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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다름의 미학

김현진 | 351호 (2022년 08월 Issue 2)
MIT 출신 엔지니어들이 공동 창업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회사 울트라넛츠의 직원 가운데 75%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습니다. 창업자들은 이들을 배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가진 우수성을 업무에 적극 활용하기 위해 채용을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즉, 자폐 스펙트럼의 특성으로 꼽히는 수학적 우수성, 정밀성, 과제 집착력 등의 특성이 업무에 큰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에 자폐인의 탁월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한층 높아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미 많은 혁신 기업이 이들의 능력을 기꺼이 활용하기 위해 굳게 닫혔던 채용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에는 데이터 분석, 위성 이미지 인식 등의 분야에서 기술과 재능을 가진 자폐인으로만 구성된 특수 정보 부대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자폐인 고용의 핵심은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을 인정한 데 있습니다. 자폐권리운동의 근거가 되는 이 개념은 뇌신경 차이에서 비롯된 발달 장애인들의 특성을 비정상이 아닌 개성으로,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식합니다.

다양성의 일환으로 기존 조직에서 ‘마이너리티’로 불렸던 인재를 적극 채용함으로써 다양성(diversity)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신경다양성 영역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양성의 영역은 흔히 사회적 범주(연령, 민족, 인종, 성별, 종교), 정보 관련 범주(교육, 직무 경험, 기능적 전문성의 조직 차이), 가치지향적 범주(개인적 성격, 태도)로 분류되는 데 이 모든 분야에서 사회적 소수가 가진 창의성과 ‘다름의 가치’가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움직임입니다.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최근 소개된 아티클 ‘기업이 언더독에 투자하는 이유’에 따르면 마이너리티라 할 수 있는 언더독(underdog, 성공 가능성이 낮은 약자)에 투자를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를 간파한 벤처캐피털(VC)사 ‘백스테이지캐피털’은 창업 현장에서 여전히 마이너리티로 꼽히는 여성, 유색인종, 성 소수자가 창업자인 기업에 적극 투자하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보통 특정 학교 출신이나 백인 남성 등 ‘안전한 카드’를 확보하려는 여느 VC들과 다른 행보를 택한 겁니다. 연구진은 “언더독들은 투자라는 기회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보다 색다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 매진한다”고 말합니다.

조직 내 다양성 확보에 대한 당위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이전에 없던 근무 형태가 보편화되는 등 일의 방식이 크게 달라지면서 변곡점을 맞게 됐습니다. 다양성(Diversity)과 더불어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을 더한 ‘DEI’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진 것입니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업무 환경의 하이브리드 수준은 향후 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인구통계적 차이뿐 아니라 계약 형태, 사고 구조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한 특성을 가진 인재들이 함께 일하는 문화가 조성될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렇게 ‘인구통계적 다양성(demographic diversity)’뿐만이 아닌 ‘인지적 다양성(cognitive diversity)’을 확보한 조직이 되면 생각하는 방식이 각기 달라 색다른 주파수를 내는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관점과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양성 융합 시대에는 리더십과 팔로우십의 이상향도 달라져야 합니다. 티지아나 카시아로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와 미구엘 소사 로보 듀크대 교수는 특히 팀 내에서 이질감을 완충시켜주고 연결, 응집시켜주면서 조직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버퍼링(buffering)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리더십 차원에서는 익숙한 것에 대한 결별, 그리고 낯섦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포용성이 무엇보다 강조됩니다.

다양성이 혁신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다양성이 풍부한 조직을 만드는 출발점입니다. 우영우 변호사가 인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다소 낯설고 불편한 그의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능력을 편견 없이 평가해준 동료들의 ‘인정’ 덕분이었습니다.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가 우리 조직에 우영우들이, 괴짜들이, 그리고 외부 인재들이 함께 호흡을 맞춰 빚어낼 ‘다양성의 미학’을 기획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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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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