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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일본 기업 사례 분석

도요타, 마쓰다, 유니클로, 시세이도…
‘원가부담률’ 낮춰서 비용 혁신 이뤄내

이지평 | 251호 (2018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비용 압박이 거세지고 있지만 비용의 절대 규모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비용을 줄이면서 동시에 기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비용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비용 혁신의 핵심은 전체 매출에서 ‘원가부담률’을 낮추는 것이다. 도요타는 표준화된 공정시스템을 도입해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품질을 제고 시켰고, 마쓰다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제품 제작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고객 니즈를 반영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자동차로 브랜드 입지를 강화했다. 유니클로는 협력사와 역할을 확실하게 분담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시세이도는 자사가 보유한 기술과 연구 노하우를 재조합해 생산 비용은 줄이면서 제품 사용 주기를 늘린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일본기업의 수익성이 눈에 띄게 회복되고 있다. 닛케이 분석에 따르면 2017년 도쿄 증권거래소 1부 상장기업(금융 제외)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0.7%에 달했다. 1982년 이후 처음으로 10%를 초과한 것이다. 물론 엔저 지속과 글로벌 경기 회복세에 힘입은 바도 크다. 하지만 이 거시적인 환경만으로는 일본 기업의 수익성 개선을 설명하기 부족하다. 여러 해를 거치면서 비용 구조를 혁신해 생산성을 향상시킨 일본 기업들의 노력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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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 기업들이 불황을 견디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했다. 이면지를 활용하고, 불필요한 전기 사용량을 줄이고,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해 인건비를 줄이는 등 우리가 아는 기본적인 비용 절감 방법을 활용했다. 각종 경비 절감에 주력해 수익성을 회복하는 ‘참고 견디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장기불황 이후 이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이에 따라 비용을 줄인 만큼의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비용 삭감을 기업의 ‘수익성 개선’ 목적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이다. 비용을 줄이면 단기적으로 매출 대비 영업이익을 높일 수 있다. 문제는 과도한 비용 삭감이다. 이미 낭비되는 비용을 최소화했는데도 불구하고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이’ 비용 삭감에만 몰두하게 되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없고, 기업 활동이 위축되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활동의 결과물로 수익성 대신 생산성을 대입하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생산성은 투입 자원 대비 얻은 성과를 말한다. 즉 적은 자원으로, 혹은 기존 자원으로 보다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투입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결과값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이는 비용만 줄여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일부 일본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을 궁극적인 목표로 세우고 절대적인 비용이 아닌, 원가 구조를 혁신하는 방식에 몰두했다. 그 결과 생산공정의 개선 및 디지털 기술 적용으로 비용은 줄이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효율적인 자원배분 및 활용으로 같은 자원을 투입해 보다 큰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일본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실행한 ‘비용혁신 솔루션’을 소개한다.

1. 품질 향상과 비용 절감의 동시 추구
1) 생산공정 개선으로 달성한 ‘불량 제로’
2000년대 들어 일본 제조업의 위기가 찾아왔다. 내로라 하는 기업에서도 품질사고가 빈번해졌다. 2006년 소니가 제조한 배터리가 탑재된 PC가 발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니는 960만 개 배터리 회수를 결정해 510억 엔의 손실을 감당해야 했다. 이 사건 이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던 소니 배터리 사업부는 2016년 무라타제작소에 인수됐다.

도요타는 2009년 렉서스에 탑재된 브레이크 작동 문제로 사망자가 발생해 170만 대를 리콜했다. 미국에서도 집단 소송이 제기됐고 막대한 합의금이 청구서로 날아왔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엔화 가치까지 높아져 수출 경쟁력이 약화됐다. 세계 각국에서 도요타를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도요타의 회복이 당분간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세간의 우려와 달리 도요타는 빠르게 회복했다. 도요타생산방식(Toyota Production System)을 고도화하는 방법을 위기를 돌파했다. 좋은 품질, 불량이 없는 생산시스템이 재고율을 낮추고 각종 낭비를 억제한다는 기본에 충실해 생산공정을 보다 업그레이드했다. 기존 TPS는 자동차가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후 품질검사를 통해 합격품인지 불량품인지 구분했다. 불량품은 표시를 해둔 후 추후에 원인 파악을 위한 점검에 나섰다.

하지만 이를 업그레이드 시킨 자공정완결(自工程完結, 불량제로) 시스템은 ‘최종 점검’이라는 품질관리 원칙을 버렸다. 각각의 공정 안에서 품질을 검사하고, 불량품이 나오면 이를 즉각 개선하는 시스템을 택했다. 점검 요소는 크게 4가지였다. 소재(Material), 기계(Machine), 방법(Method), 작업자(Man)의 항목을 바탕으로 합격품 여부를 검사(Measurement)했다. 도요타에서는 이를 4M+1M이라고 부른다.


자공정완결을 통해 불량품에 대한 도요타의 인식 전환을 엿볼 수 있다. 불량품은 품질 보증을 위해 ‘제외’되는 것이 아니라 더 완벽한 품질 확보를 위해 개선해야 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직원들의 책임감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불량품이 나오는 원인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원인을 찾아내 해결하려는 의지도 강해졌다.

결국 각 공정에서의 ‘불량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제품 설계, 생산기술, 제조 방식 등의 측면에서 개선활동을 진행했다. 불량품을 줄이기 위해선 부품 조립이 쉽고 양산이 용이한 제품으로 설계했다. 실제 엔지니어들이 쉽게 작업할 수 있도록 설비와 공구를 개발할 수 있는 생산 기술도 확보했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작업 노하우, 스킬을 키우기 위한 표준 매뉴얼을 개발했다. 그 결과 도요타의 불량률은 1만분의 1에서 100만분의 5 내지 10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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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은 순환적으로 이뤄졌다. 표준 매뉴얼대로 작업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되, 애로사항이 발생하면 곧바로 생산설비와 공법을 개선했다. 만약 이러한 개선으로도 불량품이 생산되면 제품 도면을 변경하고 설계를 개선했다. 이렇게 바뀐 조건에 맞춰 표준 작업도 바뀌게 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천장의 썬루프 조립 시 설치 위치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문제가 있었다. 도요타는 결정 스토퍼를 추가해 현장 엔지니어들이 정확한 위치에 썬루프를 얹으면 소리가 나도록 했다. 숙련된 엔지니어의 노하우가 없어도 불량품의 발생 가능성을 현저히 낮추는데 성공했다. 또한 볼트 조임의 불량을 방지하기 위해 볼트의 앞부분에 가이드를 부착했다. 볼트 설계를 변경해 엔지니어가 볼트를 조일 때 정확한 각도를 잡지 못해도 축이 기울어져 불량이 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 외에도 도요타는 같은 생산 플랫폼에서 여러 차종을 생산하는 공정 프로세스를 개발해 생산 비용을 낮췄다. 표준 부품들을 사용한 모듈 생산시스템으로 생산 효율성도 높였다. 이를 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TNGA)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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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는 생산공정에서 이뤄지는 개선보다 제품 개발 및 설계 과정에서 원천적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부품을 표준화 하고 공통화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신제품이라도 표준 부품을 사용하거나 여러 제품에 쓰일 수 있도록 부품을 공용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첨단 제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새 부품, 장비나 특수 주문품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 부품을 활용해서 새로운 기능을 확보하는 것이 기술력이다.

2)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용절감 및 생산성 제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같은 인력과 자원으로 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거나 소비자 만족도를 향상시킨 경우도 있다. 제이텍트(JTekt)는 도요타에 자동차용 공작기계를 납품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일본 정부의 ‘스마트 공장 실증사업(스마트 공장 구축 지원 사업)’을 활용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품질 향상에 성공했다.

제이텍트 엔지니어들은 모두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고 있다. 이 웨어러블 기기들은 생산 설비와 연동됐다. 이를 통해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작업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등 모든 정보가 데이터로 구축된다. 이를 통해 제이텍트는 보다 유연한 생산라인 운영 방안을 마련했다.

일본은 다품종 소량 생산이 기본이다. 그렇기에 기존 생산라인에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새로운 제품을 생산할 때마다 새로운 팀이 투입된다. 제이텍트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다양한 제품 생산에 적합한 엔지니어를 찾고 효율적인 팀을 구성하면 보다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품질관리도 쉬울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제이텍트는 각 근로자들이 같은 양의 제품을 생산하는데 걸리는 시간, 불량품 발생률, 동선 등을 면밀히 파악해 근로자별로 가장 잘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찾아내 배치했다. 또 숙련근로자들을 적절히 배치해 이들이 다른 근로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도록 유도했다. 근로자들의 동선 데이터를 통해 불필요한 이동거리를 최소화 하는 등 생산 환경도 개선했다. 또 각 공장 설비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분석해 고장 시기를 사전에 예측, 미리 대비하는 등 고장이나 오작동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도 최소화했다.

이들이 개발한 자동화 솔루션은 하나의 상품이 돼 매출 확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제이텍트는 일본에서 개최한 CEATEC 2017에 ‘JTEKT-SignalHop’라는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을 선보였다. 이 솔루션을 도입하면 쉽게 생산과정을 모니터링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공장 내 제조장치에 간편하게 신호등을 부착하면 색상으로 가동 상황이 표시된다. 이 데이터는 근로자들 스마트폰으로 전송돼 원거리에서도 기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설비 누적가동 시간, 이상발생회수 등이 수치화돼 PC에 자동 저장된다.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는 생산 현장 개선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앞서 소개한 도요타의 사례처럼 제품 개발, 설계 부문에서의 혁신이 중요한 이유다. 최근엔 이러한 개선활동을 위해 IoT(사물인터넷)를 활용하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상설계가 대표적인 예다. 현실 세계에서의 시제품 제작에 따른 시행착오의 부담을 줄이는 노력 등이 중요해지고 있다. 가상 설계를 하게 되면 개발 중인 제품의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고 신속하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가상 공간에서 자유롭게 제품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다양한 시험을 실시해 개발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가상 공간에서 충분히 실험을 거친 설계로 시제품을 제작해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단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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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기를 제조하고 있는 리코사를 살펴보자. 이 회사는 가상 설계를 통한 시제품을 제작한다. 실제 시제품은 딱 1번만 제작한다. 과거 2번 만들었던 것과 비교해 신속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가상 설계를 통한 시제품은 상품기획 담당자뿐만 아니라, 생산, 자재, 가공서비스 부문 등의 전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각 부서별 담당자들은 직접 만날 필요도 없다. 화상회의로 연결해 3차원 모델링(3D CAD)을 확인하고 조건을 수시로 바꿔가며 가상 설계된 제품을 시험해 본다. 조립 성능, 안정성, 형태, 공정 효율성 등을 고려해 제품 설계가 결정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보다 더 만들기 쉬운 제조 공정을 찾을 수 있고, 단가가 낮으면서도 성능이 좋은 최적의 부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 제작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어 제품의 완성도는 높아지고 불량률은 줄어든다. 가상 설계 자체만으로 개선 효과가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기존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고객들이 만족할만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일본 자동차 기업인 마쓰다는 2004년 IoT를 활용해 자동차 및 부품, 고객(신체 및 뇌의 움직임), 자동차 이용 환경(글로벌 자동차 시장 트렌드 등) 등 3가지 영역에서 시뮬레이션 모델을 개발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동시에 제품에 대한 고객 만족도를 높였다.

특히 고객 정보를 기반으로 한 시뮬레이션 모델은 마쓰다가 혁신적인 자동차를 개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개 니즈를 지수화해 가상 설계에 반영하는 시뮬레이션 기법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일, 고객 설문조사 등을 통해 확보한 고객 정보를 지수화한다. 이를 통해 운전자가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을 때 느낌, 소리, 제동 시간 등 최적의 고객 운전 경험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시제품을 만들고, 고객이 시제품을 체험하게 한 후 수정사항을 반영하는 게 보편적인 자동차 개발 과정이다. 그런데 마쓰다의 개발 모델의 경우 시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고객 니즈가 반영되기 때문에 시제품 품평, 수정작업 등에 들이는 시간이 대폭 줄어든다.

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개발한 시제품은 마쓰다가 개발하는 자동차의 기본 모델로 적용한다. 이를 ‘모델 베이스 개발(Model Base Development, MBD)’ 전략이라고 하는데, 다른 디자인, 성능의 자동차라고 하더라도 설계 변경, 시제품 제작 횟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유사한 부품, 조립공정이 확대되면서 제품 제작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생산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2014년 일본에서 ‘올해의 차’로 선정된 마쓰다의 소형 자동차(1500cc)인 ‘데미오’도 이 모델의 덕을 톡톡히 봤다. MBD를 통해 개발된 고연비 엔진인 스카이액티브(Skyactiv)가 장착된 데미오는 연비가 휘발유 1리터 당 30Km에 달한다. 또한 2000만 원이 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비해 좋은 품질과 디자인, 연비 등을 내세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일본 대표 자동차 모델로 호평 받았다.

2. 자원의 효율적 배분 및 활용을 통한 생산성 제고
생산성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을 확대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급자 주도 경제가 소비자 주도 경제로 바뀌게 되는 장기 불황시기에는 이러한 전략이 잘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효율적으로 많이 생산하더라도 잘 팔리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업이 과거 전략을 반복해 사용한다면 수익성이나 생산성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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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업은 새로운 고객 니즈를 개발하고 매출을 늘리는 ‘생산성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많은 경영자들은 생산성의 질 향상을 어렵게 생각한다. 엄청난 연구개발, 기술 혁신 등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생산성을 제고 할 수 있다. 재고 비용을 낮추고,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 ‘전체 매출에서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이는 방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설명해보자. 1980년 후반 수영모자로 성공한 풋마크 코퍼레이션(Footmark Corporation)이라는 중소기업을 한번 들여다보자. 이 기업은 직원 58명에 불과한 도쿄에 있는 작은 회사였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수영모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불황, 수영모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고처리 비용만 늘어났다.

이 회사는 수영모의 기능과 필요성을 고객에게 먼저 제시해 이 위기를 넘겼다. 이들이 공략한 것은 학교 체육 교사들이었다. 수영모자를 쓰면 교사가 학생을 식별하고 관리하고 쉽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수영모자는 청결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 결과 마크코퍼레이션은 학교 수영용 모자 시장에서 5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고객 니즈를 스스로 ‘발견’해 재고를 줄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기업들은 같은 제품을 더 빨리 팔아 재고 비용을 줄이고, 더 비싸게 팔아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


1) 아웃소싱을 통한 부가가치 확대
장기 불황 시기에도 오히려 매출을 늘리며 성장한 유니클로가 택한 방법은 아웃소싱이다. 생산을 외주로 돌려 생산비용을 크게 낮추고, 절약한 비용은 제품 개발과 물류에 투자함으로써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유니클로의 ‘에어리즘(AIRism)’이 대표적인 예다. 에어리즘은 초미세 섬유로 제작된 여름 내의 개념의 제품이다. 얇으면서도 땀을 잘 흡수하는 소재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 옷은 여름에는 덥기 때문에 벗는 것이 아니라 덥기 때문에 입는다는 소비자의 경험을 유도한다. 놀라운 점은 이 제품이 덥고 습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몸에 잘 맞으면서 피부를 보호한다는 기능적인 장점이 통했다는 평가다.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조코비치도 경기를 할 때 에어리즘을 입는 것으로 알려져 에어리즘의 품질이 다시 한번 회자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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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는 어떻게 저렴한 가격에 높은 품질의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을까? 유니클로의 철저한 역할 분담 때문에 가능했다. 생산은 도레이라는 협력사에 맡기고 유니클로는 제품 기획, 마케팅, 판매에 주력했다.

에어리즘이라는 제품을 기획할 당시만 해도 관련 섬유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도레이가 유니클로의 의뢰를 받아 세상에 없던 섬유소재를 개발한 것이다. 에어리즘은 폴리머 기술과 방사 기술을 결합한 첨단 실을 사용한다. 모발의 12분의 1 정도까지 가는 실을 만들기는 매우 어렵다. 또한 실의 두께가 균일하지 않으면 평평함과 톡톡함을 동시에 가진 에어리즘의 특징을 제대로 구현하기 어렵다. 폴리에스터 소재는 보통 색의 물빠짐 현상이 다른 소재에 비해 크게 나타난다. 하지만 에어리즘의 카티온(양이온) 가염형 폴리에스터는 섬유와 염료를 이온결합해 색상이 잘 빠지지 않는다.

유니클로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고, 잘 할 수 없는 부분은 외부 전문업체에 아웃소싱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는 같은 자원, 인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어떤 전략과 방향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결과값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회사가 각자의 장점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도 장점이다. 유니클로는 제품 기술력에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 기획에 주력했다. 도레이는 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도전을 기꺼이 수용하며 자사 기술 경쟁력 향상을 꾀할 수 있었다. 같은 자원을 투입해 기존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비용 혁신을 달성한 것이다.

2) 기존 자원을 재조합한 새로운 제품 개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기존 자원의 재조합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일본 최대 화장품 업체인 시세이도는 기존 시세이도 피부과학 연구와 미용기술에 IoT를 융합해 새로운 스킨케어 시스템 ‘옵튠(Optune)’을 개발했다. 소비자가 개별적인 피부 특성과 상태에 따라 맞춤형 화장품을 쓸 수 있는 시스템이다. 소비자는 스마트폰에서 시세이도가 개발한 전용 앱을 다운로드 받아 자신의 피부 상태를 측정한다. 시세이도는 이 데이터와 시세이도의 화장품 노하우, 데이터를 토대로 개발한 알고리즘을 통해 소비자 ‘맞춤형’ 화장품을 그때그때 생산할 수 있는 가정용 미용액 조합 기계를 개발했다.

이 기계는 가정에 간편하게 설치가 가능하며 1000가지 이상의 성분을 조합해 최적의 화장품을 즉석에서 만들어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제공한다. 이 제품에는 크게 두 가지 장점이 있다. 과거 시세이도가 개발한 원료와 기술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기에 기술 개발 비용이 크지 않다. 이 제품이 상용화되면 제품 포장 및 판매 비용도 현저히 줄어든다. 별도의 용기 제작이 필요 없을뿐더러, 이 제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시세이도의 화장품 연료를 계속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소비자 체험 테스트에 들어 갔으며 수정 의견을 반영해 출시될 예정이다.

일본 기업은 장기불황, 근로시간 축소, 저출산 등으로 인한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들은 단순히 비용의 절대액수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 같은 자원, 혹은 더 적은 자원으로 더 큰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원가 부담을 줄여나갔다. 인건비 부담, 경기 침체, 중국 기업들의 위협 등으로 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우리 기업들도 혁신에 매진해야 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jplee@lgeri.com

<필자소개>
필자는 1963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 호세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으로 건너와 1988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통령 자문 기구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남북 대외협력 전문위원회 위원, 산업자원부 제조업 공동화 대책회의 위원, 미래부 미래성장동력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 부문 수석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는 일본을 닮아가는가』 『일본식 파워경영』 『일본형 자본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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