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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를 통해 본 세상 47

완벽히 이해하고 투자해도 수익내기 어려운데...

최종학 | 146호 (2014년 2월 Issue 1)

 

 

 

편집자주

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회계를 통해 본 세상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2013년 이후 다수 기업들이 경기침체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여전히 지속 중이다. 2008년부터 미국은 엄청난 규모의 달러를 풀었고 최근에는 일본도 엔화 찍어내기에 주력하고 있다. 그 결과 전 세계가 달러화로 표시되는 농산물이나 자원 가격의 급등으로 고통받았다. 한국도 원화 가치가 계속 오르는 원고 현상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처럼 자원도 부족하고 외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도 많지 않은 나라는 수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환율 변동이 심하면 수출기업들에 타격이 크다. 환율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환 헤지(hedge, 위험회피) 관련 전문 인력을 두고 은행과 계약을 통해 환 헤지 상품을 이용한다. 중소기업은 상황이 다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환율 변동에 더 민감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큰 피해를 안긴 키코(KIKO·Knock-In Knock-Out)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은행 직원들이환 헤지라는 말만 꺼내도 손사래를 치고 쫓아내는 중소기업인이 아직 많다. 키코에 대한 두려움으로 환 헤지를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더 큰 손실 가능성을 안고 가는 셈이다.

 

한국 중소기업들에 큰 충격을 안겼던 키코란 도대체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은행과 맺는 계약은 통화 선도(currency forward) 계약이다. 이 계약은 일정 기간 동안 기업이 은행에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화를 지급하고 은행은 기업에 원화를 지급하는 구조다. 달러화와 원화의 교환 비율은 사전에 계약을 체결할 때 고정된다. 즉 실제 환율이 어떻게 변하는지와 관계없이 예컨대 1달러당 1000원으로 달러당 원화 지급액이 고정된다. 실제 환율이 1달러당 1100원이 되면 기업은 수출대금으로 받은 1달러를 시장에 팔아 1100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통화선도 계약에 따라 은행으로부터 1000원만 받을 수 있으니 100원 손해를 본다. 반대로 환율이 1달러당 900원이 되면 기업은 계약에 따라 1000원을 받을 수 있으니 100원 이익이다. 즉 환율 변동에 따른 손익 변동 위험이 기업에서 은행으로 전가되면서 기업은 1달러당 항상 1000원을 받는다. 대신 기업은 은행에 사전에 정해진 수수료를 낸다.1

 

은행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다 부담하는 데 비해 약소한 수수료만 받으니 언뜻 생각하면 은행에 상당히 불리한 계약처럼 보인다. 그러나 은행은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은행에 팔려는 수출기업 A, 수입대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달러를 은행에서 매입하려는 수입기업 B와 동시에 통화선도 계약을 맺어서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은행은 양쪽으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A B를 연결하는 중개기관 역할을 하는 셈이다.

 

통화선도 계약의 구조

 

통화선도 계약의 구조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그림 1>과 같다. 이 예에서 은행과 기업의 환율 계약은 1달러당 1000원으로 고정돼 있다. 수출기업은 환율이 1달러 대 1000원을 넘어서 1100원이 되면 같은 양을 수출하더라도 100원을 더 벌 수 있으니 원화가치가 하락할수록 이익이다. 반대로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같은 양을 수출해도 받을 수 있는 원화 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에 손해다. 이를 그림으로 표시한 것이 패널A.

  

 

이런 손익 변동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그림 1> 패널B와 같은 구조의 계약을 은행과 맺으면 된다. 이 계약은 환율 변동에 따른 손익 변동 위험이 패널A와 정확히 반대로 움직인다. 즉 환율이 달러당 1100원이 되면 기업은 계약에 따라 1000원을 받으니 100원 손해다. 반대로 환율이 달러당 900원이 되더라도 기업은 계약에 따라 1000원을 받으니 100원 이익이다. 따라서 패널A와 패널B를 합하면 환율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기업의 손익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계약을 공짜로 체결할 수는 없다. 기업은 은행에 원화로 수수료를 지급한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패널C. 패널A, B, C를 모두 합하면 패널D가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패널C에서처럼 일정한 수수료만 지불하면 패널D에서처럼 환율 변동의 위험에서 해방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정보나 지식이 부족해서 통화선도 상품을 알지 못하거나 패널C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또는 지급할 능력이 없어서 가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환율 변동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특히 요즘처럼 원고 현상이 지속되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이런 기업들은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키코 계약의 구조

 

키코는 환 헤지를 위한 통화선도 상품과 구조가 매우 다르다. 키코는 일반적으로 약정 환율과 환율 변동의 상한(Knock-In) 및 하한(Knock-Out)을 정해놓고 환율이 일정한 구간 안에서 변동하면 약정 환율 또는 만기 시 환율을 적용받는다. 대신 환율이 하한 이하로 떨어지면(Knock-Out) 계약을 무효로 하고, 상한 이상으로 올라가면(Knock-In) 계약에 따라 약정금액의 1∼2배를 약정환율 또는 만기일의 시장 환율로 매도한다. 키코라는 이름은 여기서 비롯됐다. 환율이 일정 범위 이하로 떨어져서 Knock-Out 되면 환 헤지 효과가 없어져서 손실을 입는다. 반대로 환율이 일정 범위 이상으로 올라가서 Knock-In 되면 약정액 외에 추가의 달러 금액을 오른 환율로 매입해서 은행에 매도해야 하므로 손실이 발생한다.

 

전형적인 키코 상품의 계약구조를 요약한 것이 < 1>이다. < 1>의 계약내용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그림 2>의 패널B와 같다. <그림 1>의 패널A에서처럼 환율이 변할 때 기업의 손익이 바뀌는 모습은 <그림 2>의 패널A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이 패널B와 같은 키코 계약을 체결하면 기업의 전체 손익은 패널A B를 합한 패널C와 같은 형태가 된다. 이 예에서 Knock-In 환율은 1070, Knock-Out 환율은 930원이므로 패널C를 보면 환율이 930원 이하로 떨어지거나 1070원 이상이 되면 기업에 손실이 발생한다. 특히 환율이 1070원 이상으로 오르면 약정 금액의 두 배에 해당하는 달러를 매도해야 한다는 계약 조건 때문에 그래프의 기울기가 더 가팔라진다.

 

원화 가치가 절상돼서 환율이 달러당 930원보다 낮아졌을 때 발생하는 손실은 환 헤지를 하지 않은 패널A의 상황과 키코를 구입한 패널C의 상황이 거의 비슷하다. 환율이 달러당 930원에서 1000원 사이일 때 키코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면 손실이 발생하지만(패널A), 키코에 가입하면 손실이 키코 계약을 통해 상쇄되기 때문에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패널C). 원화 가치가 하락해서 환율이 달러당 1000원에서 1070원 사이에서 변할 때 발생하는 이익은 패널A의 상황과 키코를 구입한 패널C의 상황이 유사하다. 반면 원화 가치가 급락해서 환율이 1070원을 넘어가면 키코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많은 이익을 얻었겠지만 키코에 가입했다면 매우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즉 키코를 구입하면 키코를 구입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할 때 손실을 보는 환율 변동의 영역이 더 넓어진다. 그 대가로 환율이 달러당 930원에서 1000원 사이의 구간에서 환 헤지 효과를 보고 환율이 달러당 1000원에서 1070원 사이의 구간에서 소폭 이익을 보는 셈이다.

 

패널C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듯 키코는 환율이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Knock-Out 환율인 달러당 930원과 Knock-In 환율인 달러당 1070원 사이에서 움직일 때는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거나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특정 구간을 넘어서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원화 가치가 평가절하되면서 Knock-In 수준을 넘어 크게 오르면 약정액보다 더 많은 달러를 은행에 매도해야 하므로 기업은 시중에서 비싼 값에 달러를 사야 하고 손실 규모가 더욱 커진다.

 

태산LCD의 키코 손실 사례

 

만약 키코 상품의 계약이 공정하다면 환율 변동에 따라 기업이 얻는 이익이나 손실이 비슷해야 한다. 하지만 환율이나 파생상품 비전문가가 보더라도 <그림 2>의 패널C를 보면 환율이 오른편 끝이나 왼편 끝으로 변할 때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손실이 상당히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7년과 2008년 당시 원화가치가 급락하면서 환율이 그림에서 오른편 끝으로 움직였다. 기업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기업들이 입은 손실은 4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500개 정도의 기업이 피해를 봤으므로 평균 80억 원 정도의 손실을 냈다고 볼 수 있다. 중소기업에 80억 원이란 엄청난 규모다.

 

키코로 가장 큰 손실을 본 회사는 태산LCD. 태산LCD는 전체 매출액의 90% 이상을 외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태산LCD 2006년까지 매출액의 일정 비율에 대해 은행과 통화선도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 매입액 중 일부가 외화로 결제되므로 외화매출액 전체에 통화선도 계약을 맺을 필요는 없고 환율 변동에 노출되는 매출액과 매입액의 차액만큼만 통화선도 계약을 맺으면 된다.

 

태산LCD 2007년 여러 은행과 키코 계약을 체결했다. 2007년에는 환율에 큰 변동이 없었고 Knock-Out 구간과 Knock-In 구간에서 움직였으므로 태산LCD는 약간의 이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들어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환율이 달러당 1500원선까지 급등했다. 환율은 Knock-In 구간을 넘어섰고 태산LCD 2008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75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2007년 말 기준 태산LCD의 총자산이 2000억 원, 자본이 600억 원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7500억 원의 손실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08 1분기에 발생한 손실은 130억 원이었다. 그런데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추가 계약을 체결하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태산LCD 경영진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하나은행과 계약기간이 36개월인 144000만 달러 규모의 PIVOT(피봇) 계약을 맺었다. 피봇은 키코와 유사하지만 환율 변동에 따라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손익의 변동이 키코보다 더 큰 파생상품이다. 피봇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너무 복잡하므로 생략한다. 결과적으로 피봇의 계약구간을 넘어 환율이 변동하면서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태산LCD는 파산하고 2008 10월 채권단의 공동관리 상태로 넘어갔다.

 

태산LCD 2008년 한 해, 2200억 원의 파생상품 거래손실과 5300억 원의 파생상품 평가손실을 입었다. 거래손실과 평가손실은 어떻게 다를까. 예를 들어 매년 1231일 은행에 1000만 달러를 지급하고 대신 달러당 1000원을 받기로 하는 계약을 2008년 초 체결했다고 하자. 계약기간은 3년이다. 2008 12월 말 환율이 달러당 1300원이라면 회사 입장에서는 달러당 1300원이 아니라 1000원밖에 받을 수 없으니 달러당 300원의 손실이 생긴다. 1000만 달러를 결제해야 하므로 총손실액은 300 Ⅹ 1000만 달러, 30억 원이다. 이렇게 발생한 30억 원의 손실은 이미 2008년에 발생한 것이므로 파생상품 거래손실이라고 한다. 향후 달러당 1300원의 환율이 계속된다면 남은 계약기간인 2년 동안 1000만 달러를 결제할 때마다 연간 3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렇게 미래에 예상되는 총손실 60억 원을 파생상품 평가손실이라고 한다.

 

60억 원은 지금 당장 은행에 지불해야 하는 손실은 아니지만 미래 기간 동안 현재 환율이 지속된다면 매년 말 은행에 30억 원씩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 환율이 2009년 달러당 1250원으로 변한다면 2009년 손실은 25억 원이 된다. 즉 파생상품 거래손실은 확정된 손실이며 파생상품 평가손실은 추정된 손실이다. 2009년분 손실 30억 원과 2010년분 손실 30억 원을 미리 2008년 재무제표에 추정손실로 기록했는데 2009년 환율이 1300원이 아닌 1250원이라면 25억 원만 지급하면 되므로 2009년에는 10억 원의 파생상품 평가이익이 발생한다. 2009년분에 대해 발생한 5억 원 이익과 2010년분에 대한 5억 원 예상이익의 합계다. 실제로 키코 때문에 2008년 동안 파생상품 평가손실을 기록했던 많은 기업이 2009년 환율이 안정되면서(원화 강세가 되면서) 파생상품 평가이익을 기록한 바 있다.

 

출자전환과 채무조정을 통한 태산LCD의 생환

 

2009 1월 채권 은행들은 태산LCD가 키코 관련 손실을 제외하면 건실한 기업이므로 청산절차를 밟기보다는 계속 회사를 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정부 측에서도 세계 금융위기 직후라는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기업을 적극 돕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으므로 은행들이 태산LCD 등 키코 손실을 입은 기업들을 돕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주 거래 은행인 하나은행 및 다른 은행들은 태산LCD의 키코 관련 채무의 상당 부분인 총 4750억 원 정도를 2009년 출자전환했다. 또한 잔여 채권 행사기간을 2013년 말까지 유예하고 단기 대출은 중장기 대출로 전환하며 이자율을 낮추는 등 상당한 지원을 결정했다. 2010년에도 약 1400억 원을 추가 출자전환했다. 그 결과 태산LCD의 최대 주주는 하나은행으로 변경됐다.

 

태산LCD가 상장된 코스닥 시장에서도 태산LCD 2년간 상장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태산LCD가 상장 폐지될 위험을 지연시킨 것이다. 은행과 거래소뿐 아니라 태산LCD의 주 거래 기업인 삼성전자도 태산LCD를 돕기 위해 나섰다. 삼성전자는 2009 4월부터 삼성전자의 LCD모듈 일부를 태산LCD에 위탁 생산했다. 여러 도움이 모이면서 회사는 2009년부터 흑자전환했고 2010년까지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 후 다시 적자에 빠지면서 2013년 말 파산했다. 키코의 악몽을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2008년 당시 태산LCD가 인식한 손실은 대부분 하나은행을 포함한 여러 은행으로부터 구입한 키코 및 피봇 때문이다. 하지만 태산LCD가 입은 손실만큼 하나은행이 이익을 본 것은 아니다. 하나은행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은행들은 키코 상품을 판매한 후 약간의 수수료만 받고 이를 다시 외국계 금융사에 매각했다. 즉 대부분의 국내 은행은 태산LCD와 외국계 금융사를 연결하는 중개자 역할만 했다. 결과적으로 태산LCD와 직접 외환 거래를 하는 금융사는 하나은행이 아니라 하나은행으로부터 계약권을 구입한 외국계 금융사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키코는 국내 은행이 개발한 것이 아니라 외국 금융사들이 개발해 국내 은행들을 상품 판매 대리인으로 활용한 것이다. 외국의 유명 투자은행들이 한국 은행들을 설득해서 판매 대리인으로 활용하고 키코가 얼마나 위험한지 판단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한국 은행들이 약간의 수수료를 벌기 위해 중소기업들에 판매한 것이다.

 

태산LCD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자 이 상품을 외국계 금융사에 인도한 하나은행이 계약조건에 따라 부채를 떠안게 됐다. 그 결과 하나은행은 태산LCD와의 거래 때문에 무려 2861억 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하나은행 입장에서는 키코 판매로 약간의 수수료만 얻었을 뿐인데 그 결과로 이렇게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은 엄청난 타격인 셈이다.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하나은행뿐만 아니라 국내 다른 은행들도 키코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봤을 것이다. 결국 외국계 금융사들만 상당한 이익을 챙기고 국내 기업과 은행 모두 큰 피해를 입은 셈이다.

 

키코 피해를 둘러싼 논란과 소송전

 

2008년 당시 제이브이엠, 디에스엘시디, KPX화인케미칼, 모나미, 수산중공업, 성진지오텍, 대창공업 등 다수 건실한 중소기업들이 키코 상품에 가입했다가 최소 수십억 원에서 최대 수천억 원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 이들은 공동으로 단체를 만들어서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동시에 키코 상품이 무효라며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이들 기업이 키코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복잡한 거래 내용을 잘 알지 못한 채 은행 직원들의 설명만 듣고 안전한 상품으로 오해해서 가입했으므로 불완전 판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키코 가입을 권유한 은행 직원들은 자체 성과평가 기준에 키코 상품 판매액이 포함됐기 때문에 거래하는 기업들에 키코 가입을 권유할 인센티브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파생상품은 구조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키코를 판매한 은행 직원들의 절대 다수도 키코의 위험성을 잘 알지 못했고 이를 구입한 기업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손해를 본 기업의 절대 다수는 중소기업이며 이들은 환 위험이나 파생상품에 대한 전문가를 직원으로 채용할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은행 직원들이 권유만 듣고 키코를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언론 보도를 보면 몇몇 기업들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면 키코에 가입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키코를 구매했다고 한다. 기업들은 상품 자체가 기업이 이익을 볼 가능성이 별로 없고 상당한 손실을 볼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은행에 절대 유리한 불공정한 상품이라고 주장했다. 상품 구조가 이런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키코를 사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기업 측의 주장과 어려운 형편 등이 보도되면서 은행들은 여론 및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계약은 계약이라며 기업들이 계약에 동의해서 상품을 구입한 후 손해를 보자 계약을 취소해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정부의 유도 또는 압력에 따라 은행들은 태산LCD의 사례처럼 조금씩 양보하면서 키코 피해를 입은 회사들을 파산시키기보다는 회생시키려고 했다.

 

기업들과 은행들의 다툼은 곧 소송전으로 번졌다. 2008 8, 오토바이를 제작해서 수출하는 S&T모터스가 처음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 후 수산중공업 등 97개 기업들이 연합해 13개 시중 은행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들은 공청회와 규탄대회를 열기도 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엥글(Robert Engle) 미국 뉴욕대(New York University) 재무관리 교수를 초빙해서 법정에 증인으로 세웠다. 그는키코는 기업들이 환 헤지를 한 것이 아니라 은행들이 환 헤지를 한 불공정 거래키코 구조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기업들은 키코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엥글 교수와는 별도로 국내 학자 5명이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서도 과거 환율 변동에 따라 은행이나 기업이 키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나 손실을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키코는 은행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공정한 상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은행 측은 재무관리 분야의 또 다른 전문가인 스테판 로스(Stephen Ross) MIT 교수를 초빙했다. 로스 교수는필요한 금액보다 과다하게 외화 파생상품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볼 때 기업들은 환율 변동을 통해 이익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도박을 한 것이며 키코의 손익구조는 은행과 기업 모두 알 수 있으니 모두에게 공정한 상품이라고 증언했다. 또한만약 필요한 달러만큼만 키코 계약을 했다면 환율 변동으로 실물 자산에서 손실이 발생했을 때 키코 계약을 통해 그것을 만회할 만한 이익이 발생한다. 반대로 환율이 변해서 키코 계약에서 손실이 발생했다면 실물 자산에서 이익이 발생해 전체적으로는 손익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내 학자 5인이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서는이 결과는 키코 체결시점이 아닌 과거 10년 동안의 환율 변동을 이용해 시뮬레이션한 것으로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던 1997년과 1998년 자료가 포함되므로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즉 키코 계약이 체결되던 2006년이나 2007년 시점의 환율과 변동성은 별로 크지 않았으므로 환율이 정해진 구간을 벗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아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치열한 공방 끝에 대부분의 재판에서 법원은 은행 편을 들어 기업들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은행들이 고지 의무를 위반해 불완전 판매가 발생한 것에 증거가 있는 사건에서는 기업들이 전부 또는 일부 승소한 경우도 발생했다. 예를 들어 2013년 서울 중앙지법 민사부는 코텍, 엠텍비젼, 테크윙 등 기업들이 청구한 소송에서 은행들이 피해액의 60∼70%를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소송에서 패소한 기업들은 대법원에 상고할 예정이고 패소한 은행들도 역시 상고할 것이므로 소송전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당시 키코와 유사한 사건은 한국에서만 발생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등 아시아 및 멕시코, 브라질, 이탈리아, 폴란드 등 세계 각국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외국에서는 키코가 아닌 TARN(Target Accrual Redemption Not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나라들은 환율 변동에 민감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우리나라처럼 많은 기업들이 엄청난 피해를 봤다.2 마찬가지로 이 계약을 통해 이익을 본 당사자는 주로 미국이나 서유럽의 투자은행들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기업들이 불완전 판매 등의 이유로 소송을 걸어 일부 승소한 사례도 많다. 하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업들이 전부 승소하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일본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해서 은행과 기업이 손실을 50%씩 분담하는 것으로 타협했다고 한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 은행들은 개인 주주들 소유가 아닌 집단 소유이므로 정부의 중재가 통했을 것이다.

 

소송이 진행 중인 민감한 문제에 필자가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이번 사건을 통해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 간단히 핵심만 요약하도록 하겠다. 필자는 키코에 대해합리적인 사람이 구조를 제대로 알았다면 절대 구매하지 않았을 불공정한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전술한 것처럼 키코 계약을 통해 기업이 얻는 기대이익보다 기대손실이 월등히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복잡한 내용들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게재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후 나중에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몇몇 기업들은 실제 필요한 규모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기준으로 키코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필요한 금액만큼만 키코 상품에 가입했지만 2007년 동안 환율이 정해진 구간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이익을 얻자 이익을 더 많이 얻으려고 환 위험에 노출되는 금액보다 더 많이 추가 계약한 것이다. 반대로 2008년 약간의 손실을 보자 손실을 만회하려고 다른 키코 상품이나 키코보다 더 위험한 도박인 피봇에 가입하기도 했다. 이럴 때는 환 헤지가 아닌 환 투기 목적으로 키코에 가입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키코 상품의 구조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황에서(즉 은행이 고지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증거가 있으며 회사 내 환 전문가가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 환 노출 규모만큼만 키코를 구입한 것이 아니라면 법원이 키코 계약이 무효라는 기업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기업들이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은행이 고지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3  또는 은행들이 다른 조건을 내걸어서(예를 들어 은행들이 대출의 부대 계약으로 키코 가입을 강요하는 등) 어쩔 수 없이 키코 계약을 체결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세계 최고의 투자자로 유명한 워런 버핏이 꼽은 인수 대상기업의 조건 여섯 가지 중 다섯 번째는이해하기 쉬운 사업구조를 가진 회사다. 이 원칙에 따라 버핏은 자신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구조를 가진 회사에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 그는무지(無智)와 빌린 돈을 합쳐 투자한다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것에만 투자해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언제든지 실수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알 수 있는 것을 철저히 분석해서 자기 돈으로 투자하라는 말이다. 제대로 분석해서 자기 돈으로 투자해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잘 알지도 못하고 투자한다면 높은 수익률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다. 버핏은이해할 수 없으면 투자하지 말라고 했다.

 

 

버핏의 투자원칙을 응용해서 생각해보면 키코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주식뿐 아니라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은 구입하지 말아야 한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명심해야 할 원칙이다. 모르는 일은 하지 말고 하고 싶다면 우선 공부를 철저히 해서 그 일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 생겼을 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서류를 자세히 검토한 후 내용을 이해하고 나서야 서명해야 한다. 지금은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인 시대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마지막으로 키코를 판매한 은행들에도 승소나 패소 여부를 떠나 한 가지 충고를 전하고 싶다. 투자자들이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상품만 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판매자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상품을 팔아야 한다. 은행들이 키코 구조를 제대로 알았다면 고객들에게 구입을 권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파생상품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키코 구조를 살펴보면 키코 가입을 통해 고객들이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인지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탕하고 떠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런 상품을 고객에게 권유했을 리 만무하다. 몇몇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좋은 상품이라고 소개하니 심각한 고민 없이 일선 지점에서 키코를 팔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만약 이런 추측이 사실이라서 은행들이 의도 없이 한 일이라도 심각한 검토 없이 상품을 팔았다는 것은 큰 문제다. 자체적으로 이런 문제 많은 상품을 걸러낼 능력이 없다는 것도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만약 언론에 보도된 대로 몇몇 은행들이 일선 지점의 직원들에게 키코를 팔도록 하고 판매 실적에 따라 성과 평가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크게 잘못된 일이다. 본점에서 파생상품을 담당하는 소수의 직원이 아니라면 키코의 계약구조를 이해하지 못할 텐데 일선 지점 직원들이 판매하도록 지시한다는 것은 키코가 어떤 상품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팔도록 했다는 말이다. 많은 경우 불완전 판매가 일어났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증권사에서 펀드에 가입할 때도 해당 투자자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여러 설문을 거쳐 조사한 후에야 투자성향에 맞는 펀드에 가입하도록 한다. 그런데 펀드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위험한 파생상품을 파는데 그 상품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대충 설명한 채 구입을 권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니 관계당국에서 나서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파생상품 판매 규정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무너진 태산LCD를 다시 살려낼 수는 없더라도 제2, 3의 태산LCD가 나오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복잡한 공식이나 설명이 없어도 <그림 2>에서 키코에 가입하지 않았을 때의 환율변동에 따른 손익변화를 나타내는 패널A와 키코에 가입했을 때의 손익변화를 나타내는 패널C를 함께 보여준다면 파생상품을 잘 모르는 사람도 키코를 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은행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자.

 

고객에게 불리한 상품을 팔아서 내가 이익을 보는 것은 잠깐이다. 고객에게 불리한 상품을 판다면 해당 고객은 장기적으로 그 은행을 외면하고 다른 은행으로 옮겨갈 것이다. 고객이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품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은행에도 이익이 된다. 예를 들어 환율 변동 때문에 고민하는 중소기업에 통화선도 상품을 소개해서 가입시키는 것은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나 한 것이다. 은행들은 이런 종류의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은행뿐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에 해당된다. 판매자 관점에서 매출을 늘리려고만 한다면 매장이란고객에게 물건을 파는 장소일 뿐이다. 하지만 고객 관점에서 생각하면 매장이란고객님이 물건을 쇼핑하시는 장소. 어떤 관점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현상을 바라보는 눈이 전혀 달라진다. 주변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표현하지 않아도 내심 알고 있는 것처럼 고객들도 판매자가 어떤 마음으로 장사하는지 느낀다. 필자도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어떤 자세로 수업을 듣는지 느낄 수 있다. 진정 고객을 위한 마음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나 기업만이 장기 레이스에서 성공할 수 있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acchoi@sn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동시에 받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숫자로 경영하라> <숫자로 경영하라 2> <재무제표 분석과 기업가치평가>가 있다.

 

  • 최종학 최종학 |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accho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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