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역사
멸종과 창조의 공간, 그 섬에 가고 싶다
Article at a Glance
평화로워 보이는 섬은 외부 영향이 작다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동물의 멸종과 번성에 영향을 준다. 몸집이 큰 동물은 먹이를 구할 수 없어 작아지고, 작은 동물들은 포식자가 사라져 거대해진다. 섬에 사는 생명체들은 분리된 공간에서 다채롭게 진화하기도 하지만 작은 위협이나 경쟁이 발생하면 곧장 취약한 상태가 된다. 이 같은 지리적 격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준비하는 기업과 개인에게도 필요하다. 오랜 시간 안주하지만 않는다면 따로 떨어진 나만의 섬에서 창조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푸른 바다 위의 작은 섬’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체로 멋진 휴양지를 떠올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완전히 다른 낙원 같은 곳이라 머리 아픈 일상을 오롯이 잊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생명의 역사에서도 섬은 천국 같은 곳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천국은 아니었다. 시작은 좋았으나 끝이 좋지 않았다. 생명체들이 그토록 원하는 번성을 쉽게 일굴 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번성이 엉뚱한 곳으로 향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생명이 가장 두려워하는 멸종으로 말이다. 왜 ‘번성과 멸종’이라는 극단적인 변화가 섬에서 일어날까? 푸른 바다 위 그림처럼 떠 있는 섬에는 보이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이 아시아로 가는 길을 백방으로 찾아 나서던 1507년,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던 포르투갈 배가 망망대해 위 떠 있는 작은 섬을 발견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마다가스카르섬에서 900㎞나 떨어진 모리셔스섬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상륙해 보니 제주도만 한 크기의 이 섬에 사람은 살지 않고 이상하게 생긴 커다란 새들과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엄청나게 큰 거북이 살고 있었다. 저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장거리 항해 때마다 식량 부족으로 고생하던 선원들에게 이 섬은 축복과도 같은 곳이었다. 더구나 커다란 머리통 뒤에 볼록 솟아 있는 후드 같은 걸 달고 있는 이 큰 새들은 도망가기는커녕 ‘너희들은 누구냐’고 하는 듯 선원들을 구경했다. 가까이 가도 멀뚱멀뚱 쳐다볼 뿐 분명 새처럼 생겼는데 날지 않고 걷거나 달렸다. 작은 날개는 몸통 위에 그냥 얹혀 있었다.
선원들은 누워서 떡 먹는 것처럼 이들을 사로잡았다. 큰 새는 무게가 14㎏이나 돼 서너 마리를 요리하면 모든 선원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200∼400㎏이나 되는 거북은 나중을 대비해 싣고 갈 수 있었다. 둘 다 고기가 질기긴 했지만 굶는 것보다는 나았다.
소문이 나면서 이후 부근을 지나는 배들은 마치 자동차가 주유소를 들르듯 이곳을 거쳐 갔고 그때마다 ‘축복’을 챙겨갔다. 선원들은 이 ‘축복’들 중 크기가 큰 새를 ‘도도(dodo)’라고 불렀다. 식민지인 인도네시아로 가기 위해 이곳에 자주 들렀던 네덜란드 선원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이름은 축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둥글고 무거운 혹, 또는 느리고 게으른 새, 멍청함 같은 뜻이었으니 말이다. 1 잡으려고 하는데도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엄청나게 큰 거북에게는 코끼리거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요즘은 황소거북이라고 한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1662년, 근처를 지나다 조난을 당해 이 섬에 상륙한 네덜란드인이 이 새와 거북을 찾아 온 섬을 샅샅이 뒤졌다. 맛은 없어도 먹을 만한 새와 거북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더이상 ‘멍청한 축복’이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작은 섬 몇 곳까지 뒤져서야 간신히 몇 마리를 잡을 수 있었을 뿐이다. 기록으로 남은 이 새의 자취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코끼리거북은 좀 떨어진 다른 섬에서 겨우 생존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도도는 이후 다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멸종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멸종의 상징인 도도는 이렇게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사라져서 유명해진 이상한 인기 덕분에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아는 도도는 도도가 아니다. 유명한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박제된 도도나 그림은 진짜가 아니다. 멸종한 이후 전해오는 여러 이야기와 다른 새들의 신체 부위를 모아 모자이크처럼 덧붙이고 추정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모습은 누구도 모른다. 유명세에 비해 너무나 조용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도도는 왜 멸종했을까? 녀석들처럼 수난을 당해도 멀쩡하게 잘 살아 있는 새들이 많은데 말이다.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잡은 게 일차적인 원인이었지만 이것 못지않은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첫째는 사람들과 함께 섬에 들어온 쥐와 고양이, 돼지들이 도도의 알을 남김없이 해치웠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한 네덜란드가 이곳을 중간 기항지로 사용하면서 정착촌을 세웠을 때 들어왔다.
하지만 도도에게도 멸종에 대한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도도는 원래 대양을 가로지르며 장거리 이동을 하던 철새 비둘기였다. 비둘기는 장거리 비행 능력이 좋아 지금도 대양을 횡단하는 철새들이 많은데 아마 그렇게 이동을 하다 우연히 이 섬을 발견하고 눌러앉았던 것 같다. 고된 비행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부한 먹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포식자도 없는 천국 같은 곳이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살았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날개는 작아졌고 덩치는 커졌다. 포식자가 없어 날아야 할 일이 없으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더구나 이들은 포식자(위기)라는 존재를 아예 잊어버려 그런 존재들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경계심은 남겨놓았어야 했는데 오랜 시간 그럴 필요가 없다 보니 경계심 자체를 잊어버렸던 것이다. 뒤늦게 알았다 해도 이미 때는 늦었을 것이다. 거북은 바다로 들어가면 되지만 도도는 도망칠 수단이나 공간이 없었다. 하늘을 날기에는 날개가 이미 너무 작아져 버렸고 몸집은 거대했다. 섬이라 멀리 갈 수도 없었다. 위기가 닥쳤지만 아무리 달려도 작은 섬을 벗어날 수 없었다. 멸종을 피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1964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생물학자 브리스톨 포스터(J. Bristol Foster)가 ‘섬에 사는 포유류의 진화(The evolution of mammals on islands)’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을 네이처 학술지에 발표했다. 북아메리카와 유럽 연안에 있는 116개 섬에 사는 생명체들이 본토 조상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분석한 논문이었는데 그는 여기서 몸집이 큰 포유류는 작아지고 작은 몸집의 설치류나 포유류는 반대로 몸집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런 변화가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해석했다. 몸집이 큰 포유류는 섬에서 그만 한 먹이를 확보할 수 없기에 작아질 수밖에 없고(섬 왜소화), 작은 포유류나 설치류는 포식 압력이 적어지거나 경쟁이 줄어 몸집이 커진다(섬 거대화)는 것이다. 이른바 ‘섬의 법칙’이다.2
섬의 법칙은 특히 대륙과 멀리 떨어진 대양에 있는 섬에서 뚜렷하다. 외부의 영향이 거의 없는, 자체의 독특한 생태 환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동물 중 가장 작은 종이 많이 발견되는 곳도 이런 곳이다. 예를 들어 스리랑카에 사는 살쾡이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고양잇과 동물인데 고양이 새끼 크기만 하다. 보통의 살쾡이는 큰 고양이만 한데 이 살쾡이는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다. 같은 조상을 가진 고양잇과 중 가장 큰 시베리아호랑이와 비교하면 무려 200배나 작다.
영국의 섬들 중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셰틀랜드제도에 사는 셰틀랜드포니 역시 이 세상의 말 중에서 가장 작다. 보통 말은 말 등의 높이가 어른 키만 하지만 이들은 평균 107㎝에 불과해 망아지만 하다. 과거 해수면이 낮아졌을 때 그곳으로 갔다가 해수면이 상승하자 고립된 것이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노루 역시 본토의 노루보다 작다.
반대로 섬으로 가서 커지는 동물들도 있다.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코모도왕도마뱀이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와 뉴기니 사이의 몇몇 섬에 사는 이들의 덩치는 대륙에 사는 옛 친척 도마뱀들과는 체급 자체가 다르다. 몸무게가 100㎏을 넘나든다. 섬에 정착한 새들도 커진다. 대체로 도도처럼 날개는 작아지고 덩치는 커진다. 뉴질랜드에서 한참 떨어진 섬에 사는 카카포는 대양을 건너다니던 앵무새였는데 낙원에 정착한 후 앵무새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사실 생명체들에게 이런 변화는 반가운 것이다. 섬 환경에 제대로 적응했다는 징표인 까닭이다. 하지만 이런 적응이 지속되면 문제가 생긴다. 섬 환경에 완전히 적응한 까닭에 다른 환경에 아무런 대비가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변화에 약한 정도가 아니라 속수무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섬에 적응한 뒤 어느 순간 이전과 다른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면 맥없이 무너진다. 1, 2년도 아니고 수천, 수만 년간 좋은 환경에서 살다 보니 여유가 넘치다 못해 행동 또한 느려진다. 그렇게 살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70만∼300만 년 전 지금의 북미와 남미 대륙이 연결돼 있었을 때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양쪽 대륙으로 건너갔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신천지를 탐사하고 개척했다. 당연히 기존의 생태계는 흔들리게 됐고 새로운 질서를 위한 격렬한 혼돈이 생겼다. 먹이나 영역이 겹치면 강자만 살아남는 게 자연의 순리다. 어느 쪽 출신들이 더 많이 살아남았을까?
결과는 남미 출신의 완패였다. 요즘 말로 하면 남미 생태계는 북미 출신들에게 정복당하다시피 했다. 경쟁력에서 북미 출신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북미는 빙하기 때마다 알래스카와 유라시아 대륙의 시베리아가 연결돼 섬 환경을 벗어나곤 했지만 남미는 1억2000만여 년 전 아프리카 대륙과 분리된 후 섬처럼 남아 있어 경쟁력을 키울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섬에서의 번성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한 번성이다. 기원후 1000년쯤에서야 사람이 상륙했던 뉴질랜드에는 날지 못하는 커다란 새들이 13종이나 있었는데 이후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멸종했거나 멸종 위기 상태로 말이다. 오로지 좋은 조건에만 적응한 대가를 혹독하게 받는 것이다. 숲의 제왕 호랑이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작아진 자바호랑이, 발리호랑이는 멸종했고, 수마트라호랑이는 인간의 보호 정책 덕분에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최근 멸종이 일어나고 있는 곳의 80% 이상이 섬이다. 유명한 조류학자에서 생태학자로, 이제는 문화인류학자로 변신한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에 따르면 1600년 이후 세계적으로 멸종한 새들은 171개 종인데 이 중 155종이 섬에서 멸종했다. 90% 이상이 섬에서 최후를 마친 것이다. 섬에 사는 새들이 전 세계 새의 20%라는 걸 감안하면 대륙보다 50배나 높은 멸종률이다. 특히 작은 섬이 취약해서 이 중 4분의 3이 작은 섬에서 멸종했다.
이 수치에는 하늘을 날다 땅에 정착한 덩치 큰 새들(주금류3 )이 거의 대부분 포함돼 있다. 원래 덩치도 컸지만 하늘을 포기하는 바람에 더 커진 오스트레일리아의 에뮤, 마다가스카르의 코끼리새들이 그들이다. 살아 있는 뉴질랜드의 키위 같은 녀석들은 보호를 받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멸종할 상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주금류 중 지금도 멀쩡하게 살아 있는 녀석이 있다. 이 비극적인 운명에서 비켜나 있는 주인공이 있다. 누굴까? 지금도 아프리카 대륙을 성큼성큼 뛰어다니고 있는 타조다.
같은 전략을 취했던 커다란 새들이 다들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데 타조는 어떻게 비극적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정답은 바로 섬이 아니라 대륙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타조가 살고 있는 곳은 만족과 안온한 생활에 젖게 되는 섬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오늘도 언제, 어디서,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사바나와 반(半)사막인 곳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 살면서 이에 맞는 적응력을 꾸준히 만들어 낸 덕분에 지금도 살아 있다. 천국이나 낙원 같은 곳에 살던 생명체들은 사라진 반면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은 불안한 세상에 사는 타조는 살아남은 것이다. 묘한 생존의 역설이다.
그래서 섬에서의 번성은 한계가 명확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한 번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네들끼리만 통하는 경쟁력 위에 세워진 질서라 좀 더 경쟁력 있는 외래종이 들어오는 순간 쉽게 무너진다. 그림같이 멋진 공간에 만족하는 순간 갇힌 삶이 되고 멸종으로 가는 막다른 골목으로 스스로 들어서게 된다. 도도의 삶을 추적해 『도도의 노래』를 쓴 미국의 생태 저술가 데이비드 쾀멘은 이렇게 말할 정도다. “섬에서의 진화는 멸종으로 가는 진화이고 그래서 비극은 섬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동물들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사람에게도 똑같이 일어난다. 또 섬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섬 같은 곳’에서도 일어난다. 2004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에서 발견된, 우리와 다른 인류인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다 큰 어른이 돼서도 키가 1m 남짓에 불과했다. 6만여 년 전 아프리카 동부에 살던 호모사피엔스가 홍해를 건너 동쪽으로 이동할 때 남쪽으로 내려간 이들의 후손도 마찬가지다. 현재 부시먼으로 불리는 이들은 사막에서 섬처럼 살아왔는데, 그래서인지 체구가 상당히 작다. 예전 우리가 ‘왜(倭)’라고 부르던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왜는 키가 작다는 뜻의 왜(矮)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작아지는 건 몸집만이 아니다. 생명력 또한 감소한다. 앞에서 남미와 북미 대륙이 연결됐을 때 동물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했는데 비슷한 일이 16세기 인간에게도 일어났다. 섬처럼 살던 남북 아메리카가 서양의 ‘총, 균, 쇠’에 무참히 무너진 것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같은 이름의 책 『총, 균, 쇠』에서 이 때문에 당시 이곳의 원주민 95%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멸종 수준이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오로지 중국만을 바라보며 섬처럼 살다가 식민지가 된 조선이라는 나라가 바로 이 땅에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에서나 ‘섬’이 된 곳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인 물이 썩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섬은 결국 불행으로 끝나고 마는 공간일까? 무엇이건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섬은 번성이 비극으로 향하는 일방통행로 같은 곳이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다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다채로운 진화가 이뤄지는 곳이다. 다윈이 진화의 법칙을 발견한 갈라파고스처럼 말이다. 섬을 진화의 표본실이라고 하는 이유가, 그리고 지금도 기기묘묘한 생명체들이 섬에 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평양의 뉴기니섬에 사는 극락조가 대표적이다. 서양인들은 태평양을 최초로 횡단한 마젤란함대가 가져온 이 새의 박제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봐왔던 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도 ‘birds-of-paradise’, 천국의 새라고 했다. 이 새는 어떻게 이런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이 새가 사는 뉴기니는 포유류 포식자들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세가 험난하고 밀림이 우거져 사람들의 접근 자체가 힘든 곳이 많다. 먹이 또한 풍부해 암컷들은 수컷 없이도 새끼를 키울 수 있다. 그 덕분에 수컷들은 모든 에너지를 최고의 멋 부리기에 투자한다. 뉴기니라는 공간적 환경이 이 아름다움을 만든 셈인데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다른 곳과 멀리 떨어진 지리적 격리 덕분이다. 모리츠 바그너라는 독일 박물학자가 일찌감치 이런 말을 했다.4
“진정한 변종의 생성이 성공을 거두려면 일부 개체가 반드시 자신이 살던 영역을 제한하는 경계를 벗어나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로부터 상당 기간 공간적으로 분리돼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지리적 격리라는 말이다. 다윈도 같은 말을 했다.
“새로운 형태가 최초로 만들어지거나 탄생하는 데는 격리가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 같다.”
지리적 격리. 사실 기업에도 이 지리적 격리가 필요하다. 왜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이 신사업 프로젝트팀을 본사에 두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 둘까? 본사와 가까워서는 절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이래야 한다, 저건 저래야 한다’는 본사의 숨결이 미치는 곳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숨 막혀 죽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래서 먼 곳에 ‘섬’을 만들어준다.
기업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할리우드는 미국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동부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인데 왜 이곳이 영화 산업의 본거지가 됐을까?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자유로운 상상력이 생겨나는 까닭이다. 홍콩이 아시아의 영화 중심이었다가 몰락한 것도 같은 이유다. 중국이 홍콩을 접수한 이후 영화다운 영화가 나오지 않고 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상상력의 본산인 실리콘밸리가 할리우드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고, 중국의 1호 경제특구인 선전이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원한다면 ‘섬’이 필요하다. 섬이라는 창조적인 공간과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개인에게도 그렇다. 다른 삶을 원한다면 그런 삶을 잉태할 수 있는 ‘나만의 섬’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나를 어제처럼 살아가게 하는 세상에서 나 자신을 시공간적으로 떼어놓아야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다. 물론 그런 다음엔 섬으로 남아 있지 않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araseo11@naver.com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섬은 외부 영향이 작다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동물의 멸종과 번성에 영향을 준다. 몸집이 큰 동물은 먹이를 구할 수 없어 작아지고, 작은 동물들은 포식자가 사라져 거대해진다. 섬에 사는 생명체들은 분리된 공간에서 다채롭게 진화하기도 하지만 작은 위협이나 경쟁이 발생하면 곧장 취약한 상태가 된다. 이 같은 지리적 격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준비하는 기업과 개인에게도 필요하다. 오랜 시간 안주하지만 않는다면 따로 떨어진 나만의 섬에서 창조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푸른 바다 위의 작은 섬’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체로 멋진 휴양지를 떠올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완전히 다른 낙원 같은 곳이라 머리 아픈 일상을 오롯이 잊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생명의 역사에서도 섬은 천국 같은 곳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천국은 아니었다. 시작은 좋았으나 끝이 좋지 않았다. 생명체들이 그토록 원하는 번성을 쉽게 일굴 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번성이 엉뚱한 곳으로 향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생명이 가장 두려워하는 멸종으로 말이다. 왜 ‘번성과 멸종’이라는 극단적인 변화가 섬에서 일어날까? 푸른 바다 위 그림처럼 떠 있는 섬에는 보이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이 아시아로 가는 길을 백방으로 찾아 나서던 1507년,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던 포르투갈 배가 망망대해 위 떠 있는 작은 섬을 발견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마다가스카르섬에서 900㎞나 떨어진 모리셔스섬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상륙해 보니 제주도만 한 크기의 이 섬에 사람은 살지 않고 이상하게 생긴 커다란 새들과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엄청나게 큰 거북이 살고 있었다. 저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장거리 항해 때마다 식량 부족으로 고생하던 선원들에게 이 섬은 축복과도 같은 곳이었다. 더구나 커다란 머리통 뒤에 볼록 솟아 있는 후드 같은 걸 달고 있는 이 큰 새들은 도망가기는커녕 ‘너희들은 누구냐’고 하는 듯 선원들을 구경했다. 가까이 가도 멀뚱멀뚱 쳐다볼 뿐 분명 새처럼 생겼는데 날지 않고 걷거나 달렸다. 작은 날개는 몸통 위에 그냥 얹혀 있었다.
선원들은 누워서 떡 먹는 것처럼 이들을 사로잡았다. 큰 새는 무게가 14㎏이나 돼 서너 마리를 요리하면 모든 선원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200∼400㎏이나 되는 거북은 나중을 대비해 싣고 갈 수 있었다. 둘 다 고기가 질기긴 했지만 굶는 것보다는 나았다.
소문이 나면서 이후 부근을 지나는 배들은 마치 자동차가 주유소를 들르듯 이곳을 거쳐 갔고 그때마다 ‘축복’을 챙겨갔다. 선원들은 이 ‘축복’들 중 크기가 큰 새를 ‘도도(dodo)’라고 불렀다. 식민지인 인도네시아로 가기 위해 이곳에 자주 들렀던 네덜란드 선원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이름은 축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둥글고 무거운 혹, 또는 느리고 게으른 새, 멍청함 같은 뜻이었으니 말이다. 1 잡으려고 하는데도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엄청나게 큰 거북에게는 코끼리거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요즘은 황소거북이라고 한다).
닫기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1662년, 근처를 지나다 조난을 당해 이 섬에 상륙한 네덜란드인이 이 새와 거북을 찾아 온 섬을 샅샅이 뒤졌다. 맛은 없어도 먹을 만한 새와 거북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더이상 ‘멍청한 축복’이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작은 섬 몇 곳까지 뒤져서야 간신히 몇 마리를 잡을 수 있었을 뿐이다. 기록으로 남은 이 새의 자취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코끼리거북은 좀 떨어진 다른 섬에서 겨우 생존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도도는 이후 다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멸종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멸종의 상징인 도도는 이렇게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사라져서 유명해진 이상한 인기 덕분에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아는 도도는 도도가 아니다. 유명한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박제된 도도나 그림은 진짜가 아니다. 멸종한 이후 전해오는 여러 이야기와 다른 새들의 신체 부위를 모아 모자이크처럼 덧붙이고 추정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모습은 누구도 모른다. 유명세에 비해 너무나 조용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도도는 왜 멸종했을까? 녀석들처럼 수난을 당해도 멀쩡하게 잘 살아 있는 새들이 많은데 말이다.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잡은 게 일차적인 원인이었지만 이것 못지않은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첫째는 사람들과 함께 섬에 들어온 쥐와 고양이, 돼지들이 도도의 알을 남김없이 해치웠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한 네덜란드가 이곳을 중간 기항지로 사용하면서 정착촌을 세웠을 때 들어왔다.
하지만 도도에게도 멸종에 대한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도도는 원래 대양을 가로지르며 장거리 이동을 하던 철새 비둘기였다. 비둘기는 장거리 비행 능력이 좋아 지금도 대양을 횡단하는 철새들이 많은데 아마 그렇게 이동을 하다 우연히 이 섬을 발견하고 눌러앉았던 것 같다. 고된 비행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부한 먹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포식자도 없는 천국 같은 곳이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살았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날개는 작아졌고 덩치는 커졌다. 포식자가 없어 날아야 할 일이 없으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더구나 이들은 포식자(위기)라는 존재를 아예 잊어버려 그런 존재들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경계심은 남겨놓았어야 했는데 오랜 시간 그럴 필요가 없다 보니 경계심 자체를 잊어버렸던 것이다. 뒤늦게 알았다 해도 이미 때는 늦었을 것이다. 거북은 바다로 들어가면 되지만 도도는 도망칠 수단이나 공간이 없었다. 하늘을 날기에는 날개가 이미 너무 작아져 버렸고 몸집은 거대했다. 섬이라 멀리 갈 수도 없었다. 위기가 닥쳤지만 아무리 달려도 작은 섬을 벗어날 수 없었다. 멸종을 피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1964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생물학자 브리스톨 포스터(J. Bristol Foster)가 ‘섬에 사는 포유류의 진화(The evolution of mammals on islands)’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을 네이처 학술지에 발표했다. 북아메리카와 유럽 연안에 있는 116개 섬에 사는 생명체들이 본토 조상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분석한 논문이었는데 그는 여기서 몸집이 큰 포유류는 작아지고 작은 몸집의 설치류나 포유류는 반대로 몸집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런 변화가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해석했다. 몸집이 큰 포유류는 섬에서 그만 한 먹이를 확보할 수 없기에 작아질 수밖에 없고(섬 왜소화), 작은 포유류나 설치류는 포식 압력이 적어지거나 경쟁이 줄어 몸집이 커진다(섬 거대화)는 것이다. 이른바 ‘섬의 법칙’이다.2
섬의 법칙은 특히 대륙과 멀리 떨어진 대양에 있는 섬에서 뚜렷하다. 외부의 영향이 거의 없는, 자체의 독특한 생태 환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동물 중 가장 작은 종이 많이 발견되는 곳도 이런 곳이다. 예를 들어 스리랑카에 사는 살쾡이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고양잇과 동물인데 고양이 새끼 크기만 하다. 보통의 살쾡이는 큰 고양이만 한데 이 살쾡이는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다. 같은 조상을 가진 고양잇과 중 가장 큰 시베리아호랑이와 비교하면 무려 200배나 작다.
영국의 섬들 중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셰틀랜드제도에 사는 셰틀랜드포니 역시 이 세상의 말 중에서 가장 작다. 보통 말은 말 등의 높이가 어른 키만 하지만 이들은 평균 107㎝에 불과해 망아지만 하다. 과거 해수면이 낮아졌을 때 그곳으로 갔다가 해수면이 상승하자 고립된 것이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노루 역시 본토의 노루보다 작다.
반대로 섬으로 가서 커지는 동물들도 있다.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코모도왕도마뱀이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와 뉴기니 사이의 몇몇 섬에 사는 이들의 덩치는 대륙에 사는 옛 친척 도마뱀들과는 체급 자체가 다르다. 몸무게가 100㎏을 넘나든다. 섬에 정착한 새들도 커진다. 대체로 도도처럼 날개는 작아지고 덩치는 커진다. 뉴질랜드에서 한참 떨어진 섬에 사는 카카포는 대양을 건너다니던 앵무새였는데 낙원에 정착한 후 앵무새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사실 생명체들에게 이런 변화는 반가운 것이다. 섬 환경에 제대로 적응했다는 징표인 까닭이다. 하지만 이런 적응이 지속되면 문제가 생긴다. 섬 환경에 완전히 적응한 까닭에 다른 환경에 아무런 대비가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변화에 약한 정도가 아니라 속수무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섬에 적응한 뒤 어느 순간 이전과 다른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면 맥없이 무너진다. 1, 2년도 아니고 수천, 수만 년간 좋은 환경에서 살다 보니 여유가 넘치다 못해 행동 또한 느려진다. 그렇게 살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70만∼300만 년 전 지금의 북미와 남미 대륙이 연결돼 있었을 때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양쪽 대륙으로 건너갔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신천지를 탐사하고 개척했다. 당연히 기존의 생태계는 흔들리게 됐고 새로운 질서를 위한 격렬한 혼돈이 생겼다. 먹이나 영역이 겹치면 강자만 살아남는 게 자연의 순리다. 어느 쪽 출신들이 더 많이 살아남았을까?
결과는 남미 출신의 완패였다. 요즘 말로 하면 남미 생태계는 북미 출신들에게 정복당하다시피 했다. 경쟁력에서 북미 출신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북미는 빙하기 때마다 알래스카와 유라시아 대륙의 시베리아가 연결돼 섬 환경을 벗어나곤 했지만 남미는 1억2000만여 년 전 아프리카 대륙과 분리된 후 섬처럼 남아 있어 경쟁력을 키울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섬에서의 번성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한 번성이다. 기원후 1000년쯤에서야 사람이 상륙했던 뉴질랜드에는 날지 못하는 커다란 새들이 13종이나 있었는데 이후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멸종했거나 멸종 위기 상태로 말이다. 오로지 좋은 조건에만 적응한 대가를 혹독하게 받는 것이다. 숲의 제왕 호랑이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작아진 자바호랑이, 발리호랑이는 멸종했고, 수마트라호랑이는 인간의 보호 정책 덕분에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최근 멸종이 일어나고 있는 곳의 80% 이상이 섬이다. 유명한 조류학자에서 생태학자로, 이제는 문화인류학자로 변신한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에 따르면 1600년 이후 세계적으로 멸종한 새들은 171개 종인데 이 중 155종이 섬에서 멸종했다. 90% 이상이 섬에서 최후를 마친 것이다. 섬에 사는 새들이 전 세계 새의 20%라는 걸 감안하면 대륙보다 50배나 높은 멸종률이다. 특히 작은 섬이 취약해서 이 중 4분의 3이 작은 섬에서 멸종했다.
이 수치에는 하늘을 날다 땅에 정착한 덩치 큰 새들(주금류3 )이 거의 대부분 포함돼 있다. 원래 덩치도 컸지만 하늘을 포기하는 바람에 더 커진 오스트레일리아의 에뮤, 마다가스카르의 코끼리새들이 그들이다. 살아 있는 뉴질랜드의 키위 같은 녀석들은 보호를 받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멸종할 상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주금류 중 지금도 멀쩡하게 살아 있는 녀석이 있다. 이 비극적인 운명에서 비켜나 있는 주인공이 있다. 누굴까? 지금도 아프리카 대륙을 성큼성큼 뛰어다니고 있는 타조다.
같은 전략을 취했던 커다란 새들이 다들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데 타조는 어떻게 비극적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정답은 바로 섬이 아니라 대륙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타조가 살고 있는 곳은 만족과 안온한 생활에 젖게 되는 섬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오늘도 언제, 어디서,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사바나와 반(半)사막인 곳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 살면서 이에 맞는 적응력을 꾸준히 만들어 낸 덕분에 지금도 살아 있다. 천국이나 낙원 같은 곳에 살던 생명체들은 사라진 반면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은 불안한 세상에 사는 타조는 살아남은 것이다. 묘한 생존의 역설이다.
그래서 섬에서의 번성은 한계가 명확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한 번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네들끼리만 통하는 경쟁력 위에 세워진 질서라 좀 더 경쟁력 있는 외래종이 들어오는 순간 쉽게 무너진다. 그림같이 멋진 공간에 만족하는 순간 갇힌 삶이 되고 멸종으로 가는 막다른 골목으로 스스로 들어서게 된다. 도도의 삶을 추적해 『도도의 노래』를 쓴 미국의 생태 저술가 데이비드 쾀멘은 이렇게 말할 정도다. “섬에서의 진화는 멸종으로 가는 진화이고 그래서 비극은 섬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동물들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사람에게도 똑같이 일어난다. 또 섬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섬 같은 곳’에서도 일어난다. 2004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에서 발견된, 우리와 다른 인류인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다 큰 어른이 돼서도 키가 1m 남짓에 불과했다. 6만여 년 전 아프리카 동부에 살던 호모사피엔스가 홍해를 건너 동쪽으로 이동할 때 남쪽으로 내려간 이들의 후손도 마찬가지다. 현재 부시먼으로 불리는 이들은 사막에서 섬처럼 살아왔는데, 그래서인지 체구가 상당히 작다. 예전 우리가 ‘왜(倭)’라고 부르던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왜는 키가 작다는 뜻의 왜(矮)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작아지는 건 몸집만이 아니다. 생명력 또한 감소한다. 앞에서 남미와 북미 대륙이 연결됐을 때 동물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했는데 비슷한 일이 16세기 인간에게도 일어났다. 섬처럼 살던 남북 아메리카가 서양의 ‘총, 균, 쇠’에 무참히 무너진 것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같은 이름의 책 『총, 균, 쇠』에서 이 때문에 당시 이곳의 원주민 95%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멸종 수준이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오로지 중국만을 바라보며 섬처럼 살다가 식민지가 된 조선이라는 나라가 바로 이 땅에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에서나 ‘섬’이 된 곳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인 물이 썩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섬은 결국 불행으로 끝나고 마는 공간일까? 무엇이건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섬은 번성이 비극으로 향하는 일방통행로 같은 곳이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다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다채로운 진화가 이뤄지는 곳이다. 다윈이 진화의 법칙을 발견한 갈라파고스처럼 말이다. 섬을 진화의 표본실이라고 하는 이유가, 그리고 지금도 기기묘묘한 생명체들이 섬에 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평양의 뉴기니섬에 사는 극락조가 대표적이다. 서양인들은 태평양을 최초로 횡단한 마젤란함대가 가져온 이 새의 박제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봐왔던 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도 ‘birds-of-paradise’, 천국의 새라고 했다. 이 새는 어떻게 이런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이 새가 사는 뉴기니는 포유류 포식자들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세가 험난하고 밀림이 우거져 사람들의 접근 자체가 힘든 곳이 많다. 먹이 또한 풍부해 암컷들은 수컷 없이도 새끼를 키울 수 있다. 그 덕분에 수컷들은 모든 에너지를 최고의 멋 부리기에 투자한다. 뉴기니라는 공간적 환경이 이 아름다움을 만든 셈인데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다른 곳과 멀리 떨어진 지리적 격리 덕분이다. 모리츠 바그너라는 독일 박물학자가 일찌감치 이런 말을 했다.4
“진정한 변종의 생성이 성공을 거두려면 일부 개체가 반드시 자신이 살던 영역을 제한하는 경계를 벗어나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로부터 상당 기간 공간적으로 분리돼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지리적 격리라는 말이다. 다윈도 같은 말을 했다.
“새로운 형태가 최초로 만들어지거나 탄생하는 데는 격리가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 같다.”
지리적 격리. 사실 기업에도 이 지리적 격리가 필요하다. 왜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이 신사업 프로젝트팀을 본사에 두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 둘까? 본사와 가까워서는 절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이래야 한다, 저건 저래야 한다’는 본사의 숨결이 미치는 곳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숨 막혀 죽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래서 먼 곳에 ‘섬’을 만들어준다.
기업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할리우드는 미국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동부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인데 왜 이곳이 영화 산업의 본거지가 됐을까?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자유로운 상상력이 생겨나는 까닭이다. 홍콩이 아시아의 영화 중심이었다가 몰락한 것도 같은 이유다. 중국이 홍콩을 접수한 이후 영화다운 영화가 나오지 않고 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상상력의 본산인 실리콘밸리가 할리우드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고, 중국의 1호 경제특구인 선전이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원한다면 ‘섬’이 필요하다. 섬이라는 창조적인 공간과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개인에게도 그렇다. 다른 삶을 원한다면 그런 삶을 잉태할 수 있는 ‘나만의 섬’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나를 어제처럼 살아가게 하는 세상에서 나 자신을 시공간적으로 떼어놓아야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다. 물론 그런 다음엔 섬으로 남아 있지 않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araseo11@naver.com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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