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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으로 우주의 문 열어”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다

황진영 | 356호 (2022년 11월 Issue 1)
참고기사 : “우주, 이젠 과학기술만의 영역 아니다” 국가 주도에서 민간 업체로 바통 터치


필자주

이 글은 『나로호 12년, 우주로의 대장정』(한국항공우주연구원, 2017), 『우리는 로켓맨』(조광래•고정환, 김영사, 2022)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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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 발사체 ‘나로호’ 개발

2002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은 국내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우주 발사체 ‘나로호(KSLV-I)’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시 1987년 설립된 비확산 체제 중 하나인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는 우리나라 우주 발사체 개발의 족쇄가 됐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의존하던 미국으로부터 모든 발사체 부품과 기술 도입이 거부됐고 유럽, 일본 등 다른 나라와의 협력도 불가능했다. 다행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러시아로부터 기술과 부품을 도입하는 형태가 아닌 각각 역할을 분담하는 방식의 공동 개발 협력이 성사됨으로써 나로호 개발이 본격 추진될 수 있었다.

협력은 러시아가 1단 액체 로켓, 한국이 2단 고체 로켓을 담당하되 1단과 2단을 함께 결합하고 발사를 공동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나로호는 총중량이 무려 140t에 달하고 높이 33.5m, 직경이 2.9m의 대형 로켓이다. 나로호 개발 사업은 단지 로켓 개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국내에 전무했던 로켓 조립 시설, 연소 시험 시설 및 시험장, 액체 산소 및 고압 공급 설비를 포함하는 발사대, 발사된 로켓을 추적하고 비행 데이터를 수신하는 시설 등 모든 인프라를 동시에 구축해야 했다.

나로호 개발은 정부 출연 기관인 항우연이 개발 및 발사 운영 총괄을 맡았다. 부품 설계 및 제작, 지상 시험 및 발사 시설 개발, 발사체 총 조립 등 현장 기술 개발에는 민간 기업 150여 곳이 참여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나로호의 총 조립은 항공기 분야에서 조립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대한항공이 맡았다. 대한항공은 국내 위성 개발의 태동기인 1993년부터 방송통신위성인 무궁화 1∼2호의 위성 본체와 태양전지판의 구조물을 설계, 제작해 독자적인 기술을 축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형 통신위성인 무궁화 3호의 탑재체 패널과 태양전지 패널을 제작, 납품해 위성 제작 기술력을 인정받았으며 아리랑 위성 2호 제작과 조립에도 참여했다.

화약을 터뜨려 추진력을 얻는 원리의 고체 연료 로켓은 한화가 참여해 개발했다. 한화는 발사체의 핵심 기술인 추진 시스템과 관련 제어 시스템 제작에서 국내 선두 주자로 손꼽힌다. 또한 추진체를 이루는 유압 시스템과 연료 시스템, 발사체 제어 시스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화는 1991년 한국형 전투기(KFP) 사업에서 F-16 비행 조종면 작동기의 국산화를 시작으로 항공우주사업 전용 공장과 연구소를 갖추고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두원중공업은 발사체 상단을 구성하는 페이로드 페어링부i , 위성 탑재부 등의 외부 기체 개발과 제작을 담당했다. 두원중공업은 1970년대부터 방위 사업에 뛰어들어 화력 장비, 사격 통제 장비 및 유도 무기 기체를 생산해왔다. 이 회사는 국내 우주개발 사업이 시작된 1990년대 초부터 항우연과 함께 발사체 기체 구조와 인공위성 열 제어계 장비 개발에 나섰다. 나로호 개발 전 항우연이 독자 개발해 쏘아 올린 과학 관측 로켓 KSR-I(1993), II(1998), III(2003) 개발에도 모두 참여하며 로켓 기체 제작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나로호의 기체를 구성하는 특수 소재는 한국화이바가 개발했다. 이 회사는 유리 및 탄소섬유 등 첨단 복합 소재 원료부터 토목, 건축, 전기 전자, 철도 수송용 재료를 생산하는 복합 소재 전문 업체다. 나로호의 기체 제작에는 카본-알루미늄 소재가 이용됐다. 이 소재는 가볍지만 강도가 높은 카본과 알루미늄을 이용해 만든 벌집 형태의 고강도 탄소 섬유다. 항공기용 알루미늄보다 비강도(무게 대비 강도), 비강성(무게 대비 강성)이 3배 이상 높다. 또한 나로호의 최상단에 위치한 페이로드 페어링은 대기권 통과 시 위성체와 내부 전자기기를 보호하는 부분으로, 화이바는 페이로드 페어링 표면에 단열재를 2.5㎜ 두께로 씌워 로켓 발사 시 발생하는 열이 내부로 전도되는 것을 막았다. 또 페어링에 탑재될 위성과 장비들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음향 공명기 등을 기체 내부에 설치했다.

나로호는 2009년 1차 발사, 2010년 2차 발사에 실패한 후 2013년 1월 발사에 성공했다. 비록 우주 발사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액체 엔진과 1단 로켓은 러시아에 의존했지만 한국 최초의 우주 발사체인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우주 발사체 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기술을 획득할 수 있었다. 1단과 2단 시스템의 결합 및 단 분리 기술, 위성 분리 및 궤도 투입 기술, 발사 후 추적 및 비행 데이터 수신 처리 기술 등이다.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우주 발사체의 독자 개발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게 됐다.

2.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개발

나로호는 한국의 우주 발사체 모델이기는 하나 핵심 기술인 액체 엔진과 1단 액체 로켓은 러시아 기술이었다. 따라서 러시아의 상황에 따라 사업이 종료될 위험을 안고 있었다. 항우연은 나로호 개발 기간 중 추력 30t급 액체 엔진에 대한 기술 개발을 별도로 추진하고 있었으며 상당한 기술적 진전이 있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개발 사업은 나로호 발사 1차 실패 후 2차 발사를 준비하던 2010년 착수됐다. 당시 나로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진 못했으나 사실상 일부 개발을 제외하면 관련 연구 개발 업무는 마무리 단계였다. 후속 사업인 누리호 개발 사업이 착수되지 못하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비롯한 민간 기업 수백 곳의 인력과 시설이 일감 없이 낭비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통상 우주 발사체 개발은 1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중장기 계획 아래 후속 발사체 개발 사업을 중복해 추진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나로호는 100㎏급 소형 과학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규모의 발사체였지만 경제성 측면에서는 매우 미흡했다. 반면 후속 사업인 누리호는 1.5t급 실용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상당한 규모의 우주 발사체였다. 과거 우리나라가 개발한 다목적 실용위성 1호의 중량이 470㎏, 2호는 800㎏이었고 2012년 발사된 3호는 1t 규모였다. 따라서 누리호 발사 성공은 우리나라가 실용위성을 자체 발사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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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개발에는 항우연을 중심으로 KAI(체계 종합),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엔진 총 조립), 두원중공업(구조체), 현대중공업과 한양이엔지(발사대 설비) 등 30여 개 주력 업체를 포함해 국내 기업 300여 곳이 참여했다. 총사업비의 80%인 1조5000억 원이 이 참여 기업들에서 집행됐다. 나로호 사업에 참여한 기업 대부분은 누리호 사업에도 참여했다. 다만 나로호 사업 당시 총 조립을 담당한 대한항공은 나로호 발사 실패를 두 차례 경험한 다음, 기술적 위험성이 높은 우주 발사체 사업에서 철수했다. 이에 따라 누리호의 총 조립은 KAI가 맡게 됐다.

나로호 개발 당시 고체 추진 로켓을 담당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사업에서는 액체 추진 기관을 담당해 엔진 총 조립, 터보 펌프 등 액체 엔진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제작했다. KAI와 두원중공업은 2단과 3단 추진제 탱크를 담당했다. 1단 추진제 탱크의 경우 국내의 경험 부족으로 제작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누리호 개발 지연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결국 1단 추진제 탱크 역시 KAI가 나서서 해결했다. 나로호 개발 당시 페이로드 페어링을 담당한 한국화이바는 누리호 사업에서도 페어링을 담당해 누리호에 탑재된 위성과 장비들을 완벽히 보호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중공업 역시 나로호 개발 당시와 마찬가지로 발사대 구축을 총괄했고 발사대 추진제 공급 설비는 한양이엔지가 담당했다.

국내 기업 300여 곳이 10여 년에 걸쳐 개발한 한국형 우주 발사체 누리호는 2021년 10월, 우주를 향해 발사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차 발사는 실패로 끝났다. 누리호 1단은 계획된 124초의 연소 시간에 맞춰 정확히 연소하고 2단과 분리됐다. 나로호 1차 발사 때 문제가 됐던 페어링을 성공적으로 분리한 후 274초 만에 2단을 성공적으로 분리했다. 마지막 3단 엔진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으나 산화제 탱크의 압력 저하로 당초 계획된 연소 시간 475초에서 46초를 남기고 조기 종료됐다. 이로 인해 인공위성을 궤도에 투입할 수 있는 비행 속도 7.5㎞/초에 도달하지 못해 위성 궤도 투입에 실패했다.

비교적 단순했던 실패 원인을 개선한 후 2022년 6월, 누리호는 전라남도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대를 박차고 우주로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누리호의 2차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1t급 이상의 위성을 자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세계 7대 우주 강국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누리호는 신뢰성 향상을 위해 앞으로 4차례의 추가 발사를 앞두고 있다.

3. 누리호 발사 성공 의의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우주 발사체 나로호 개발에 착수한 지 약 20년 만에 순수 국산 독자 우주 발사체를 보유하게 됐다. 독자 우주 발사체 보유는 우주개발의 자립화를 의미한다. 우리가 필요할 때 인공위성을 자유롭게 발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국내 업체는 나로호와 누리호 사업 참여로 우주 발사체 개발 경험을 축적함에 따라 앞으로 차세대 발사체 개발의 주역이 될 전망이다. 특히 누리호 추진 기관을 총괄했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국형 발사체 추가 발사와 기술 검증 및 개선, 성능 개량 등을 책임질 체계종합기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앞으로 항우연으로부터 한국형 발사체 설계 및 제작, 시험, 발사 운영 등 발사체 전주기에 걸친 기술을 이전받아 국내 우주 발사체 사업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황진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cyhwang@kari.re.kr
필자는 한국항공대 항공기계공학 학사, 항공공학 석사를 졸업하고 영국 서섹스대(University of Sussex)에서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연구원에서 항공산업 정책연구를 시작으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30년 이상 항공우주정책을 연구하면서 정책협력센터장, 미래전략본부장 등을 지냈다. 항공우주시스템공학회 회장과 우주개발진흥실무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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