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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종합

실물 옵션 전략, 불확실한 상황에서 더 빛난다

이승현 | 176호 (2015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재무회계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때 비용 대비 성과를 예측하는 데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방법은 현재가치 계산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불확실성이 없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오히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할 수도 있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 추구할 수 있는 대안으로 리얼옵션 전략이 있다. 리얼옵션은 새로운 정보가 주어졌을 때 해당 시기에 알게 된 정보를 활용해서 다시 새로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기본 구조로 한다. 고위험군 고객에게 신용카드 발급을 시도한 Capital One이나 신생 Biotech 기업에 일정 금액을 투자했다가 신약 개발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인수해버리는 미 제약회사들의 사례가 리얼옵션 전략의 강점을 잘 보여준다.

 

 

옵션(Option)이란?

리얼옵션을 들어봤거나 알고 있더라도 실생활과 거리가 멀다고 느끼거나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리얼옵션이란 무엇이며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는 것이 이 원고의 목적이다. 사용 예를 보기에 앞서 옵션의 개념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옵션이란 지정된 날짜 전에 지정된 가격으로 특정한 자산을 구매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을 말한다. 옵션이라는 개념은 Black-Scholes formula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옵션 공식을 그대로 보는 것은 어렵고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리얼옵션의 관점에서 그 의미들을 잘 살펴보면 옵션이 실제 비즈니스에 어떻게 적용될지를 파악할 수 있다. 중요한 개념을 중심으로 보면 옵션 행사가격이 낮을수록, 또는 만료까지 기간이 길수록 옵션가치가 커진다. 또한 불확실성의 정도가 커질수록 옵션가치가 커진다. 따라서 이렇게 계산한 옵션가치보다 적은 금액을 지불하고 옵션을 살 수 있다면 이 옵션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1

 

주식옵션이 아주 쉬운 예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옵션이 3만 원에 어떤 주식을 지정된 날짜 전에 아무 날에나 살 수 있는 권리를 준다고 하자. 어느 날, 그 주식 가격이 5만 원이 되면 옵션 보유자는 당연히 옵션을 행사할 것이다. 이를 통해 2만 원의 이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식 가격이 1만 원으로 떨어진다면 주식을 반드시 사야 할 의무는 없으므로 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유연성을 갖기 위해 옵션에는 옵션 자체에 대한 가격만 지불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옵션은 하방 위험(downside risk)은 줄여주고 상방 가능성(upside potential)은 높여주는 성격을 지닌다. 이런 상방 가능성은 불확실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옵션 보유자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요인이다. 하방 위험은 제한되지만 상방 가능성은 무제한적이기 때문이다.2

 

이런 구조가 실물에 적용됐을 때 이를 실물옵션 또는 리얼옵션이라고 부른다.3 특정 사업에 대한 투자기회를 놓고 이 기회에 투자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옵션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그 기회가 좋은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적은 초기 투자가 필요한데, 이 투자를 옵션을 구입하기 위한 가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투자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옵션행사를 통한 이익으로 본다. 여기서 다른 중요한 요소는 만기 기간과 불확실성의 정도, 그리고 옵션을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금액이다. 마지막으로 주식옵션에서 쓰는 무위험이자율(은행 예금처럼 실패할 위험 없이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이 중요한 요소인데 실물옵션에서는 투자의 기회비용이 이에 해당한다.

 

 

기본 개념만 놓고 본다면 주식옵션과 실물옵션은 잘 매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반인은 물론 학자들도리얼옵션이 실제로 쓰이기는 합니까라고 물을 때가 많다. 리얼옵션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한 설문에 따르면 CEO들이 정확히 옵션 공식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CEO 27% 정도는 항상 어떤 형태로든 옵션의 개념을 머릿속에 가지고 의사결정을 한다.4 사실 내용을 알고 보면 CEO가 아닌 일반인들도 많은 경우 리얼옵션적인 사고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옵션을 일상에서 쓰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불확실성을 고려사항에 넣는다는 것 자체를 불확실성으로 보고 이를 회피하려 하거나, 상당히 많은 가정이 들어맞아야만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을 운영할 때 불가피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불확실성은 앞으로 더욱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면 기업에서 투자 등을 평가할 때 흔히 사용하는 순현재가치(Net Present Value·NPV) 계산법은 그다지 문제의식 없이 사용할 때가 많은데 불확실성이 높을 때는 현재가치 계산법이 현실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현재가치 계산법은 불확실성이 없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 후 계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현재가치(NPV)와 리얼옵션(Real Option)

리얼옵션을 현재가치 계산법과 비교하는 예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간단한 형태의 예를 하나 들겠다. <그림 1>을 보면 의사결정 가지(decision tree)가 보인다. 이 그림은 어떤 기업이 수요 예측이 어려운 새로운 물건을 만들었을 때 리얼옵션적 사고방식이 어떻게 기업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지 보여주는 예다. 특히 초기 투자 이후 새로운 정보가 주어졌을 때 해당 시기에 알게 된 정보를 활용해서 다시 새로운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핵심이다.5

 

 

<그림 1>에서 네모는 의사결정의 순간을, 동그라미는 새롭게 주어진 정보를 의미한다. 금액은 100만 원 단위이며 이해를 돕기 위해 초기 투자 비용 외에 모든 금액은 새해 첫 투자 후 그해 말 현재가치(t+1)로 환산된 금액이다. 그림에서 보면 이 기업은 새로운 물건을 만들기로 결정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1000만 원을 투자해야 한다(-10M). 투자했을 때 수요가 많을 가능성이 75%, 수요가 적을 가능성이 25%라고 하자. 수요가 많으면 투자한 첫해에는 500만 원의 이익이 난다. 그 다음부터 발생하는 모든 이익을 현재가치로 계산하면 공장 확장을 하지 않을 경우(불확장) 1500만 원의 이익을 얻는다. 공장을 확장한다면 300만 원의 투자가 한 번 더 필요하지만 이후 3000만 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때 리얼옵션을 적용해서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이 기업은 공장 확장을 선택할 것이고, 이때 첫해 말 총수익은 3200만 원이 된다(30-3+5=32).

 

수요가 적을 때는 첫해에 80만 원의 수익을 얻는다. 공장을 폐쇄하지 않고 계속 운영하면 3000만 원의 이익이 난다. 공장을 폐쇄하면 공장 폐쇄에 50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공장을 매각하면 600만 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때 리얼옵션의 논리에서 보면 당연히 공장 폐쇄로 결정이 날 것이다. 이때 총수익은 630만 원이다(6-0.5+0.8=6.3). 이렇게 리얼옵션을 이용해서 결정한다면 리얼옵션을 이용했을 경우의 가치는 다음과 같이 계산할 수 있다. 여기서 이자비용(cost of capital) 10%로 본다. 일단 1000만 원의 투자가 있었으므로 이는 비용으로 본다. 나머지 과정을 확률에 따라 계산해서 가치를 측정하면 NPV=-10+[(0.75x32)+(0.25x6.3)]/1.10=13.25과 같다. 1325만 원의 투자수익이 생긴다.

 

하지만 같은 투자를 현재가치 계산법으로 계산한다면 이 경우에는 초기 투자 시 모든 결정이 이뤄진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므로 공장의 확장이나 폐쇄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이때는 NPV=-10+[(0.75x20)+(0.25x3.8)]/1.10=4.5. 이 회사가 현재가치 계산법으로만 투자가치를 계산해서 450만 원의 기대수익으로는 새로운 제품을 생산할 가치가 없다고 결정했다면 사실은 1325만 원의 수익을 낼 수도 있었던 제품을 생산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 차액은 13.25-4.5=8.75, 875만 원이다. 이것이 리얼옵션적 계산방식을 적용했을 때와 현재가치 계산법을 적용했을 때의 차이다.6 즉 리얼옵션 방식을 이용하면 어떤 경우에는 접지 말아야 했을 사업을 접지 않고 크게 수익을 낼 수 있다. 이런 리얼옵션의 마인드는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될까?

 

Capital One Bank

미 제약회사들의 리얼옵션 전략

1987년 미국에는 약 400개의 은행들이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있었는데 상위 10개 은행들이 총 시장의 43%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신용카드 사업은 일반 은행들의 다른 사업보다 3배 정도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사업이었으므로 은행 간 경쟁이 상당히 심했다.7  Capital One Bank는 이처럼 경쟁이 심한 신용카드 사업에서 후발주자였지만 궁극적으로는 크게 성공을 거뒀다. Capital One Bank가 고객정보 수집과 사용에 뛰어났다는 강점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덕분에 Capital One Bank는 이 산업에서 주요 은행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더불어 후발주자였던 Capital One이 성공적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 요인은 다름 아닌 리얼옵션이었다.

 

당시 많은 신용카드 발급 은행들은 신용등급에 중점을 두고 카드 발급 여부를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기존 은행들은 신용 정보가 없거나 낮은 경우(예를 들면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은 신용 점수를 주는 것이 당시 통계상 또는 통념상으로 당연시됐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따라서 기존 은행들은 이렇게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사람들에게는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않았다.

 

기존 은행들이 자신들의 방식에 묶여 고위험군에 속한 잠재 고객들에게 신경 쓰지 않는 동안 Capital One은 이 사람들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을 공략했을까?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를 구분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때 Capital One은 이 사람들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하되 그 한도를 아주 낮게, 예컨대 몇 백 달러 정도로 잡았다. 이들 중 신용점수를 높이고 싶은 사람은 어렵게 발급받은 카드인 만큼 어떻게 해서라도 정해진 날짜에 쓴 금액을 갚았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쓴 돈을 갚지 않았고 Capital One은 이들에게는 다시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점점 고위험군에 있는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이 카드로 이용한 금액을 잘 갚는지 알게 됐고, 그런 사람들 위주로 신용카드를 발급하면서 시장을 확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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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후발주자로서 이런 전략이 선발주자에게 알려지고 경쟁력을 갖추기 전에 선발주자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면 경쟁에서 밀릴 수 있으므로 광고를 자제하는 전략을 썼다. 고위험군 중 좋은 고객으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친구에게 신용카드를 발급받게 하면 약간의 인센티브를 주는 형식으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유유상종이라고, 신용도가 좋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과 주로 어울린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그래서 Capital One Bank는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잠재고객군에서 시장점유율을 상당히 확보하기 전까지 기존 업체들에서 견제를 받지 않았다. Capital One이 고위험군 시장에서 우뚝 선 후 다른 은행들이 같은 고객군에 눈을 돌렸지만 이미 상당한 정보를 확보하고 이들에게 접근하는 Capital One과는 경쟁이 되지 않았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고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은 은행에 미지의 세계다. 이들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불확실성을 끌어안는 일이다. 그런데 리얼옵션에 의하면 불확실성이 클 때 하방 위험(downside risk)을 줄이면 상방 가능성(upside potential)이 높은 한 이익을 낼 수 있다. 상방 가능성(upside potential)은 불확실성이 크면 클수록 옵션 소유주에게 이익을 준다. 하방 위험은 제한적인 반면 상방 가능성은 무제한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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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카드 사용 한도를 아주 낮게 책정해서 하방 위험을 제한하면 얼마의 사람들이 카드금액을 갚지 않더라도 은행 전체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은 아주 낮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카드 금액을 갚을 것이므로 상방 가능성은 아주 높다.

 

 

 

 

 

 

여기에 고위험군 고객에 대한 정보를 확보해서 좋은 고객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은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요인이다. 어떤 고객이 좋은 고객일 가능성이 높은지를 예측할 수 있고, 좋은 고객군으로 분류된 사람의 친구가 좋은 고객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활용하면 단지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리얼옵션에서는 복합옵션(compound option)이라고 한다. 옵션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점차적으로 줄어들면서(정보가 점점 많아지면서) 불확실성이 줄어들 때마다 옵션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제약회사에는 규모가 큰 회사가 많은데 이들은 약을 상품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기 때문에 R&D에 투자하기는 하지만 신약 개발에 있어서는 Biotech 기업들에 비해 떨어진다. 반면 비교적 사이즈가 작고 신생 기업들인 Biotech 기업들은 신약 개발에 적극적인 데 비해 자체 상품화에 약하다.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많은 Biotech 회사 중에 어떤 회사가 미래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할지 알 수 없다. 이미 신약이 개발된 후에는 해당 Biotech 회사와 함께 일하고자 하는 제약회사가 많아져서 경쟁이 심해지고 이익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하면 불확실성이 높을 때는 성공 가능성이 낮지만 약 가격이 아직 정해지기 어려우므로 가능성을 먼저 보는 제약회사가 우위에 선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 Biotech 기업은 제약회사 입장에서 힘든 상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 제약회사들은 신생 Biotech 기업이 생기면 일정 금액을 투자해놓고 계속적으로 신약 개발 추이를 추적한다. 그리고 신약 개발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될 때 해당 Biotech 기업을 인수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10 여기서 약간의 투자는 리얼옵션을 사는 가격이고 가능성이 높아진 시기는 옵션을 행사할 타이밍이다. 물론 이때 옵션 행사가격은 인수합병을 위한 비용이다. 약간의 투자로 하방 위험성은 제한된다. 많은 Biotech 기업들이 인수합병 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하더라도 몇 개의 Biotech 기업에서 개발된 신약이 후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리얼옵션 마인드로 볼 때 아주 좋은 투자인 셈이다.11 이런 경우를 리얼옵션 번들(bundle of real options)이라고 한다.

 

리얼옵션 전략은 다른 많은 산업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성공 확률이 낮고 위험성이 큰 유전 개발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British Patroleum(BP)은 처음에는 탄성파 탐사(seismic survey)를 통해 유전이 있을 가능성을 타진하고 가능성이 낮으면 그 단계에서 그만두는 반면 가능성이 높으면 시추(exploratory drilling)를 시작한다. 그런 후 좀 더 가능성이 확실해지면 본격적인 시추(appraisal drilling)에 나선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확실해지면 전면 유전 개발에 들어간다.12

 

기술 개발을 핵심 역량으로 하는 기업들에도 리얼옵션적 사고는 큰 이익을 줄 수 있다. 기술 개발의 단계별로 계속 수행할지, 그 단계에서 멈출지를 결정하는 것이 대표적인 리얼옵션적 사고이기 때문이다.13

 

DVD 이후 차세대 매체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소니와 도시바의 사례에 리얼옵션 전략을 대입해 볼 수 있다. 소니는 블루레이 디스크를, 도시바는 HD-DVD를 앞세워 경쟁했는데 어떤 매체가 시장에서 호응을 얻어 승자가 될 수 있을지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었다. 당시 삼성은 양쪽 모두에 일정 금액을 투자했다가 블루레이의 승리가 확실시됐을 때 HD-DVD를 포기하고 블루레이에 집중한 바 있다. 이는 리얼옵션적 마인드에서 내려진 의사결정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14

 

불확실한 상황에서 유용한 리얼옵션 전략

어느 이론이나 마찬가지로 리얼옵션 전략에도 한계점이 있다. 특히 리얼옵션 전략은 재무기법에서 시작된 것이라 기업의 역량에 대한 전제나 이론적 배경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재무에서 말하는 옵션에서는 어느 기업이나 같은 조건에서 옵션을 갖고 있다면 이것을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상대적으로 분명하다. 하지만 리얼옵션에서는 이런 내용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리얼옵션을 행사할 때는경쟁이라는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한다는 점에도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의 역량과 그에 따른 경쟁에서의 위치 등을 고려해야 리얼옵션을 성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보자. Capital One Bank의 예에서는 리얼옵션을 이용해서 고위험군에 속한 잠재고객들을 공략한 방법을 소개했는데 당시 이런 전략이 기존의 거대 은행들에게 알려지면 경쟁우위를 쉽게 잃을 수 있다. 리얼옵션적 사고를 잘 이용해서 Capital One Bank가 고위험군 고객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거대 은행들이 얼마 안 돼서 같은 기법으로 고객들에게 다가간다면 Capital One Bank는 사실 다른 은행들에 좋은 일만 한 셈이 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리얼옵션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기법이 다른 기업들에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Capital One Bank는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서지 않고 메일을 통해 또 다른 잠재고객들에게 접근했다. 이런 전략을 유도 전략이라고 한다. 유도의 원리는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강할수록 내게 더 큰 힘이 된다. 기존 거대 은행들은 이미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작은 신생 은행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는 너무나 확실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닌 이상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간파한 Capital One Bank는 저자세로 메일을 통한 영업에 집중했으며 이후 확연히 경쟁우위를 확보했을 때에야 비로소 좀 더 공격적으로 나갔다. 이처럼 리얼옵션적 사고가 성공적으로 사용됐다고 할지라도 그 성공이 지속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경쟁자에게 그 기법을 숨기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Capital One Bank의 예에서와 같이 만약 자사의 리얼옵션적 마인드에서 나온 기법을 다른 기업들이 순식간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불확실한 상태는 경제 주체들이 어느 한쪽으로 몰려 이동하다 보면 확실한 어떤 상태로 고정돼 버릴 수 있다. 예컨대고위험군에 속한 고객은 불확실성이 크므로 이들에게는 신용카드를 발급해서는 안 된다는 업계의 상황이고위험군에 속한 고객도 잘 관리하면 불확실성이 크지 않다는 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리얼옵션 전략에 이 같은 상황 변화는 불리하다. 이처럼 리얼옵션 전략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면에서의 관점들을 보완적으로 염두에 둬야 한다.

 

 

 

아울러 어느 이론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리얼옵션도 항상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불확실성이 낮은 환경에서 리얼옵션은 득보다 해가 될 수 있다. 리얼옵션적 유연성(flexibility)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미래가 확실하다면 이것저것 조금씩 투자하기보다는 전력을 다해 하나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이럴 때는 리얼옵션적 사고가 어느 한쪽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소니의 블루레이 디스크와 도시바의 BD-DVD 중 어느 쪽이 승자가 될지 모를 때는 당연히 두 가지 모두에 어느 정도 투자하는 편이 도움이 되겠지만 이미 블루레이 디스크가 승자로 굳혀진 후라면 두 가지 모두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리얼옵션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옵션을 언제 행사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점이다. 주식 투자에서의 옵션은 가격이 확실하게 나오기 때문에 결정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실물옵션에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아서 이번이 진짜로 옵션을 행사해야 할 기회인지, 아닌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회사가 같은 기회를 보고 있다면 본의 아니게 옵션을 미리 행사해서 낭패를 볼 수도 있다(premature exercise of options).15 예를 들어 어떤 제약회사가 Biotech 기업을 인수할 때 아직 성공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지만 다른 기업이 먼저 인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에 성급히 인수해버린다면 궁극적으로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불확실성이 완전히 걷히지 않았더라도 옵션을 행사하는 것이 좋은 때는 언제일까?

 

중국 시장이 개방에 성공할지, 아닐지 모르던 때 미국 프랜차이즈 레스토랑들은 중국 시장을 주목하면서도 선뜻 투자에 나설 수가 없었다. 먼저 들어가는 기업이 성공하면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아예 철수해야 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이럴 때는 중국 시장의 가능성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만약 경쟁사가 나보다 먼저 이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우리 기업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경쟁사에 비해 훨씬 비교우위에 있다면 어느 정도 기회를 잃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월등하게 우월한 지위를 갖고 있다면 그 시장에 나중에 들어가더라도 기업 평판과 재력으로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사에 비해 비교 열위에 있다면 통상 위험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다시 말해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행동은 한 기업이 경쟁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1989년에 무너지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무너지거나 자본주의를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때 KFC 1987년 미국 프랜차이즈 업체로는 처음으로 중국에 투자를 했다. 당시 맥도날드는 3년 뒤인 1990,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 해에야 중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에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하면 가장 먼저 맥도날드를 꼽는다. KFC 2인자 또는 3인자였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KFC는 맥도날드보다 위험을 더 감수해야 한다. 맥도날드는 KFC가 성공하는지, 아닌지를 보고 난 이후 행동해도 충분히 승부를 뒤집을 수 있다.16 KFC가 먼저 동독 시장에 진출하고 맥도날드가 그보다 한참 뒤에 진출한 사례는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미국에 처음으로 생산공장을 세운 일본 자동차업체가 일본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도요타가 아니라 당시 창립한 지 11년밖에 되지 않는 혼다였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17

 

이처럼 자신의 위치를 경쟁자와의 관계에서 파악한 후에 아직 불확실한 기회에 도전할 것인지, 기다릴 것인지를 결정한다면 리얼옵션만 고집해서 경쟁구도를 인식하지 못하는 일을 보는 일은 적을 것이다. 다시 말해 본의 아니게 옵션을 미리 행사하면 낭패를 볼 수 있지만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비교 열위에 있는 기업들이 오래 기다리는 것은 비교 우위에 있는 기업에 선제권을 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불확실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오늘날 기업 환경에서 리얼옵션적 사고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리얼옵션적 사고방식을 기억하되 이 전략이 갖는 단점과 한계를 잘 보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승현댈러스 텍사스대 경영학과 교수 lee.1085@utdallas.edu

필자는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의 선임 편집위원장을 비롯해등 여러 저널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 이승현 | - (현) 댈러스 텍사스대 경영학과 교수
    - 한미경영학회(Association of Korean Management Scholars)회장
    lee.1085@utdallas.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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