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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소셜벤처 ‘노을’의 미션과 비전

사명감으로 뭉친 테크 전문가들,
외면받던 말라리아 진단 시장 구원하다

장재웅 | 350호 (2022년 0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노을은 저소득 국가의 의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2015년 창업한 소셜벤처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저소득 국가에 특화된 말라리아 진단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5년간의 기술 개발을 통해 2020년 세계 최초로 혈액 한 방울로 말라리아 진단이 가능한 ‘miLab(마이랩)’을 출시했다. 마이랩은 혈액 검체의 전처리부터 이미징, AI(인공지능) 분석까지 현미경 검사 절차를 자동으로 진행하며 15분 이내에 정밀한 분석 결과를 제공한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노을은 소셜벤처로는 드물게 올해 초 코스닥 시장 상장에 성공했다. 2020년부터 매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공시하는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회사의 미션과 철학을 알리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셜벤처로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소셜벤처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사회적 기업과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사회적 가치에 더 방점이 찍혀 있는 사회적 기업과 달리 소셜벤처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자본시장에서는 소셜벤처를 ‘돈 못 버는 착한 기업’ 정도로 인식하고 소셜벤처의 기업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 ESG 경영의 가속화와 함께 소셜벤처의 성장세 역시 빨라지고 있다.1 일반적으로 벤처기업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사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을 지칭한다. 이들은 주로 혁신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관심을 둔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첨단 기술과 혁신을 사회적 문제해결에 적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늘고 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1년 소셜벤처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셜벤처 수(지난해 8월 기준)는 2019년 998개사에서 2021년에는 2031개사로 2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평균 매출액도 늘었다. 2020년 소셜벤처의 평균 매출액은 28억9500만 원으로, 2019년 평균 매출액 24억4400만 원보다 18.5% 늘었다. 투자 규모 역시 커졌다. 소셜벤처 기업들은 2020년 총 2671억 원의 임팩트 투자를 받았다. 2019년 투자액 282억 원보다 9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지난 2015년 창업한 소셜벤처 ‘노을(noul)’은 소셜벤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 기여한 대표적 기업 중 하나다. ‘노을’은 아침과 저녁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회사가 되자’는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노을은 창업 초기부터 의료 자원이 부족한 지역의 의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 아래 ‘탈중앙화 진단 플랫폼’ 개발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지난 2020년 실험실과 대형 장비 없이 최소 인력만 있으면 혈액 한 방울로 말라리아를 진단할 수 있는 초소형 진단 기기 ‘miLab(micor-intelligent Laboratory, 마이랩) 플랫폼’ 개발 및 상용화에 성공했다. 마이랩은 혈액 검체의 전처리부터 이미징, AI(인공지능) 분석까지 현미경 검사 절차를 자동으로 진행하며 15분 이내에 정밀한 분석 결과를 제공한다. 현재는 말라리아 진단과 말초혈액 분석이 가능하며 카트리지 교체를 통해 자궁경부암 등 각종 암 진단으로도 확대 가능하므로 확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을은 이 같은 기술력을 앞세워 2022년 3월,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기술보증기금을 통해 소셜벤처 판별을 받은 회사로는 5번째로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사례다. 노을은 또 최근 ‘2021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행하고 이를 공시하기도 했다. 아직 국내 코스닥 상장사들에는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가 없고 대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인데도 이런 행보를 보인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성과나 개선점 등을 이해관계자와 자발적으로, 투명하게 소통하려 한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련 정보를 공개해 나가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남다른 소셜벤처, 노을의 창업 및 성장 스토리를 DBR가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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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접근성’ 문제해결을 위해
의기투합한 고교 동창생

노을은 일반 바이오 벤처와는 달리 목적 기반으로 설립된 회사다. 의료 자원이 부족한 지역의 의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회사의 설립 목적이었기에 시작부터 소셜벤처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창업 초기부터 이처럼 원대한 포부가 있었던 것과 달리 이를 실현할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통상 바이오 벤처는 학내 창업이 주를 이룬다. 대학교수들이 연구 과정에서 개발한 기술이나 물질을 바탕으로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노을은 문제의식만 뚜렷했을 뿐 기술 기반으로 출발한 회사는 아니었다.

노을의 문제의식은 임찬양 대표와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이동영 최고과학책임자(Chief Science Officer)로부터 나왔다. 이동영 CSO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바이오 엔지니어링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1년간 아프리카 말라위로 의료 봉사를 떠났다. 말라위 내 한 대학 유아병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선진국식 의료 시스템이 아프리카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생하게 체감하게 된다. 변변한 병원도, 실험실도 없는 아프리카에서 선진국에서 주로 시행하는, 실험실 중심의 진단 장비나 진료 방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를 해결할 노하우나 기술이 없었고, 시장에 참고할 만한 롤모델이나 타깃 제품도 없었다. 말라리아2 진단 문제 해결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던 이동영 CSO는 페이스북에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기술을 개발해보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동네 친구이자 고교 동창이었던 임찬양 대표가 그 글을 우연히 보고 “한번 보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임 대표는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일하며 바이오 및 헬스케어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다. 임 대표는 “당시 말라리아 진단회사 투자를 검토하던 중에 친구로서 해당 회사를 연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동영 CSO의 말라위 현지 경험과 문제의식을 들은 임 대표는 직감적으로 “이런 성격의 문제는 연구개발만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회사를 창업해 많은 자본과 노력을 들여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소 지향했던 ‘창업을 통해 많은 사람의 인생에 임팩트를 주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그렇게 두 고교 동창생은 의기투합해 2015년 9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CTS 프로그램(Creative Technology Solution Program, 혁신기술 기반 창의적 가치 창출 프로그램) 공모전 참여를 계기로 본격적인 창업에 나선다.

임찬양 대표와 이동영 CSO 외에도 고교 동창이자 변호사 출신인 김경환 최고법무책임자(Chief Legal Officer)와 임 대표의 학부시절 과 후배인 신영민 AI 연구원이 뜻을 함께해 네 명의 공동 창업자 체제로 ‘노을’이라는 회사가 출범하게 됐다. 창업 초기에는 각자의 전공을 살려 임찬양 대표는 플랫폼 디바이스 개발, 이동영 CSO는 카트리지 개발, 김경환 CLO는 소프트웨어 개발, 신영민 연구원은 AI 개발을 맡아 융합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네 명의 창업자는 초기 비즈니스 구상 과정에서 다양한 질병 중에서도 특히 대표적인 ‘저소득 국가의 전염병’으로 꼽히는 말라리아 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프리카에선 의료 시설 내에 실험실을 갖춘 경우가 드물어 말라리아 진단에 신속진단키트인 RDT(Rapid Diagnostics Test)를 많이 활용하는데 이 키트는 정확성이 떨어져 잘못된 진단을 바탕으로 잘못된 처방이 나가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항생제 내성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사례도 많았다.

특히 초기에 말라리아 연구를 진행하며 느낀 말라리아 진단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말라리아 유병률과 사망률이 높은 지역에서 조기 진단과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조기 진단을 제대로 하려면 잘 갖추어진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쓰는 ‘골드 스탠더드’ 방법으로 진단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말라리아 유병률이 높은 지역인 아프리카 지역과 동남아, 남미 등에는 한결같이 잘 갖춰진 실험실이 부족했다. 두 번째는 질병 감시(surveillance) 체계 구축에 있었다. 특정 전염병을 퇴치하는 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이 병의 발병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추적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관리가 필요한데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의 지역에선 대부분 수기로 의료 정보를 관리,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데이터가 제대로 관리되기 어려웠다. 또한 디지털 기술을 통해 감시 체계를 만들려는 노력들은 많지만 샘플의 진단이나 검체의 운반 등 물류(logistics)까지 모두 연결되기는 어렵다는 한계도 있었다. 이래저래 전혀 다른 방식의 혁신적 진단 기술이 필요했다.

현미경 진단법을 대체할
‘탈중앙화 진단 플랫폼’을 고민하다

말라리아는 매년 약 5억 건 이상의 진단이 이뤄지는 세계 3대 감염 질환이다. 매년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만 40만 명을 넘어선다. 현재 약 5억 건의 진단 중 2억 건(44%) 정도가 현미경 진단법으로, 3억 건(54%) 정도는 신속진단키트(RDT)를 통해 진행된다. RDT의 경우 현미경 진단법에 비해 다양한 변종 진단에 대한 정확도가 떨어져 위음성(False negative)의 위험이 존재한다. 이에 WHO는 2030년까지 대부분의 국가에서 현미경 진단의 비중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언급했듯 현재의 현미경 진단법은 값비싼 실험실, 대형 장비, 전문적인 의료 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방법이라는 점이다. 또한 실험실의 질과 테크니션의 숙련도가 결과를 좌우한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실험실이 낙후됐거나 테크니션의 기술이 떨어지면 언제든 ‘휴먼 에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말라리아 진단 및 치료 과정을 혁신하고자 하는 시도는 많지 않다. 발병 지역이 주로 아프리카 등 저소득 국가에 국한되다 보니 진단 및 치료제를 개발해도 크게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라리아 관련 비즈니스에는 기업들의 진출이 드물다. 대부분 국제기구가 아프리카 정부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관련 제품을 유통하는 정도로 비즈니스가 이뤄진다. 기업이 참여해 혁신을 시도한다 해도 주로 전체 프로세스 중 검체 분석의 자동화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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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그래서 제품 개발 단계부터 현장 진단 도구인 RDT보다 높은 정확성을 유지하면서 실험실 진단 방식인 현미경 진단법보다는 접근하기 쉬운 ‘탈중앙화 진단 플랫폼’ 개발을 목표로 했다. 여기서 탈중앙화란 대형 병원 위주가 아닌 의료 현장에서도 손쉽게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노을은 말라리아 진단의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아프리카 현지 상황에 맞는 제품을 만들려면 현미경 진단의 전 과정이 하나의 디바이스에서 구현돼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을은 세상에 없던 콘셉트를 디자인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그만큼 다양한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저소득 국가의 상황에 특화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 극한 상황을 산정하고 제품을 개발해야 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대형 병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저소득 국가의 특성에 맞게 동네 병원이나 보건소에서도 쉽게 쓸 수 있도록 디바이스를 휴대 가능한 작은 형태로 만들어야 했다. 또한 전기가 자주 끊기는 개도국 특성을 반영해 전기 없이도 작동될 수 있어야 했다. 그런가 하면 현미경으로 말라리아 여부를 판독할 전문가가 부족한 개도국 상황을 고려해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으로 말라리아 여부를 판독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런 제약 조건들을 다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다 보니 개발 기간은 길어졌고 개발 비용 역시 예상보다 늘어났다.

그럼에도 노을은 고비 때마다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창업자 그룹의 협업과 노을의 미션에 공감하며 합류한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벤처캐피털리스트 출신인 임찬양 대표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제품이 실제 상용화 가능하고 수익성이 있는지를 검증하면서 플랫폼 디바이스 개발 업무를 담당했으며, 바이오 엔지니어 박사 출신인 이동영 CSO는 바이오 카트리지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민했다. 또한 변호사이며 LG전자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이 있는 모바일 시스템 전문가인 김경환 CLO와 영상인공지능 전문가인 신영민 AI 연구원은 기계의 성능을 고도화하기 위해 기술적인 조언을 더했다. 여기에 창업 초기부터 회사의 미션에 공감해 노을에 합류한 제조, 화학, 전자,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전문가들까지 힘을 합쳤다. 이들은 주로 대기업 출신으로 개발 경험이 많았기에 노을은 소형 말라리아 진단 플랫폼 개발을 위한 기술 역량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각 분야에서 전문가이며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던 이들이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것은 노을이 추구하는 기업의 미션과 철학이 각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에 잘 부합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의 확장성과 성장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이렇게 뜻을 모으는 과정에서 노을은 말라리아 진단 플랫폼과 관련해 두 가지 핵심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그중 하나는 고체염색기술인 ‘NGSI(Next Generation Staining and Immunostaining)’이고 다른 하나는 내장형 AI 기술인 ‘Embedded AI(임베디드 AI)’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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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기술로 지속가능성을 달성하다

노을의 첫 작품인 마이랩 Dx는 창업 후 5년이 지난 2020년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 보니 생각보다 개발 기간이 길어졌다. 특히 실험실에서 사람의 손을 거치던 현미경 진단법의 전 과정을 현장에서 사용 가능한 크기의 디바이스에 넣으려다 보니 어려움이 컸다. 아프리카 현지 상황에 맞는 제품을 강조하는 이동영 CSO와 실제 부품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들 간 의견 충돌이 연일 이어졌다.

특히 어려운 점은 혈액 검사 과정에서 필수인 물 사용을 어떻게 해결할지였다. 염색 과정 사이마다 물로 수세(washing)하는 과정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혈액 도말 현미경 검사 시, 슬라이드 글라스 위에 적정량의 혈액을 떨어뜨려 도말(smear)을 하고 고정(fixation)과 염색(stain)을 거쳐 검체 슬라이드를 만든 뒤 현미경 검경을 통해 세포를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물이 필요하며, 이로 인해 수도 시설이 필수적이다. 또한 염색 시약은 메탄올이나 염료 파우더 같은 다양한 화학 물질로 이뤄져 있어 별도의 폐수 처리가 필요해 정화 시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물을 쓰게 되면 실험실 인프라가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이는 노을의 본래 목표였던 ‘실험실 대체’를 어렵게 하는 한계가 될 터였다. 아프리카 등 저소득 국가에선 상하수도 인프라가 부족해 깨끗한 물을 얻기 어렵다는 점도 염색 과정에서 물을 쓰면 안 되는 이유였다.

방법을 고심하던 노을의 개발진은 ‘마스크팩’에서 우연히 실마리를 발견한다. 마스크팩은 삼투압 원리를 활용해 필요한 영양분은 피부에 흡수시키고 노폐물을 걸러내는데 이 원리를 적용해 ‘하이드로겔 염색법’을 개발한 것이다. 하이드로겔 염색법은 염색 시약(에오신, 메틸렌 블루/산화 메틸렌 블루, Azure B 및 버퍼)을 고체화해 하이드로겔 패치에 내장하고 이를 순차적으로 혈액 도말에 도장을 찍듯 접촉(Stamping)시켜 혈구 세포를 염색하는 기술이다. 기존 염색 방법에 비해 4분 이내로 간단하게 염색할 수 있고, 고품질의 혈액 도말을 순조롭게 생성할 수 있으며, 검사 및 제조 비용이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또한 생물학적 폐기물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특히 열악한 개도국 상황에서 사용하기 좋았다. 그리고 이 하이드로겔과 염색 시료를 혼합해 만든 카트리지가 바로 ‘NGSI 카트리지’로, 이 개발을 통해 관련 기술 특허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마이랩에 탑재된 내장형 AI 알고리즘인 ‘노을넷(noul-Net)’ 역시 저소득 국가의 전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노을이 자체 개발한 기술이다. 국내 주요 의료 AI 기업의 경우 사업 영역이 영상진단 분야에 국한돼 있다. 이에 반해 혈액 및 조직 진단의 경우 기존에는 데이터가 디지털화돼 있지 않고 혈액 및 조직 염색 시 에러나 편차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표준화된 프로토콜도 명확히 정리돼 있지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노을은 마이랩 개발 초반부터 자체 전문 인력과 기술을 활용해 ‘Embedded System’을 개발했다. 노을의 내장형 AI는 독보적인 분할(Segmentation), 인식(Detection), 최적화(Optimization)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기존 상용화된 오픈 소스 대비 필요 데이터 용량은 1000분의 1, 수행시간은 3분의 1 이상을 단축할 수 있다. 고화질 디지털 현미경이 내장돼 빠른 속도로 샘플 이미지를 확보하고 노을넷 알고리즘이 디지털 이미징과 동시에 관찰•판독을 진행해 일관성 있고 정확도 높은 결과를 출력한다.

노을의 마이랩은 NGSI 카트리지 기술과 AI 기술을 바탕으로 염색과 분석이 한 번에 가능한 올인원 플랫폼을 완성했다. 그 결과 혈액 및 조직 분야에서 상용화된 AI 진단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세계 유일한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의료 접근성 해결’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바이오,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등을 융합한 딥테크(Deep Tech)로 풀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안정권 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CSO, Chief Sustainability Officer)는 “처음부터 어떻게든 저소득 국가 환경에 맞는 제품을 내놓겠다는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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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노을은 기술에 집중하면서도 회사의 존재 목적인 ‘지속가능성’ 달성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NGSI 카트리지를 활용한 염색법의 경우 액체 염색 방식을 고체 염색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시료량을 최대 100분의 1로 감소시켰고 세척과 건조 과정이 필요 없어 폐수가 전혀 발생되지 않는다. 기존에 액체를 활용한 염색법이 염색 한 번에 최대 500㎖의 폐수를 발생시켰던 데 비해 친환경적이다. 또한 노을은 독성이 있는 메탄올 대신 에탄올을 활용해 혈액을 고정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에탄올이 혈액 고정에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것에 비해 메탄올은 1분30초면 혈액 고정 작업을 완료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메탄올은 독성이 있어 안전하게 실험하기 위한 시설 설치 비용이 많이 들고 사용 조건도 까다롭다. 노을이 개발한 에탄올 기술은 메탄올 대비 30배 가까이 걸리던 고정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면서(30분에서 1분30초로 단축) 환경보호와 의료진 건강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전히 메탄올은 에탄올에 비해 약 5분의 1 정도 저렴해(참고: 에탄올 500㎖ 12만8400원 / 메탄올 500㎖ 2만7100원) 가격 경쟁은 있지만 단순히 싼 가격 때문에 환경오염의 위험이 있는 소재를 활용하는 것은 회사의 비전과 맞지 않았다.

‘의료 데이터의 디지털화’로
의료 접근성 문제해결

노을의 마이랩은 질병 감시(surveillance) 체계 구축을 위한 말라리아 데이터의 디지털화 솔루션도 제공한다. 마이랩 이전에 저소득 국가에서의 말라리아 진단은 수기로 기록되고 디지털화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노을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이랩 플랫폼의 기능에 ‘마이랩 뷰어(miLab Viewer)’를 추가했다. 마이랩 뷰어는 마이랩이 분석한 셀의 진단 결과를 스크린에 디지털 이미지로 구현하는 기능이다. 노을은 이 마이랩 뷰어 소프트웨어를 월간 단위의 구독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이미 질병관리청과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중 일부가 마이랩 뷰어 소프트웨어를 구독 중이다.

아직 상용화 전이기는 하지만 마이뷰 기능에 통신 기능을 추가해 원격진료에 활용하는 방안 역시 검토 중이다. 기존에는 질병 진단 시 검체(혈액)를 현장에서 채취해서 바로 진단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중앙 랩으로 보내서 검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는 중앙 랩으로 혈액 샘플들을 보내서 검사를 하기엔 물리적인 어려움, 검사 인력의 부족 등의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마이랩의 경우 현장에서 바로 진단 결과를 디지털화해 이를 여러 곳에 보낼 수 있기 때문에 검체가 물리적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 중앙센터에서 질병을 모니터링하고 검체 분석까지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들을 활용해 여행자들의 말라리아 감염 여부 추적, 신약 개발, 약 내성 모니터링 등이 가능하고 더 나아가서는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전략을 짜거나 서비스 제공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큰 공헌을 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 기술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구미를 당길 만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전 세계에 걸쳐 임상 사이트를 운영 중인데 임상의 혈액 샘플 운송 문제가 고민일 수밖에 없다. 운송 중 혈액 샘플이 손상될 가능성도 있고 코로나19 등의 이유로 운송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들 입장에서도 마이랩 뷰어를 사용하면 물류비 등 여러 제반 비용을 줄이고 임상 속도를 개선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 노을의 매출 비중 중 마이랩 뷰어 구독 서비스가 차지하는 매출은 15% 정도로 미미한 편이지만 대부분의 고객이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이다. 향후 원격진료 시대 개막과 함께 관련 분야 매출의 상승이 기대되는 지점이다.

‘랩온어칩’ 기술로 혁신성과
확장성 두 마리 토끼를 노린다

노을의 핵심 기술은 ‘랩온어칩(Lab On a Chip)’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실험실(Lab)을 간단한 칩(Chip)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미 노을의 랩온어칩 기술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2016년 6월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과학기술혁신 포럼’에서 ‘주목할 만한 15개의 이노베이터’로 선정됐고 2019년에는 게이츠재단이 매년 진행하는 그랜드 챌린지 애뉴얼 미팅(Grand Challenge Annual Meeting)에서 포스터 프레젠테이션을 진행, ‘People’s Choice Best Presentation Award(참석자들이 뽑은 프레젠테이션 대상)’를 수상하기도 했다. 생명과학 연구로 유명한 스위스 바젤대 한스 피터 벡(Hans-Peter Beck) 교수는 한국 방문 기간 중 일부러 시간을 내 노을을 찾을 정도로 큰 관심을 보이며 공동 연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또한 노을의 말라리아 진단 솔루션은 현재 한국 질병관리청, 스페인 카를로스 3세 연구소, UAE 국립 말라리아 센터 등과 말라리아 진단 카트리지 공급을 위한 테스트 검증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관심에 힘입어 노을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865억 원 규모의 수주 계약을 맺은 상태다. 물론 수주 계약이 100% 매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제품 테스트가 끝나고 납품이 본격화되면 회사의 실적도 가파르게 상승할 전망이다.

노을 측은 “올해까지 글로벌 주요 기업들로 매출처를 확보해 평판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파트너와 협업을 진행 중”이라며 “이 같은 경험이 이력이 되면 새로운 시장 진입도 용이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노을의 매출은 이제 시작 단계이다. 2020년 상용화된 마이랩이 기존에 없던 세계 최초의 탈중앙화 제품이어서 초기 시장 진입에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2021년 기준 노을의 매출은 15억 원 정도이고 2024년쯤이 돼야 손익분기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가 노을의 미래를 밝게 보는 이유는 마이랩 플랫폼이 갖는 확장성 때문이다.

말라리아 진단 플랫폼이 처음부터 사회적 임팩트를 고려해 진행한 비즈니스였기에 이러한 취지를 살려 노을은 올해부터 혈액 분석과 자궁경부암 진단 시장으로의 진출을 본격 준비 중이다. 혈액 분석 솔루션의 경우 이미 개발을 완료하고 자체 테스트 검증(test validation)을 진행 중이다. 조만간 글로벌 기업과 제품 공급을 위한 테스트도 진행할 예정이다. 혈액 분석 시장은 매년 100억∼200억 건의 검사가 수행되고 있어 진단 시장에서는 상당히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액 분석은 1단계로 CBC(Complete Blood Counting) 과정을 거치고 2단계로 현미경 검사를 진행한다. 마이랩은 의료 현장에서 손끝 채혈만으로 CBC와 현미경 검사를 한 번에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솔루션으로 꼽힌다.

이와 더불어 노을은 올 하반기 자궁경부암 진단 솔루션 개발을 완료하고 암 진단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자궁경부암 세포 검사에 사용되는 PAP 염색법은 기존 혈액 염색 등에 비해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소요되는 반면 노을의 솔루션은 원스톱으로 진단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궁경부암 진단 시장은 2021년 약 10조 원에서 2025년 12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정권 CSO는 “말라리아 진단 솔루션이 사회적 가치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라면 올해부터 도전할 혈액 검사와 자궁경부암 진단 솔루션은 사회적 가치뿐 아니라 비즈니스 가치 역시 높은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마이랩 플랫폼의 확장성이 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말라리아 진단 솔루션 개발 자체가 험난하고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말라리아 기생충은 혈액 내에서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대상 중 가장 크기가 작고 구별이 어려운 편이다. 이렇게 관찰이 어려운 말라리아 기생충을 찾기 위해 노을은 디바이스 개발 초기부터 광학기술과 AI 기술의 고도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험난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니 이 과정에서 쌓인 기술력이 남달랐던 것이다. 연구의 결실로 취득한 NGSI나 AI 관련 특허들이 이후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확장에 효자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안 CSO는 “2024년부터는 암 정밀 진단 등의 사업으로도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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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명의 삶에 임팩트를 주는 회사를 꿈꾼다

노을이 꿈꾸는 비전은 무엇일까. ‘전 세계 10억 명의 삶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 제공을 통해 헬스케어 분야의 글로벌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가능할까. 노을은 ‘집단적 임팩트(Collective impact)’를 위한 글로벌 협업을 통해 이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집단적 임팩트란 FSG라는 소셜 임팩트 컨설팅 회사의 창립자로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 개념을 창안한 마크 크레이머(Mark Kramer)가 주창한 개념이다. 그는 지난 2011년 스탠퍼드소셜이노베이션리뷰(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에 집합적 임팩트에 관한 글을 기고하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글은 당시 SSIR 역사상 가장 많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다. 이 글에서 크레이머는 사회 문제의 복잡성과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어느 한 기관만의 자원과 역량으로는 의미 있는 임팩트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민간 섹터, 공공 섹터, 소셜 섹터 등 다양한 기관이 협력해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집합적 임팩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그는 1) 공통의 어젠다(common agenda), 2) 공동의 측정(shared measurement), 3) 상호 강화 작용(mutually reinforcing activities), 4) 지속적 소통(Continuous communication), 5) 중추적 지원 조직(backbone organization)의 5가지 요소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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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창업 초기부터 ‘말라리아 퇴치’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말라리아 진단 프로세스 개선을 미션으로 출발한 회사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제기구들과 면밀히 협력하며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말라리아의 경우 민간기업보다는 WHO나 라이트펀드, FIND(전 세계 심각한 질병의 진단 기술의 개발과 전달을 돕는 국제 비영리 기구) 등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노을은 이들 국제기구나 NGO들과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말라리아가 민간기업 한두 곳의 혁신보다는 국제기구나 기금 등을 활용한 제품의 혁신과 유통이 이뤄지는 시장이기 때문에 이들 국제기구는 노을 입장에서는 주요한 고객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판로 개척 차원에서도 국제기구들과의 협력은 중요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노을의 마이랩은 2021년, 한국 조달청이 선정한 혁신적 제품으로 꼽혀 질병관리청 및 국내 의료기관 18곳에 납품된 바 있다. 노을 측은 “질병관리청 사례처럼 정부 기관이나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폭넓은 임팩트를 미치는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이 회사의 목표”라며 “노을은 앞으로도 지속가능성 철학을 바탕으로 사회에 ESG 임팩트를 끼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DBR mini box I

노을이 지속가능성을 내재화하는 비결

사실 아무리 지속가능성 철학을 기반으로 탄생한 소셜벤처라고 해도 회사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회사의 목적이나 방향성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노을은 기업공개를 한 상장사다. 소셜벤처 초기에야 회사의 미션과 뜻에 동의하는 구성원, 투자자, 고객 등 이해관계자들이 회사의 방향성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지만 기업공개 이후에는 수익성을 목표로 회사를 들여다보는 주주들 역시 생기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을 역시 창업 초반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2017년 회사 C 레벨에 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CSO, Chief Sustainability Officer)라는 직책을 만들고 이 자리에 지속가능성 분야 전문가인 안정권 이사를 선임하며 지속가능성을 조직 경영의 중심이 되는 철학으로 내재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특히 노을은 지속가능성의 의미를 1) 기업 시민으로서 윤리와 법을 준수하고 2) 이해관계자와의 책임 있는 관계 위에서 3) 경제적(Profit), 사회적(Social), 환경적(Planet) 가치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또한 2018년 회사 정관을 개편하면서 회사의 미션, 가치, 철학을 구체화해 회사가 지속가능성을 기본 철학으로 하는 회사임을 명시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미션을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도전적인 문제들을 탐구해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고 그 가능성을 실현한다”로 정하고 세부 정관에 회사가 사회적 가치와 사업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며 지속가능성 개념과 이를 근본 철학으로 삼는다는 원칙을 명기했다.

특히 노을은 120명에 이르는 내부 구성원이 조직의 미션과 비전에 맞춰 의사결정을 하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넷플릭스식 ‘자율과 책임’의 조직문화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또한 조직 내부 구성원들이 단기 목표나 개인의 KPI 달성에 몰두하지 않고 회사의 미션과 방향성에 몰입할 수 있도록 OKR(Object and Key Result)i 를 도입해 적극 운영 중이다. 노을의 구성원들은 회사가 정한 미션과 비전에 맞게 팀이나 그룹의 OKR를 정하고 이를 달성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노을이 추구하는 가치인 지속가능성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노을은 직원 평가를 동료 평가(Peer Group Review)로 진행한다. 이때 평가의 원칙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성과보다는 회사의 미션과 철학에 걸맞게 일을 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보상을 목표와 연동하지 않아 개인이 자신의 목표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협업을 해치는 것을 방지한다. 또한 인센티브제도 역시 별도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인센티브가 조직 전체의 협업 분위기를 헤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인정과 칭찬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운용 중이다. 일례로 노을은 ‘노을 코인 제도’를 운용 중이다.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가치와 원칙을 솔선해서 실천하는 직원에게 인정의 의미로 코인을 보낼 수 있는 제도다. 코인은 연초에 인당 120개씩 회사가 지급한다. 이후 연말에 각자 보유한 코인 수를 기준으로 회사가 1코인을 3000원 가치로 해서 보너스를 지급한다. 실적에 연동한 인센티브로 경쟁을 부추기기보다는 회사의 미션과 철학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직원에게 약간의 베니핏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회사의 정체성과 철학을 직원 개개인에게 내재화하려는 시도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인센티브 제도는 없지만 직원들의 동기 부여와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어워즈 제도도 운용 중이다. 특히 딥테크 기업답게 ‘챌린저스 어워드’라는 제도를 통해 기술 혁신을 시도한 직원에게 포상을 한다. 또 ‘서스테이너빌리티 어워드’와 ‘노을리언 어워드’도 운영한다. 회사의 철학인 지속가능성을 업무에서 잘 실천한 직원이나 회사 구성원으로서 이상적인 인재의 모습을 잘 구현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이처럼 어워드 제도 또한 실적을 많이 올린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 아닌 회사의 철학과 비전을 잘 실천한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설계함으로써 회사의 핵심 철학을 구성원에게 내재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회사의 제도와 시스템이 지속가능성 철학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제도화돼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사가 지속가능성 철학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직원들이 나서 이를 고치려고 하기도 한다. 일례로 최근에 노을의 한 엔지니어는 CSO 앞으로 보고서 하나를 보냈다. 회사의 제품 포장재가 친환경 포장재가 아니어서 회사의 철학과 배치된다는 것이 이 엔지니어의 주장이었다. 그는 CSO에게 구매 부서 담당자와 함께 친환경 포장재로 제품 포장재를 교체했을 때 드는 추가 비용과 회사가 얻을 수 있는 혜택 등을 정리한 보고서를 주며 회사가 본래 목적인 지속가능성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친환경 포장재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회사는 이 직원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아이디어에 화답했다.

공시 의무가 없는 벤처기업이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매년 발간하는 것도 회사 스스로 지속가능성 철학을 회사의 이해관계자인 주주 및 고객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아직 성장 단계인 바이오 벤처의 특성상 전사 차원의 중요성 분석 프로세스를 체계적으로 갖추지는 못한 상태이긴 하지만 내부적으로 K-ESG 가이드라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모범 규준 등을 참고해 노을의 지속가능성 성과지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회사의 ESG 성과를 측정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DBR mini box 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소셜 미션에 몰입하면서 기술 혁신 이뤄내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등이 공저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가치경영의 실천 전략』ii 에 따르면 사회가치경영을 추구하는 기업은 [그림 1]과 같이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그림에서 세로축은 기업의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관한 것이다. 기업의 태생적 목적이 경제적 가치 창출이지만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기업의 목적 자체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극대화’인 경우도 있다. 이런 기업은 미션에 구체적인 사회적 가치 창출을 명시하는 등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최고경영층의 의지가 강하고 조직 내 구성원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에 반해 가로축은 기업의 주요 본원적 사업 활동이 사회적 가치 창출과 직접 연계될 수 있느냐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간접 연계인 경우 경제적 가치 창출과 사회적 가치 창출이 서로 배타적이거나 중립적인 관계로 기업은 각종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 직접 연계인 경우 그 둘이 상보적 관계로 기업은 사업을 기반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

파타고니아가 대표적인 ‘유형 4’ 기업이다. 파타고니아는 등반, 서핑, 낚시, 스키 등 스포츠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이들은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을 한다. 이는 “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우리는 인류의 집인 지구를 구하는 사업을 한다)”라는 사명 선언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파타고니아는 정당한 노동 조건을 보장하고 안전한 작업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활동을 통해 환경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에도 파타고니아처럼 기업의 미션에 사회적 가치 창출을 내재화하고 사업 활동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이 다수 있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대다수의 국내 사회적 기업 혹은 소셜벤처는 경제적 가치 창출보다는 사회적 가치 창출에 좀 더 치중한 모습을 보인다. 그중에서도 노을처럼 사회적 가치 창출을 표방하는 딥테크 스타트업은 보기 드문 것이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노을의 케이스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어떻게 융화될 수 있으며 ‘사회가치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조직 차원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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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노을의 소셜 미션은 기술 혁신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노을은 탈중앙화 진단 솔루션 상업적 기회나 시장성을 보고 창업을 결심하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심각한 말라리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원격진단기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노을 진단기의 기술 혁신은 열악한 아프리카 현지 사정을 극복하기 위한 고민에서 나왔다. 예를 들어,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겔 타입의 고체염색기술이 접목된 카트리지를 고안했다. 마스크팩의 삼투압 원리를 진단기에 적용한 것이다. 액체 기반의 염색 방법을 사용하지 않다 보니 검체 위에 겔 형태의 염색 시약을 찍어내는 스탬핑(stamping)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었고, 기존 진단 프로세스를 대폭 축소할 수 있었다. 또한 아프리카 현지는 환기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기존 진단 프로세스에서 흔히 사용되는 메탄올 이용이 어려웠다. 노을은 이를 별도의 환기 시설이 필요하지 않은 보다 안전한 물질인 에탄올로 대체하는 방법을 시도해 성공했다. 에탄올 대체로 물류비용과 시간이 감소했다. 마지막으로 노을이 초기에 주력한 말라리아 진단 솔루션은 기술적 난도가 높아 향후 상업적 가치가 큰 다른 질병 진단에 적용하기가 오히려 수월한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노을의 기술 혁신은 구성원 모두가 소셜 미션에 몰입해 얻게 된 결과물이다. 소셜 미션이 경제적 성과로 연결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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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노을의 소셜 미션은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얻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스타트업은 부족한 자원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 이해관계자와 교류하며 지원을 얻어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소셜 미션은 이해관계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스타트업이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노을이 초기부터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소셜 미션의 힘이 컸다. 노을의 미션과 철학에 공감했기 때문에 연봉보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함께한다. 분명하고 확고한 소셜 미션은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하면 미션 달성에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등 구성원의 몰입과 헌신을 이끌어 낸다. 투자자의 신뢰를 얻어내는 데도 도움이 됐다. 소셜 미션을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임팩트 투자자가 아닌 일반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이런 기업 하나쯤은 있어야지”라며 업무적인 수준 이상으로 도와주는 투자자가 많았다고 한다. IPO 과정에서도 여러 기관의 직간접적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모두가 노을의 소셜 미션과 진정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셋째, 조직이 소셜 미션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조직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노을은 자신의 소셜 미션을 회사 정관에 명시하고 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를 선임했다. 벤처기업으로는 특이하게 매년 지속가능성 보고서도 발간한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요소보다 조직 운영 체계가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노을은 다면 피드백을 주기적으로 실시해 각자가 미션과 가치에 얼마나 몰입하는가를 평가한다. 그러나 부서 목표를 개인 단위로 너무 세분화하거나 다면 피드백을 개인 보상에 연결시키는 것은 지양한다. 개인 목표 달성으로 조직 전체의 소셜 미션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오는 구성원의 경우 경영진이 직접 사업, 기술, 미션 등에 대해 교육을 실시한다. 매주 타운홀미팅 형태의 전사 회의(Creative Meeting)를 열고 전반적인 방향성이나 가치 등에 관해 계속 논의한다. 경영진과 구성원이 조직의 미션과 가치에 대해 여러 채널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소셜 미션에 대한 몰입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현재는 경영진이 구성원들을 직접 교육하고 소통하며 노을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전달하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지금과 같은 방식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노을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이 정확히 무엇인지 구체화하고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을이 추구하는 소셜 미션을 얼마만큼 달성했고, 사회적 성과를 얼마나 창출했는지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핵심 지표를 선정하고 이를 조직 차원에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노을은 2021년 하반기부터 2022년 2월까지 지속가능성 체크리스트를 개발하고 자가 진단을 진행한 바 있다. 소셜 미션에 맞춰 핵심 지표를 더욱 정교화한다면 조직이 비대해지더라도 핵심 가치와 철학에 대한 초점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핵심 가치에 부합하는 인재 채용이다. 교육과 훈련을 통한 역량 개발은 가능하지만 태도나 가치는 잘 변하지 않기 때문에 채용 단계에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자본시장은 소셜벤처의 기업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소셜벤처가 사회적 가치에 치중한 나머지 재무적 성과를 등한시한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이에 소셜벤처 판별을 받고도 이를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는 기업도 있다. 그러나 소셜벤처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기업이다. 노을의 사례에서 보듯이 오히려 사회적 가치 추구가 재무적 성과로 연결되기도 한다. 오히려 노을은 소셜벤처여서 여러 이해관계자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모든 스타트업이 소셜벤처를 지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경제적 가치, 재무적 성과만 중시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각자의 소셜 미션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나와 이 사회를 위한 선(善)이란 점에서 노을은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강신형 충남대 경영학부 조교수 sh.kang@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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