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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Interview: 블록체인 전문 벤처 펀드 ‘해시드’ 김서준 대표

“블록체인, 인터넷처럼 기반 기술로 곧 정착
탈독점화 프로토콜 경제 준비해둬야”

조윤경 | 323호 (2021년 0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국내 최초 블록체인 벤처 펀드를 조성한 블록체인 기술 기반 스타트업 투자사 해시드는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네트워크를 가진 대기업과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스스로의 비전에 다가가고 있는 스타트업을 연결하고 있다. 가상화폐 가치가 등락해 부침을 겪는 동안에도 여러 기업은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인 탈중앙화, 높은 보안성, 투명성 등을 앞세운 기술 개발을 통해 인프라의 초석을 다져왔다. 그 덕분에 농업, 교육,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방적인 참여와 탈독점화를 추구하는 프로토콜 경제 시대를 앞당길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전통 금융업계를 포함해 더 많은 기업이 프로토콜 경제를 향한 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기회과 자문에는 테크미디어 ‘뉴즈’의 김지윤 최고운영책임자가 참여했습니다.

2020년 12월 블록체인 전문 벤처 펀드 ‘해시드 벤처 펀드’가 조성돼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모태펀드 출자 없이 운용사 출자금과 순수 민간 자본만으로 된 출자금만 무려 1200억 원 규모다.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블록체인만을 전문으로 벤처 펀드를 조성한 것은 이 펀드가 처음이다. 해시드 벤처 펀드는 ‘블록체인 기술 회사들과 프로토콜 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프로토콜 경제란 모든 사용자가 거버넌스, 즉 운영에 참여하고 규칙에 따라 보상을 받는 등 독립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경제 생태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해시드 벤처 펀드는 국내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 해시드에 의해 탄생했다. 2017년부터 국내외 블록체인 관련 비즈니스에 투자를 진행해 오던 해시드는 급성장하는 블록체인 산업을 견인하기 위해 2020년 9월, 자회사인 해시드벤처스를 설립하고 이 펀드를 만들었다.

해시드를 공동 창업한 김서준 대표는 개발자 출신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인프라가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전인 2016년과 그 이전부터 업계에 발을 들여놓으며 전문성을 쌓아 왔다. 최근엔 KB국민은행과 암호화폐 종합 관리 기업 ‘코다(KODA)’를 공동 설립하는 등 전통 금융업 회사와 협업하고 있으며 비트코인을 제도권 내에 포함시키기 위해 정부와도 소통해오고 있다.

인터넷과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점점 더 많은 권한이 개인에게 넘어가고 있다. 블록체인 역시 그동안 거대 조직이나 기관에 의해 중앙집권적으로 진행돼 온 일의 방식을 변화시킬 기술이라 일컬어진다. 해시드 벤처 펀드의 운용 총괄을 맡고 있는 김 대표는 DBR와의 인터뷰에서 “블록체인은 머지않아 인터넷 같은 기반 기술로 쓰일 것”이라며 “다양한 회사가 비전과 혁신을 가속화하는 데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에게 블록체인 기반 벤처 산업계, 금융업계, 미래 블록체인 산업과 경제의 전망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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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드를 창업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나를 포함한 해시드 공동 창업자 3인은 창업 1년 전인 2016년부터 블록체인 시장에 개인적으로 투자 활동을 시작해 왔다. 모두 개발자 출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더리움 오픈소스 커뮤니티를 접하게 됐는데 다른 오픈소스1 커뮤니티들과는 달리 참여자들이 ‘회사와 같은 모습으로 자본의 에너지를 통해 뜨겁게 움직이고 혁신하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발자들이 자율시장에서처럼 실험적으로 만들어진 여러 종류의 토큰(코인)에 서로 투자해주고 좀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오프소스 커뮤니티들은 금전적 인센티브가 오고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적이고 순수한 열정으로만 움직이는데 이더리움 오픈소스 커뮤니티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이더리움은 이미 단순한 금융 인프라를 넘어선 모습이었다.

당시 나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협업하는 이 네트워크를 토큰이란 경제 체제로 묶을 수 있다면 정치, 사회, 경제를 아우르는 커뮤니티가 다수 등장하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2017년 암호화폐 공개(ICO)2 붐이 일었다. 펀더멘털(fundamental)을 얼마나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수많은 사람이 이 흐름에 참여했다. 시장의 흐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걸 보면서 이 시장에서 좋은 프로젝트에 초기 투자를 하는 전문 투자사가 되는 도전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시드를 창업하게 됐다.

그나마 2017년 중반엔 개인들도 블록체인과 이더리움에 관심이 많아지던 시기였지만 2016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더리움을 산다고 하니 IT 업계에 있는 사람들조차 ‘이상한 다단계에 낚인 것 아니냐’는 얘길 했다. 나도 처음엔 장기로 투자할 만한 주식 종목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7년 들어서야 성장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확실해졌다. 다만 이렇게 시장이 빨리 커질 줄은 몰랐다.


DBR mini box I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 해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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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드는 2017년 설립된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포트폴리오사에 자본을 포함한 전략, 기술, 운영 등에 관한 통합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등 국내외 블록체인 기술 관련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 플랫폼이나 가상 세계 콘텐츠 및 게임 회사 등이다.

현재 직원 수는 총 16명이며 투자팀과 관리팀으로 구성돼 있다. 투자팀은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한 리서치 활동을 비롯해 스타트업 투자 심사, 평가, 검토, 육성을 담당한다. 탈중앙화거래소 유니스왑, 비상장주식거래소인 서울거래소, 카카오에서 진행 중인 코인프로젝트 클레이튼, 네이버에서 진행 중인 코인프로젝트 링크, 글로벌 메타버스 게임 회사인 디센트럴, 더샌드박스, 엑시인피티니 등에 투자 중이다.

투자팀의 비중이 큰 여타 VC와 달리 해시드에선 관리팀이 전체 인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관리팀 직원들은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회사들이 필요한 파트너십과 같은 인적 네트워크 연결, 홍보 지원, 이벤트 및 행사 주최 등을 담당한다. 블록체인 회사들의 경우 국내뿐 아니라 국외 출신의 창업자나 회사들이 많아 회계, 세무, 계약서 등 행정적인 절차 역시 국가별 혹은 국제 기준에 맞도록 처리 및 검토, 조율하는 업무도 맡는다. 김 대표는 “일반 VC 조직과 달리 스타트업에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관리팀의 비중을 투자팀과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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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결정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
어떤 지원을 하는가?

해시드는 블록체인 기반 기술을 이용해 혁신을 이루려는 스타트업에 에쿼티(Equity, 주식 지분) 펀딩을 진행하기도 하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특정 집단에 통용되는 자산이나 이를 발행하는 커뮤니티에 투자하기도 한다. 전자의 회사들은 농업이나 교육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투명한 자금 조달 등을 가능케 하는 회사들이고, 후자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비롯해 카카오에서 준비 중인 블록체인 기반의 코인 ‘클레이’, 라인에서 준비 중인 코인 ‘링크’ 등과 같은 프로젝트라고 이해하면 쉽다.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에 지분 투자를 결정할 때 기준은 다른 투자사들과 비슷하다. 창업팀과 시장, 제품, 경쟁 환경이 다 매력적이고 좋아야 한다. 투자는 하나의 예술 활동이라고 늘 생각하는데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주로 금융과 예술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가장 많이 집중돼 있고, 앞으로는 다른 분야로 확대될 거라고 본다. 해시드는 이 회사들이 블록체인을 이용해서 자사 비즈니스 모델을 고도화시키는 것을 돕고 있다.

코인 혹은 코인을 발행하는 프로젝트는 토큰의 수익성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참여자들의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신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커뮤니티에선 해당 코인을 기반으로 한 경제 모델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고, 투표와 같은 방법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해시드는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실행이 잘 구조화된 곳에 투자하려 하고 있다.

해시드는 이 같은 프로젝트엔 글로벌 개발자들의 교육이나 밋업(meet-up) 행사 등을 지원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 자산 프로젝트는 이를 이끌어가는 커뮤니티의 원활한 협업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분 투자를 진행하는 회사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곳들인가?

예를 들어, 해시드가 투자한 데이터 농업 스타트업 그린랩스는 스마트팜에서 나오는 데이터, 즉 농산물 출하 정보나 사용된 비료 종류 및 수량, 각종 구매 데이터, 농경 일지 등을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저장하고 관리한다. 이 같은 데이터들을 추후 농부의 신용도를 높여주는 금융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회사가 그리는 비전이다. 지금까지 농부들은 자신의 농장의 생산성 등을 증명하기 어려워 자금 조달을 효율적으로 하기 힘들었고, 농협 외에는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각종 정보가 블록체인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되면 농부들은 이를 이용해 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다른 기업으로는 IT 인재 양성 부트캠프 스타트업 코드스테이츠가 있다. 코드스테이츠는 소득 공유 계약으로 미래 개발자를 양성한다. 요즘 IT 관련 개발자가 부족해 몸값이 많이 오르고 있는데 코드스테이츠는 비전공자를 장학생으로 선발해 무료로 교육시킨 후 적절한 회사에 취업까지 연결해준다. 대신 이들이 돈을 벌게 되면 연봉의 일정 부분을 2년 동안 공유받는다. 코드스테이츠 입장에선 교육비 등 초기 투자 비용이 드는 사업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된다. 코드스테이츠는 각 학생의 성취도와 미래 발생할 수익 등을 블록체인 기술로 디지털 자산화해 일종의 금융상품을 만들었다. 일반인들도 코드스테이츠의 휴먼 캐피털에 투자할 수 있는 인프라가 형성되는 셈이다.

서울거래소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비상장주식거래 플랫폼이다. 지금까지는 스타트업 초기 멤버들이나 투자자들은 상장까지 보통 10년 이상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유동화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도 이를 효율적으로 이뤄줄 수 있는 마켓이 없었다. 주식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한 비공식 거래는 가능했지만 허위 매물이나 사기 피해의 위험이 컸다. 반면 서울거래소는 금융위원회 샌드박스로 선정돼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처럼 블록체인 기술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게 하며, 기존엔 데이터가 되기 어려웠던 정보들을 가치 있게 만든다. 머지않아 굉장히 많은 회사가 블록체인을 인터넷처럼 기반 기술로 쓰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의 가능성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로컬 기반의 VC들은 보통 지역사회 인맥이나 평판으로 창업자에 대한 검증을 하곤 하는데 크립토(가상 자산) 생태계에서 일하는 전략적 투자사들이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하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블록체인 기술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또 다른 가상 경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보지 않은 지구 반대편의 창업자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의 활동 내역이나 평판이 이미 블록체인 공간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시장에선 모든 처리 과정(transaction)이 공개돼 있다. 블록체인 기술 위에서 이 사람의 활동이 남아 있단 뜻이다. 이런 흔적들은 판단의 명백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직접 투자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적극적인 투자사를 지향한다. 단순히 이 시장이 탄생했으니 돈을 넣고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우리가 참여 중이며 확신을 갖고 있는 이 네트워크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레티지 대표는 최근 미국에 있는 채굴자들을 모아서 비트코인의 에너지를 트래킹하고 효율적으로 채굴할 수 있는 환경을 논의하는 협회를 조직할 것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잘된 이유는 코인을 사서 가만히 들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와 같은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 때문이다.

해시드 역시 사람들의 관심이 비트코인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졌던 2019년 ‘해시드 랩스’라는 행사를 열고 블록체인 기반 메타버스 게임사들의 얼리스테이지(Early Stage) 액셀러레이팅을 도왔다. 당시 블록체인 생태계에 비트코인과 같은 금융 인프라만 있고 생산물(product)이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예를 들면, 현실 세계에선 농부가 소나 닭을 키우며 이를 스케일업하기 위해 대출을 하는데 블록체인 세계에선 소나 닭이 비교적 부족한 것이다. 블록체인의 가상 세계에서 집이든, 부동산이든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상품이 만들어져야 경제 활동이 촉진될 수 있다고 느꼈고, 이러한 생산 플랫폼이 메타버스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해시드 랩스 행사를 통해 해시드에선 노드게임즈라는 국내 회사뿐 아니라 디센트럴랜드, 더샌드박스, 엑시인피티니 등 미국 회사에도 투자했는데 현재 수익률이 매우 좋은 편이다. 이처럼 해시드는 ‘시장에 이런 게 더 필요하다’고 하는 것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판을 만들기도 한다.

국내 최초의 블록체인 펀드 ‘해시드 벤처 펀드’를 조성한 배경은 무엇인가?

해시드 창업 초기엔 크립토(가상 자산)에만 투자를 했다. 그러나 시장이 점차 성숙하고 현실 세계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까지도 블록체인으로 혁신할 수 있는 조짐들이 보였다. 이 회사들엔 에쿼티 펀딩으로 지원을 해야 하는데 에쿼티 펀딩은 수익이 날 때까지 7∼8년 혹은 그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투자사 입장에선 유동성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자기자본으로만 투자하는 해시드가 투자하기엔 제약이 많았다.

두 번째 이유로는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네트워크를 가진 많은 대기업 및 기관들이 이런 혁신과 연결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펀드에 좋은 펀드출자자(LP)들이 들어오고, 스타트업과 협력할 수 있도록 한다면 여러모로 시너지가 나는 행보가 될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이런 펀드가 만들어지면 출자하고 싶다’며 먼저 의향을 밝혀 오는 대기업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해시드 벤처 펀드 설립을 준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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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진행된 투자금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총 1200억 원의 펀드 중 3분의 2 이상 투자가 진행됐다. 펀드를 조성한 지 약 6개월 정도 됐으니 소진 속도가 일반적인 VC보다는 빠른 편이다. 시장 자체가 올해 들어 크게 성장했다. 국내에서 블록체인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VC는 해시드밖에 없다 보니 시장의 수요에 부응해 새로 생긴 좋은 회사에 열심히 투자하게 됐다. 필요하면 두 번째 펀드도 준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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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엔 KB국민은행과 암호화폐 종합 관리 기업 ‘코다(KODA)’를 공동 설립했다. 전통 금융업 기관과 협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코다는 가상 자산 커스터디(custody) 3 회사다. 가상 자산은 결국 제도권의 돈과 연결되는 게이트웨이가 필요한데 암호화폐 거래소는 법인이나 금융기관의 계좌를 만들어 줄 수 없다. 가상 자산을 합법적으로 수탁하고 현실 세계 기관과 연결하는 채널이 필요하단 생각에서 KB국민은행 경영진을 설득했다. 해시드가 전략과 자문을 담당하고 해치랩스라는 회사가 개발을 담당한다.

당시 여러 관계자에게 ‘시장이 이렇게 변할 것이다’라고 설득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해외에서 명백한 움직임과 증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에선 수많은 가상 자산 수탁사가 만들어지고 엄청난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최근 미국 통화감독청(OCC)에서 ‘수탁 역할을 하는 모든 은행은 크립토(가상 자산)를 수탁할 수 있다’라는 해설서도 나왔다. KB국민은행 측도 가상 자산 수탁 업무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데 동의했다.

기존 전통 은행 업계가 가진 고민은 무엇인가?

디지털 혁신에서 뒤처지고 있고, 젊은 고객들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전통 은행들은 젊은 세대가 원하는 사용자 경험(UX)을 제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자산군 역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이미 상당수의 20대가 가상 자산을 보유 중이다. 사용자 경험이 좋지 않은 건 감수하고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보유한 자산을 은행이 취급하지 못한다는 건 소비자 입장에선 치명적인 단점이다.

블록체인이 이끄는 산업과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플랫폼이 독점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플랫폼 경제와 대비되는 개념이 ‘프로토콜 경제’다. 프로토콜 경제란 모든 사용자가 시스템 운영에 참여하고 규칙에 따라 보상을 받는 등 독립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한 경제 생태계를 말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역시 프로토콜 경제에 포함된다. 정보와 데이터를 독점하는 플랫폼이 운영하는 게 아니라 운영 주체가 커뮤니티화된 개방형 협동조합 같은 조직이다. 여기서 투명한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기여한 만큼의 인센티브를 받아 가는 형태다.

과거엔 회사가 많은 직원을 뽑아서 이들을 마이크로매니징(micro-managing)하며 일을 시켰다. 그런데 이처럼 독점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회사는 변덕을 부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최근 국내 상장사들이 어닝서프라이즈(earning surprise)를 기록했는데 직원 인센티브는 오르지 않아 파업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로토콜화되지 않은 중앙집권화 회사의 문제점이다.

반대로 프로토콜 산업과 경제에선 투명하게 개방된 거버넌스 위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개발자들이 반영해 누구나 인센티브를 받아갈 수 있다. 예를 들면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유니스왑’ 같은 탈중앙화거래소는 유동성을 관리하는 현실 세계의 중앙화된 은행들과 달리 전체 커뮤니티가 유동성을 관리하는 데 기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유니스왑은 이에 기여하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주며 성장했다. 또 다른 디파이(Decentralized finance)4 프로젝트인 컴파운드는 기존 은행이 예금이나 대출 잔고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것과 달리 사람들에게 컴파운드 토큰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해시드 역시 회사에 얼마의 성과가 나면 얼마의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수식화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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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자산을 비롯해 블록체인 기반 기술의 유행이 부침을 겪는단 시각도 있는데?

시장 변동성에도 블록체인 산업은 계속해서 인프라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애플리케이션과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 있다. 다시 말해, 2018년과 2019년 침체기에도 여러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회사들은 관련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왔다.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블록체인 인프라 개발 노력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로 알려져 있는 암호화폐 서비스 업체 팍소스는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인프라 개발을 진행한 덕분에 2020년 글로벌 결제 기업 페이팔(Paypal)에 스테이블코인이나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제반 환경(settlement)을 제공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미국의 여러 은행의 가상 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도 시장 침체기에 관련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앞으로도 인프라 확충의 기회가 여전히 있을 것이고, 동시에 다양한 서비스 쪽으로 자본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한다.

DBR mini box II
국내외 전통 금융권의 커스터디(custody) 진출

커스터디란 금융자산을 보관 및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전통적으로는 금융사들이 제공해왔던 업무였으나 디지털 자산 시장이 커지면서 가상 자산에 대한 커스터디 서비스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해외에서 먼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 5대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는 2019년 3월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비트코인 커스터디 서비스를 시작했다.i 이후 2020년 7월 미국 재무부 산하 통화감독청(OCC)이 은행들의 가상 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허용함에 따라 가상 자산을 금융 상품으로 취급하려는 은행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밖에도 골드만삭스, 노무라홀딩스, ING를 비롯해 대형 가상 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 비트코인 선물 거래소 백트(Bakkt) 등이 커스터디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이다.

국내에서도 가상 자산 시장 활성화에 대비하기 위해 가상 자산 커스터디 서비스 진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20년 11월 해시드, 해치랩스와 함께 최초로 법인 대상 가상 자산 수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합작법인 ‘한국디지털에셋(KODA)’을 설립했다. 코다의 수탁 대상 자산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카카오 자체 가상 자산 클레이 등이다. 신한은행은 2021년 1월 커스터디 전문 기업 한국디지털자산수탁(DKAC)에 전략적 지분 투자를 추진했으며 2021년 5월 관련 서비스를 출시했다. 2021년 3월 시행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로 커스터디 사업이 제도권 내로 들어오면서 여러 금융권에서도 관련 서비스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블록체인 산업과 경제는 향후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하는가?

블록체인은 이미 대중화됐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블록체인으로 뭘 할 수 있어?’란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NFT5 가 화제가 되면서 금융과 관련 없어 보이는 예술인들까지 블록체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캐시앱이나 페이팔 같은 미국 주요 결제 회사에는 이미 비트코인 계좌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만큼 와 닿는 서비스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사용자층이 확 넓어진 것이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개념이나 원리는 잘 몰라도 그 덕분에 만들어진 서비스의 효용성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더 많은 블록체인 상품이 현실 세계와 연결될 것이다.

문제는 성숙의 단계다. 시장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기관들이 블록체인 시장에 더 많이 진입해야 하는데 규제로 인해 그러지 못하고 있다. 개인이 주도하는 시장은 변동성을 키울 수밖에 없다. 모두가 모든 주식과 토큰 종목에 전문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관은 펀더멘털을 분석하고, 목표가를 정하고, 장기 프로젝트에 자본의 흐름이 생기도록 한다. 기관 투자가 진행되면 투자를 받은 회사 입장에서도 평온한 마음으로 회사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고, 개인 입장에서도 펀드에 돈을 넣어 안정적인 투자가 가능하다. 비트코인 펀드, 이더리움 펀드, NFT 펀드, 블록체인 게임 펀드 등이 만들어져서 양질의 프로젝트가 체계적으로 지원을 받으면 시장도 안정되고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화의 문제가 남아 있다.

기업들은 프로토콜 산업과 경제를 맞이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새로운 철학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회사가 모든 것을 결정하며 모든 서비스의 프로바이더가 되겠단 마인드로는 프로토콜 산업 및 경제에서 성장할 수 없다. 미디어 산업을 예로 들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는 기존 전통 미디어들은 참여자들이 알아서 콘텐츠를 만들고 인센티브를 받아 가는 탈중앙화된 유튜브에 위협을 받고 있다. 개방적인 환경이 갖춰져야 더 나은 서비스도 나올 수 있는 법이다. 미디어 산업에서 나타난 변화들이 금융 시장이나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문제는 이런 흐름을 기존 기업들이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렵다는 데 있다. 그렇지만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 블록체인을 이용해 혁신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회사들의 성공 사례를 분석하고 기업 대신 커뮤니티가 일하게 만드는 방법을 새로 설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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