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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X세대란 누구인가

MZ세대 가치관의 원조 서태지 세대
나답게 사는 ‘X 스피릿’을 추앙하라

김재완 | 347호 (2022년 0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베이비붐세대에겐 ‘덜 자란 어른’, MZ세대에겐 꼰대 취급을 받는 것이 오늘날 X세대의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권위에 항거하고, 집단보다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며, 진보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 MZ세대 가치관의 원조다. 결혼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회식을 싫어하며, 와인이나 위스키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의 시작점이 되는 세대다. 어느덧 한국 사회의 중년이 된 X세대이지만 나답게 살고자 하는 ‘엑스스피릿’은 이들에게 여전히 살아 있다. 점점 더 몰개성화, 획일화돼 가는 현대사회에 엑스스피릿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지금은 X세대를 소환해야 할 때다.



몸만 늙어버린 청년

2022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구매력이 가장 높은 세대는? 지난 3월 치러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소외받은 세대는? 두 질문의 대답은 동일하다. 바로 대한민국 전 인구의 20% 가까이를 차지하는 X세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중위 연령1 은 45세다. 인구분포도의 허리 부분에도 X세대가 두껍게 포진한다. 가장 많은 가계 월 지출을 하는 연령대 또한 X세대라 할 40∼49세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중심에 X세대가 두껍고 중요하게 포진해 있음에도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X세대는 철저하게 소외됐다. MZ세대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정책과 공약이 넘쳐났고, 이들 세대 인물을 선거 캠페인 리더로 발탁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심이 과열돼 젠더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 X세대는 양대 정당으로부터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며 ‘낀 세대’의 설움을 제대로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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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신인류’라 불리며 세대 구분의 첫 주인공이 된 X세대는 1970년을 전후해 태어나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이들을 가리킨다. X세대란 용어는 캐나다 작가의 소설 『제너레이션X』에서 유래했다. X세대는 40대가 된 현재에도 신체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영역을 제외한 다방면의 분야에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먼저 경제 분야를 보자. 기업 정보 분석 업체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30대 그룹 임원의 47%가 X세대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무려 90%를 넘는다고 한다. 국민 앱(애플리케이션)이 된 배달 앱 ‘배달의민족’의 최대 소비자는 MZ세대지만 이 회사의 초기 창업 멤버는 1976년생인 김봉진 대표와 동갑내기 박일한 부사장을 비롯한 X세대가 주축이다.

대중문화 쪽은 어떨까? 주류 미디어 자리에서 밀려나곤 있지만 여전히 영향력이 막강한 TV와 영화 산업은 가히 X세대 천하다. 유재석, 이정재, 이병헌을 필두로 제작자 방시혁, 유희열, 나영석, 김태호, 그리고 김은희 작가까지 1990년대 한국 문화 르네상스의 창시자이자 소비자인 이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화 산업의 최정점에서 활약하고 있다. 소위 ‘386’만큼 강한 임팩트를 남기진 못하고 있지만 정치계에서도 박주민, 박용진, 윤희숙, 김어준 등 X세대가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X세대의 현실은 서글프다. MZ세대에게는 꼰대 취급, 위의 베이비붐세대에게는 덜 자란 어른 취급을 받는다. X세대는 윗세대가 만들어놓은 수직적 조직 문화 앞에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리는 한편으로 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남몰래 검색창에 ‘꼰대’ 키워드를 가장 많이 검색한다.

카리스마가 부족한 채 몸만 늙어버린 청년.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이 누리는 여러 트렌드의 시작에는 신인류의 시조새, X세대가 있었다. 밀레니얼세대의 직장 상사이자 Z세대의 부모인 X세대 연대기를 키워드를 통해 살펴본다(이하 X세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X라고 간략하게 표현한다). 어쩌면 이는 ‘우리 팀장은 왜 저럴까’ 하며 인상 찌푸리는 M세대와 ‘우리 엄마, 아빠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나’ 고민하는 Z세대를 위한 X세대 해설이다.

① 교육_행복은 성적순이라서

X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다. 해방 후 1995년까지 유지됐던 국민학교란 명칭은 1996년에야 초등학교로 교체됐다. X의 40여 년 인생을 통틀어 자신의 부모 세대와 가장 유사한 환경에 놓였던 시기는 국민학교를 다녔던 때가 유일하다. 한 학급 학생 수는 쉰 명, 여든 명이 넘었고, 늘어난 학생 수를 감당 못한 일부 학교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학사 운영을 했다. 오전반 아이들이 하교하면 오후반 아이들이 등교하는 식이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구구단은 못 외워도 1968년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을 못 외우는 학생은 드물었다. 학교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또 외우게 했기 때문이다. X에게도 요즘 편의점 같은 해방구가 있었다. 학교 앞 문방구는 국민학생을 위한 만남의 장소, 쇼핑의 메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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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어머니는 크리스마스만큼이나 스승의 날 스트레스를 받았다. 학부모 모두가 담임교사에게 값나가는 선물하기 경쟁을 했기 때문이다. X의 아버지는 월급봉투만 내밀고 육아를 비롯한 모든 가정사에서 스스로를 열외시켰다. 학교가 휘두르는 ‘사랑의 매’ 체벌을 두고 어머니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다. 그 시절의 교권(敎權)은 공권력에 버금가는 사회적 권력을 가졌다. 학부모가 교권에 불만을 제기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군대 내 체벌, 가정 내 체벌 등 체벌이 흔했던 시절이라 아버지는 학교 체벌에 대해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겠지’ 하고 여겼다.

청소년의 창의적 사고나 자아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는 말살됐다. 교육은 개인보다는 집단, 과정보다는 결과를 우선했다. 올림픽 경기에 나가 은메달을 따면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고, 팀 스포츠에서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선수는 마녀사냥을 당했다.

1989년 이미연 주연의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개봉돼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저 한 편의 청춘 영화로만 소비됐다. 여전히 사회는 공부 외 다른 대안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손흥민이나 BTS 같은 성공 모델이 없었다. 운동선수는 공부 못하는 애가, 연예인은 되바라진 애가 새는 옆길로 치부됐다. 그래도 이따금 개천에서 용이 나는, 야만의 시대이자 낭만의 시대였다.

자녀의 진로는 대체로 자녀보다 교육 수준이 낮은 부모가 결정했다. 이는 당시로선 타당한 일이었다. 모두가 40년 후 세상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X가 마흔이 되기 전 인터넷이란 것이 생활 깊숙이 스며들고 아이폰이라는 신통방통한 물건이 출시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X 자신도 지금과 비슷한 사회에서 부모 세대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의사, 판검사, 대기업 입사를 향해 불나방처럼 나아갔다.

X는 사고(思考)의 성장 없이 육체만 성장한 채 20대를 맞이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각종 미디어가 그들을 X세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개성이 넘치고 창의적인, 톡톡 튀는 세대라고 규정했다. X는 당황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X세대와는 너무 다른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마저 느꼈다.

② 문화_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선진국이 무엇인지 그 개념이 여전히 명확하진 않지만 최근에는 경제력이나 군사력 못지않게 문화적 수준이 선진국의 중요한 잣대로 간주된다. 경제력과 군사력만으로는 선진국이라는 왕관을 쓰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한국은 경제, 군사력에 이어 문화 전반에 걸쳐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선진국 반열에 다가서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를 필두로 ‘기생충’과 ‘오징어게임’, 그리고 소설, 웹툰에 이르기까지 K컬처만 붙이면 잘 팔린다. 그야말로 K르네상스의 시대다. 한국보다 강한 중국도, 넓은 러시아도, 부유한 독일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한국 문화 르네상스의 시발점에는 1990년대 문화 크레이터이자 소비자였던 X세대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있다. 서태지의 재림이 없었다면 필자의 학력고사2 성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따금 생각할 정도다. 서태지는 1992년 데뷔 무대에서부터 기성 음악계를 찢어발기며 가요계를 평정했다. ‘이런 것도 음악이냐’는 기성세대의 몰이해를 뒤로 하고 음악을 넘어 문화제국을 건설해 나겠다. X는 서태지 음악을 들으며 경직된 사고의 알을 깨고 부화하기 시작했다.

금기를 깨뜨리고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드는 것은 젊음의 특권이다. 연예인의 머리 색깔까지 단속하던 시절에 서태지는 ‘교실 이데아’3 로 주입식 교육제도에 항거했다. 1993년 KBS가 헤어스타일과 모양과 복장이 불량하다며 출연을 정지시킴으로써 서태지와 아이들은 헤어스타일과 복장 때문에 방송국 출연을 제지당한 첫 번째 연예인이 됐다. 1995년 발매한 4집 앨범 수록곡 ‘시대유감’은 음반사전심의제 철폐의 신호탄이 됐다. 한국공연윤리위원회가 시대유감의 사회비판적 가사를 문제 삼자 서태지는 가사를 삭제한 연주곡으로 대체했고, 이에 팬들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반대 여론이 형성돼 이듬해 음반사전심의제가 폐지됐다.

서태지는 음악을 넘어 X의 패션까지 바꿔놨다. X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힙합 스타일에 열광했다.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X는 십수만 원을 호가하는 청바지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중년이 돼서도 청바지를 즐겨 입는 대한민국의 첫 세대가 됐다.4 X가 사랑하는 청바지는 의류로서의 실용성만으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그에게 청바지는 자신을 증명하는 증표와 같은 것이다. 또한 ‘마이클 조던’ 신드롬과 함께 농구화도 기능성 신발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지금까지 없던 ‘꽃을 든 남자’가 등장했다. 이상민, 우지원을 필두로 한 연세대학교 농구부와 류지현, 김재현, 서용빈의 LG트윈스는 스포츠 스타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땀에 절어 있는 투박한 외모의 운동선수가 아니었다. 배우 못지않은 잘생김으로 오빠부대를 탄생시켰다. 또한 뛰어난 경기력으로 오빠부대나 또래 세대를 넘어 전 세대를 사로잡았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부모가 된 X는 자녀를 운동선수나 연예인으로 데뷔시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적다.

이처럼 X가 1990년대 대중문화 르네상스의 최대 소비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유년 시절의 자양분 덕분이다. X는 컬러TV로 애니메이션을 즐긴 첫 세대다. 부모 세대와 달리 다양한 장르의 책과 카세트테이프, LP, CD 등 다양한 ‘문화’를 한껏 소비하며 성장했다.

③ 정치_최루탄은 모른다, 촛불을 들자

진보는 젊음의 특권이다. 그런데 요즘 중년에 접어든 X가 MZ세대보다 더 진보적인 것 같다. 이는 통계청 자료에서도 나타난다. X세대 보수화율이 MZ세대보다 10% 이상 낮다. 한 연구에 따르면 ‘공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존중돼야 한다’는 문항에 X세대는 5점 만점 중 2.51점을 매겨 모든 세대 중 가장 낮은 점수를 줬다.5

역사에는 탄성이 있다. 독재가 이어지면 진보 세력이 등장한다. 그런데 X가 성인이 된 1990년대 대학가에는 최루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대신 캠퍼스 잔디에서 막걸리 냄새가 진동했다. X는 군사독재에 맞선 386 선배들이 일궈낸 민주화라는 과실을 따 먹으면서 청춘의 낭만을 누렸다. 그런데 X는 어떻게 해서 최루탄 냄새 한 번 맡지 않고도 가장 진보적인 세대가 됐을까?

1972년부터 1987년까지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없었다. 8대 박정희 대통령부터 11대 전두환 대통령까지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선별된 소수의 투표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10대 최규하 대통령(96.7%)을 제외하고 모두가 득표율 100%를 기록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X의 이전 세대는 ‘대통령은 나라가 알아서 뽑는 것’이라고 여겼다. 현실 생활에서 정치를 밀어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정치사회적 상황이 급변했다. 1987년 6월 항쟁6 의 결과로 그해 12월에 16년 만에 전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됐다. 5년 후 1992년에는 김영삼 대통령 당선으로 문민정부가 수립됐다. 그러던 중 1994년 성수대교가,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기존 체제의 몰락, 기존 체제에 대한 불신과 저항감은 X세대의 성장 과정 내내 온 사회에 물들어 있었다.

세계 정치사도 급변했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졌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됐다. 냉전 시대가 종식됐다. 이러한 소식은 종이신문과 컬러TV를 통해 매일 X에게 전달됐다. 국내에선 1995년 군사정권을 이끈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나라 안팎에서 국민의 손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X는 정치를 두려워하고 기피하기보다는 생활의 일부로 여겼다. 이들이 정치 이슈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X세대 중에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뜻을 달리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X세대는 몇몇 굵직한 사건에서 ‘촛불’로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후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 2016년 국정농단 촛불 시위 등을 통해 X세대는 촛불로 의사를 밝히는 시위 문화를 정착시켰다.

④ 정보통신(IT)_전화선을 타고 인터넷 바다로

국가가 국민의 해외여행을 금지하는 것을 MZ세대는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데 40년 전까지 이는 현실이었다. 1982년까지 대한민국 국민은 여행을 목적으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었다. 1983년 1월1일에야 ‘해외여행 자유화’가 발표됐다. 단, 몇 가지 조건이 따라붙었다. 만 50세 이상이어야 하고, 200만 원을 정부 계좌에 예치해야 연 1회에 한해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다. 출국 전에는 반공 교육을 받아야 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됐다고 해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국민은 극소수였다.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자유화된 것은 1988 서울올림픽 이듬해부터다. 1989년 1월1일부터 여권 발급 연령 제한과 반공교육 의무화가 폐지됐다. 곧 효도관광, 신혼여행, 친목여행 등 해외여행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X에 의해 해외여행의 특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X가 대학생이 되면서 배낭여행과 어학연수가 봇물 터지듯 터진 것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1990년대 들어 20대의 해외여행 증가율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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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해외여행은 여행 산업의 성장만 가져온 게 아니다. 기성세대가 외화 낭비와 과소비를 염려할 때 X는 배낭에 종이 지도와 카메라를 넣고 전 세계를 누비며 호연지기를 길렀다. 당시 기성세대는 서구 문화에 대해 사대주의적 태도를 가졌고, 이는 자기 비하로 이어지곤 했다.

X는 달랐다. 해외여행을 통해 우물 밖이 넓은 것은 사실이나 우리의 경쟁력이 결코 떨어지지 않음을 확인했다. X는 사대주의나 패배주의를 버리고 우리의 성장을 체감하며 자기 객관화로 나아갔다.

X를 깨운 또 하나는 ‘PC통신’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 인터넷 문화다. 1994년 발표돼 큰 인기를 끈 그룹 015B의 노래 ‘NETIZEN’은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컴퓨터 안에 모든 게 있다. 세기말의 꽃, 얼마나 좋은가? 24시간 통신망은 열려 있다. 모뎀만 있으면. 단말기만이 나의 영원한 친구다.’

세계적 IT 강국의 첫 장에는 전화선으로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던 X가 있다. X는 대한민국 최초로 인터넷으로 생면부지의 타인과 생각을 나누고 만남을 시도한 세대다. TV드라마 ‘스물하나 스물다섯’의 나희도(아이디 ‘라이더37’)와 고유림(아이디 ‘인절미’)처럼. 또 오프라인 세계만 존재하는 유년기를 보낸 까닭에 X는 온• 오프라인 양쪽이 모두 익숙하다. X세대는 유년 시절엔 늘 손글씨를 썼고 서예 학원에 다녔다. 그리고 286 컴퓨터를 거쳐 지금은 매 순간 스마트폰을 몸에 부착하며 사는 흔치 않은 세대다.

⑤ 취업_IMF 체제에 순종한 ‘막내’

X는 꿈과 희망에 부푼 채 사회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는 국가부도 사태와 함께 거품처럼 꺼지고 말았다.

1997년 11월21일 경제부총리의 충격적 특별 기자회견이 열렸다. 국민 대부분은 경제부총리가 하는 말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했다. 국가가 보유한 달러가 부족해 국제금융기구(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다는 것이 일상에 어떠한 변화를 몰고 올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대기업과 은행이 줄줄이 파산했다. 이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7%로 고꾸라졌다. 줄줄이 실직한 직장인들은 양복을 입은 채 등산로를 찾았다. 소위 ‘IMF 사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여러모로 닮은 모습이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공포를 몰고 와 소시민의 일상을 깨뜨렸다. 빈부의 격차를 가중시켜 사회 체제 전반을 흔들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앞둔 X에게 IMF 사태는 경제적 인식뿐만 아니라 가치관의 붕괴까지 가져왔다. X는 직장의 안정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마지막 세대다. IMF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일하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만 있다면 쉽게 취업할 수 있었다. 공무원이나 사학재단 교직원은 야망이 부족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직장으로 치부됐다. 굵직한 기업들은 졸업 시즌에 신입사원을 유치하기 위해 대학 캠퍼스로 영업을 다녔다. ‘계약직’이란 용어는 상대성 이론만큼이나 멀게 느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회사는 직원을 버리지 않는다는 신화를 모두가 믿었다.

그러나 모든 게 달라졌다. 신입사원이 된 X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당위로 똘똘 뭉쳐 경직된 사내 분위기에 억눌리고 숨을 죽여야 했다. 욕망을 누르고 희망을 미뤄야 했다. ‘위기 타파’라는 시대적 명제를 위해 경험과 연륜에 의지하다 보니 기성세대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장유유서(長幼有序)의 깃발 아래 비정상적인 것이 묵인되고 비상식적인 것이 상식으로 간주됐다. 국가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이 됐다. 옷으로 개성을 드러내고 좋아하는 것에 돈 쓰기를 마다하지 않던 X는 이러한 IMF 체제의 ‘막내 역할’에 충실했다.

모두가 힘든 터널을 지나고 있었지만 여성이 받는 차별은 오늘날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유리 천창은 지금보다 더 높고 두꺼웠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도 유의미한 진전은 있었다. 2020년 개봉해 코로나 팬데믹에도 1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90년대 직장 여성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무 능력과 관계없이 커피 타기와 복사는 여성의 몫이었고 육아휴직이나 복지를 논하기 전에 만연한 성추행과 싸워야 했다. X세대 워킹걸들은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의 초석을 마련한 잔 다르크 같은 존재라 할 만하다.

2001년 8월23일 IMF 차관을 모두 상환하며 IMF 시대가 종식됐다. 그리고 이듬해 열린 2002 한일월드컵은 X가 그간 억눌렀던 감정을 분출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해외여행과 온•오프라인 경험으로 스포츠와 축제를 즐기는 서구인의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X는 거리 응원이라는, 한국인만의 페스티벌을 주도했다. 언론에서도 국가대표팀의 놀라운 월드컵 성적만큼이나 거리 응원 현상을 큰 비중으로 다뤘다. 하지만 흥은 한민족 고유의 DNA다. 우리는 축제의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요는 삶의 배경음악(BGM)이었고 와인을 능가하는 전통주와 춤을 곁들여 제대로 놀 줄 아는 민족이었다. 제사와 명절은 죽은 자를 핑계로 즐기는 축제였지, 오늘날처럼 산 자가 고통받는 행사가 아니었다.

2002년 대한민국 거리에 대대손손 내려오던 축제 DNA와 X의 젊음이 융합해 해외 언론도 주목하는 한바탕 놀이마당이 제대로 펼쳐졌다. X는 살풀이 같은 한바탕 축제를 마치고 끼와 열정을 관습이라는 압박붕대로 다시 동여맨 채 부모가 되고, 팀장이 됐다.

⑥ 현재_중년이지만 청바지는 입고 싶어

백세 시대다. 그러나 프랑스의 대문호이자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수명이 늘어난 게 아니라 노년이 늘어난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년이 된 X는 길고 긴 노년을 견뎌야 하는 첫 세대가 되는 걸까?

X는 중년이지만 중년 마케팅을 거부한다. 20대 때 입던 청바지를 40대에도 입는다. 이전 세대에서는 ‘나이에 맞는 옷차림’이라는 불문율이 있었다. X는 이를 따르지 않는다. 육체적 청춘의 연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면 정신적 청춘을 연장하면 될 일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1년 인터넷 이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온라인 경제 활동을 가장 많이 한 연령층은 4050이라고 한다. 또한 X세대의 D2C(Direct to Consumer, 소비자직접판매) 소비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X가 중년임에도 디지털에 능숙한 세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X의 구매력이 높은 또 하나 이유는 자녀를 위한 쇼핑을 하기 때문이다. 2021년 쿠팡의 도서 매출액은 교보문고, YES24, 알라딘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쿠팡 도서 매출의 60%는 동화책, 참고서, 수험서다. X세대가 쿠팡에서 자기 책을 주문하면서 자녀를 위한 도서를 대거 구입했기에 쿠팡이 4위 서점에 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매해 집계되는 연령대별 도서 매출 순위에서 40대 여성이 항상 1위를 차지하고도 있다.

X세대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소비 집단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월 가계 지출에서 40∼49세 가구만 유일하게 300만 원을 넘겼다. X는 가계 소비에서 자신을 위한 소비를 빼놓지 않는다. 과거의 중년과 달리 문화생활에도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물질적 보상이 아닌 정신적 해방감을 얻기 위한 투자다. 여자 아이돌에게 열광하는 삼촌 팬도 흔하다. MZ세대가 코인에 몰두하는 사이 X는 자신의 취향을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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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맏형이자 MC 전현무는 혼자 사는 X세대의 전형이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자신을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는다. X는 IMF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타의에 의해 결혼 시기가 늦춰졌다. 급작스럽고 난도 높은 사회 변화로 자의로 나홀로족을 선택하는 비율도 크게 늘었다.

젊은 시절 해외 배낭여행과 국내 (무전)여행으로 스스로의 여행 문턱을 낮춘 X는 중년이 돼서도 여행에 진심이다. 이들의 욕구에 때맞춰 저가 항공사가 출현하고 여행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이 일상화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X는 등산복 패키지여행 대신 청바지를 입고 자유여행을 떠나 여행지에서 현지인처럼 지낸다.

한국 현대사에서 X의 부모 세대는 끼니를 걱정하던 마지막 세대이고 X는 끼니 걱정을 하지 않은 첫 번째 세대다. 중년이 된 X는 즐거움을 위해 미식을 즐긴다. 소주로 폭음하기보다는 와인과 위스키를 선호한다. 회식을 싫어하는 건 MZ세대와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매우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조만간 X세대가 고령화 현상의 중심을 차지할 것이다. X는 유년 시절의 성장 과정으로 인해 부모 세대에게 부채 의식을 갖고 부양 의무를 느끼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동시에 자신의 자녀에게 부양의 책임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도 있다.

⑦ 끝_엑스스피릿

필자는 국내 기업에서 중간 간부로 근무하고 있다. IMF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이 자리까지 왔다. 그러한 X세대 팀장으로서 MZ세대에게 들려주는 자기 고백을 마무리하면서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융합, 그리고 ‘엑스스피릿(X Spirit)’의 발현에 대해서다.

문명의 발달과 인간성의 성숙은 무관한 것 같다. 인공지능과 우주여행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이전 세기보다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더 높아진 것 같진 않다. 국가와 인종 간 갈등을 넘어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등 갈등의 대상이 세분화되고도 있다. X세대와 부모 세대의 간극보다 X세대와 MZ세대 사이의 다름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X세대가 열광했던 야구에 대한 MZ세대의 관심도가 20%를 밑돈다고 한다. 같은 스포츠를 즐기지도 않는데 켜켜이 쌓인 세대 간 갈등을 과연 해소할 수 있을까?

미국 NBA(농구)와 MLB(야구)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각각 1840만 명, 359만 명이다. 농구 구독자 수가 야구의 5배가 넘는다.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날까? 최전성기 때는 삼대가 함께 즐겼다는 MLB의 평균 경기 시간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 2019년에 이르러 3시간이 넘었다고 한다. ‘틱톡’을 하는 MZ세대가 즐기기에 경기 시간 자체가 너무 길다. MZ세대와 함께하기 위한 MLB의 노력도 부족했다. 반면 NBA는 짧은 분량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젊은 세대를 끌어안았다. 해결책은 언제나 내부에 있다. 세대 간의 다른 취향을 인정하고 수용한 결과다.

아이폰의 위대함은 기술의 통합이 아닌 융합에 있다. 전화기라는 틀 안에 디자인, 음악, 지도, 메시지, 게임 등 세상의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세대 간에도 수직적 통합이 아닌 수평적 융합이 이뤄져야 한다.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부터 따뜻한 샤워가 일상이 되게 해준 베이비붐세대까지 각 세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장점을 잘 녹여 융합해야 한다.

X세대 담론이 처음 형성됐을 때 X세대의 특징은 “나는 남들과 달라”라는 문장으로 설명되곤 했다. 필자는 이것이 X세대뿐만 아니라 그 뒤를 잇는 모든 세대에게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점점 더 몰개성화, 획일화돼가는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무채색의 유니폼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밥을 먹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SF 영화 ‘아일랜드(2005)’를 보면 기괴함 대신 기시감이 느껴진다. 우리는 남들도 하는 똑같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우리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타인과의 경쟁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온 이들이다. 나답게 살아가려는 엑스스피릿이 모든 세대에게 필요하다. X세대가 소환돼야 할 시점이다.

X세대 팀장으로서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추억 팔이는 부서원들이 아닌 친구들과 공유해야겠다. MZ세대 후배들에게 할 말이 있을 때는 반드시 해야 할 말인지 한 번 더 생각하고 정제한 말들의 절반만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닫아둔 한 쪽 귀는 물론 오감을 동원해 후배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겠다. 그러니 MZ세대 후배들에게도 X세대를 무조건 꼰대 취급하지 말고 또 대화 자체를 원천 봉쇄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우리는 의외로 닮은 구석이 많다.


김재완 X세대 팀장•『나 아직 안 죽었다: 낀낀세대 헌정 에세이』 저자 jy3180@hanmail.net
청춘은 회사에, 집은 은행에 저당 잡힌 채 주말만 기다리던 필자는 제주도 자전거 종주 이후 불현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시작한 글쓰기에서 마침내 자신의 취향을 확인하고, X세대 연대기를 담은 에세이 『나 아직 안 죽었다』와 역사 서적 『찌라시 한국사』 『찌라시 세계사』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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