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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알아도 알지못하는 이유

민재형 | 51호 (2010년 2월 Issue 2)
 

2009년 12월 30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워크아웃(기업 재무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유동성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계열사 구조 조정에 돌입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계 순위 상승과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을 위해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고, 2008년 대한통운까지 인수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그룹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가 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처럼 한 번의 판단 착오로 대기업의 명운이 엇갈리는 일이 적지 않다.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은 인재들이 근무하는 대기업들마저도 ‘승자의 저주’와 같은 의사결정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인간의 판단 과정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100% 활용하는가?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래야 하지만, 실제로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이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인간은 어떤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갖고 있고, 그 정보가 유용한 것임에도 주어진 정보 모두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보를 여과해서 일부만을 이용하는 특성(information filtering)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뇌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정보의 선별 활동을 이른바 ‘제한된 인식(bounded awareness)’이라고 한다. 유용한 정보인데도 이를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행태를 말한다. 시이불견(視而不見), 청이불문(聽而不聞), 지이부지(知而不知), 즉 보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만 듣지 못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유능한 경영자라도 고정된 사고의 틀, 주의 부족, 변화에 대한 둔감 등에 따라 제한된 인식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면 불가능이 현실이 된다
둥근 달걀을 편평한 탁자 위에 세우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일화처럼 달걀의 한쪽 끝을 깨면 달걀을 쉽게 탁자 위에 세울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한다. 문제에서 따로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무의식적으로 동그란 달걀을 탁자 위에 그냥 세워야 한다는 사고의 제약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갖는 고정관념은 자기가 만든 인위적인 틀에 자신을 가두게 되고, 이에 따라 창의성은 사라지게 된다. <그림1>은 불필요한 사고의 틀에 대한 예를 나타내고 있다. 종이 위에 9개의 작은 원을 그리고 4개의 직선을 이어서 9개의 원을 모두 지나게 만들라고 주문해보라.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풀지 못해 쩔쩔맨다. 그 이유는 <그림1>의 (a)처럼 9개의 원 주위에 자신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외곽선을 스스로 그리고 답을 찾기 때문이다. 이러한 테두리 내에서는 누구도 9개의 원을 모두 관통하는 4개의 직선을 그릴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사고의 불필요한 틀을 깨보라. 이 외곽선을 마음속에서 지워보면 (b)처럼 4개의 직선을 띄지 않고 9개의 원을 관통하는 해법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것이다. 우리가 만든 하나의 틀을 깨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제 직선 수를 4개에서 3개로 줄여보자. 3개의 직선을 띄지 않고 움직여 9개의 원을 관통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바로 직선이 원 가운데를 지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긴 사선을 그어보자. 그러면 (c)처럼 3개의 직선으로 9개의 원을 관통시킬 수 있다.
 
고정된 사고의 틀은 창의성을 가로막는다. 모든 용기의 주둥이는 항상 위에 있어야 하는가? 토마토케첩을 거의 다 썼을 때, 남아 있는 케첩을 꺼내려고 용기를 거꾸로 세워 밑바닥을 손으로 두드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제조사가 케첩 용기의 주둥이를 아래로 향하게만 디자인해도(예를 들어, 단순히 상표 스티커를 거꾸로만 달아도) 가볍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주의 부족이 승자의 저주를 부른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멀티 플레이어’라고 한다.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려면 각각을 처리하기 위한 여러 개의 판단도 한꺼번에 일어나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운전 중 휴대전화를 쓰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주의가 분산되면 현명한 판단을 하기 힘들거나 판단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계기판에만 집중하며 착륙을 시도하는 조종사가 활주로에 있는 다른 비행기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러한 주의 부족에 대한 인지적 실험은 여러 차례 수행된 바 있다. 1 ::C:: 주의 부족에 대한 다양한 실험 예는 http://viscog.beckman.illinois.edu/djs_lab/demos.html/을 참조하라. 여러 가지 실험 예가 비디오 클립으로 제시되어 있다. ::/C:예를 들어, 청팀과 백팀으로 나누어 농구공을 패스하는 장면이 나오는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어느 한 팀이 제한된 시간 안에(예를 들어, 1분 내에) 몇 번의 패스를 했는지 그 횟수를 세어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횟수를 세는 데 집중한 나머지 눈에 띄는 차림을 한 사람(예를 들어, 우산을 들거나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팀원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처럼 인간은 어느 한곳에 주의를 뺏기게 되면 평소와 동일한 강도, 동일한 빈도의 정보가 주어져도 알아채지 못한다. 우리말에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떤 유용한 정보도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부주의성은 때론 심각한 판단 착오를 부른다. 그 한 예로 ‘승자의 저주’를 들 수 있다. 경매에서 낙찰받았을 때 기분은 어떤가. 외국 재래시장에서 귀한 보석을 헐값에 샀을 때 기분은 어떤가. 처음에는 모두 승자가 됐다는 만족감에 들뜰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승자의 저주’에 빠진 것이다. 불확실한 물건에 대한 낙찰가의 대부분은 그 제품의 실제 가치보다 훨씬 크다고 봐야 한다. 입찰에 많은 사람이 몰릴수록 더욱 그렇다. 귀한 물건을 헐값에 샀다고 승리감에 도취되지만 그 물건은 경제학자 조지 애커로프가 말한 ‘레몬’일 가능성이 크다. 2
 
승자의 저주가 발생하는 이유는 현명한 판단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사례는 승자의 저주를 실험하는 예로 잘 알려진 기업 인수 문제다.
 
회사 A(인수자)는 회사 T(목표물)를 인수하려고 한다. 당신은 회사 A의 인수 대리인으로서 회사 T의 주식 전량을 현금으로 매입할 계획인데, 주당 가격을 얼마로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주당 가격을 결정하기 어려운 주된 이유는 회사 T의 가치가 그 회사가 현재 진행 중인 대형 유전 탐사 프로젝트의 결과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실 회사 T의 생존 여부 자체가 이 프로젝트의 결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면 현재 경영진이 이끄는 이 회사의 가치는 휴지가 된다. 따라서 주가는 0달러가 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면, 현재 경영진이 이 회사를 이끌더라도 이 회사 가치는 급등해 주당 100달러까지도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회사 T의 주가는 0달러와 100달러 사이의 어떤 값도 될 수 있으며, 각각의 확률은 동일하다고 본다. 3
 
회사 T는 현재의 경영진 수중에 있을 때보다 회사 A로 넘어가면 가치가 훨씬 높아진다. 회사 A의 경영진이 맡게 되면 회사 T의 가치는 현재보다 50%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물론, 유전 탐사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회사 T의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된다. 현재 진행 중인 유전 탐사 프로젝트가 성공해 주가가 50달러로 상승한다고 가정했을 때, 회사 A가 경영권을 인수하면 주가가 75달러로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회사 T의 주가가 현 경영진하에서 100달러라면 회사 A에 인수될 경우 주가는 150달러가 된다. 즉, 회사 A가 인수하게 되면 회사 T의 가치는 1.5배로 상승한다.
 
이제 당신은 회사 A로부터 회사 T 주식의 인수 가격을 결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직 유전 탐사 프로젝트의 결과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지금 인수 제안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회사 T는 가격만 적절하다면 회사 A의 인수를 반기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회사 T는 회사 A 이외의 다른 회사에 의한 인수합병(M&A)은 피하고 싶어 한다.
 
회사 T는 당신이 지금 인수 제안을 하더라도 유전 탐사 프로젝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락 여부 결정을 미루다가 그 결과가 공개되기 직전에 결정을 내릴 것이다. 결국 회사 A는 유전 탐사 프로젝트의 결과를 모르고 인수 제안을 해야 하지만, 회사 T는 프로젝트의 결과를 알고 수락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회사 T는 회사 A가 제안한 주가가 현재 경영진하에서의 주가보다 조금이라도 높으면 그 인수 제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당신은 회사 A의 요청에 따라 인수 가격을 주당 0달러에서 150달러 사이의 어떤 값으로 정해야 할지 숙고하고 있다. 얼마를 제안하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서강대 경영학과 학부생들과 경영대학원 MBA 학생 240명의 응답 결과는 <그림2>와 같다. 4


<그림2>를 보면 50%가 넘는 응답자들의 인수 가격이 50달러에서 80달러 사이에 분포함을 볼 수 있는데, 이 결과는 외국에서 수행된 기존 실험 결과와도 일치한다. 그러나 이 문제의 정답은 인수 가격 ‘0’(인수하지 않음)이다. 답을 맞힌 학생 수는 240명 중 28명에 불과하였다.
 
이 문제를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다음과 같다. 회사 A가 회사 T를 주당 X달러로 인수 제안했다고 가정하자. 회사 T가 회사 A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회사 T의 가치가 주당 X달러 이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회사 T의 기대 가치는 기대값 논리에 따라 0.5X가 된다. 5 ::C:: 회사 T의 가치를 확률 변수 T라고 하자. 문제에서 확률 변수 T가 a에서 b 사이의 값을 갖는 일양 분포(uniform distribution)라고 했으므로, 즉, T∼U(a, b)이므로 기댓값 법칙에 따라 E(T)=(a+b)/2이다. 그런데 이 경우, T∼U(0, X)이므로 E(T)=0.5X이다. ::/C:이제 회사 A가 회사 T를 인수하면 회사 T의 가치는 현재 가치의 1.5배가 되므로 회사 A가 인수한 후의 회사 T의 기대 가치는 1.5×(0.5X)=0.75X가 된다. 따라서 회사 A가 주당 X달러로 회사 T를 인수하면, X가 양(+)의 값인 경우에는 항상 0.25X만큼의 손실(0.75X-X)이 기대된다. 따라서 위 문제의 정답은 기댓값을 평가 기준으로 했을 때, A사는 T사를 인수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위 사례에서 응답자의 거의 절반인 119명이 실제로 50∼75달러 사이의 인수 가격을 제안했다. 그 이유는 인수되기 전 회사 T의 기대 가치는 50달러(0.5×100)이고, 회사 A가 인수한 후의 회사 T의 기대 가치는 75달러(0.5×150)이므로 이 둘 사이의 값을 제안하면 회사 A나 회사 T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라고 섣불리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회사 T는 유전 탐사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알고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지만 회사 A는 프로젝트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인수 제안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양자가 같은 양과 질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는 보통 구매자가 판매자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매자와 판매자 간 이용할 수 있는 정보 차이에 따라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판매자는 구매자보다 제품에 대한 고급 정보를 소유하고 있다. 판매자가 제품을 기꺼이 내놓는다는 것은 현재 그 제품의 실제 가치가 현재의 호가보다 작기 때문이다. 중고차 시장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자동차가 ‘레몬’이라는 사실 또한 이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를 예시하는 또 다른 예로 다수가 참여하는 경매 문제를 고려해보자. 다수가 참여하는 경매에서 낙찰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매우 가치 있는 물건을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 쟁취했다고 처음에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낙찰가는 거의 그 제품의 실제 가치보다 과다하게 평가됐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특히, 해당 제품의 가치가 불확실하고, 많은 사람들이 경매에 참여할 때가 더욱 그렇다. 우리는 경매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해당 제품이 매우 가치 있는 물건일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매 참가자 수 때문에 과대평가의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그 이유는 <그림3>과 같다.

<그림3>에서 왼편 그래프는 경매 참가자들의 입찰가 분포를 나타내고, 오른쪽 그림은 경매 참가자들이 추정하는 해당 제품의 실제 가치 평가액의 분포를 나타낸다고 하자. 그리고 참가자들이 생각하는 평가액의 평균은 제품의 실제 가치와 동일하다고 가정하자. 모든 경매 참가자들은 경매로부터 이득을 보기를 원하므로 자신의 평가액보다는 일정 금액 낮게 입찰가를 책정할 것이다. 즉, 왼쪽의 입찰가 분포는 오른쪽의 평가액 분포를 일정 부분 좌측으로 이동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낙찰가는 왼쪽 입찰가 분포의 오른쪽 꼬리 끝에 해당하는 가격이 되는데, 이 입찰가는 제품의 실제 가치(평가액의 평균)보다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다수가 참여하는 경매에서 낙찰가는 제품의 실제 가치보다 높은 것이 일반적이고, 이에 따라 경매를 주선하는 업체도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저주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제품의 가치를 되도록 하향 평가하고 입찰가도 자신이 생각하는 제품 가치의 평가액보다 훨씬 낮게 불러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낙찰되더라도 손실의 폭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제품 가치가 불확실할 경우(예를 들어, 골동품이나 그림 등) 경쟁의 승자가 되려고 매우 높은 입찰가를 부르는 경매 참가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 사람은 낙찰의 기쁨을 맛보는 동시에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AT&T의 NCR(National Cash Register) 인수는 승자의저주를 나타내는 대표적 사례다. AT&T는 오래 숙원 사업이었던 컴퓨터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자 1991년 컴퓨터 제조 회사인 NCR을 시장 가격의 배가 넘는 74억 8000만 달러(주당 110달러)에 인수했다. 이렇게 비싸게 NCR을 인수한 AT&T는 1995년까지 30억 달러라는 막대한 손해를 보고 마침내 컴퓨터 사업을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M&A을 위해 가격을 너무 높게 지불해 M&A 자체에는 성공했지만, 이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M&A 시장에서도 승자의 저주를 보여주는 예는 많다. 금호아시아나그룹는 2006년 자산관리공사로부터 채권단 보유 지분 72.1%를 전량 인수하는 조건으로 대우건설을 6조 4255억 원에 인수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써낸 인수 가격은 입찰에 나선 5개 컨소시엄 가운데 최고가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인수로 단숨에 재계 8위, 건설업계 1위로 뛰어올랐다. 6 이 과정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인수 자금의 절반이 넘는 3조 5000억 원을 금융권 등 18개 투자자로부터 조달했다. 그러나 인수 다음날 대우건설의 인수 기업인 금호산업의 주가는 급락했으며, 같은 날 대우건설의 주가도 동반 하락했다. 고가 인수 후유증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8년 대한통운까지 무리하게 인수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로 외형은 커졌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특히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던 풋백 옵션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유동성 위기로 빠뜨리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양적 팽창을 위한 섣부른 기업 인수가 그룹 전체의 부실을 가져오고, 오너 일가는 경영권까지 위협받게 된 것이다.
 
기업들이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데는 경영자들의 지나친 낙관주의가 한몫을 한다. 인수 대상 기업이 안고 있는 숨겨진 문제점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시너지 효과의 환상에만 사로잡혀 시장 가치보다 훨씬 비싼 값에 목표물을 사들이는 것이다. 기업 M&A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합병의 1/3 이상은 실패로 돌아가고, 1/3 정도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피인수 기업의 주주들은 자기 기업이 팔림으로써 상당한 수익을 올린 반면, 인수자들은 별 소득이 없다고 한다. 인수자들이 목표물의 현재 가치를 과장해서 평가하기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필요하다. 위 예에서 입찰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건을 파는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게임 룰을 내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도 바라봐야 한다. 많은 경우에, 인간은 현재 가용한 정보 모두를 고려하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세한 변화에도 조직이 무너진다
개구리는 온도 변화에 둔감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온도 변화에 둔감한 개구리라도 펄펄 끓는 물 속에 던져 넣으면 곧바로 뛰쳐나오게 된다. 물이 뜨겁다는 것을 즉시 감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지근한 물이 들어 있는 통 속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불을 지피면 개구리는 서서히 증가하는 온도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죽고 만다. 이 이야기는 미세한 환경 변화라도 즉시 알아차리고 거기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누구든 큰 변화는 알아차리지만, 미세한 변화는 그것이 누적되어 크게 다가오기 전까지는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시장 환경 변화에 둔감해 전략적 실패를 경험한 예도 많다. 인터넷에 기반을 둔 냅스터(Napster) 7 서비스의 위협을 예상하지 못한 음반 시장의 급격한 침체, 디지털 카메라의 급속한 발전을 감지하지 못한 아그파포토와 폴라로이드의 사업 실패, 대기업의 무차별한 시장 진입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감지하지 못한 대형 마트의 지역 시장 진출 실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변화에 대한 둔감성은 비윤리적 행위를 부르기도 한다. 엔론의 회계 부정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사례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도덕한 몇 명의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으며, 외부 감사 업체인 아서앤더슨이 고객사인 엔론과 결탁해 회계 부정을 일으켰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회계 부정 사건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도 있다. 아서앤더슨은 자사의 큰 고객인 엔론을 계속 고객으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조그마한 회계 사안을 엔론에 유리하게 처리해주었을 수도 있다. 이것은 해석하기에 따라 법에 저촉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단추를 잘못 끼면 나중에 옷 전체를 다시 입어야 하듯이 이 같은 작은 회계 해석상의 잘못이 누적돼 자신도 모르게 큰 부정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미끄러운 경사(slippery slope)’라는 말이 있다. 경사면에 들어서게 되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를 써보지만 조금씩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표준에서 한 발짝 벗어날 때 처음에는 이를 정당화하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이러한 조그마한 편차들이 누적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CEO로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미래에 대한 혜안과 함께 미세한 변화까지도 알아차리고 거기에 맞게 조직을 부단히 변신시키려는 의지다.
  • 민재형 | - (현)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 영국 캠브리지대(The British Chevening Scholar) 객원 교수 역임
    - 미국 스탠퍼드대 객원 교수 역임
    jaemi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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