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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지역발전위원회 공동 기획: 한국의 지역 경쟁력 조사

추위밖에 없는 마을? 그 추위를 팔았다!

배극인 | 48호 (2010년 1월 Issue 1)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공동으로 전국 163개 기초생활권 시군을 대상으로 지역경쟁력지수(RCI)와 생활여건지수(LCI)를 조사한 결과, 상당수 시군들이 자체 특산물이나 관광 자원을 활용하는 초기형 발전 모델을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부 시군은 지역 내 협력을 넘어 다른 지역과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었다.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진 지역 발전 모델 유형을 제시한다. 한국 최초로 전국 163개 기초생활권 시군을 대상으로 한 경쟁력 평가 결과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7호(2009년 12월 15일자) ‘지역도 경영으로 승부하라’는 기사에 실려 있다.
 
 
 
 
지역 단독·기존 자원 활용 모델
상당수 자치단체들은 내부 역량을 토대로 지역 내 특산물이나 관광 자원을 활용해 브랜드를 알리고 수익을 얻는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 경북 상주군의 곶감과 포항의 과메기, 전북 부안군의 뽕과 고창군의 복분자 브랜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지역 기초자치단체들은 자체 특산품이나 관광지, 전통 음식 등 기존 자원의 활용도를 높인다는 전략하에 지역 내 해당 업계 종사자와 이해관계자, 자치단체가 주축이 돼 브랜드를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델에는 한계가 있다. 우선, 제한된 지역 내 자원만 활용하기 때문에 역량 부족 문제가 발생, 전국적 인지도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기존 관광지나 농수산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창의적 모델을 만들기도 어렵다. 특별한 관광 자원이나 특산물이 없는 지역에서는 이 모델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지역 간 협력·기존 자원 활용 모델
특정 지역이 단독으로 브랜드를 개발하는 모델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게 지역 간 협력을 추진하는 모델이다. 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분산된 역량을 한데 묶어 시장에 더 큰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충북 영동군은 지역 내 각 경제 주체들 간 유기적인 협력으로 ‘포도의 고장’이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정구복 영동 군수는 “전 지역민과 산·학·연이 긴밀히 협력해 포도 생산, 가공, 유통, 관광 등 1·2·3차 산업의 융합을 이뤄내면서 브랜드를 육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역 간 협력을 토대로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했다. 철도청 및 금산군과 협력해 인삼·와인열차를 운행, 소비자들에게 와인뿐 아니라 대표적인 건강 식품인 인삼 쇼핑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면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남원·장수·곡성·구례·하동·함양·산청군 등 지리산과 인접한 자치단체 7곳이 행정협의회를 만들어 지리산 관광 개발 사업을 공동으로 기획한 것도 협력 모델을 활용한 사례다. 이 협의회는 최근 제주 올레길과 경쟁하기 위해 둘레길을 만들어 공동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낙후 지역 가운데 하나인 경북 봉하, 영양, 청송도 지역 특산물 공동 브랜딩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 내에서 다양한 경제 주체들이 참여하는 모델만으로는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다른 기초생활권뿐만 아니라 해외 지방정부와 협업해야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단독·신 시장 개척 모델
지역 단독으로 사업을 추진하지만 기존 자원에 의존하지 않고 전혀 새로운 모델을 만든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 모델은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창조적 아이디어는 실패 확률도 높아진다. 따라서 체계적인 위험 관리가 필요하다.
 
지역 단독으로 신시장을 개척한 대표적인 사례는 ‘나비축제’로 잘 알려진 전남 함평군이다. 함평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름 없는 시골 마을이었다. 인구도 4만 명 안팎에 불과했고 재정 자립도도 12%로 최하위권이었다. 이석형 함평 군수는 “과거 함평은 천연 자원, 관광 자원, 산업 자원이 없는 ‘3무() 지역’으로 불렸다”고 말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게 친환경 이미지의 ‘나비축제’였다. 주민과 공무원 모두 반대했지만 제주도에서 공수한 나비를 1999년 1회 축제 때 풀어놓았고, 관광객은 환호했다. 자신감을 얻은 이 군수는 폐교 직전에 몰린 농업고를 ‘골프고’로 전환하고, 국화 축제도 개최해 성공을 거뒀다. 세계적인 여성 프로골퍼인 신지애 선수가 이 학교 출신이다. 이 군수는 “창조적 모델을 실행하면서 지역민들이 희망을 갖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강조했다.
 
 
 
 
 
지역 간 협력·신 시장 개척 모델
궁극적으로 기초생활권의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역 간 협력을 토대로 창조적 브랜드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모델은 지역 내 자원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쟁자의 추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창의적 모델 실행으로 인한 위험도 있지만, 여러 지역이 참여하면 이런 위험도 분산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원도 화천군의 산천어 축제다. 화천도 혹한의 추위 외에는 별다른 자원이 없었다. 하지만 창의적 아이디어와 도전 정신으로 다른 지역에서 산천어를 공수해서 축제를 열었고 혹한기에 수많은 관광객을 유인했다. 특히 일본 눈꽃축제와 중국 빙등축제와 공동 마케팅을 벌여 국제적 축제로 진화하고 있다. 일본 눈꽃축제나 중국 빙등축제에는 산천어축제를 알리는 대형 광고물이 걸려 있다.
 
권해상 지역발전위원회 단장은 “그동안 상당수 지자체가 수도권 따라잡기, 다른 지자체 사업 베끼기 경쟁을 해온 게 사실”이라며 “창의적이고 차별화된 전략과 인접 지역 간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추진 주체와 발전 전략
자원과 역량이 부족한 농촌에서 경쟁력 있는 산업을 육성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농촌 개발 사업을 추진한 사례가 있다. 농촌 체험 관광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강원 평창군과 장류 클러스터를 구축한 전북 순창군이 대표적이다. 평창군은 주민 참여형 모델의 전형이며, 순창군은 관 주도 모델로 성공했다. 실행 방법은 달랐지만 성공의 공통 분모는 지역 특성에 맞는 차별화 발전 전략이었다.
 
평창군의 주민 참여형 모델은 ‘위기의식 확산→조직화→예산 지원→혁신 모델 실행’ 등 4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평창에서 민박 등 숙박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2000년부터 외부인이 지은 펜션이 늘어나자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위기의식 확산). 이에 따라 2003년 민박업주 10여 명이 ‘농박협회’를 창립했다(조직화). 초기 경험 부족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자 평창군은 담당 부서를 신설하는 한편, 신활력 사업 보조금을 지원했다(예산 지원). 이 과정에서 관련 업계 종사자들 간 협업을 통해 민박과 레포츠를 연결한 신상품이 개발됐다. 이들은 서비스 표준화를 추진하며 휴지통 규격까지 통일했고, 호텔처럼 민박 등급 제도도 시행했다(혁신 모델 실행). 그 결과, 10년 전 연간 200만∼300만 명에 불과했던 평창의 방문객 수는 올해 1100만 명이 예상될 만큼 급증했다.
 
순창의 관 주도 모델은 ‘기회 포착→예산 지원→조직 결성→혁신 모델 실행’ 4단계를 거쳤다. 1990년대 중반 식품업체인 대상이 고추장 브랜드로 ‘순창’을 사용하면서 순창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 이에 따라 순창군은 장류 육성을 통해 지역 발전 기회를 포착해냈다. 순창군은 전통 고추장 제조업체를 한곳에 모은 민속마을을 건립하고 장류연구소를 개설했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영농조합법인 순창전통고추장 연합회’도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산업 영역을 된장, 청국장 등 발효 식품 전반으로 확장하는 한편 해외 수출, 관광 산업과의 연계 등 혁신적 산업 발전 모델이 실행됐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인 강인형 순창 군수는 “도로 뚫고, 건물 짓고, 다리 놓는 식의 지역 발전으로는 후세에 유지 관리 부담만 안겨준다”며 “이제는 지역 여건에 맞는 실리적인 발전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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