 차트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편집자주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공간’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공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직원들의 삶의 터전이자 고객과 만나는 소중한 접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영학에서 공간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합니다. 이 분야의 개척자인 홍성용 모이스페이스디자인 대표가 공간의 경영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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