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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탁자 자본주의와 투표 공개

노한균 | 1호 (2008년 1월)
요즈음의 선진국 경제를 ‘수탁자 자본주의(fiduciary capitalism)’라고 한다. 수탁자, 즉 다른 사람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들이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수많은 개별 가입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대규모 자금을 갖게 된 연금 관리 기관이나 보험회사, 그리고 이들로부터 자산 운용을 위임받은 회사들이 바로 이 수탁자들이다. 이들 뭉칫돈의 일부는 주식시장에 투자된다. 미국 주식시장의 60%, 영국의 30% 이상이 연금, 보험사의 돈이다.
 
그런데 이들 연금, 보험사나 자산운용사가 주식을 가진 회사에서 주주로서의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가 되었다. 이들은 아예 투표를 하지 않거나 투표 위임장(voting proxy)을 회사 경영진에게 넘겨 실질적으로 경영진의 입장을 지지했던 것이 과거의 관행이었다. 이렇게 되면 투자한 회사의 경영을 제대로 감시할 수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 연금이나 보험 가입자의 돈을 잘 관리해야 하는 수탁자의 의무도 제대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이 문제 제기의 주된 내용이다.
2003년 미국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SEC)는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Investment Company Act of 1940에 따라 등록된 management investment company들이 자기 회사의 위임장 투표 결정에 관한 정책과 절차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법제화했다.
 
요즘 영국에서는 미국과 같은 기관투자자 투표 정책의 공개 의무화를 받아들일 것인가를 놓고 이해당사자간 논쟁이 한창이다.
영국 Department of Trade and Industry (DTI)는 1998년부터 시작된 Company Law Review의 한 내용으로 미국과 같이 기관투자자의 투표 정책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영국 보험회사들의 연합체인 Association of British Insurers (ABI)는 8월 24일자 Financial Times 기고문에서 미국과 달리 영국의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그간 성실하게 투표권을 행사해 왔으며 경영진에 반대하는 입장도 상당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법제화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이미 대부분 기관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잘 하고 있는데 굳이 법으로 강요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ABI 기고문이 나간 이틀 후인 26일 Financial Times에는 70개 노조의 연합체인 Trade Union Congress (TUC)와 기관투자자들의 효과적 기업 감시활동을 지원하는 Pensions Investment Research Consultants (PIRC)의 반박이 동시에 게재되었다. 이들은 기관투자자들의 자발적 행동과 인식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투표정책 공개 의무화를 통해 기관투자자나 자산운용사들이 가입자 자산 관리에 보다 신중할 것이라는 이점들을 들어 DTI의 공개 의무화 정책 제안을 지지했다.
 
 
참고문헌
Barber, B. (2005). ‘Why not take this simple, uncontroversial step forward?’ Financial Times, 8월 26일, 14면.
Hawley, J.P. and Williams, A.T. (2000). The Rise of Fiduciary Capitalism: How Institutional Investors Can Make Corporate America More Democratic. Philadelphia, P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Mackay, A. (2005). ‘Voting disclosure all part of “investor governance”.’ Financial Times, 8월 26일, 14면.
Montagnon, P. (2005). ‘Investors should not be forced to disclose their votes.’ Financial Times, 8월 24일, 15면.
UK DTI (2005). ‘Company Law Reform.’ Norwich: HMSO. (http://www.dti.gov.uk/consultation/files/ publication-1473.pdf)
US SEC (2003). ‘Final Rule: Disclosure of Proxy Voting Policies and Proxy Voting Records by Registered Management Investment Companies.’ 1월 31일. (http://www.sec.gov/rules/final/33-8188.htm)
 
© 노한균 2005.
이 글은 필자가 2005년 브루넬대학 재직 시절 작성한 Business Ethics Abroad 시리즈의 일부로, 당시 국가청렴위원회 (현 국민권익위원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웹사이트를 통해 소개된 내용을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 노한균 노한균 | - (현) 국민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 (현) 지속가능경영연구센터장
    - (전) 영국 브루넬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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