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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ESG연구회 × DBR 공동 기획 - 최근 주주총회의 쟁점과 시사점

SM도 움직이게 한 ‘주주의 힘’
이해관계자주의도 주주 보호에서 출발해야

천경훈 | 354호 (2022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ESG 경영에서 일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건전한 지배구조(G)를 등한시할 경우 주주뿐 아니라 이해관계자의 이익 또한 해칠 수 있다. G의 최상단에 있는 주주총회는 과거에는 요식 행위처럼 여겨졌지만 점차 주주들의 다양한 요구가 분출하고 회사의 경영 방침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현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경영진과 이사회는 이사 보수, 이익 배당, 내부 통제, 계열사 간 구조조정 등 주주총회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전체 주주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분석 및 평가해야 한다. 주주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런 요구를 경청하고 소통해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SG의 기본은 G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함께 일컫는 ESG의 열풍 가운데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냉정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ESG의 문제점을 다음의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환경과 사회적 책임과 좋은 지배구조라는 현란한 목표들이 서로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해 투자자와 기업에 일관된 지침을 주지 못한다. 둘째, 기업의 사회적 미덕과 재무적 성과는 서로 일치하지 않은 경우도 많으므로 ESG라는 개념은 기업 행동의 실제 인센티브와는 거리가 있다. 셋째, ESG의 여러 요소는 측정하기 어렵고 평가 기준도 들쭉날쭉해 투자와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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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우리나라에서 특히 더 주의해야 할 문제점을 하나 더 보태고 싶다.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일반 주주들의 이익을 등한시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환경, 사회, 이해관계자 보호 등의 구호가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호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기업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IPO를 통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주식을 상장시킨 상장회사라면 이제 더 이상 창업자나 지배주주의 사유물이 아니다. 따라서 그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로부터 일반 주주들을 보호하는 것이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ESG 중 G, 즉 지배구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1 사실은 ESG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주식회사에 요구되던 기본적인 의무이자 덕목이기도 하다. 즉, G는 E나 S보다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선행하는 요청이다.

그런데 가장 기초적인 G조차 갖추지 못한 회사가 E나 S를 내세우며 회사의 자원을 소진하거나 부실한 G를 감추기 위한 가림막으로 E나 S를 사용한다면 그런 ESG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예를 들어, 상장회사의 제품 생산에 필요한 핵심적인 원자재를 지배주주 개인 소유 회사에서 고가로 독점 구매하는 방법으로 막대한 회사 이익을 빼돌리면서 봉사단체에 회삿돈을 기부하고 이것을 ESG 경영이라고 포장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이런 유사 ESG는 회사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지 못하며 주주는 물론 근로자나 협력업체 등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ESG에서 말하는 G는 주주의 이익만이 아니라 근로자, 채권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자연환경 등 더 넓은 범위의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아우르고 조정하는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지배주주 또는 경영자의 터널링(이익 빼돌리기)이 버젓이 일어나는 회사, 그래서 주주의 이익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회사가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제대로 보호할 리 없다.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손해를 끼쳐가면서까지 오로지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태에는 제동을 걸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해관계자주의라는 명분이 주주의 이익조차 등한시하는 행태의 알리바이가 돼서는 안 된다.

요컨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는 건강한 ESG 경영은 일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건전한 지배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제대로 된 G가 구축돼야 제대로 된 E와 S도 있을 수 있다.2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사익 추구로부터 일반 주주를 보호하는 것은 이해관계자주의와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제대로 된 이해관계자주의는 일반 주주의 보호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G의 정점은 주주총회

한국의 주식회사는 상법 회사편에 따라 설립되고 그 조직 구성과 운영 역시 상법의 적용을 받는다. 사실 상법이 정한 지배구조의 요체는 단순하다. 첫째,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은 전체 주주들로 이뤄진 주주총회에서 한다. 둘째, 그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역시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은 주주총회에서 선임한 이사들로 이뤄진 이사회에서 한다. 셋째, 그보다 덜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사회에서 그들 중에 선임한 대표이사가 한다. 넷째,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들은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지고, 그것을 위반하면 책임을 진다.

위 설명이 묘사하는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주주총회가 자리 잡고 있다. 주주총회는 이사와 감사를 선임하고 해임한다. 정관에서 그 권한을 이사회에 부여하고 있지 않는 한 재무제표를 승인하고 배당액을 결정하는 것도 주주총회 권한이다. 합병, 분할, 영업 양도, 정관 변경, 자본금 감소 등 중요한 조직 변경도 주주총회에서 결정한다. 비교법적으로 봐도 한국법이 정하는 주주들의 권한과 주주총회의 권한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고, 오히려 강력한 편이다.

예를 들어, 영국과 미국의 기업지배구조를 비교할 때 영국은 ‘강한 주주와 약한 경영진’, 미국은 ‘약한 주주와 강한 경영진’으로 대별하곤 한다. 이때 영국을 ‘강한 주주’ 구조로 판단하는 근거로는 (i) 주주의 임시주주총회 소집권, (ii) 정관 변경에 관한 주주제안권, (iii) 주주의 신주인수권, (iv) 주주 결의에 의한 이사해임권 등을 든다.3 이런 권리들은 영국법에서는 인정되지만 미국법에서는 (주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법에서는 이런 권리들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법전에 있는 법만 놓고 보면 한국에서 주주권은 상당히 강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지난 수십 년간 회사법상의 주주권이 활발히 활용되고 존중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주주총회는 이사회가 상정한 안건이 시나리오대로 일사천리 통과되는 자리에 지나지 않았다. 전체 상장회사의 절반 이상이 3월 셋째 주 또는 넷째 주 금요일 오전 9시에 동시에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하니 주주들이 참석하기도 쉽지 않았다. 따라서 경영권 분쟁에 이른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경영진은 주주들의 목소리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고, 특히 2022년 3월의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많은 회사에서 주주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관측됐다. 경영자로서는 주주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것이 표출되는 주주총회라는 이벤트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주주총회에 관한 오해와 이해

최근 주주총회의 새로운 추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주주권과 주주총회에 대한 흔한 오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4

먼저, 주식회사에서의 주주를 민주공화국에서의 국민에 상응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주주들의 적극적 참여를 통한 의사결정이 선(善)이고 정의인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지배주주는 적극적으로 회사의 의사결정에 관여할 의지도, 능력도, 시간도 없다. 상장회사에서 수천 명의 주주가 오순도순 토론해 의사결정을 하는 모델은 전문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음으로, 그 반대편 극단에서 지배주주를 회사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다. “짐이 곧 국가”라는 언명의 회사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입장에서는 주주들이 횡령을 저지른 지배주주의 책임을 추궁하는 행위라든지 무능한 지배주주를 이사 지위에서 해임하는 조치마저 ‘반기업적’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지배주주는 자신의 지분율만큼 회사의 손익을 부담하는 사람일 뿐이므로 그의 손익을 회사의 손익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지배주주가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데도 무작정 그를 옹호하는 태도야말로 ‘반기업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곳은 두 오답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모든 주주가 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환상을 버리고, 유능한 경영진에게 회사의 경영을 맡기고 그들의 재량을 존중해야 한다. 그 경영진은 지배주주 또는 그 일가족이어도 좋다. 오히려 유능한 지배주주가 직접 경영을 맡을 때, 전문 경영인보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감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경영진이 기업 가치를 훼손하거나 위법하게 사익을 추구했다면 주주권을 행사해서 책임을 묻고, 필요하면 교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지배주주라 해도 그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처럼 주주들의 권리는 일상적으로 늘 행사되는 성질의 것이라기보다는 경영을 맡은 경영진과 지배주주가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에 그를 교체하거나, 책임을 묻거나 자극을 주기 위한 통제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최근 우리나라 상장회사 주주총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이러한 주주권의 통제 기능이 실효성을 얻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주주총회의 변화 양상

다시 최근 주주총회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근래 들어 주주들의 권리 행사가 활발해지면서 여러 회사에서 주주총회는 더 이상 요식 행위로 치부할 수 없는 중요한 이벤트가 되고 있다. 특히 올해 2022년 정기 주주총회 시즌에는 여러 회사에서 주주행동주의 사례가 발견됐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사조오양 등에서는 국내 자산운용사들5 이 저평가된 주가와 불합리하게 낮은 배당 성향 등을 지적하며 주주제안권을 행사했고, 이들이 추천한 후보들이 표 대결 끝에 감사나 감사위원(사외이사)으로 선임됐다. 특히 에스엠엔터테인먼트는 최근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여 이수만 최대주주의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싱 계약을 올해 말 조기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알려진 당일 에스엠의 주가는 장중 20% 이상 치솟기도 했다. HDC현대산업개발에서는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의 위임을 받은 경제개혁연대가 정관 변경을 제안해 상당 부분 수용됐다. 토비스, 한샘, 한진칼 등에서는 결국 부결되기는 했지만 국내외 헤지펀드들이 감사위원(사외이사) 선임, 배당 증액, 이사 보수 한도 삭감 등을 제안해 표결에 부쳐졌고, 경영진으로부터 일부 자발적인 양보를 얻어내기도 했다.

회사에서 벌어진 위법 사례, 예컨대 임직원들의 횡령, 배임, 정치자금법 위반, 계열사 부당 지원, 회계 처리 기준 위반 등에 관해 소액주주들이 소액주주연합회를 구성하거나 시민단체와 연계해 경영진의 책임 추궁과 내부 통제 시스템의 강화를 요구한 사례도 많았다. 국내외 헤지펀드나 기관투자가들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회를 상대로 주주 서한을 발송해 합리적인 배당 정책 수립, 합리적인 자산 운용, 신규 사업 투자 등을 요구한 사례는 그보다 더 많았다. 이런 요구 중 일부는 협의를 통해 경영진이 자발적으로 수용하기도 했다.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도 적극적이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기금은 2021년 기준으로 총 773회의 주주총회에 참석해 3378건의 상정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했고 그중 16.25%의 안건에 대해 반대했다고 하는데6 이는 일반 주주들의 반대 비율보다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일부 펀드는 스스로 반대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결권 대리 행사 공시를 하고 소수주주들의 위임을 받아 표 대결에 나서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2022년 주주총회에서만 해도 사조오양, 에스엠엔터테인먼트, SK케미칼, 한샘, 토비스 등에 관해 국내외 펀드들이 의결권 대리 행사 권유에 나섰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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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원인

이러한 변화의 원인 내지 배경으로는 몇 가지를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개인투자자의 급증과 이들의 세력화다. 12월 결산 상장법인의 주식을 소유한 개인투자자의 수는 2016년 말 490만 명에서 2021년 말 1374만 명으로 급증했다.8 종래 소액주주들은 무임승차 가능성 때문에 공동 행동이 어려운 문제가 있었으나 각종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소액주주 간의 의견 교환 및 집단적 권리 행사가 용이해지면서 이들은 무시할 수 없는 주체가 됐다. 특히 ‘공정’에 민감한 MZ세대가 대거 주식시장에 들어오면서 지배주주 혹은 경영진의 사익 편취나 자본시장에서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늘었다. 국내외 헤지펀드들이 소액주주들을 상대로 의결권 대리 행사 권유를 함으로써 결집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둘째,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이다. 2016년 12월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된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들이 고객의 자산 가치를 보존하고 높이기 위해 투자 대상 기업을 점검하고 필요시 주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할 책임이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투자 대상 기업의 소극적인 주주로 머무르지 않고 주주의 지위에서 투자 대상 기업과 대화하고 적정하게 의결권을 행사하며, 필요시에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이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원칙’과 ‘지침’을 제정해 다양한 형태로 주주권 행사에 나서고 있다. 그 밖에 다수의 기관투자가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주주권 행사 내역을 공시하고 사안에 따라 투자 대상 기업 이사회에 공개서한을 보내는 등 주주 관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성과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도 많으나 어쨌든 도입 전에 비해 기관투자가들이 의결권 행사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반대투표를 던지는 비율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적극적인 주주 관여 활동을 운용 자산 유치를 위한 일종의 차별화 전략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일부 기관투자가는 헤지펀드나 소액주주들이 촉발한 주주 행동에 우군으로 참여해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셋째, 2020년 12월 상법 개정으로 도입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상장회사의 감사위원은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되 발행주식 총수의 3%를 초과해 주식을 소유한 주주는 그 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러한 3% 룰 그 자체는 감사위원 제도가 한국에 도입될 때부터 존재했다.9 다만 종전에는 3% 제한 없이 이사를 일괄 선임한 후 그들 중에서 3% 제한하에 감사위원을 선임했기 때문에 대주주가 원치 않는 사람은 아예 이사로 선임되기 어려웠고, 따라서 감사위원 후보가 될 수 없었다.

반면 2020년 상법 개정으로 시행된 분리선출제는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와 ‘감사위원이 되지 않는 이사’를 이사 선임 단계에서부터 분리해 별도 안건으로 처리하고,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의 경우 이사 선임 단계에서부터 3% 제한을 적용한다. 이사 지위를 취득하는 단계에서부터 대주주의 영향력이 차단되는 것이다. 이로써 비지배주주들이 주주제안권을 행사해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 후보로 올리고 이들을 당선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지배주주가 원치 않는 비지배주주 측 인사가 이사회에 입성할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이므로 비지배주주들에게 매우 강력한 무기를 쥐여준 셈이다.

최근의 주요 쟁점들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들의 적극적인 의견 표명을 촉발하거나 주주총회 현장에서 민감한 문제로 대두되는 쟁점은 매우 다양하지만 2022년 정기 주주총회의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과다한 이사 보수 문제이다. 상법 제388조에 따르면 이사의 보수는 정관으로 정하지 않으면 주주총회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비교법적으로는 상당히 특이할 정도로 주주총회의 권한을 한껏 강화한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사를 비롯한 임원 보수는 이사회에서 정한다. 미국에서 임원 보수 통제를 위해 도입된 이른바 ‘세이 온 페이(Say on Pay)’도 주주총회의 비구속적(non-binding)인 권고 결의에 불과하고, 임원 보수 결정권은 여전히 이사회에 있다.

다만 이러한 강력한 상법 조항이 문자 그대로 집행되고 있지는 않다. 실무상 대부분의 회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실제 보수액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 총원의 보수 한도액을 승인할 뿐인데 이 한도액은 엄밀한 기준 없이 그저 넉넉히 승인받아 놓는 것이 대부분 회사의 관례였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2022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무려 200여 개 회사의 임원 보수 한도 승인 건에 대해 반대했다. 이 사안들의 대부분은 절대 금액 자체가 과도한 경우라기보다는 전년도 보수 한도액과 실제 지급액 사이에 괴리가 과도한 경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총에서는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회사에서 보수 한도액이 원안대로 승인됐지만 별다른 근거 없이 대충 넉넉한 금액으로 한도액 승인을 받아놓는 그동안의 관행은 재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 과소한 배당 성향의 문제이다. 이익 배당이 너무 적다고 지적하면서 배당률 상승(보통 ‘합리적 배당정책 수립’이라는 형태로 요구한다), 분기 배당 실시,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의 시행을 요구하는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이것은 주주행동주의 성향의 자산운용사들이 회사의 이사회에 보내는 공개, 비공개 서한에 단골로 들어가는 항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배당 성향은 자본시장이 발달한 주요 외국 기업들에 비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던 과거에는 이익 배당 대신 연구개발이나 생산시설 확충에 재투자하는 것이 주주들에게도 더 도움이 된다는 주장으로 저배당 성향을 어느 정도 합리화할 수 있었지만 이제 기관투자가들과 소액주주 모두 합리적인 이익 배당에 대한 기대를 갖고 이를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주주총회에 부의된 이익 배당안이 주주총회 단계에서 실제로 부결되거나 증액된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일부 주주가 총회에 앞서 과소 배당을 문제 삼으면서 그 해결책으로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자를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선임하려고 시도하기도 하고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면 경영진은 협의를 시도해 주주 환원 정책을 일부 수용하기도 한다. 즉, 상법상 인정되는 다양한 주주권이 배당 증액을 위한 간접적인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셋째, 내부 통제의 강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회사의 위법을 방지해야 할 이사의 감시 의무 및 그 위반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미국 대다수 상장회사의 설립지인 델라웨어주 법원은 최근 들어 마천드(Marchand) 판결(2019)10 , 클로비스(Clovis) 판결(2019)11 , 보잉(Boeing) 판결(2021)12 등에서 회사의 내부 통제 실패에 대한 이사들의 감시 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닌데, 최근 유니온스틸 판결에서는 철강회사의 담합을 방지하지 못한 데 대한 대표이사 개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고,13 대우건설 판결에서는 건설회사의 담합을 방지하지 못한 데 대한 이사들(사외이사 포함) 개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14 이들 판결은 회사가 내부 통제 시스템을 적절히 설치해 운영할 것을 요구한다.

2022년 정기 주총에서도 다수 회사에서 내부 통제가 이슈가 됐다. 예를 들어, 자금 관리 직원의 횡령이 문제돼 4개월간 거래 정지가 됐던 한 회사에서는 소액주주들의 요구에 따라 윤리경영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정관 개정이 이뤄졌다. 국내 상장회사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서 과징금 처분을 받자 소액주주들이 준법 통제 기능 강화를 요구하고, 회사가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이를 일부 수용한 사례도 있었다. 건설 중인 건축물 붕괴 사고로 회사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자 주주인 해외 기관투자가가 다양한 요구를 한 사례도 있었는데 (ⅰ) 지속가능 경영에 관한 정관 전문(前文)의 신설, 안전보건위원회의 설치 등은 수용됐으나 (ⅱ) 책임 있는 이사의 해임, ESG 관련한 권고적 주주 제안 제도의 정관 내 신설 등은 수용되지 않았다.

그 밖에 정기 주주총회보다는 별도의 임시 주주총회에서 주로 다뤄지는 것이지만 계열사 간의 합병이나 분할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예컨대, (ⅰ) 계열사 간의 합병에 있어 자본시장법령의 산식 기준에는 부합하지만 실질적인 기업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는 합병비율의 불공정 문제, (ⅱ) 회사의 성장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하고 이를 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 문제15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 합병 건에서는 이런 문제 제기에 대응해 주총 결의 및 합병 신고서 제출 이전에 회사 측이 스스로 합병 비율을 변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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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점

제대로 된 ESG 경영을 위해서는 일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건전한 지배구조가 필수적이다. 그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는 주주총회는 과거에는 대다수 회사에서 요식 행위처럼 여겨져 왔지만 점차 주주들의 다양한 요구가 분출하고 회사의 경영 방침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현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소액주주의 급증과 조직화, 스튜어드십 코드의 확산과 행동주의 펀드의 출현,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의 도입 등을 배경으로 이사 보수, 이익 배당, 내부 통제, 계열사 간 구조조정 등 다양한 현안에 관해 주주들의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이를 경영진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정적 외부 효과로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본시장의 선진화 과정에서 거칠 수밖에 없는 단계,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자본시장의 개방으로 인해 한국 회사들이 외국 회사들과 동등한 선상에서 투자자의 선택을 위해 경쟁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면서 과거에는 관행대로 넘어갔을 다양한 사안을 주주 이익 보호의 관점에서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면 이를 한국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 가치를 증대시키는 긍정적인 계기로 활용하기 위한 지혜가 요구된다.

경영진과 이사회는 의사결정에 있어 지배주주만이 아니라 일반 주주까지 포함한 전체 주주의 관점에서 손익을 판단하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이사 보수, 이익 배당, 내부 통제, 계열사 간 구조조정 등의 문제 모두 그러한 전체주주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분석 및 평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주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적어도 그러한 요구를 경청하고 소통해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토대 위에서 주주 외의 이해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려가 이뤄질 때 비로소 진정한 이해관계자주의, 진정한 ESG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천경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khchun@snu.ac.kr
필자는 서울대 법과대학과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법학석사, 법학박사)와 미국 듀크대 로스쿨(LLM)을 졸업했다. 한국과 미국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으며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를 거쳐 현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회사법이고 특히 기업 집단과 인수합병에 관심이 많다. 상법, 공정거래법 등의 개정위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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