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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Interview: 김효근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예술가가 걸작을 통해서 감동 주듯
기업도 소비자의 현존감을 자극해야”

이규열 | 357호 (2022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마스터피스 전략은 ‘기업의 제품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마스터피스가 돼야 한다’는 메시지에서 출발한다. 마스터피스 전략은 과학적 관리의 한계를 극복한다. 한국 기업들은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버리고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드는 마스터피스 전략을 실천해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걸작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제품의 기능성, 관능성, 정체성을 통해 소비자들의 현존감(현재 존재한다는 감각)을 자극해야 한다. 마스터피스 전략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선 정체성을 확립하고, 소비자들의 현존감을 감지하며, 새로운 해결책을 떠올리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곳에서 울지 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그곳에서 슬퍼 마오.

가곡 ‘내 영혼 바람되어’는 작곡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1년이 지난 2008년,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쓴 곡이다. 2017년 뮤지컬 배우 박은태가 한 방송에서 이 곡을 부른 유튜브 영상은 현재 조회수 772만 회를 기록했다. 세상을 먼저 떠난 이에게 독백을 건네는 가사처럼 더 이상 이 세상에 함께하지 못하는 어머니, 아내, 자식 등을 기억하는 이들의 댓글이 이어졌고, ‘국민 위로곡’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곡의 작곡자는 김효근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다.

김 교수는 열 살 때부터 기타를 배웠고 학교와 교회에서 반주자를 도맡아 할 정도로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과 부모님의 반대로 음대 대신 경제학부에 진학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음대 수업을 듣고, 떠오르는 대로 작곡을 하는 등 원 없이 음악을 즐겼다. 결국 대학교 3학년 때 제1회 MBC 대학가곡제에서 ‘눈’이라는 곡으로 대상을 거머쥐며 가곡 작곡자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가곡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아트팝’ 장르를 개척해 대중 가곡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학계에도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보 전략 계획과 디지털 비즈니스 전략 방법론을 국내 산업계에 보급했다. ‘지식경영’1 개념을 국내에 알리면서,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 각광받은 ‘신지식인’2 개념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2017년에는 스스로 몰입했던 예술의 창작 과정을 경영에 적용한 ‘경영예술’ 개념을 제시했고, 2022년 6월, 책 『마스터피스 전략』을 냈다. 예술가가 걸작을 통해 감상자에게 감동을 주듯 기업도 제품(서비스)을 통해 고객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김 교수에게서 ‘경영을 예술하는’ 마스터피스 전략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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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피스 전략이란 무엇인가.

마스터피스란 말 그대로 ‘걸작’이다.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세계적인 명작을 마스터피스라 부른다. 마스터피스 전략의 골자는 ‘기업의 제품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걸작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현대 경영은 ‘과학 활동’으로 이해됐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에서 시작한 현대 경영학은 100년 동안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했다. 한국 기업이 선두 주자보다 저렴한 가격과 부수적인 기능으로 승부를 거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도 과학적 관리 방식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을 재편하는 현상을 목격했다. 이로써 경영에서도 예술에서와 같은 ‘마스터피스’의 힘이 통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노키아는 1998년부터 2011년까지 14년간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였지만 이후 약 2년 만인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휴대전화사업부를 매각했다. 노키아 역시 2008년부터 스마트폰을 선보였으나 터치 불량, 배터리 결함 등으로 기업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 MS의 운영체제를 탑재해 반전을 꾀했지만 자체 운영체제 iOS와 앱스토어로 무장한 애플의 도약을 꺾지 못했다. 애플은 아이폰이라는 걸작으로 소비자들을 열광시켰고 세상을 바꿨다. 다행히 삼성과 LG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통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으나 여기엔 노키아와 달리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선택한 공이 크다.

경영의 효율을 높이는 관리법들은 이미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현장에도 다양한 방법이 적용되고 있다. 앞으로의 기업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효율은 기본이요,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만드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세상에 없던 걸 가장 잘 만드는 이들이 누구인가. 단연 예술가들이다. 예술가들로부터 경영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마스터피스 전략의 목적은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이며 제품을 마스터피스로 정의한다. 소비자들은 미학적 경험을 추구하는 ‘아트슈머(artsumer, art+consumer)’이다. 이들은 제품을 사용하는 단계를 넘어 향유하며,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기업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제품을 창작하는 ‘아트듀서(artducer, art+producer)’가 돼야 한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걸작으로 느끼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마스터피스 전략에서는 소비자들의 ‘현존감(現存感, Presence)’을 강조한다. 현존감은 사전적으로는 ‘현재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으로, 특정한 제품이나 경험을 통해 다양한 인간적인 감정과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됨을 뜻한다. 사람들은 어떤 욕구가 충족되면 현존감을 느끼고, 그렇지 않으면 현존감을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이 제품을 통해 현존감을 느껴야 마스터피스로 인정받을 수 있다. 첨단 기술을 근간으로 하는 ‘기능성’, 미적 숭고함과 아우라를 느끼게 하는 ‘관능성’, 기업가의 고유한 철학과 가치인 ‘정체성’ 세 박자가 전부 맞아떨어져야 소비자들이 제품으로부터 현존감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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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현존감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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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느끼는 현존감은 크게 4가지, 구체적으로는 16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예컨대, 콘텐츠 산업은 ‘쾌락’을 주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2020년 3월 출시한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작은 무인도에서 동물들과 함께 마을을 꾸려 나가는 가상의 경험으로 팬데믹 기간의 현실과는 상반되는 ‘안전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마스터피스 전략을 잘 실천하는 기업의 사례를
들어달라.

국내에는 ‘마켓컬리’가 있다. 마켓컬리는 생산자가 당일 수확한 재료를 고객들이 다음 날 아침 받아볼 수 있는 ‘샛별 배송’이라는 물류 혁신을 이뤘다. 즉, 인프라를 바탕으로 하는 기능성을 충족한 것이다. UI/UX 역시 훌륭하다. 마켓컬리 이전에는 최고급 식자재를 다루는 일부 호텔이나 백화점을 제외하곤 식재료를 예쁘고 깔끔하게 촬영해 판매하는 곳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제품들이 자체 제작한 진공 포장 팩과 이를 정갈하게 담은 박스 역시 쇼핑의 맛을 더한다. 이것이 관능성에 해당한다. 마켓컬리는 장 볼 틈도 없고 온라인으로 장을 보자니 식재료의 질을 믿기 어려웠던 창업자 김슬아 대표가 스스로 느낀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그만큼 서비스 자체의 지향점이 뚜렷하다. 생산자와의 직거래, 직매입을 통해 바쁜 직장인, 주부, 1인 가구 고객에게 건강한 식재료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창조했고 이 서비스 자체가 뚜렷한 정체성이 됐다.

로봇 스타트업인 일본의 ‘엑시(Exiii)’와 영국의 ‘오픈바이오닉스(Open Bionics)’도 마스터피스 전략의 모범 사례다. 이 회사들은 인공지능 로봇 의수를 만든다. 로봇틱스라는 첨단 기술이 적용됐고, 디자인도 기존 의수보다 세련됐다. 무엇보다도 팔을 잃은 장애인들의 세상을 바꾼다. 이들에게 팔은 항상 결핍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로봇 의수를 만나고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팔’을 갖게 된 덕에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게 된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걸작으로 느끼면 어떻게 행동하나.

그 기업의 팬이 된다. 인간이 어떤 대상에 팬이 됐을 때 나타나는 두 가지 행동이 있다. 한 번 산 브랜드를 다시 찾는 ‘재구매’와 아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는 ‘추천’이다. 매출을 구하는 가장 간단한 공식은 수량에 단가를 곱하는 것이다. 재구매는 같은 소비자의 수량을 늘려 매출을 올린다. 추천은 마케팅 비용을 줄인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걸작으로 느끼게 되면 수익은 저절로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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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 관능성, 정체성 중 국내 기업에 취약한
요소는 무엇인가.

정체성이다. 모든 제품의 출발점은 기능을 담은 인공물이라는 것이다. 제품이 특정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그 제품을 산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던, 즉 경쟁이 없던 시절에는 물건을 만드는 대로 팔아치울 수 있었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추월하자 경쟁이 시작됐고, 가장 먼저 경쟁이 시작된 분야가 바로 기능이다. 이후 기능으로도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제품을 예쁘게 디자인하는 게 중요해졌다. 현대차, 기아차는 1998년부터 유럽에서 은퇴한 명차 디자이너들을 임원으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의 기능에 큰 차이가 없게 되자 사람들이 예쁜 차를 우선적으로 찾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면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을 찾게 될까. 디자인으로도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제품을 만든 창작자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만든 거지’ 하는 궁금증이 제품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시원하게 해소되면 창작자의 정체성에 공감하며 팬이 되는 것이다.

제네시스는 현대차가 프리미엄 시장을 노리고 만든 야심작이다. 기능성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으며 관능성도 유럽, 미국의 고급 차 브랜드와 견줄 만하다. 그러나 제네시스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고객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지가 광고 등 커뮤니케이션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13년째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는데 삼성이 어떤 철학을 갖고 스마트폰을 만드는지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일생과 애플의 철학에 푹 빠진 나머지 이러한 철학을 반영한 역대 애플 광고들을 스스로 분석하는 덕후까지 양산해낸 애플과의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최근 삼성은 갤럭시Z 플립 등 혁신적인 기능과 제품으로 나름의 카테고리를 개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하지만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에서마저 아직은 제품을 작품으로 보는 철학은 없다고 본다. 폴더블폰의 경우에도 부피가 반으로 줄어드니 소비자들에게 새롭고 예뻐 보이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의 제품 철학이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는지, 삼성 내부 직원들 사이에도 제품에 대한 철학이 잘 정립돼 원활하게 소통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삼성은 늘 기능을 중심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폴더블폰의 핵심은 기기를 접어서 부피를 줄이는 기능이다. 과거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치 삼성의 광고를 살펴보면 대부분 ‘배터리 용량이 커졌다’ ‘화질이 좋아졌다’ ‘속도가 빨라졌다’는 등 기능을 개선했다는 메시지가 전부다. 신제품 출시 행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애플에 밀리는 건 기능이 아닌 철학이다. 삼성이 기능만을 강조하는 동안 애플의 광고는 기능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애플이 추구하는 ‘심플의 미학’을 전달하면서 디자인뿐 아니라 철학을 알렸다.

삼성 내부에 창작자 DNA가 없기 때문이라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창작자로서의 삼성 정체성의 핵심 요소는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에게서 찾을 수 있다. 창업 초기부터 선대 회장이 기업을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와 철학을 어떤 키워드로 추출해서 어떻게 제품에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삼성전자가 어떤 철학으로 어떻게 제품을 만드는지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을 비롯해 선대 창업주들은 대개 양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한학을 핵심으로 한 동양적 철학에서는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소비자들 역시 수단이 아닌 목적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소비자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정성 있게 매달리는 게 이들의 사업 철학이다. 미국식 MBA 교육이 국내 경영 현장에도 접목되면서 이 같은 철학도 고리타분한 것이라 받아들여졌으나 천만의 말씀이다. 동양적 관점에서 사업, 제품, 사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오히려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바에 더욱 부합해 보이지 않은가. 우리 기업은 ‘뿌리’에 힘이 있다. 이를 발굴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만의 정체성으로 소화해야 한다.

최근 발표된 애플의 제품들도 새롭지 않다는
평을 받는다.

시장에서 사람의 욕망, 제품, 기술이라는 세 요소는 상호작용하며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공진화(co-evolution)한다. 시대에 따라 앞서거나 뒤처지는 요소가 있으며 선두에 있는 요소가 공진화를 이끈다. 과거 아이폰의 경우 제품이 앞서간 공진화 사례다. 휴대폰, MP3, 컴퓨터를 한데 갖춘 아이폰의 탄생으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달라졌으며 다른 기업들 역시 아이폰에 맞춰 각종 기술을 개발했다.

지금의 애플은 공진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고객과 기술 모두 다음 단계로 넘어갔는데 애플의 제품은 그대로다. 팬덤의 마지막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한두 번 더 잘못하면 애플의 충성 고객들 역시 애플을 떠날 수 있다. 한때 걸작으로 칭송받던 제품이 힘을 잃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애플에 필요한 건 더 나은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아니다. 스마트폰, 태블릿 PC에서 삼성, 샤오미와의 경쟁에 힘쓰기보다는 다음 단계의 ‘작품’을 내놓아야 할 때다.

어떻게 마스터피스 전략으로 새로운 제품을
창조할 수 있나.

크게 세 가지 단계가 곱셈처럼 연결된다. 첫째는 기업, 팀,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이다. 둘째는 고객들이 어떠한 관점에서 현존감을 느낄 수 있을지, 숨겨진 욕망은 없는지 등을 감지하는 단계다. 셋째 단계에서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세상에 없던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 세 단계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마스터피스는 탄생할 수 없다. 앞선 세 단계를 토대로 실제 작품을 만드는 게 넷째, 현존감, 사업성 등을 검증하는 게 다섯째 단계다.

다섯 단계에 앞서 마스터피스 창작자로서의 마인드를 갖추는 준비 단계도 있다. 이때 ‘내 작품(My Art)’이라는 예술 창작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예술적 본능이 있으며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일깨워주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회사의 비전을 레고로 만들어 보거나 현재 회사의 상태를 시로 표현해보는 등의 프로그램이다. 이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나도 쓸 만한 창작자가 될 수 있겠구나’ 깨닫는 게 중요하다.

현재 기업 교육의 90%는 기능 교육, 10%가 리더십 교육이다. 개인적으로 기능 교육이 반, 나머지 절반이 인문•예술 교육으로 대체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뿐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에 대한 이해가 모두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즉, 마스터피스와 리더십 모두 인문•예술적 소양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다 현실적인 처방을 내리자면 이 과정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은 성공을 먼저 거둬보길 바란다. 일부 사람들이라도 한번 해보고 그 경험을 조직에 전파하는 과정이 기업 내부에 뿌리내리는 게 중요하다. 파일럿 개념으로라도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 타깃 고객들의 현존감을 분석해보고 현재의 제품이 이들의 기대를 어느 정도 채워주는지 진단해보라. 부족한 점이 있다면 상상력을 발휘해 마스터피스를 만들어 고객들을 감동시켜보라.

‘문화가 있는 날’3 에 일찍 업무를 마치고 팀원들이 함께 문화생활을 하는 회사들도 있다. 이런 활동도 마스터피스 전략을 내재화하는 데 효과적인가.

우리 연구소에서 한 대기업 직원들에게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약 2년간 3주에 한 번, 세계 최고 수준의 관현악단, 실내악단 등의 공연을 사내 공연장에서 관람하도록 했다. 이 중 모든 공연을 관람한 9명을 대상으로 질적 연구를 진행해 이들에게 나타난 공통적인 변화를 발견했다. 약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TV에서 들었던 소리와 현장에서 듣는 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더 좋은 소리가 무엇인지 등을 구별하게 됐다. 이후에는 이런 곡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호기심을 갖고 직접 작품과 작곡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결국 ‘작곡가들이 세상에 없던 곡을 만드는 것처럼 내가 회사 일을 한다면 어떤 게 달라져야 할까’를 고민하게 됐다. 즉, 아티스트처럼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업무에서 창의성이 발현되는 징조가 나타났다.

모든 직원이 마스터피스 전략을 익혀야 하나.

제품을 직접 기획하는 직원들이 아니더라도 마스터피스 전략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다. 창작자가 되는 경험은 행복을 느끼는 강력한 조건 중 하나다. 특히 감상자가 작품을 보고 감동하는 순간을 보는 게 창작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한국 교육에서는 창작자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획일적으로 입시와 입사를 위한 공부에 목을 매고, 부속품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국 직장인의 평균 행복도가 50점도 채 되지 않는 이유다. 반복적인 일을 담당하는 직원이라도 자신의 일이 작품이 되며 이로써 타인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개인 행복을 위한 새로운 철학 훈련인 셈이다.

또한 마스터피스 전략을 조직 문화로 흡수하기 위해서다. 구글은 입사 교육에서 소위 ‘구글의 10계명’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전달하는 과정을 중시한다고 알려졌다. 세상을 어떻게, 얼마큼 바꿀 것인지 통일된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스터피스 전략도 마찬가지다. 기업 자체가 창작자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 전체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세상에 없던 걸 창조하는 일은 선봉에 있는 사람들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이들을 지원해주는 사람들 역시 같은 의식을 갖고 있어야 큰 마찰 없이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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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강연을 통해 마스터피스 전략을 알리고 있다. 경영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경영자들마다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창업가들이나 그룹 오너들의 경우 마스터피스 전략을 반긴다. 특히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이들이라면 뛸 듯이 기뻐한다. ‘내가 그동안 해낸 걸 개념화하면 이것이 되겠구나’라며 공감을 표한다. 반면 전문 경영인들은 마스터피스 전략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시 한 편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천 장 가까운 종이가 구겨지고 버려진다. 전문 경영인들에게는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혼을 쏟은 걸작을 만드는 일이 구조적으로 어렵다. 임기 내에 과학적 방식을 통해 눈에 보이는 수치를 개선하는 게 주주, 이사회 등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스터피스 전략 이전에도 ‘미학 경영’ ‘경영 예술’이란 개념을 연구해왔다. 셋 모두 같은 개념이지만 학문적으로 가장 정확한 이름은 미학 경영이고, 이름과 프레임을 바꿔가며 경영자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개념을 알릴 때, 문화예술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의외로 큰 진입 장벽이다. 최고위경영자 과정에서 문화예술 활동이 취미인 사람을 물으면 스무 명에 한 명꼴로 손을 든다. 다행인 점은 약 5년 전부터 MZ세대가 노동인구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선진국 시민이었고, 이전 세대보다 어릴 적부터 문화예술을 소비한 경험이 풍부하다. 따라서 점차 한국 사회에서 마스터피스 전략에 대한 이해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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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도 마스터피스 전략으로 설명이 가능한가.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에는 미적 감동뿐만이 아니라 도덕적 감동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등 천재적인 사상가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다. 진, 선, 미 중 선과 미가 합을 이루면 인간 사회에 엄청난 임팩트가 생긴다는 것이다. 마스터피스 전략이 ‘미’를 나타낸다면 ESG는 ‘선’을 나타낸다고 풀이할 수 있다. 미적으로 뛰어나도 도덕적 감동 없이는 임팩트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사실 애플은 탁월한 미학 뒤에 숨어 나쁜 짓도 많이 했다. 친환경을 표방하며 부속품을 뺐고, AS도 허술하다. 중국 공장의 인권 문제도 꾸준히 대두되고 있다. ESG가 강조되면서 애플의 이러한 행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기업으로서도 이 같은 압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 LG전자는 엑센츄어가 꼽은 ‘전 세계에서 ESG 활동에 가장 앞선 테크 기업’ 9위에 올랐으나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다. ESG가 강조되면서 ESG만 하면 만사형통일 것 같은 기조가 형성되기도 했다. ESG가 필수이긴 하나 ESG만으로 성과를 기대해선 안 된다.

MIS를 공부하고, 현재는 경영예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기술과 예술이란 두 가지 요소를 강의에 어떻게 접목하고 있나.

기술과 마스터피스 전략을 접목한 강의를 만들었다. 과학적 관리 시대에는 IT가 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쓰였다. 마스터피스 전략에서는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해 IT를 사용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맞춤화(customization)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만을 위한 제품이 존재한다는 건 다양한 현존감을 충족시킬 수 있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과 자신감(자아실현)이 충족되고 배려받는다는 느낌(관계)을 얻을 수 있다. 공대생들에게도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기술 자체에 대한 공부 못지않게 기술을 가지고 인간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지를 생각하는 인문•예술 교육도 중요하다.


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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