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허드슨강의 기적’ 이끈 4가지 비결

김호 | 26호 (2009년 2월 Issue 1)
체슬리 설렌버거 3세. 우리는 앞으로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항공사 US 에어웨이 기장인 그의 이름은 위기관리의 모범 케이스 스터디로 경영학 교과서에 실릴지도 모른다.
 
미국 동부 시각으로 2009년 1월 15 오후 3시 26분,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샬럿으로 가기 위해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을 떠난 US 에어웨이 소속 1549편 여객기는 이륙한 지 1분 만에 2차례에 걸쳐 새 떼에 부딪히면서 엔진 2개가 모두 고장 났고 연기에 휩싸였다. 당시 이 여객기는 뉴욕 상공을 시속 1km 이하로 날고 있었다. 자칫하면 9·11 사태에 버금가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관제소에서는 뉴저지에 위치한 소공항으로 여객기를 유도했지만 설렌버거의 판단에는 그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뉴스를 통해 이 상황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입술이 마르는데 사고 당시 승객들은 물론 비행기의 운명을 쥐고 있던 기장 설렌버거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전투기 조종사 출신 베테랑인 그는 과감하게 기수를 바꾸어 허드슨강을 따라 수면 위로 착륙을 시도했다. 이륙에서 착륙까지 걸린 시간은 4분에 불과했다. 승객과 승무원 155명은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최악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관리한 설렌버거는 승객은 물론 조지 W 부시 대통령, 뉴욕주지사, 뉴욕시장, 항공 전문가 모두가 칭송하는 영웅이 되었다.
 
위기 상황에서 기장의 결정이 승객과 비행기의 운명을 가르듯 위기 상황에서 최고경영자(CEO)의 결정은 기업의 생사를 결정한다. 설렌버거로부터 기업의 CEO들이 배울 수 있는 위기관리의 교훈은 무엇일까.
 
1. 냉혹한 현실을 읽어라
그것은 바로 위기 속에서 희망을 찾기 이전에, 냉혹한 현실부터 읽는 능력이다. 설렌버거는 엔진 고장으로 말미암아 비행기 고도가 낮아지는 급박한 상황에서 라과디아 공항으로의 회항도, 관제소에서 지시한 티터보로 공항으로의 착륙도 힘들 것이라는 점을 재빨리 읽어냈다.
 
2000년 P&G는 주가가 곤두박질쳐 시가총액이 740억 달러에 불과했다. P&G의 CEO인 앨런 래플리는 그 후 7년 만에 P&G를 시가총액 2000억 달러가 넘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는 자신이 행한 위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희망하는 상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주시하는 능력’을 꼽았다.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는 물론 긍정적이어야 하지만 위기 상황을 읽을 때에는 ‘희망적 시각’이 리더의 판단력을 흐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필자가 위기에 처한 기업을 컨설팅해 보면 CEO가 ‘그렇게까지 잘못 되겠어?’라는 희망 속에서 판단을 내렸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를 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휩쓴 ‘쇠고기 사태’가 발생했을 때 청와대와 정부가 보여 준 ‘희망에 근거한’ 잘못된 상황 읽기는, 당시 정책 담당자의 발언을 빌리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로 요약할 수 있다. 위기황 초기에 이러한 희망적인 ‘독해(讀解)’가 위기관리에 ‘독(毒)’이 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잭 웰치 제너럴일렉트릭(GE) 전 회장이 ‘위대한 승리’라는 저서를 통해 위기관리를 다루면서 위기 상황을 ‘최악의 시각’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한 것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설렌버거는 짧은 순간에 얼마나 더 비행할 수 있을지를 알았으며, 관제소의 제안을 실행하기 힘들 다는 점을 정확히 읽어냈다.
 
2. 빠르게 대응하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새 떼와의 충돌로 양쪽 엔진이 모두 멈춘 시간이 오후 3시 27분이고, 설렌버거가 관제소의 제안을 포기하고 허드슨강 위로 착륙을 시도한 것은 3시 30이다. 위기 발생에서부터 해법을 판단하기까지 3분이 채 안 걸렸다.
 
리더십의 대가인 노엘 티시와 워런 베니스는 근작 ‘판단력(Judgment)’에서 위기관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4성 장군이던 웨인 다우닝의 경험을 비중 있게 다룬다. 군대는 지속적인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훈련하는 조직이다. 이번 ‘허드슨강의 기적’을 이룬 설렌버거 역시 군인(전투기 조종사) 출신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기다리는 것과 빠른 의사 결정 사이에서 항상 갈등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다우닝은 “위기 상황에서는 계획을 지금 75% 실행하는 것이 1시간 뒤에 99%의 실행하는 것보다 언제나 낫다”고까지 이야기한다. ‘골든 아워(golden hour)’라는 표현은 원래 부상자를 살리기 위해 첫 60분 동안의 조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기업의 위기관리에서도 첫 24시간 내의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3. 현명하게 판단하라
설렌버거가 상황을 재빨리 잘 읽었고, 훌륭한 비행 기술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비행기를 어디에 어떻게 비상 착륙시켜야 할지에 대한 판단을 잘못 내렸다면 이 사고는 커다란 불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 짧은 순간에 그는 자신이 정확하게 읽은 냉정한 현실 상황에 기초하여 관제사의 제안이 아닌 허드슨강 위로 비상 착륙한다는 과감한 판단을 내렸고, 이를 성공적으로 실행했다.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의 판단력이다. 아무리 훌륭한 실행력을 지닌 팀을 갖고 있어도 리더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위기는 재앙으로 가게 마련이다. 위기(crisis)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자.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영어에서 위기를 뜻하는 ‘크라이시스(crisis)’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크리네인(krinein)’과 관련이 있다. 크리네인은 상황에 대한 판단, 의사 결정, 구분이라는 뜻을 갖는다. 의학에서는 심각한 질병에서 회복되느냐, 악화되는냐를 결정하는 터닝포인트를 뜻한다.
 
위기라는 한자가 위험(危)과 기회(機)를 맞붙여 놓은 것을 보면 위기에 대해 동양과 서양이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동서양의 어원을 종합하면 위기는 단순히 ‘운이 없는 상태’나 ‘최악의 상태’라기보다 어떻게 판단력을 발휘하고 결정을 내리는가에 따라 긍정의 상태로 극복하는가, 부정의 상태로 악화시키는가 하는 결정적 순간이나 상황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위험과 기회 사이를 가르는 것은 리더의 판단이다. 티시와 베니스는 리더가 지녀야 할 3가지 판단력의 중요한 대상으로 사람·전략·위기를 든다. 이들은 위기 판단력(crisis judgment)을 3가지 필수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은 이유에 대해 리더들은 예외 없이 위기를 다루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설렌버거가 위기의 영웅이 된 핵심은 무엇보다 그의 뛰어난 위기 판단력이다.
 
4. 평소 훈련으로 실행력 키워라
정확한 상황 판단을 통해 훌륭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마무리하는 것은 빈틈없는 실행의 기술이다. 수면 위로의 비상착륙은 사고 위험이 많다. 착륙 각도에 따라 강바닥에 비행기가 처박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렌버거는 거짓말처럼 뉴욕 시내를 흐르는 허드슨강에 비행기를 무사히 착륙시켰다. 이는 수많은 훈련과 경험으로 단련한 기술덕분이다. 설렌버거 기장은 1만9000시간 이상의 비행 경험을 쌓은 베테랑 조종사다. 공군에서 정보 장교로 근무한 필자는 조종사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그들이 생존훈련을 비롯해 다양한 최악의 상황 시나리오를 짜고, 이에 대비해 철저하게 훈련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위기관리의 실행력은 평소의 훈련에서 나온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CEO라면 당장 회사의 임원 교육 과정표를 한번 확인해 보라. 거기에는 최고의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기업은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에게 위기를 관리하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가? 아니, 당신은 CEO로서 위기에 대해 배우고 훈련한 적이 있는가?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에 CEO를 중심으로 위기관리의 원칙과 기술을 학습하고, 그래도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위기로부터 철저한 사후학습을 통해 유사한 위기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앞서가는 기업에있어 상식이다.
 
필자는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지사를 돌아다니며 익숙하게 위기 대응 훈련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위기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테크닉은 물론 원칙도 없어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한다. 이러한 현실은 마치 불이 나서야 소화기를 찾고, 작동법을 배우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런 기업은 위기를 겪고 난 뒤 뭐가 문제였는지 돌아보지 않아 똑같은 사고와 실수를 몇 년마다 반복하곤 한다.
 
편집자주 위기는 ‘재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느 기업에서나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시스템을 철저히 정립해 놓고 비상시에 현명하게 활용하는 기업은 아직 드뭅니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실제 사례들을 중심으로 기업의 위기관리 노하우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겪은 위기 사례를 공유하고 싶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김 대표에게 e메일(coolcommunication@gmail.com)을 보내 주십시오. 좋은 사례를 골라 본 칼럼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필자는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마켓대에서 PR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위기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연구 중이다. 글로벌 PR 컨설팅사인 에델만 한국 대표를 거쳐 더랩에이치 대표로 있으면서 기업 CEO와 임원에게 위기관리 노하우를 전하는 코칭 및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 김호 김호 | - (현) 더랩에이치(THE LAB h) 대표
    - PR 컨설팅 회사에델만코리아 대표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CMCT)
    -서강대 영상정보 대학원 및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 교수

    hoh.kim@thelabh.com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