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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 실패한 IBM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최종학 | 53호 (2010년 3월 Issue 2)

언론에는 항상 유능한 경영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구원 등판한 최고경영자(CEO)가 회사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다 죽어가는 회사를 살렸다는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실린다. 그 경영자가 회사를 살린 비결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 바로 원가 절감이다. 사실 현업에 있는 사람들은 원가를 단 1%라도 절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원가 절감에 성공한 기업들이 이렇게 많을까? 원가 절감 비법 또한 천편일률적이다. 부품이나 반 제품을 아웃소싱하거나, 기존 납품 회사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우량 납품 회사 1, 2개에 물량을 몰아줌으로서 납품 원가를 줄였다는 내용이다.
 
원가 절감을 다루는 기사가 늘어남에 따라 아웃소싱으로 성공한 기업들의 사례도 종종 언급된다. 대표적 회사가 바로 델 컴퓨터다. 델은 독자적 기술을 개발해 사용하는 기업이 아니라 이미 다른 회사들이 개발해 상당한 시간 동안 쓰인 범용 기술을 집중 사용한다. 부품도 대부분 아웃소싱한다. 납품받은 부품을 조립, 생산, 배송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델은 개인용 PC 시장에서 한때 세계 1위 매출액을 기록했었다. 사실 델의 성공 비결은 주문 생산 및 판매상을 거치지 않는 직접 판매를 통해 생산 원가와 재고비용을 낮춰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고품질의 제품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게다가 소비자들이 주문한 제품을 거의 1주일 이내에 소비자들의 집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만든 우수한 배송 시스템도 한몫했다.
 
나이키는 본사에서 신제품 개발이나 마케팅, 디자인 등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제품의 생산 자체는 철저하게 아웃소싱만 한다. 나이키는 한국,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서로 다른 신발이나 의류 등을 공급받고 있다. 델이 납품받은 부품을 자체 공장에서 조립하는 방식보다 더욱 진보한 아웃소싱 형태다. 즉, 나이키 자체적으로는 제품의 생산 공장을 보유하지 않는다. 한국의 이랜드 그룹도 유사하다. 이랜드도 주력 제품인 의류를 대부분 하청 공장에서 생산하게 한다. 이랜드는 디자인과 원부자재를 하청 업체에 공급하고, 완성된 제품을 유통하는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
 
나이키나 이랜드보다 더욱 앞선 아웃소싱 체계를 갖고 있는 기업은 미국의 LCD-TV 유통 업체인 비지오다. 비지오는 2002년 등장한 신설 회사이지만, 낮은 가격을 앞세워 불과 몇 년 만에 미국 TV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다툴 정도로 상당한 명성을 확보했다. 비지오는 기획, 디자인, 마케팅 등의 업무만 담당하고 제품 자체의 생산, 배송, 애프터서비스 등을 모두 아웃소싱하는 업체로도 유명하다. 비지오는 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지 않았기에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이 필요한 평판 TV 업계에서도 원가를 대폭 줄인 업체로 살아남았다. 제품의 판매처도 일반 소매점이 아니라 대부분 할인 매장을 이용해 유통 마진을 줄였다. 고품질의 제품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접근, 성공을 이뤄냈다.
 
나이키와 델의 성공 이유가 단지 아웃소싱 때문일까
나이키와 델은 아웃소싱의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기업이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 이유가 단지 아웃소싱 때문일까. 나이키와 델은 각각 브랜드 가치와 유통망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아웃소싱을 단행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보는 게 적합하다. 즉, 제품 및 부품의 아웃소싱이 성공하려면 나이키처럼 첨단 기술을 계속 개발해서 기술력으로 앞서 나가면서, 막대한 광고비를 계속 투자해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 즉 브랜드를 가지지 못한 납품 업체가 독자적으로 시장을 넘보지 못하도록 브랜드 이미지나 한 단계 앞선 기술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아니면 델이나 이랜드처럼 유통망을 확실히 장악해야 한다. 유통망을 장악하지 않는다면 납품 업체가 저렴한 가격으로 비슷한 제품을 시장에 내놨을 때 필연적으로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야 한다. 저가를 경쟁 우위로 삼은 제품을 보유한 업체는 대부분 자사 제품보다 더욱 낮은 가격으로 물량 공세를 펼치는 제품에 의해 패배할 수밖에 없다.
 
과거 학계 연구자들이 소비자에게 나이키 브랜드가 찍힌 신발을 보여준 후 소비자들이 얼마를 낼 의향이 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이후 다른 사양은 똑같지만 나이키 브랜드가 없는 신발을 다른 집단의 소비자에게 보여주며 얼마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도 조사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나이키 브랜드가 없는 제품에 대해 나이키 브랜드가 찍힌 제품의 불과 30∼40% 정도의 가격만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브랜드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나이키가 이처럼 강력한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는 한, 나이키의 납품 업체가 아무리 낮은 가격의 제품을 들고 나온다 해도 나이키의 경쟁자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제껏 수많은 브랜드들이 나이키의 아성에 도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한때 반짝하다 사라져갔다. 이런 회사들이 판매하는 제품의 상당수는 나이키의 납품 업체가 만든다. 즉 나이키와 다른 회사의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동일하다. 즉 품질의 차이는 60∼70%의 소비자가 인식하는 가격 차이가 날 만큼 크지 않다. 그럼에도 나이키는 벌써 수십 년간 세계 최대 스포츠웨어 업체의 위치를 놓치지 않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나이키가 그만큼 브랜드 관리와 기술 개발에 힘썼기에 1위 탈환보다 더 힘들다는 1위 수성이 가능했던 셈이다. 아무리 세계 1위 업체라 해도 몇 년만 브랜드 관리와 기술 개발에 소홀하면 소비자들은 바로 그 브랜드를 외면한다.

한국이 자랑하는 상표였던 프로스펙스는 브랜드 관리에 소홀해 실패한 사례다. 한때 프로스펙스는 국내 고가 신발 시장에서 나이키와 치열하게 경쟁하던 유명 브랜드였다. 그러나 프로스펙스를 생산하던 국제상사가 파산하면서 수년 동안 브랜드 관리를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프로스펙스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혀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국제상사를 LS그룹이 인수하여 탄생한 LS네트웍스는 나이키와 직접 대결하기보다는 다른 전략을 택했다. 기능화라는 특수 시장을 공략하기로 하고, 특히 한국에서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 인구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에 착안하여 그에 알맞은 제품을 개발하였다. 이런 전략이 성공하여 프로스펙스 신발은 최근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델도 브랜드 가치 유지와 유통망 장악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다. 전 세계를 포괄하는 효율적인 인터넷 주문 시스템도 구축했다. 소비자가 델에 주문을 하는 시점부터 고객의 집에 컴퓨터가 도착하는 시간은 불과 1주일 정도다. 다른 회사도 비슷한 품질의 컴퓨터를 만들 수는 있지만, 델처럼 전 세계에 걸친 신속한 주문, 생산, 유통 시스템을 갖추지는 못한다. 이게 바로 델을 위협할 경쟁자가 아직도 없는 이유다. 아무리 경쟁 업체보다 낮은 가격을 내세운다 해도 주문 후 3∼4주가 지나야 제품을 받을 수 있다면 델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델은 R&D에는 별로 투자를 하지 않는다. 개발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 범용 기술이 된 기술들을 주로 사용한다. 때문에 델 컴퓨터 중에는 최첨단 사양의 컴퓨터가 별로 없다. 대신 델은 이렇게 절감한 R&D 비용으로 자사 제품의 판매 가격을 낮추고, 유통 속도의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다른 부문의 독점적인 노하우를 쌓고 있다. 즉 나이키나 델처럼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고 단지 생산 시설만 아웃소싱한다면 단기적으로는 해당 기업의 수익성에 도움을 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실패한 아웃소싱도 많다
아웃소싱은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보다 위험한 양날의 칼이다. 델이나 비지오처럼 아웃소싱에 성공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례도 많지만, 아웃소싱이 실패해 큰 손실을 입은 기업도 엄청나게 많다. 다만 실패 사례는 성공 사례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텔을 보자. MS와 인텔은 20여 년 전 당시 IBM이 핵심 부품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몇몇 기능 즉, 소프트웨어 제작과 컴퓨터 칩을 IBM에 납품하던 업체였다. 당시 세계 컴퓨터 시장을 장악했던 IBM은 이런 기능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IBM은 애플이나 다른 컴퓨터 완성품 제조업체들과의 경쟁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부품들을 아웃소싱하기로 결정했다.
 
컴퓨터가 막 등장했던 수십 년 전에는 MS와 인텔의 기술 개발 능력이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IBM은 두 업체가 만드는 수준의 제품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그런 면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인텔과 MS가 점점 신기술을 개발하면서 두 업체의 기술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IBM이 해당 시장에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져버렸다. (DBR 37호 ‘전략실천, 실무자에게만 맡기지 마라’ 참조) 납품 업체가 고객 기업보다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셈이다.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정도가 아니라 모기업보다 훨씬 크고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2월 17일 기준 MS와 IBM의 시가총액은 각각 2507억 5000만 달러, 1654억 9000만 달러로 무려 1000억 달러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앞에서 언급했듯 무조건 비용 절감에만 집착하지 말고, 여러 납품 업체를 둬야 한다. 납품 회사에 노사분규나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해당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도 여러 지역에 걸쳐서 서로 다른 납품 업체를 두고, 조금씩 나눠서 물품을 조달해야 한다. 나이키는 한국의 여러 신발 공장에 주문량을 나눠주는 걸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도 서로 다른 신발과 의류 등을 공급받는다. 철저히 조달 차질 위험을 분산시키면서, 동시에 납품 업체가 잠재적 경쟁자로 성장할 틈을 주지 않는 셈이다.
 
기술 아웃소싱도 마찬가지다. 핵심 기술이 아닌 주변 기술, 또는 필요한 전체 기술 중 일부분만을 아웃소싱해야 한다. 한 분야의 모든 기술을 아웃소싱에 의존했다가는 IBM처럼 과거의 납품 업체에 의해 큰 난관에 처할 수도 있다. 약간의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자사가 원하는 큰 기술을 몇 개의 작은 기술로 구분, 각 기술마다 별도의 아웃소싱 업체를 선택해야 현명하다.
 
TV, 전화기, 세탁기, 청소기 등의 보편화된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라면 특히 이런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나이키 신발에 대해 실시했던 소비자 조사를 이 분야의 소비자에게 그대로 해본다면 어떨까. 유명 브랜드의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지불 의향 가격 차이가 불과 10∼30% 포인트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반드시 삼성이나 LG의 전화기를 사겠다고 삼성과 LG 매장을 일부러 찾아가는 소비자는 별로 없다. 많은 소비자들은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동시에 판매하는 복합매장, 집이나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가전회사의 매장을 찾는다. 이런 상황에서 납품 업체가 다른 납품 업체보다 20∼30% 정도 저렴한 제품을 들고 나온다면 납품 업체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경쟁 업체보다 20∼30% 정도 낮은 가격이라면 납품 업체가 크진 않아도 어느 정도의 이익은 남길 수 있는 수준이다. 때문에 신규 진입자라도 충분히 기존 시장에 진입이 가능하다. 현재 한국을 이끌어가는 전자제품 업계도 1960∼1980년대까지 이런 과정을 통해 일본 가전업체들을 제치고 성장해왔다.
때문에 전자 업체들이 납품 업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소수의 외주 업체에 공급물량을 몰아주지 말아야 한다. 언뜻 비용 절감만 생각하면 단 하나의 납품 업체에 전체 물량을 몰아준 후 가격을 많이 깎는 전략이 가장 유리할지도 모른다. 납품 업체를 줄이기만 하면 고정비를 줄일 수 있으므로 당연히 납품 가격도 떨어진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이런 시도는 해당 기업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일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IBM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납품받는 제품이나 부품이 시장에서 누구나 손쉽게 개발 가능하거나 대체품이 있는 범용 제품이라면 납품 업체를 단 한 개로 줄여도 무방하다. 그러나 아무나 개발하기 힘든 특수한 제품이고, 만약 납품 업체가 독점적인 공급자라면 어떨까? 혹은 지금 현재는 독점적인 공급자가 아니지만 장래에 독점적인 공급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업체라면 어떨까? 이런 납품 업체가 독점적인 공급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고객 기업의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다면, 이 업체는 언제든 고객 기업의 경쟁자로 등장할 수도 있다. 굳이 IBM의 사례를 얘기하지 않아도 한국 시장에도 이런 사례가 많다. 납품하던 대기업을 제치고 시장을 장악한 중소 전기밥솥 업체들이 좋은 예다.
 
납품 업체가 성공하려면
앞에서 언급한 내용은 납품을 받는 고객 기업의 관점에서만 쓴 글이다. 그렇다면 아웃소싱의 주체인 납품 업체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앞에서 적은 반대로만 하면 된다. 한 회사에만 자사 제품을 납품하지 말고, 경쟁 관계에 있는 여러 업체에게 자사의 제품을 공통적으로 납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기술력부터 갖춰야 한다. 대부분의 고객 기업들은 자신의 경쟁 업체에 납품하는 회사와의 거래를 꺼리지만, 기술력이 있는 제품이라면 무작정 고집을 부릴 수만도 없다.
 
물론 대부분의 납품 업체는 주로 하나의 대기업에만 제품을 공급하지만, 경쟁 업체에게 동시에 납품하는 회사가 없는 건 아니다. 경쟁 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조선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조선과 STX조선에 부품과 모듈을 동시에 납품하는 회사들이 있다. 현대자동차, GM대우, 삼성차, 쌍용차에 모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도 있다.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원칙을 어기고 경쟁사에 납품하는 업체로부터 부품을 공급받는다는 자체가 그만큼 해당 납품 업체의 기술력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천하의 대기업이라도 이런 납품 업체에는 함부로 납품 가격을 인하하라고 요구하기 힘들다.
 
한국 납품 업체가 자신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려면 단순히 국내 시장에만 안주하지 말고 도요타와 GM, 소니와 히타치 등에도 납품하는 식으로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실제 이런 회사들도 있다. 국내외 유명 의류 회사들에 납품하는 세아상역, 한세실업 등이 대표적이다. 세아상역과 한세실업은 바나나리퍼블릭, 갭, 나이키 등의 납품 회사로 유명하다. 하지만 단순히 고객 주문에 따라 제품을 제작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디자인과 연구 개발팀을 운영한다. 즉 단순한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업체가 아니라 독자적인 자체 기획 제품을 개발, 고객 기업에게 먼저 자사 제품을 권유하는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단계에 이르렀다. 세아상역과 한세실업의 공장은 국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다. 제품 종류에 따라 생산처를 선택하기 위해서다. 명품 브랜드로 유명한 고가의 가방이나 지갑 중에서도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많다. 이렇게 출발한 업체들이 성장을 거듭하여, 나중에는 외국의 유명 브랜드 자체를 인수하기도 한다. 독일 MCM 브랜드를 인수한 성주그룹이 좋은 예다.
 
납품 업체들이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경쟁 업체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 그 결과, 10∼20년 후에는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로서 나설 수 있다. 일본에는 세계 시장의 절반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소규모 부품 기업들이 많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해당 기업들이 수십 년 동안 발전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중소기업들은 원래 일본 대기업에 납품하는 조그마한 하청 공장으로 출발했다. 이런 수준까지 성장하려면 지금 당장은 큰 이익이 안 나더라도 꾸준히 기술 및 디자인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단순한 OEM 업체가 아니라 ODM 업체로 거듭나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매출처를 다변화하면 제품의 생산 원가가 계속 낮아져 해당 기업의 경쟁력이 더 강화된다. 제품의 구성 원가는 크게 변동 원가와 고정 원가로 구분할 수 있다. 시장이 커지면 고정 원가는 거의 변하지 않고 변동 원가만 증가한다. 그 결과, 단위당 변동 원가와 단위당 고정 원가를 합친 단위당 제품의 총원가는 계속 낮아진다.
 
예를 들어, 어느 제품의 고정 원가가 총 100만 원이고 변동 원가가 생산 단위당 100원이라고 하자. 1만 단위를 생산한다면 총원가는 200만 원(변동 원가 100만 원+고정 원가 100만 원), 생산 단위당 원가는 200원이다. 생산량이 2배가 된다면 총원가는 변동 원가 200만 원, 고정 원가 100만 원을 합쳐 300만 원이다. 그 결과 생산 단위당 원가는 150원이다. 즉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생산 단위당 원가가 감소한다.
 
특히 설비 자산에 대한 투자가 많은 업종에서는 이런 추세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즉, 원가 절감 속도에 모멘텀이 붙으면, 시장을 더 확대시킬 수 있고, 그 결과 제품 생산량이 늘어나 원가를 추가로 절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생긴다. 물론 반대의 사례도 가능하다. 납품 업체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생산 원가가 높으면 원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원가 증가의 악순환이 생긴다.
 
사실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란 대기업보다 훨씬 어렵다. 물론 어려운 과정을 겪었겠지만 일본의 중소기업들은 특정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강소기업’으로 성장한 예가 많다. 한국의 중소기업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 최종학 최종학 |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accho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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