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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튼 찾은 카를로스 곤, 도전을 말하다

윤성원 | 45호 (2009년 11월 Issue 2)
다른 MBA 스쿨과 마찬가지로 와튼 MBA에도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주 찾아온다. 언론 매체에서 접했던 유명인사들을 직접 만나고, 글로벌 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질문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흥분되는 시간이다. 최근 리더십 강연에 연사로 등장한 사람은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의 공동 대표인 카를로스 곤 회장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 그는 부도 위기에 처했던 닛산을 취임 1년 만에 흑자로 탈바꿈시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자로 꼽힌 인물이다. 최근에는 전기차를 통해 침체에 빠진 세계 자동차 산업의 리더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형 강의실이 학생들로 가득 찼다. 곤 회장은 예의 자동차 산업의 불황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한 자동차 회사의 직원 수가 100명이라면,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전체 고용 시장의 규모는 800명에 달합니다.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의 정부도 자동차 업체의 부도를 좌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는 ‘왜 정부가 나서 위기에 처한 자동차 업체를 도와주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겠지만 고용 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이처럼 엄청납니다. 유럽의 폐차 지원금 정책(Scraping plan), 미국의 중고차 보상 정책(Cash for Clunkers) 등이 등장한 이유입니다.”
 
곤 회장은 친(親) 환경 자동차, 특히 전기차에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각국 정부의 주도하에 전기차 위주의 산업 재편이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기차를 몰아본 적이 있나요? 소음과 진동이 없고, 유지비나 수리비도 거의 들지 않습니다. 2년 후 전 세계에는 각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가 쏟아져나올 겁니다. 이때 소비자들이 같은 가격의 휘발유차와 전기차 중 과연 무엇을 사겠습니까?”
 
곤 회장은 자신이 말하는 정부 지원이 단순히 전기차의 구매 가격을 지원하는 정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석유’에 기반한 현재 세계 자동차 산업의 생산 시스템을 ‘전기’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바꾸는 작업이 정부 차원에서 추진된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석유에 대한 높은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날로 강력해지고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각국 정부가 전기에 기반한 생산 시스템 투자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과연 향후 자동차 산업에서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곤 회장은 자동차 관련 부품, 디자인 방식, 수리 시설, 주유소 등 자동차 산업의 전반적인 인프라 자체가 대대적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인프라 변화를 주도하는 국가나 기업이 향후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미국 자동차 산업이 세계 시장을 지배할 때 디트로이트가 세계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듯 이제 전기차, 전기차 부품 및 설비를 생산하는 기업, 전기차에 기반한 교통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도시가 새로운 시스템의 표준으로 등극한다는 논리다. 이미 미국의 몇몇 주,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이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조금만 앞서도 엄청난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는 곤 회장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과연 한국 정부나 기업이 이 문제에 얼마나 잘 대비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한 학생은 전기차 충전 시설 부족, 충전 자체의 불편함 때문에 전기차가 향후 세계 자동차 산업 재편을 촉진할 거라는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곤 회장은 지금까지 상용화된 기술로도 충전 시설 부족이나 불편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현재 95%의 운전자들은 대부분 하루에 100km 이하만을 운전합니다. 퇴근한 후 휴대전화처럼 그냥 차에 전원을 연결해두면 1회 충전으로 160km를 갈 수 있습니다. 이제 아파트 주차장에도 전기차 충전대(charge pole)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주유소, 병원, 상가, 학교 등에는 급속 충전대(quick charger)를 설치하면 됩니다. 30분이면 필요 용량의 80%, 10분이면 40%가 충전 가능합니다. 10분도 기다리기 싫거나, 택시처럼 빠른 이동이 필요할 때는 배터리 교환소(quick drop)를 설치하면 됩니다. 프린터 토너를 갈 듯,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거죠. 이게 불편한가요?
 
현재 급속 충전대 1대를 설치하는 비용은 3만 달러, 배터리 교환소의 설치 비용은 100만 달러입니다. 물론 싼 가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향후 전기차 수요가 늘어나면 인프라 설치 비용 또한 당연히 떨어집니다.”
 
필자는 자동차 산업의 전문가가 아니지만 곤 회장이 얘기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매우 구체적이고, 경제성도 충분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한 학생이 어떻게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냐고 질문했다. 곤 회장은 매우 솔직한 답변을 들려줬다.
 
“처음 닛산에 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으로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나한테 도대체 뭘 원하는 거냐고 화도 냈었습니다. 닛산으로 옮기면서 제가 가진 것의 상당 부분을 잃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얻으려면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커리어는 예측할 수 없고 준비하기도 어렵습니다. 자신의 커리어에 지나치게 많은 계획과 준비를 하지 마십시오. 상황은 언제나 변합니다. 중요한 일은 당신이 믿는 걸 준비하고, 공부하고,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는 겁니다. 새로운 자동차 산업에 대한 저의 비전 역시 틀릴 수 있습니다. 이때 제가 가진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고, 준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 스탠퍼드 경영대학원과 영국 옥스퍼드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인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의 명 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1881년 필라델피아의 사업가였던 조셉 와튼이 설립한 와튼 스쿨은 세계 최초의 비즈니스 스쿨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세계 유수 언론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비즈니스 스쿨로 여러 차례 선정된 바 있다. 매년 850명 정도의 신입생들이 입학하며 재학생의 45%가 외국 학생일 정도로 다양성에 바탕을 둔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인 학생도 상당수여서 탄탄한 동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 윤성원 | - (현) 펜실베니아대 와튼 MBA CLASS OF 2011
    - 베인&컴퍼니 컨설턴트
    - 금융, M&A, 항공, 산업재 부문 컨설팅 프로젝트 수행
    sungwony@wharton.upen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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