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리더 한니발, 로마 짓밟다

42호 (2009년 10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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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임용한
고대 전쟁사에서 명장의 계보는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 3세)에서 한니발, 카이사르로 이어진다.
 
이 3인의 명장 가운데 존재감이 조금 떨어지는 장군이 한니발이다. 알렉산더나 카이사르와 달리 로마 정복에 실패하고 자살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전술가로서 한니발의 실체는 무엇일까?
 
기원전 218년 이탈리아로 진입한 한니발은 두 번의 큰 승리를 거뒀다. 트레비아 전투에서 그는 4만 명의 로마군을 격파했다. 전사자만 2만 명에 달했다. 한니발의 병력은 로마군의 절반 정도인 보병 2만 명에 기병 6000명이었다. 트라시메네 전투에서 로마군은 다시 학살당했다.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은 1500명이 전사한 반면, 로마군은 3만 명 중 1만5000명이 전사하고 1만 명이 포로가 됐다. 하지만 이 패전도 서막에 불과했다.
 
기원전 216년 8월, 로마는 사력을 다해 보병 8만 명과 기병 6000명으로 구성된 8개 군단 병력을 징집했다. 한니발은 이탈리아 남부까지 진출해 넓고 비옥한 평야를 지닌 칸나이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의 병력은 약간 늘어 보병 4만 명, 기병 1만 명이 돼 있었다.
 
 
 
카르타고군의 전술을 겪어본 로마군은 신중하게 작전을 짰다. 객관적으로 보면 보병은 로마군이, 기병은 카르타고가 우세했다. 카르타고 기병은 에스파냐인이 주축이 된 중장기병대와 누미디안 경기병대로 구성돼 있었는데, 둘 다 로마군을 압도했다. 반면 보병은 상당히 불리했다. 보병의 주력은 아프리카인과 에스파냐인으로 편성된 중장보병대였는데, 이들은 1만3000명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의 고전적인 병력 배치 방식은 중앙에 보병을, 양익(兩翼)에 기병을 두는 것이었다. 카르타고는 우세한 기병을 이용해 로마군의 양익을 우회한 후 측면과 뒤를 치려고 했다. 반면 로마군의 승부수는 보병으로 중앙을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카르타고의 기병이 먼저 로마군의 측면을 뚫느냐, 로마 보병이 카르타고의 중심부를 먼저 함락하느냐 하는 싸움이었다.
 
전황을 판단한 로마군은 유리한 지형을 선점해 우측에 강을 두고 강줄기를 따라 전진했다. 카르타고 기병대가 로마군을 우회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전략이었다. 이제 카르타고 기병이 로마군의 측면을 유린하려면 로마군의 방어선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측에는 최정예인 로마 기병대 1600명을 배치하고, 집정관이자 가장 현명한 지휘관이었던 파비우스가 지휘를 맡았다.
 
중앙이 승부처라고 판단한 로마군은 또 하나의 작전을 더했다. 중앙에 보병을 집중 투입하고, 보병 대열의 폭도 최소한으로 좁혔다. 보병의 밀도를 높여 단숨에 적을 강타하고, 전열의 길이를 최대한 짧게 하여 신경 쓰이는 카르타고 기병의 활동 영역도 줄인다는 전략이었다. 한니발의 기병이 양익의 로마 기병을 먼저 격파한다고 해도, 똘똘 뭉쳐 있는 4만의 강철 덩어리에 함부로 덤벼들지는 못할 거라고 로마군은 판단했다.
 
드디어 전투가 시작됐다. 카르타고군은 강을 따라 중장기병대를, 로마군의 좌익에는 누미디안 경기병대를 출동시켰다. 예상대로 카르타고 기병은 가히 결사적으로 로마군에게 부딪혀왔다. 이날의 전투에서 제일 처절한 장면이 강변에서 벌어졌다. 누미디안 경기병대의 전투는 좀더 손쉬웠는데, 그들은 현란한 기마술과 속도로 기동하며 로마군에게 투창 세례를 퍼부었다.
 

한니발의 독특한 방어 대형
 
양익의 로마 기병대는 예상보다 일찍 무너졌지만, 로마군 지휘부는 그 자체가 한니발의 불리함을 증명하는 필사적인 발악으로 느꼈던 것 같다. 예상대로 중앙은 로마군의 확고한 우세였다. 기병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파비우스도 보병 대열로 들어와 병사들을 격려하며 밀어붙였다.
 
로마의 지휘관들은 승리를 확신했지만 한니발이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음은 깨닫지 못했다. 양쪽이 뻔한 공식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한니발은 약간의 그러나 중대한 작전상의 변화를 줬다. 즉 경보병에 가까운 갈리아 보병대를 중앙에 배치하면서 일직선의 방어 대형을 취하지 않고 ‘∧’자형으로 배치했다. 이 대형은 강하고 전력이 우세한 부대가 주로 사용했다. 그러나 전력이 약한 부대에는 아주 큰 위험을 가져왔다. 꼭짓점 부분이 깨지기 쉽고, 적이 좌우로 감아 들어오면 측면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군은 이 대형 때문에 오히려 주저했다. 적의 대형에 맞춰 로마군의 양 날개가 깊게 진격하면 카르타고 기병대에게 저절로 측면을 내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한니발의 유인 전술이라고 판단한 로마군은 카르타고의 가운데 꼭짓점부터 허물며 찬찬히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다 보니 로마 보병의 진격 속도가 느려져 카르타고 기병이 양익을 돌파하는 시간을 벌어줬다. 더 큰 문제는 꼭짓점 부분부터 허물어가다 보니 로마군이 더더욱 중앙으로 몰려버리게 됐다는 점이다. 로마군은 기세 좋게 중앙을 허물어 나갔지만, 가운데로만 공격이 몰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운데만 파고 들어가게 됐다. 여기에 지원 부대까지 조기 투입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좁은 대형이 숨 쉴 틈도 없이 좁아졌다.
 
바로 이 상황이 한니발이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카르타고군은 기술적으로 중앙부가 물러서면서 로마군을 끌어들였다. 한참 시간이 지나자 처음 대치 상태와는 정반대로 카르타고 보병은 ‘∨’자형 대형이 됐다. 순간 ‘∨’자 대형의 좌우 측면에서 카르타고의 진정한 정예인 아프리카와 에스파냐 중장보병대가 나타났다. 한니발은 처음에 갈리아 경보병을 전열에 세우고, 아프리카 중장보병대는 ‘∧’자형 대형의 양쪽 끝에 숨겨뒀다. 로마군의 전진으로 전선이 ‘∨’형으로 바뀌면서 로마군은 카르타고 정예 보병대에게 저절로 측면을 노출하게 된 셈이다.
 
아프리카 중장보병대가 좌우 측면으로 나타나자 로마군은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들은 너무 빽빽하게 몰려 있어 좌우 측면으로 몸을 돌려 방어 대형을 형성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검을 뽑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너무나 밀집한 대형이 그들의 목숨을 잠시 연장시켜줬을 뿐이다. 잠시 후 카르타고의 중장기병대까지 합세해 로마군의 뒤를 치기 시작했다. 로마군은 사방으로 포위된 채 서 있어야 했고, 카르타고군은 양파 껍질 벗기듯 로마군을 한 겹씩 학살해 나갔다.
 
로마군 전사자는 보병 4만7000명, 기병 2700명이었다. 약 2만 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사령관과 고급 지휘관도 대부분 전사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섬멸이었다. 카르타고군의 희생은 8000명에 불과했다.
 
현장 지식의 중요성
 
한니발의 최대 장점은 정확한 현장 판단 능력이었다. 무능한 지휘관은 “한겨울에 강을 건너는 건 자살 행위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니발은 물의 수심, 시간, 기후와 날씨에 따라 어느 정도의 피해가 나오는지를 산출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지식이며 경험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끊임없는 노력과 현장 확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니발은 병사들과 친근하게 지냈고, 그들과 함께 외투를 땅에 깔고 잤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권위 의식의 타파, 병사들과 친근감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현장의 지식, 전투와 분석에 필요한 정확한 데이터를 위해 항상 현장을 중시했고, 이런 지식과 정보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보여줬다.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35호 Smart SCM 2017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